이하는 제가 이번에 완역한 정인보 선생의 <조선사연구> 상권(우리역사연구재단, 총 850쪽) 해제에서 언급한 내용의 일부입니다.
참고로 졸본의 원어라고 할 수 있는 '수이푼'은 만주어로서 송곳 또는 그와 비슷한 뾰족한 것을 뜻합니다.
(다들 기억하시겠지만 '창경' 아시죠? 거기서 '창'의 이미지와 일맥으로 상통합니다
이건 고증 절차가 필요하겠지만 '수이푼'도 어쩌면 '창경'의 '창'에서 유래했을 수도 있겠어요.)
고구려어는 그래서 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가설이 뒷받침 되는 셈이지요.
내년에 제가 이 가설을 토대로 학술논문을 발표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고대사 전문가 여러분들의 많은 가르침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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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분하의 지리적 위치
(우측 빨간 동그라미가 수분하)
중국에서 만들어서 그런지 동해가 일본해로 된 지도밖에 없더라구요 양해 부탁드린다는 ㅠㅠ
언어비교를 통한 역사 연구는 1920~1930년대에 ‘지명이동설(地名移動說)’과 함께 크게 유행했기 때문에 일견 19세기 말부터 서구, 일본의 동방학자들 사이에 유행하던 비교언어학의 영향이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위당을 포함한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의 언어비교 방법론은 그 계보를 정조 시기 이래의 실학(實學) 전통에서 찾아야 옳다.
중국 한대의 훈고학(訓詁學)은 경전의 고대어, 방언, 난해한 자구를 풀이할 때 거기에 상응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당대어, 표준어, 평이한 자구를 대입하여 그 발음이나 의미를 ‘유추’해 내는 연구방법이었다.
이 전통적인 언어 연구방법은 청대에 이르러 고증학(考證學)의 발전으로 다시 활성화되어 우리나라에서는 그 영향을 받은 이익, 정약용 등의 실학자들에 의하여 역사, 고문헌 연구과정에서 주로 운용되어 왔으며, 근․현대의 국어학자, 역사학자들의 어원 연구에도 중요한 방법론의 하나로 그대로 계승․활용되었다. 그러나 학계에서 보편적으로 수용되고 있다는 것이 그것의 과학성이나 정확도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어서 때로는 방향을 잘못 잡으면 언어적 기원이나 발전 법칙과는 전혀 엉뚱한 오답이나 억지 해석이 나오는 사례도 비일비재하였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위당이 《조선사연구》에서 보여준 역사언어학적 ‘감식안(鑑識眼)’은 남다르다. 그의 이 같은 감식안은 두 말 할 것 없이 문, 사, 철의 경계를 넘나들고 고금과 동서를 꿰뚫는 해박한 학식과 통섭의 치학정신에 힘입은 바 크며, 여기에 여러 차례 중국 각지를 답사하며 현지의 지형, 연혁, 습속, 어원을 직접 확인하고 이론과 실제의 괴리를 최소화하려는 자신의 노력이 더해짐으로써 비로소 갖추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졸본에 대한 분석이다.
