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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야요이시대의 석기생산과 유통의 변천과정

작성자麗輝|작성시간09.12.23|조회수622 목록 댓글 5

야요이시대의 석기생산과 유통의 변천과정

- 동북부 큐슈를 중심으로 -

 

츠치야 미즈호

 

고고학연구 제50권 제4호(통권200호) 별쇄 2004년 3월

 

 

요지 본고의 목적은 야요이시대의 석기생산과 유통의 변천을 여러 기종을 분석하여 명확히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동북부 큐슈의 석포정(이하 석도로 지칭하겠음), 벌채석부, 편인석부를 대상으로 제작공정이나 미성품(이하 미완성품으로 지칭하겠음)의 비율, 석재 산출지와의 위치관계 등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전기말까지 기종의 차이를 넘어선 생산과 유통의 소지역간 관계가 성립되었음을 알 수 있었으며, 중기 후반에는 생산 · 유통이 축소 및 정지하였고, 후기에는 각 사회관계 속에서 석도의 생산과 유통이 이뤄졌음을 명확하게 밝힐 수 있었다. 이러한 변천의 요인을 철부 보급에 의한 소지역간의 관계 약화에 의한 것으로 결론지었으며, 기종의 소멸이 타기종의 생산과 유통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키워드 : 석기, 생산과 유통의 변천, 여러 기종, 석재, 지역간 관계

 

처음에

 

야요이시대의 석기생산에 대한 연구는 각 지역에서 진행되었으며, 자료가 많은 지역에서는 그 구체적인 양상이 꽤 해명되고 있다(타카기 1999; 나카하라 2000 등). 그러나 종래의 연구에서는 석기의 성행기만을 대상으로 다루고 있어 그 후 석기문화가 어떻게 쇠퇴해 종언을 맞이했는지 그 변천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또한 하나의 기종1) 분석 대상으로 여겨지는 경우도 지극히 많았다. 하나의 석재가 여러 기종의 소재로 선택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며, 석재 산출지와의 위치관계가 석기 생산 양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인 이상, 같은 석재를 이용하는 기종 간 생산 양상에 차이가 있는지 없는지는 반드시 검토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또, 복수의 기종을 분석함으로써 생산의 배후에 있는 취락관계, 사회구조와 접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상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본고에서는 여러 기종을 분석하여 석기 생산과 유통의 변천을 밝히고 그 요인에 대해 고찰하도록 하겠다. 대상 지역은 시기비정이 가능한 자료가 풍부하며, 석재 산출지의 연구가 상당히 진행되어 있는 동북부 큐슈로 정하도록 하겠다2)이 지역에서는 일찍이 키타큐슈시 타카츠키 유적의 태형합인석부 미완성품이 주목받아 해당 유적이 그 제작지로 인식되어 왔다(나와 1934). 근래에는 우메자키 케이지가 상세한 분석을 해 타카츠키 유적이나 키타큐슈시 타카츠오 유적 주변에서 대량생산된 태형합인석부가 동북부 큐슈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었음을 밝히기도 하였다(우메자키 1989; 96; 98; 2000 등).

한편, 태형합인석부 이외의 석기로는 유쿠하시시 시모히에다 유적에서 석도나 마제석과 등의 완성품이 대량으로 출토되었는데 미완성품이 출토된 옹가가와 중류역이나 타카츠오 유적으로부터 완성품을 반입했을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으나(스에나가 1985, 타케스에 1985, 우메자키 1989), 유통의 형태나 범위, 시기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는 이뤄지지 않았다. 자료가 풍부한 태형합인석부 이외의 기종에 대해서 생산 시점부터 검토하는 것이 해당 지역의 연구과제 중 하나이며, 그러한 점들이 흥미로운 지역이 바로 동북부 큐슈이다.

 

1. 연구방법

 

분석 대상 기종으로는 시모히에다 유적의 석기 조성 검토 과정에서 유효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선택하였다(도면 1)3)

 

 

야요이시대를 통해서 석도와 벌채석부가 지극히 높은 비율을 차지하며, 편인석부도 일정 비율을 차지하므로 기종 및 석재가 공통되는 것부터 석도, 벌채석부, 편인석부의 3개 기종을 대상으로 분석을 실시하였다(도면 2).

 

 

구체적인 분석 방법으로는 각 기종의 제작 기법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유적에서의 각 석재별 출토 수량 중 미완성품4)비율과 공정, 석재 산출지와 유적과의 위치관계를 검토하도록 하겠다. 또한 석기의 출토 수량에는 조사 면적도 큰 영향을 미치므로 단순히 출토 수량의 많고 적음만으로 유적의 성격을 거론하는 것은 위험하므로, 조사면적 근처의 출토 수량도 고려하도록 하겠다.

