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1년 토번제국(吐蕃帝國)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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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글은 본인 글로서 네이버 아이디 여소제(ssyeo)로 활동하며 쓰는 게시글임을 알리는 바입니다.
이 지도 만드느라 고생좀 했습니다. 태클 올까봐 미리 말해두는데 신라 발해 거란쪽은 아주 대충 만들었습니다.(본인도 신라 영토가 너무 북부로 올라갔더거나 발해 영토가 이상하다거나 남조가 너무 아래로 갔다거나 하는건 압니다.) 본 지도는 토번 위구르 중점으로 작성됬음을 알리는 바입니다.
참고자료:
[원사료] 시네 우수 비문(위구르 비문) - http://cafe.naver.com/ygsm7/11035
[원사료] 장경회맹비(長慶會盟碑) - http://cafe.naver.com/sagasagasaga/2498
[원사료] 타라이트 비문(위구르 비문) - http://cafe.naver.com/sagasagasaga/748
[원사료] 청수동맹비(淸水同盟碑) - http://cafe.naver.com/sagasagasaga/142
『구당서(舊唐書) 토번전 상 하』
『신당서(新唐書) 토번전 상하』
『신당서(新唐書) 회골전』
『위구르 유목 제국사』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바쉐』
『티베트 역사산책』
『티벳의 문화』
『티베트와 중국』
『丁載勳,「위구르 遊牧帝國(744~840)의 崩壞와 遊牧世界의 再編 回鹘汗国(744~840)的灭亡与游牧世界的再编」,『東洋史學硏究』第76輯, 동양사학회, 2001.』
『차마고도』
『吐蕃의 天山南路 침공과 羅唐戰爭의 勃發』- http://cafe.naver.com/sagasagasaga/2084
『달라이 라마가 들려주는 티베트 이야기』
글쓴이:여소제(ssyeo)
=네이버 아이디=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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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신농 작성시간 09.09.23 위구르는 친당적인 외교를 통해서 이득을 많이 보았고, 이 외교가 오히려 당나라에게도 심히 부담이 될 정도였을만큼 위구르는 강한 나라였습니다. 돌궐이 반당 정책으로써 직접적인 위협이었다면, 위구르는 은근한 위협 세력이었달까요. 10세기 무렵 북방의 키르기스에게 멸망당하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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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여소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9.09.23 8~9c는 그야말로 티벳 위구르 소수민족에 전성기라고 할 수 있으며 bc237년에 건국된(왕조 틀을 갖춘건 32대 남리루첸 33대 송첸캄포때였지만) 토번왕조에 전성기 시대였죠... 토번의 경우 당시 군사력을 보면 상상을 초월합니다.(당나라 장안을 공격할때 동원된 군만 20만이었고 복고희은을 돕기위해 이동된 군사는 5만 북정성 전투에 출동된 군사수도 10만 가량으로 엄청난 군사력을 보유했죠. 양과 질 모두 겸했으니... 특히 토번의 전투 방법은 중국으로서 경험해보지 못한 전투였기에 상당히 곤혹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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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여소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9.09.23 위구르 제국의 경우 동쪽으로 거란 서쪽으로 페르가나에 이럴정도로 막강한 제국이었으며 당시 토번의 유아독존시기를 종식시켰다. 라고 보아도 될 제국이죠.(실상 위구르 제국 등장 이전가지 안사의 난 이후로 토번은 가히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제국으로 군림합니다.(당나라에게 조공까지 요구하고 조공을 받지요.) 위구르 제국의 멸망의 경우 전염병이 가장 큰 원인데 이는 중국사서에 자세히 나옵니다. 자연재해가 연이어 온것에 이어 위구르는 성을 쌓고 사는 정착생활을 했기에 그런 전염병을 피하지 못했죠.(정재훈씨나 다른 학자들 예상으로는 그 전염병은 탄저병으로 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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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東明聖帝 작성시간 09.11.15 토번은 예전에는 강성한 국가였으나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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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라이센스 작성시간 09.12.13 굉장히 신선한 자료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