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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왕 세계-고국천왕은 없었던 것일까

작성자이용현2| 작성시간13.03.26| 조회수543|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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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 이용현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3.26 무전행남 고구려와 동아시아사 - 환도 국내왕계의 가상문제 란 논문의 내용입니다
  • 작성자 흑수말갈 작성시간13.03.26 4대 민중왕제(대무신왕 아우), 7대 차대왕( 태조 아우), 8대 신대왕(차대왕 아우), 10대 산상왕(고국천왕 아우), 18대 고국양왕(소수림왕 아우) 형제 승계
  • 작성자 都巡檢使 楊規 작성시간13.03.26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로부터 광개토태왕의 족보를 따져보면 주몽의 12세손이 됩니다. 19대 왕 =19세 손이라 보시는거 같으신데.... 혼동하신 듯 합니다. 흑수말갈님이 언급하신대로 고구려 왕계보를 보면 형제상속 예가 보입니다. 형제상속인 경우를 제외하고 부자간의 족보를 따져보면 담덕태왕은 주몽의 12세손이 되지, 19세손이 되지 않습니다. 이를 보아 오히려 삼국사기에 누락된 왕이 있다고 볼 수 있지, 광개토태왕비에 누락된 왕이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 작성자 카라바타르 작성시간13.03.26 물증은 없고 심증뿐이지만
    저는 간혹 고국양왕과 고국원왕은 동일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양'과 '원'이 '땅'을 의역한 부분이어서 같은 의미를 다른 글자로 표현했을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말이죠.
    우리가 광개토대왕을 '광개토경 호태왕' '광개토지 호태왕' 등등으로 달리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백제 왕명 중에서 "근"이 들어가는 왕명들도 비슷한 느낌이 들더군요.
  • 답댓글 작성자 지테씨 작성시간13.03.27 고국양과 고국원은 묘호, 묻힌곳입니다. 지명이 다른곳입니다.? 광개토경,광개토지는 업적으로 부여한 호칭이기에 비교 사례로 틀립니다. 고국천도 있습니다. 다만 태조왕 같은 경우는 다릅니다.
  • 답댓글 작성자 카라바타르 작성시간13.03.28 저도 장지를 나타낸다는건 알고 있는데 그런뜻이 아니오라
    호태왕의 시호가 광개토'경'과 광개토'지' 등으로 달리 의역되듯이
    고국X왕의 장지 역시 고국'양'과 고국'원'으로 달리 의역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고국'천'은 하천을 나타내니까 상황이 좀 다르고요.

    이런 사례는 고구려계 지명에서도 수시로 나타나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압록X'이 압록'수', 압록'곡', 압록'강'으로 달리 불린다든가
    '비류X'가 비류'수', 비류'곡'', 비류'하' 등으로 달리 불린다든가요..
    이런 사례들은 사실 같은 의미를 다른 글자로 의역할때 나타나는 언어현상이거든요.
    그래서 그런게 아닌가 하는 '심증'을 말씀드린 겁니다
  • 답댓글 작성자 지테씨 작성시간13.03.28 제시하신 지명에서 압록이나 비류란 지명의 범위가 넓어서 지형들의 형태를 보고 그렇게 달리 부른게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저도 물론 심증이고요. 카라바타르란 대화명이 참 맘에 드네요. 검은 영웅이란 뜻인가요? ㅎㅎ 표준어정책에 밀려 사라진 우리 사투리들이 만주를 중간 단계로 몽골어와 비슷한 점이 많던데, 님께서 그런 대화명을 쓰시는게 무척 반갑네요 ㅎㅎ 앞으로도 좋은 의견과 내용으로 도움 받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 카라바타르 작성시간13.03.28 지태씨님(좀 이상하네요^^;;)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영웅'은 과분하고 '용사' 정도밖에 안됩니다. 좀 저돌적인 기질이 있어서요^^;;
    말씀하셔서 말인데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말에 몽골어나 만주어 즉 알타이어적 요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 다수는 고려 여몽전쟁의 결과이거나 조선 호란의 결과이겠지만
    고대사를 들추어 보더라도 어원학적으로 상당히 그런 요소들이 많거든요.
    그렇지 않아도 제가 이번 상반기에 학술재단에 그 아이템으로 신청을 넣을 준비를 하고 있지요.
    신청이 받아들여져 연구가 진행되면 고대사 연구에도 조금은 보탬이 될겁니다.
    아뭏든 앞으로 좋은 말씀 지도 많이 부탁드리겠습니다.