졸본은 바로 ‘솔빈(率賓)’이다. 안정복이 “졸본은 바로 대씨 발해의 솔빈부이다”라고 한 것이나 김정호가 “졸본은 솔빈의 발음이 바뀐 것이다”라고 한 것은 대단한 탁견이다. 그러면 솔빈은 지금의 어느 땅인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솔빈은 수분하 서남쪽땅이다. …… 그 근거는 《금사》〈지리지〉 …… 이와 함께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 …… 휼품하(恤品河)는 바로 수분하(綏芬河)를 말한다. …… 솔빈(率賓)은 소빈(蘇濱), 속평(速平), 속빈(速頻), 휼품(恤品) 등으로 적기도 하는데 한자는 다르지만 그 발음은 지금의 수분과 대체로 부합된다. 또한 …… 수분하 동쪽으로 대략 1,000리 지점에 바다로 진입하는 아란하(阿蘭河)라는 강이 있으니 이 역시 《금사》의 기록이 틀리지 않음을 입증해 준다. 따라서 졸본이 솔빈이고 솔빈이 휼품이며 휼품이 바로 수분인 것이다. 이와 함께 수분 이동지역이 읍루의 옛 땅이고 읍루의 후신이 말갈(靺鞨)이라는 점, 《삼국사기》〈동명기(東明紀)〉에서 “그 땅이 말갈의 부락과 이어져 있다(其地連靺鞨部落)”라고 한 점도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 광개토대왕 비문에서는 동명이 “순행 길에 남하하였다(巡車南下)”라고 했고 《위서》〈고구려전〉에서는 “부여를 버리고 동남으로 갔다(棄夫餘, 東南走)”라고 적고 있으므로 서쪽으로 이동한 부여를 따라 동남쪽으로 졸본까지 남하한 셈이다. 여기서 ‘엄리대수(奄利大水)’는 송화강으로, 동명 일행은 남하과정에서 분명히 이 강을 건넜을 것이다. 또한 졸본에 도달하기 전에 모둔곡(毛屯谷)을 지났다고 했는데 여기서의 ‘모둔’은 ‘모단(牡丹)’이라는 발음이 변형된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모둔곡의 ‘곡’은 비류수(沸流水)를 ‘비류곡(沸流谷)’이라고 쓴 것처럼 하천을 뜻하는 말이다. 말하자면 모둔곡은 바로 모단강(牡丹江)을 가리키는 셈이다. ……
역자가 음운학적 견지에서 위당의 고증에 몇 마디 더 덧붙인다면 요녕성(遼寧省) 환인(桓仁)과 오녀산성(五女山城)은 역사, 고고, 어원상으로 졸본과 전혀 연고가 없는 반면,
① 중국에서는 길림성(吉林省)에 속하고 러시아에서는 연해주(沿海州) 우수리스크(Usurisk) 근처의, 지금은 그 지역을 흐르는 강과 함께 ‘수분(하)’로 불리는 이곳은 해당 지역을 지배하던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에서는 ‘솔빈(率賓)’, 발해가 세워진 후로는 ‘솔빈(率濱)’, 금나라 때에는 ‘휼품(恤品)’ 또는 ‘소빈(蘇濱)’, 명대에는 ‘속빈(速頻)’, 청대 이후로 ‘수분(綏芬)’으로 불려 왔는데 ‘졸본’으로부터 ‘솔빈, 휼품, 소빈, 속빈’을 거쳐 ‘수분(하)’에 이르기까지 이 이름들의
첫 글자들은
서로 다른 한자를 차용하고 있지만
초성(初聲)이 동일한 치조음(齒槽音) 계열의 [s-]이거나 [ʃ-]이고,
중성(中聲) 역시 우리 독음으로는 [-o-]이지만 중국에서는 보통 [-u-]로 읽혀져서 서로 간에 큰 차이가 없다.
종성(終聲) [-l] 역시 우리 독음으로는 끝소리가 [-p][-t][-k]로 끝나는 폐음절(閉音節)에 속하지만 중국에서는 당, 송대 이후로 입성(入聲)체계에 혼란이 발생하면서 시대, 지역, 주체에 따라 발음과정에서 탈락되는 경우가 많았다.
두 번째 글자의 경우
초성이 역시 [b-] 또는 [p-]여서 동일한 양순음(兩脣音) 계열에 해당하며, 중성 역시 고모음(高母音) 계열의 [-u-]와 [-i-]이어서 전사(轉寫)과정에서 기록주체가 그 중간음에 해당하는 중설모음(中舌母音) [-ʌ] 또는 [-ə]를 잘못 기록했을 가능성을 배제한다 하더라도 그 자체가 이미 음성학적으로 서로 상당히 유사한 모음에 속한다.
이처럼 이상의 이름들은 역사적으로나 조음법칙으로나 한결같이 ‘졸본’과 일관된 친연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 역사지리학적인 견지에서
② 주몽의 남하 방향이 ‘북부여에서 동남방’이라고 전하고 있는 《통전(通典)》 등 중국 측 사서들의 기록에 따르더라도 수분(하)을 축으로 주변의 산천을 차례로 대입․비교해 보면 북부여에서 정남쪽에 위치한 환인(桓仁)보다는 그 동남쪽에 위치한 수분(하)가 더 정확하다.
