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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새로 발견된 고구려 유민 고충운 묘지명과 해석

작성자김용만| 작성시간25.10.11| 조회수0|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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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가라모리스 작성시간25.10.12 감사합니다, 혹시 최근에 발견된 재당유민 묘지명은 이 고충운 묘지명이 1개일까요? 김영 묘지명 이외에 여흥군 부인 천씨 묘지명과 관련된었던 천경선이라던가 이런 사람들의 묘지명이 더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 작성자 kyeon 작성시간25.10.26 수당시기 고구려 수도가 평양인데 국내성왕은 뭘까요? 혹시 욕살을 왕이라 생각한 것일까요? 중앙집권을 강화해 가던 고구려가 봉건적인 지방 왕 따위를 허용하진 않았을 것인데....
  • 작성자 好太聖王天可汗 작성시간25.11.10 풍홍이나 신찬성씨록의 사례로 봐서 고구려 군주의 이칭 일부는 즉위 전의 왕작 아닐까 생각했는데 국내성왕을 보니 더 그렇게 생각되네요.
  • 작성자 두막루 작성시간25.11.16 皇國內城王, 皇國內城左相이라... 표현이 일견 독특해보이긴 합니다만, 일단 황(皇)자가 앞에 왜 붙었을까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듯 합니다. 묘지명은 대체로 앞부분은 조상의 내력을 설명하는 파트인데, 고충운이라는 사람의 선조에 대한 내용에서 증조 앞에 "당태종이 천명을 받아 고구려 왕을 포로로 삼아 중원으로 이주시켰고, 이후 그 자손들은 고(高)를 성씨로 정했다(洎我唐太宗之受命也,虜其王,遷我區夏,其後 子孫因命氏焉)."는 문장이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당태종이 고구려왕을 포로로 잡았다는 것이나 이후 자손들이 고씨를 성씨로 정했다는 정보의 진위는 둘째치더라도, 이것은 당시 고충운이 몸담았던 당나라의 공식입장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문장이 앞에 놓인 것을 감안할 때, 제가 보기에는 증조부가 역임했다는 황국내성왕(皇國內城王)은 당나라(皇) 치하의 국내성왕을 의미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세대상으로도 고충운이 775년경에 사망했다면, 당시 평균적인 세대 나이차가 대략 20년 정도로 짧다는 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증조때부터는 이미 당나라에서 벼슬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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