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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카라바타르 작성시간13.03.28 저도 장지를 나타낸다는건 알고 있는데 그런뜻이 아니오라
호태왕의 시호가 광개토'경'과 광개토'지' 등으로 달리 의역되듯이
고국X왕의 장지 역시 고국'양'과 고국'원'으로 달리 의역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고국'천'은 하천을 나타내니까 상황이 좀 다르고요.
이런 사례는 고구려계 지명에서도 수시로 나타나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압록X'이 압록'수', 압록'곡', 압록'강'으로 달리 불린다든가
'비류X'가 비류'수', 비류'곡'', 비류'하' 등으로 달리 불린다든가요..
이런 사례들은 사실 같은 의미를 다른 글자로 의역할때 나타나는 언어현상이거든요.
그래서 그런게 아닌가 하는 '심증'을 말씀드린 겁니다 -
답댓글 작성자 카라바타르 작성시간13.03.28 지태씨님(좀 이상하네요^^;;)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영웅'은 과분하고 '용사' 정도밖에 안됩니다. 좀 저돌적인 기질이 있어서요^^;;
말씀하셔서 말인데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말에 몽골어나 만주어 즉 알타이어적 요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 다수는 고려 여몽전쟁의 결과이거나 조선 호란의 결과이겠지만
고대사를 들추어 보더라도 어원학적으로 상당히 그런 요소들이 많거든요.
그렇지 않아도 제가 이번 상반기에 학술재단에 그 아이템으로 신청을 넣을 준비를 하고 있지요.
신청이 받아들여져 연구가 진행되면 고대사 연구에도 조금은 보탬이 될겁니다.
아뭏든 앞으로 좋은 말씀 지도 많이 부탁드리겠습니다. -
작성자 카라바타르 작성시간13.03.27 역사이론이나 역사책은 끊임없는 문제제기와 고찰과 논의와 절충과 합의의 결정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확실한 역사적 진실로 확인된 사안이라면 모르지만
불투명한 채로 남은 의문의 사안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토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더우기 이 카페의 취지는 단순한 회원간의 친목도모보다는 문제제기와 절차탁마에 있지 않나요?
그런 의미에서 이런 문제제기는 인문학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봅니다만..
과학계의 천문학설이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서 성장을 멈추었다고 상상 한번 해 보십시요.
그 이후의 모든 역사적 대발견들은 영영 햇빛을 보지 못했겠지요? -
작성자 김용만 작성시간13.03.27 이 문제는 다케다 유키오 뿐만 아니라, 일본학계에서 꾸준히 제기하는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과 맞물려 있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한국학계에서 내놓은 가장 대표적인 글은 아마도 노태돈, [고구려의 초기왕계에 대한 일고찰],[이기백선생고희기념한국사학논총]상, 1994년 논문일 것입니다. 노태돈, [고구려사연구], 사계절, 1999년 책에도 실려있고, 그의 박사논문에도 포함되어 있지요. 삼국지와 후한서의 기록의 차이, 그리고 태조대왕-차대왕-신대왕 3왕의 나이 등의 문제로 삼아 삼국사기를 의심한 것이지만, 그것보다는 삼국사기가 인용한 고구려 자체의 전승이 더욱 신빙성이 있다는 것이 노태돈선생의 논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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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용만 작성시간13.03.27 저는 이 부분에 있어서, 일본학계가 갖고 있는 정치적인 배경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해서, 거의 무시해왔습니다. 게다가 문제는 일본학계가 그토록 강조하는 삼국지의 성격 때문입니다. 삼국지는 어디까지나 견문이고, 자신들의 주관에 맞춰 쓴 글이지, 그들이 고구려 역사를 모두 알고서 정리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 자체 전승에 근거한 고기를 기준으로 쓴 삼국사기 기록이 엄존하는 이상, 삼국지 부분을 더 상위에 놓고 분석할 수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삼국사기가 빠진 부분은 삼국지를 참조해야 함은 당연하며, 삼국지의 사료적 가치를 무시하지는 않습니다만, 두 기록이 중복될 때, 삼국사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