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왕비에서는 광개토왕이 추모왕의 17세손이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삼국사기에 따르면 19세째가 됩니다. "세손"에 대한 해석은 여럿 있겠지만
문제가 될 수 있네요.
결국 삼국사기 왕계보에서 주몽에서 광개토왕에 이르는 사이에 2왕이 없어야되는 것이 되는데
이에 대해 태조왕과 고구천왕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설이 있어요
이에 대한 교시,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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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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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지테씨 작성시간 13.03.27 갑자기 궁금한게 거란 8부와 고구려 5부는 부족연맹같이 비슷한 형태인가요 ? 고구려에 유목민족 형태가 많이 존재했던거 같아서요. 알면 알수록 고구려는 영향력이 컸고 북방 제부족들의 구심점이었던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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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성일 작성시간 13.04.02 고구려에서 왕력(世系와 기년)을 믿을 수 없는 부분은 태조왕 이전 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대무신왕-태조왕까지 입니다. 대무신왕은 짧아지고 태조왕은 너무 길어졌습니다. 태조왕에게서 길어진 20년의 시간을 대무신왕에게 붙이면 기년의 문제가 풀립니다. 유리명왕의 사후에 대무신왕 무휼이 계승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유리명왕과 대무신왕 사이에 섭정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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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정성일 작성시간 13.04.02 추모 - 유리 - 대무신 - 민중 - 모본 - 태조왕의 계보에서 추모 - 유리 - (섭정) - 대무신 - 민중 - 모본 - (재사) - 태조왕으로 계승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재사는 섭정왕의 아들일 것이며 이분이 계루부 출신, 즉 백제 출신입니다. 백제가 계루에서 나왔다는 것은 부여융 묘지명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백제 역시 온조 사후에 100년 가까운 시간이 공위(空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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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용현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3.04.04 말씀대로 태조왕 이전의 계보가 문제가 있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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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용현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3.04.04 문제는 고국천왕의 존재여부가 초점이 되겠습니다. 삼국지와 후한서의 검토가 중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