③ 중국 기록에서 주몽이 북부여에서 졸본까지 갈 때 중간에 거쳐 갔다는 강을 언급할 때 ‘모둔곡(毛屯谷)’으로 적고 있는데 위당의 고증대로 ‘곡(谷)’을 ‘강’의 뜻으로 이해하고 그 강을 지금의 모단강(牡丹江)으로 비정한다면 고구려 건국 당시의 모둔곡과 졸본(천)의 이름과 방위는 지금의 모단강 및 수분(하)와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역자가 이번 여름에 현지를 직접 조사,확인 한 결과에 따르면
④ 지형적으로 살펴보더라도 졸본이 고지대에 위치해 있었다는 중국 기록처럼 수분(하) 역시 해발 500미터 이상의 고지대 분지에 위치해 있어서 문헌 기록과 부합된다. 환인 역시 해발 800미터 고지대에 위치한 것은 비슷하다. 그러나 그곳의 오녀산성은 남북 1,000미터 동서 300미터의 대형 석성(石城)으로서 군사적 목적에 따라 장기간에 걸쳐 조성된 일종의 ‘계획도시’여서 고구려 건국 초기 한 동안 도읍 역할을 하다가 유리명왕(琉璃明王)의 국내성(國內城) 천도 및 그 태자 해명(解明)의 자결로 도읍으로서의 수명이 끝난 졸본과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이상의 비교언어적, 지리학적, 고고학적, 문헌학적 접근을 통해서
고구려 최초의 도읍인 졸본이 길림성의 환인이 아니라
러시아 우수리스크 서쪽 즉 흑룡강성 수분(하)일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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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카라바타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2.11.11 파사님 오랫만에 인사드리네요.
님의 문제 제기 정말 감사합니다.
먼저 수분하에 대한 음운학적 접근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지 않나 싶습니다.
지정학적 위치 역시 도시냐 지역이나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서로 겹치고
음운학적으로는 앞뒤 글자가 서로 동일계열의 소리이고 음운현상에서도 서로 공통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음운학적 견지에서는 여러가지 정황증거상 수분(하)보다 더 졸본에 근접한 지역은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음운학적으로는 이렇다. 다른 분야는 결론이 어떻게 나오냐?"
하는 식의 문제 제기 정도로 이해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카라바타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2.11.11 또..
제가 이미 <조선사연구> 후기에서도 밝힌 것처럼
졸본과 기타 지역에 대한 정확한 위치의 비정과 검증 작업은
아무래도 그리고 너무도 당연하게
역사학-지정학-고고학 분야의 전문가 학자 분들이 직접 검증하고 또 해명을 하셔야 될 부분이라고 봅니다.
저는 비교언어학을 연구하는 사람의 하나로서 음운학적 견지에서 제 소견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지정학-고고학-인류학 쪽은 비전문가에 가까우니까 제가 함부로 주제넘게 나서면 안되겠지요.
이 점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
작성자카라바타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2.11.11 오늘날도 그렇지만 그게 누구든지 간에 100% 진리나 100% 절대선이란 있을수 없지요.
위당선생이 <조선사연구>에서 개진한 주장도 마찬가지로 맞는말씀도 있고 틀린말씀도 있습니다
문제는 다른 카페에 갔더니 거기서는 위당선생의 일부 주장을 물고 늘어지면서 일방적으로 공격을 해대더군요.
위당선생의 틀린 주장은 당연히 버리거나 비판해야 하지만
맞는 주장은 아무리 자기 학파의 해석과 다르더라도 수용-활용할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요즘처럼 자기 스승 자기 코드만 내세우고 반대편은 무조건 적으로 돌리는 삭막한 세상에서는 더더욱 말씀입니다.
아뭏든 번번히 소중하고 매서운 지적과 가르침에 거듭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
작성자파사 작성시간 12.11.12 저는 위당의 열렬한 팬입니다.
그 이유 첫번째가 후조선의 정통 성리학사 무리 중에서 유일하게 단군조선을 명실상부하게 이 땅의 시조와 첫 국가로 자리매김했다고 보며,
두번째로는 기자 동래를 부정했다는 점,
세번째로는 왕검성을 가장 가깝게 비정했다는 점 때문입니다.
단군조선에 관한 인식에 있어서는 미수 허목.수산 이종휘.단재 신채호를 넘어 행촌 이암이나 북애자 級이고,
기자 동래 부정에 관해서는 약천 남구만과 .단재.육당이 있었으나 가장 격렬한 `날조`라는 표현을 구사하여 시원함을 주었고,
왕검성에 대해서는 요동군의 험독현이나 국경선을 흐르는 浿水가 될 수 없음에도 비정한 것이 안타깝지만, -
작성자파사 작성시간 12.11.11 그래도 16.17.18 세기 역사지리학 전문이라는 구암.여암.순암.수산.다산 등이
한반도 평양으로 본 것은 위당에 비교조차 하기 어렵고,
그나마 막연하게 패수를 압록강 북쪽에 비정하는 성호나
연행로 중 동팔참 첫 참인 봉황성을 안시 혹 평양으로 본 연암 보다야 백배 정확하다고 봅니다.
이리 장황하게 변무하는 것은
제가 위당의 음운 접근법을 마냥 비판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모쪼록 님의 건필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