  • 작성자 카라바타르 작성시간13.03.27 역사이론이나 역사책은 끊임없는 문제제기와 고찰과 논의와 절충과 합의의 결정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확실한 역사적 진실로 확인된 사안이라면 모르지만
    불투명한 채로 남은 의문의 사안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토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더우기 이 카페의 취지는 단순한 회원간의 친목도모보다는 문제제기와 절차탁마에 있지 않나요?
    그런 의미에서 이런 문제제기는 인문학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봅니다만..
    과학계의 천문학설이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서 성장을 멈추었다고 상상 한번 해 보십시요.
    그 이후의 모든 역사적 대발견들은 영영 햇빛을 보지 못했겠지요?
  • 작성자 김용만 작성시간13.03.27 이 문제는 다케다 유키오 뿐만 아니라, 일본학계에서 꾸준히 제기하는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과 맞물려 있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한국학계에서 내놓은 가장 대표적인 글은 아마도 노태돈, [고구려의 초기왕계에 대한 일고찰],[이기백선생고희기념한국사학논총]상, 1994년 논문일 것입니다. 노태돈, [고구려사연구], 사계절, 1999년 책에도 실려있고, 그의 박사논문에도 포함되어 있지요. 삼국지와 후한서의 기록의 차이, 그리고 태조대왕-차대왕-신대왕 3왕의 나이 등의 문제로 삼아 삼국사기를 의심한 것이지만, 그것보다는 삼국사기가 인용한 고구려 자체의 전승이 더욱 신빙성이 있다는 것이 노태돈선생의 논지입니다.
  • 작성자 김용만 작성시간13.03.27 저는 이 부분에 있어서, 일본학계가 갖고 있는 정치적인 배경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해서, 거의 무시해왔습니다. 게다가 문제는 일본학계가 그토록 강조하는 삼국지의 성격 때문입니다. 삼국지는 어디까지나 견문이고, 자신들의 주관에 맞춰 쓴 글이지, 그들이 고구려 역사를 모두 알고서 정리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 자체 전승에 근거한 고기를 기준으로 쓴 삼국사기 기록이 엄존하는 이상, 삼국지 부분을 더 상위에 놓고 분석할 수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삼국사기가 빠진 부분은 삼국지를 참조해야 함은 당연하며, 삼국지의 사료적 가치를 무시하지는 않습니다만, 두 기록이 중복될 때, 삼국사기를
  • 작성자 김용만 작성시간13.03.27 지나칠 정도로 불신하는 일본학계의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물론 고구려 왕계 역시 후대에 조작이 되었고, 두개의 왕계(소노보, 계루부)가 존재하다가 하나로 통합되면서 왕계 조작이 있었음은 물론 인정하며, 지극히 당연한 비판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노태돈선생의 비판처럼 중국사서를 따라서 고구려 왕의 실존까지 부정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봅니다.
  • 작성자 지테씨 작성시간13.03.27 갑자기 궁금한게 거란 8부와 고구려 5부는 부족연맹같이 비슷한 형태인가요 ? 고구려에 유목민족 형태가 많이 존재했던거 같아서요. 알면 알수록 고구려는 영향력이 컸고 북방 제부족들의 구심점이었던것 같아서요.
  • 작성자 정성일 작성시간13.04.02 고구려에서 왕력(世系와 기년)을 믿을 수 없는 부분은 태조왕 이전 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대무신왕-태조왕까지 입니다. 대무신왕은 짧아지고 태조왕은 너무 길어졌습니다. 태조왕에게서 길어진 20년의 시간을 대무신왕에게 붙이면 기년의 문제가 풀립니다. 유리명왕의 사후에 대무신왕 무휼이 계승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유리명왕과 대무신왕 사이에 섭정왕이 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정성일 작성시간13.04.02 추모 - 유리 - 대무신 - 민중 - 모본 - 태조왕의 계보에서 추모 - 유리 - (섭정) - 대무신 - 민중 - 모본 - (재사) - 태조왕으로 계승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재사는 섭정왕의 아들일 것이며 이분이 계루부 출신, 즉 백제 출신입니다. 백제가 계루에서 나왔다는 것은 부여융 묘지명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백제 역시 온조 사후에 100년 가까운 시간이 공위(空位)에 있습니다.
  • 작성자 이용현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4.04 말씀대로 태조왕 이전의 계보가 문제가 있어 보이네요
  • 작성자 이용현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3.04.04 문제는 고국천왕의 존재여부가 초점이 되겠습니다. 삼국지와 후한서의 검토가 중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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