덧붙여 석기 생산과 유통이라는 문제를 취급하려면 시기 비정의 세분화가 불가결하기 때문에 유구와 유적만을 대상으로 취급하였다. 시기는 출토 자료가 적은 전기 후반 이전을 제외하고 전기말부터 후기 종말까지를 취급하였다. 하지만 전기부터 후기까지 존속하는 유적이 지극히 적고, 거주구역에서 묘역으로 성격이 변화하는 것도 많아서 평야나 하천 유역을 6개 단위의 소지역으로 설정해, 각 소지역마다 석기 생산의 변천을 파악하도록 하겠다(표 1 · 도면 3).

 

 

 

2. 석재 산출지

 

키타큐슈시내 유적 및 유쿠하시시 시모히에다 유적, 츠이키마치츄슈 유적 출토 석기는 오오타 마사미치, 후지이 아츠시(1985 등)에 의해 육안에 의한 석재 감정이 실시되어 주요한 석재에 대해서는 산출층이 판명되고 있다. 석도, 편인석부, 석과 등의 마제석기에 주로 이용되는 것은 와키노아층군의 응회질점판암이나 세립사암 등으로 판으로 갈라지기 쉬운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하 와키노아층군에서 산출되는 퇴적암류를 정리해 「세립사암」이라고 부르도록 하겠다5)

한편, 벌채석부의 소재에 주로 이용되는 것은 시모노세키아층군에서 산출되는 안산암질응회암이나 안산암으로 치밀한 조질의 작은 석재이다. 이하 시모노세키아층군의 응회암류를 「안산암질응회암」이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이외 석도 및 편평편인석부의 일부나 타제석부에는 편암이, 벌채석부의 일부에는 사문암이 이용되었지만 산출지는 한정할 수 없다. 또한 벌채석부나 편평편인석부 중 극히 일부에는 유문암질응회암, 휘록응회암, 화강섬록암, 반려암도 이용되었다. 이 중 유문암질응회암의 산출지는 지역 내에서 야하타소오층으로 한정할 수 있으며(우메자키 1993, 76쪽), 휘록응회암, 화강섬록암, 반려암은 분명하지 않다. 덧붙여 후쿠오카시 이마야마 유적 주변에 나는 현무암도 벌채석부 중 극히 일부분에 이용되었다6)

도면 3은 와키노아층군, 시모노세키아층군, 타가와 변성암, 야하타소오층의 유적 분포를 나타내고 있다. 와키노아층군, 시모노세키아층군과 근접하고 있는 카나야마가와 유역, 이타히츠가와의 남쪽은 화강암지대로서 소네평야와 쿄츠쿠지방 석기에 주로 이용되는 석재가 산출되지 않는다. 다음 장에서는 이상의 유적들의 입지를 근거로 석기 생산 상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석재 명칭은 공표된 감정 결과를 참고해 육안관찰로 판별하였다.

 

3. 분석

 

(1) 석도

 

➀ 제작기법

동북부 큐슈의 석도 제작기법에 관해서는, 중기 이전의 자료를 대상으로 한 카미무라 가후미(1980), 무라타 유우이치(무라타 1999; 무라타 외 1999)의 연구 및 계측치를 통해 천공방법(구멍 뚫는 방법)의 변화를 지적한 다케스에 쥰이치(1987a)의 연구가 있다. 중기 이전의 기법에 대해서는 무라타씨의 견해와 거의 같지만, 중기 전반 이전과 후기의 경우, 천공방법 이외에도 제작기법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기부터 중기 전반의 제작 기법으로는 박리정형, 고타, 연마, 천공의 4개 공정으로 나눌 수 있다(도면 4 좌 · 도면 2-3).

 

 

박리정형은 소재의 주연부(테두리부분)에 타격을 가해 외형을 정돈하는 공정이다. 고타는 돌출부의 볼록한 면을 두드려 면을 다듬는 공정으로, 이 공정을 거치지 않는 것도 많다. 연마는 연마가공에 의해 외형을 완전하게 정돈하는 공정이다. 천공은 소재의 양면을 고타공정을 거쳐 천공 예정부분이 어느 정도 파일 수 있게 하거나 관통시킨 후에 공구의 회전 작업으로 구멍을 확장 · 관통시키는 공정을 의미한다(이하 이 방법을 고타천공이라고 부르겠다). 고타공정을 거치지 않고 회전 작업만으로 양면을 천공한 것(이하 이를 직접천공이라고 부르겠다)도 천공공정에 드물게 보인다. 천공작업은 연마작업이 완전하게 종료한 다음에 행해진다기보다는 어느 정도 작업이 진행된 단계에서 병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7)

