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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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막고해 작성시간15.05.21 말씀해주신 요리의 일련의 변화과정(?)인 죽-떡-밥이라도 특정 시기에 특정 조리법만 사용한것은 아니지 않을까요? 고구려의 사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아는바가 없지만, 시루라면 이미 원삼국시대(삼한시대)에는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연구자에 따라서 청동기시대의 저부투공토기를 시루의 일종으로 보기도 하구요. 원삼국(삼한시대)의 취사용기라면 일반적으로 장란형토기와 시루를 꼽습니다. 장란형토기는 주로 끓이는 용도로, 시루는 찌는 용도였다면 당시의 조리방법이 단순하게 특정 조리법에 한정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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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용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5.05.27 무쇠가 귀했기 때문에 솥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며, 최상층 신분의 생활을 그린 벽화인데 전쟁 때문에 죽을 먹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죽-떡-밥은 식생활사 연구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며, 별다른 이론없는 정설입니다. 문제는 수십년 전만해도 집집마다 시루가 있어서 솥과 함께 조리도구로 사용했던 것처럼 시루와 솥이 함께 사용하는 시기에, 왜 굳이 최상위층 집안의 부엌에서 시루에 음식을 하는 장면을 그렸는냐는 것입니다. 여기서 분터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시루를 사용해본 어른들의 의견과 전공자의 의견을 들어보면, 시루는 잡곡 특히 조밥을 할 때 솥보다 좋고, 대량으로 잡곡밥을 할 때, 약밥을 만들때 사용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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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15.05.28 밥 짓는 방식, 즉 기술발전의 문제도 한 원인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먹는 단립종(자포니카) 쌀의 밥 짓는 방식인 취반법은 '뜸들이기' 가 핵심이지요. 솥에 물을 붓고 쌀을 넣은 뒤 강한 불로 끓이다가 어느 정도 익으면 약불로 뜸을 들여 솥 안에 남은 물을 다소 증발시키며 사실상 쌀을 찌는 과정으로 마무리해서 밥을 완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와 달리 장립종(인디카) 쌀을 먹는 지역인 중국 남부나 동남아의 밥 짓는 방식인 탕취법은 처음에 물을 붓고 쌀을 끓이다가 어느 정도 익으면 솥 안의 밥물을 버리고, 익은 쌀을 그대로 솥 안에서 익히거나 아니면 시루로 옮겨서 찌는 과정을 거쳐 밥을 짓게 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15.05.28 더 나아가 재배쌀의 기원지로 생각되는 중국 남부나 동남아 일부 지역에서는 아예 물을 따라내지도 않고 그냥 처음부터 대나무 찜기로 밥을 짓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아마 이 방식이 가장 원시적인 밥짓기 방식이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한 예로 라오스의 밥짓기를 볼 수 있습니다. 사진은 첨부한 바와 같고, 밥짓는 전 과정의 동영상은 주소를 링크해 두겠습니다. (사진은 잠깐 뚜껑을 연 모습임)
(사진출처: http://silius.blog.me/220288541954)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19gSas6ulIg)
- 1분 20초 ~ 2분 20초(쌀 씻어서 찜기 위에 바로 안침)
- 5분 ~ 5분 12초(밥이 다 되어 내림이미지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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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15.05.28 아, 수정중에 벌써 답글을 다셨군요. ^^; 일단 적던 것이니 마저 적겠습니다.
문화라는 게 쉽게 변화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똑같은 문화를 가지고 있어도 어떤 지역은 변화하지만 다른 지역은 변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조선은 이미 오래 전에 취반법으로 넘어갔음에도 18세기 연행 기록들에 나오는 중국 북부의 밥 짓는 방식은 여전히 탕취법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고구려 지역에도 앞서 라오스의 예로 든 것과 같은 초기 형태의 밥 찌기 방식이 오랜 음식전통으로 남았다면, 솥이라는 새로운 조리기구가 등장, 보급되었다고 해도 대중적인 밥 짓는 방식은 쉽게 변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
작성자 麗輝 작성시간15.06.01 오늘 논의의 중심이 솥과 시루에만 포인트가 맞춰지는 감이 없지 않아 몇자만 적습니다. 고구려의 경우, 솥과 시루를 동시에 혹은 따로 따로 썼다는 것은 분명합니다(고구려의 남쪽 변경인 한강유역의 소규모 보루, 10명 정도가 주둔하던 보루의 아궁이에서 시루 위에 솥이 걸린 채로 확인되었습죠. 변경의 소규모 주둔기지가 그러하다면, 고구려의 일상적인 부엌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는건 어렵지 않습니다. 물론, 그걸 오히려 특수한 경우로 보는 입장도 있습니다만 전 전자쪽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동시기의 백제, 신라, 가야에서 그런 문화가 확인되지는 않는다는 거죠. 위에도 막고해님이 쓰셨지만 원삼국시대부터 한반도 중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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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麗輝 작성시간15.06.01 의 주요 자비용기는 장란형토기와 시루였습니다. 그리고 심발형토기에서 쌀 짓기 복원실험을 하기도 했었고, 태토에 공극이 크고 팽창-수축이 가능한 것들이 자비용기로 쓰였을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죠. 하지만 한반도 중남부에서 솥과 시루를 동시에 사용했다고 보는 견해는 적다는 것입니다. 그건 고구려와 달리 백제, 신라, 가야 애들은 다른 식으로 밥을 해먹었다는 것이죠. 그걸 두고 고구려의 식문화가 더 우수하다, 라고 단순히 결론내릴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양자의 식재료, 조리방법, 요리 종류 등이 달랐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봐야할 듯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북쪽에서 내려온 고구려가 한반도 중부까지 왔음에도 자기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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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麗輝 작성시간15.06.01 대로 음식을 해먹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한반도 중남부의 고구려 토기가 나온 주거지를 보면 재지계의 방형, 여자, 철자형 주거지에 고구려식 쪽구들이 결합된 형식이 많습니다(알다시피 고구려의 전형적인 주거지는 중국에서 제대로 발굴조사된 바가 없습니다. 건물지는 일부 있지만요). 이처럼 북쪽에서 내려온 고구려인들은 자기들만의 문화를 한반도 중남부에 가져왔고, 식문화에서 있어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렇게 봤을때 김용만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쌀보다 잡곡을 주식으로 선호했다는 결론도 충분히 가능한 추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암튼, 제가 여기에서 몇자 적으려는 궁극적인 이유는, 고구려가 조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