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김준수작성시간09.03.03
지도자 개개인의 능력도 만만치 않지만 석 륵의 성공은 역시 그 당시 역사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겠지요. 서한대까지는 관중 등 서부의 땅을 차지한 쪽이 우세를 점했지만(예, 서주⇒은상, 서한⇒항초) 동한대부터는 하남 등 동부의 땅을 차지한 쪽이 족족 우세를 점했고 석 륵의 시대에는 그러한 경향이 최근의 일이었으니까요. 여러 요소들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러한 흐름이 주요한 요인이 되었으리라 봅니다. 인재 수급 등의 문제에 있어서도요.
답댓글작성자야스페르츠작성자 본인 여부작성자작성시간09.03.03
그런가요. 그런데 꼭 그렇게만 볼 수도 없는게... 수나라는 관중에서 출발했고, 당나라도 관중을 장악하는 것이 사실상의 출발선이었죠. 꼭 흐름이라 보기 보다는, 결국은 정황의 변화에 따라 관동이 유리할 때도 있고, 관중이 유리할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뭐, 송대 이후로는 관중이 완전히 마이너가 되기는 합니다만...
작성자김준수작성시간09.03.05
네, 동의합니다. 다만 북주의 건국 이전까지는 관동 쪽이 우세를 점한 기간이 길었다는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데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여러 변수도 있었지만 역시 관동 쪽이 '인재 수급'에는 유리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