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역사를 조사하던 중에 유독 고구려의 병력이 얼마나 동원할 수 있는 지, 얼마 정도 병력이 되는 지 궁금해서 올려봤습니다.
(1)고구려 초기에 동천왕 시절에 즉시 동원가능한 병력은 3만~4만여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이는 원정군의 병력으로 실제로 방어군까지 합친다면 10만은 될것이라고 추측이 됩니다.
고구려가 그당시에 조금 약하긴했지만 주변에 워낙에 적이 많은 상황이었습니다. 단지 위나라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도 존재는 하던 한사군과. 부여, 그리고 미약했지만 옥저와 동예 그리고 말갈족등 사방이 그당시에 적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전성기때처럼 사방을 평정한 상황이 아닌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그당시에 위나라가 침공해서 수도가 뚫리긴했지만 실제적으로 그렇게 약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워낙에 방어를 해야할 적들이 많았을뿐이고...
그당시의 고구려의 국력은 대략 촉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약한 그정도였을 것으로 추산이 됩니다.
만약 그정도의 국력. 내지는 군사력이 되지는 않았다면 나중에 사방의 적을 평정하고 동북방의 강대국으로 성장해낼 동력은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2)그저 추측일뿐 정확한 답은 없습니다... 고구려 역시 윗분 말씀대로 추정하고 있는 군대입니다...
방어군까지 합치면 최소 10만은 되어야 가능할거라고 봅니다..
(3)고구려의 전성기때 군사수가 30~50만이라고 보는 사람도 없고 고구려의 인구도 정확히 알수없는판국에 그다지 인구도 많지 않았습니다. 엄연히 고구려가 백제보다 땅이 넓은데 백제가 76만호에 비해 고구려는 69만호였습니다. 거기다 200년전에는 이것보다 더 적었겠지요.
거기다 고구려가 군사수를 최대한 동원하더라도 5만이상은 없습니다. 광개토대왕이 신라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기병 보병 합쳐 5만을 데리고 갔었고 가장 큰 전투였던 장수왕이 한성을 공격하는데도 3만의 군사를 데리고 갔습니다.
님의 말대로라면 연개소문집권당시 고연수 고혜진이 15만군사를 데리고 갔다가 묵살당하였는데 그런 한번의 전투에 50%를 사용하였다는것인데 이것또한 말이 안됩니다. 이것또한 최대한 모으고 모은 군사겠지요. 거기다 이때 말갈인이 이세민에 의해 생매장되었다는 기록이 있는것으로 보아 15만군사는 고구려인 말갈인 등등 여러 이민족 군사수들을 합친것이겠지요.
그리고 위나라 오나라 촉나라의 군사수는 최대한 사실에 맞추려고 학자들이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장수왕때 군사수가 50만이었다느니 연개소문 집권때 20 30만이라는것은 어디까지나 한낮 헛소리에 불과하고 그렇게 군사를 모을수도 없습니다.
(4)동천왕시대 고구려에서 10만대군을 뽑았다고 한 기록은 없어보이니...
인구는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최대 동원가능 병력은 7~8만정도로 보입니다..
(5)일단 시대적으로 고대사회입니다. 그리고 고대사회는 농경이 발달하기는 하지만 근대사회처럼 곡물 생산이 많지 않은 시대에다가 많은 전란과 의료기술의 미흡으로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는 보기 힘든 시대입니다.
참고로 고대 중국 왕조중 가장 강성했던 한나라의 전성기때의 인구는 대략 5000만가량이었습니다.
물론 완벽한 호구 조사를 했다고 보기 힘든시기이기 때문에 정확하다고는 볼수 없지만 대략 80%정도는 일치한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나라가 221년에 멸망하고 400여년이 흐른 수나라 문제 시절에 인구는 4600~4800만으로 현재 남한인구와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400여년이 흘렀는데도 인구수의 증감이 적은것을 가늠해보면 고대시대에는 인구증가가 현저히 떨어지는 시기입니다.
당시 고구려의 영토는 요동과 요서 지방 일부 그리고 북만주와 연해주일대 그리고 남쪽의 북한강이북지역입니다. 한나라 13자사부중에서 요동과 요서지방이 속하는 곳은 유주입니다. 유주의 인구가 대략 200만정도였으니까 유주의 절반가량인 요동전역과 요서지방 일부를 가졌던 고구려의 이곳 인구만해도 120만가량이었고 한반도북부의 영토에 있는 인구또한 200만명 가량될걸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만주와 연해주일대가 비록 척박하기는 하나 고구려의 영토중 가장 큰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역이므로 이곳에도 200만이상의 인구가 살았다고 볼수 있습니다. 이를 합산해보면 고구려의 인구는 적어도 500만이상은 되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물론 추정치일뿐입니다. 그리고 하나의 변수가 될수 있는부분이 고구려특유의 지방제도입니다.
고구려는 멸망당시까지도 5부귀족이 있었습니다. 고구려의 영토를 동서남북과 중앙부 이렇게 나누어 5로 나누는데 5부의 귀족들의 휘하에 수만의 사병과 영지의 귀속민들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런 사람들은 호구조사에서 빠졌을것입니니다. 그러므로 이들까지 모두 합친다면 고구려의 실제인구는 대략 남녀를 합쳐 600만이상은 되었을걸로 추측합니다.
이런인구수를 감안한다면 고구려의 정규군의 수는 우리들이 흔히 알고 있는 30만에 못미치는 숫자가 나올것입니다. 아마도 20~25만가량이었을겁니다. 고구려의 30만 정규군은 아마도 예비군과 귀족들의 사병을 모두 합쳤을때 나온 숫자로 추정됩니다.
(5)한 이야기를 예를 들어 먼저 설명 하겠습니다.
삼국지에서 서강군을 보시면 철갑기병의 일종인 철갑차가 나오고, 백마진의 경우에도 속도위주 이외에 방어위주로 철갑백마진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대기병용으로 훈련된 갈고리창병등이나 강궁을 가진 궁수들이 매복한 경우가 아니라면 철갑기병 1000명을 10000명의 군으로 당해내지 못한다는 사실이 일반적입니다.
중세기사의 경우에는 개인돌격입니다. 보통 화살은 들어가지 않는 두꺼운 마갑과 철갑을 입은 기사가 먼저 뛰어들어 상대의 진형을 흐뜨러트리면 그 뒤에 보병이 덮치게 되지요. 하지만, 이 경우에도 석궁이나 핸드발리스타정도가 나오면 상황이 달라지지요. 석궁은 브리튼왕국(UK)의 웨일즈지방에서 유래되었는데요, 그 위력이 보통 화살의 3배 이상에 달한다고 합니다. 당연히 철갑 뚫립니다. 핸드발리스타는 말 그대로입니다. 거대한 화살을 날려보내는데 말이랑 사람이 당해내겠습니까?
보통 말을 타게 되면 말머리 앞쪽과 (오른손잡이의 경우) 왼쪽을 방어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철갑기병대가 되면 그 단점이 거의 완벽하게 보완됩니다. 창이라는 유리한 무기로 상대를 휩쓸게 되고, 제가 전쟁판타지 소설을 쓰려고 연구해 본 결과 비율로 따지면 일반칼병은 무려 10000명을 180명의 철갑기병들이 이길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창병은 4000명, 궁수는 멀리 있을 경우 5000명정도 가까이에선 20000명에 가깝게 상대가 가능하죠. 좀 흐트러져도 칼에 익숙치 못한 궁수들이 활을 장전하기 전에 모두 죽을테니까요.
먼저 이야기 처럼 철갑기병 200명이 만명의 칼병들을 이긴다고 하죠.
고구려의 전투시 거의 5만에서 10만 정도의 병력이니 철갑기병은 고구려의 일등공신입니다.
즉 10만(100000)의 군사가 나왔을때는 1%정도 1000명정도의 철갑기병이 나오겠죠.
일등공신인 만큼 1%내지 0.5%사이 일껍니다.
위의 글들은 인터넷에 나온 지식댓글에 가져온 글입니다. 실제로 고구려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15만~30만 가량 된다는 설이 있는 게 맞나요? 최지원 전에는 100만이라 적혀있다만.. 그건 과장된 허구라 생각이 드네요.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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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용만 작성시간 17.12.26 광개토태왕 시기 남해안 정벌에 5만을 동원하자, 후연이 기습해서 7백리를 뺏어갑니다. 그것은 당시 5만군대가 고구려 전체 군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컸다는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광개토태왕 시기 고구려군은 10만 정도로 추정(?)은 가능하겠지만,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장수왕 시기 인구가 급증한 후부터 증가하여 병력수도 늘어나, 고-수 고-당 전쟁 때 30만 이상이 된다고 봐야겠지요. 그리고 612년 당시 수나라가 동원한 병력 113만은 과장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 수서에 각 군별로 정확히 숫자가 나옵니다. 그래서 113만이 동원되었다고 본다면, 이를 상대할 고구려군의 숫자도 결코 10만이 아닌, 30만 이상이라고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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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장수태왕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7.12.26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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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추모왕 작성시간 18.01.04 칼병만 있다면 가능합니다. 물런 전멸은 못시키겠지만 전력에서 이탈 시킬 수는 있습니다. 기병은 돌파력이 힘인 병종이고 그런 기병을 막을건 창병뿐입니다. 보병들이 밀집을 안이루고 도망 다니면 그건 더이상 전력이 아니죠. 기병은 사람까지 합치면 3-400kg을 넘죠. 이런게 시속 4-50km으로 달려와서 집단으로 보병을 퍽 치는 겁니다. 차량 500대가 천명의 밀집대형의 후면을 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좀 싸우다가 다시 빠져서 전열을 정비하고 또 퍽 치는거죠. 계속 이짓을 하는거죠. 창병이 있으면 막지만 칼병만 있다면 꼭 불가능한건 아닙니다. 보병은 흩어지면 전력이 안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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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공실불 작성시간 18.01.08 창병은 전방만 주시하게 되어 측면이나 후방에 대한 방어력이 약해질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병의 우회 기습이나 궁기병의 공격에 취약한 점이 많습니다 게다가 창병도 고정된 상태에서 위력을 크게 발휘하지 대열을 맞추기가 어려운 유동적인 상태에서는 그 위력이 떨어질수밖에 없지요 궁기병이 화살 날리면 방호력이 취약한 창병은 쓰러질수밖에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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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추모왕 작성시간 18.02.21 공실불 그건 그렇쵸. 여러 전력이 다같이 모여서 효과적으로 전투를 수행해야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