후기의 제작 기법도 박리정형, 고타, 연마, 천공의 4개 공정으로 나눌 수 있다(도면 4우·도면 2-1). 중기 전반 이전과 비교하면 박편 소재에 대한 모래 소재의 비율이 증가해 박리정형이 조잡해지며 자연면의 잔존률이 높아진다. 고타공정을 거치는 비율도 감소하고 있어 전체 정형에서 연마공정의 역할이 높아졌다고 말할 수 있다. 천공은 연마가 전면에 이뤄진 후에 행해져 연마공정과 천공공정이 완전하게 분리된다. 천공은 직접천공이 행해져 한 면에서만 이뤄진 천공도 일부 볼 수 있다. 덧붙여 천공방법의 판별에는 구멍 주변 고타흔의 유무가 직접적인 기준이 되지만, 연마가공이나 사용에 의한 마멸로 인해 고타흔을 관찰할 수 없게 된 것도 많다. 이 때문에 구멍과 관련된 계측치를 판별 기준의 하나로 정하였다8)

 

➁ 출토수량의 검토

표 2 · 3은 세립사암제 석도의 제작 공정별 출토수량을 유적마다 표시한 것으로 도면 5 · 6은 출토수량이 많은 유적의 미완성품 비율과 조사 면적에 대한 출토수량을 그래프로 표현한 것이다9)제작 기법이 다른 것과 후기 전반의 자료가 적어 중기와의 사이에 단절이 있는 것을 중심으로 전기말부터 중기, 후기를 나누어 그 양상을 살펴보겠다.

(ⅰ) 전기말~중기(표 2 · 도면 5)

 

 

 

옹가가와 중류역 각 유적에서 박리정형 공정 이후의 미완성품이 출토되고 있다. 미완성품의 비율은 거의 50% 이상이며 대부분 박리정형 공정제품이다. 중기 전반까지 대부분의 제품이 고타천공으로, 천공공정 미완성품은 고타공정으로 한정된다. 중기 후반 츠지타 유적에서는 기본적으로 고타천공을 이용하지만 다른 공정에서는 중기 전반과 달라지고 있고 코 오쇼우지 유적에서는 박리정형 공정이 전형적으로 쓰이지만 직접천공만 확인될 뿐, 고타공정을 거친 자료는 확인할 수 없었다. 후자는 중기 전반 이전과 후기 이외의 중간적인 제작 기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10). 또 코오쇼우지 유적에서는 미완성품의 약 90%가 박리정형 공정제품으로 이는 직접천공 채용에 의한 천공 실패가 감소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소지역 전체적으로 보면, 완성품의 수량은 시기에 따른 변화는 없지만, 미완성품의 수량은 중기 후반이 가장 많다.

카나야마가와 유역 박리정형 공정 이후의 미완성품이 출토되고 있지만, 미완성품 비율은 높지 않으며 출토 수량도 적다. 천공은 고타천공뿐이다. 중기 후반까지 존속하는 유적은 바 세키바 유적뿐이어서 중기 전반과 비교했을때 총수량이 감소한다고 볼 수 있다.

이타히츠가와 유역 중기 전반까지 박리정형 공정 이후의 미완성품이 출토되고 있지만 미완성품 비율은 높지 않으며 출토 총수량도 적다. 천공은 고타천공뿐이다. 중기 후반에는 총수량이 감소하고 있다.

츠쿠가와 유역 박리정형 공정 이후의 미완성품이 출토되지만 미완성품 비율은 높지 않고 타카츠오 유적, 오카 유적을 제외하면 출토 총수량은 적다. 천공은 고타천공이 대부분이지만 시게도메 유적, 오카 유적, 타카츠오 유적 등 중기 후반까지 존속하는 유적에서는 회전천공을 확인할 수 있는 유물도 출토된다.

소네평야 완성품만이 출토되고 있으며 출토 총수량은 적다. 천공은 나가노가쿠야시키 유적 출토의 1점을 제외하고 모두 고타천공이다.

쿄츠쿠지방 시모히에다 유적에서 미완성품이 출토되고 있지만 미완성품의 비율은 5% 정도로 지극히 낮다. 중기 전반까지는 고타천공이 대부분이며 직접천공도 약간 볼 수 있다. 중기 후반의 아베 · 후카다 유적에서는 반수 이상이 직접천공이다. 소지역 전체적으로 보면 중기 후반에 출토 총수량이 감소하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덧붙여 편암을 소재로 한 유물은 시모히에다 유적(전기말~중기 초두)에서 완성품으로 2점, 야스타케 · 후카다 유적(중기 후반)에서 완성품으로 2점, 미완성품으로 1점 등 총 5점이 출토되었다11).

이상을 정리하면 우선, 옹가가와 중류역에서는 전기말부터 중기 후반까지 일관되게 출토 수량이 많으며 미완성품의 비율도 50% 이상으로 지극히 높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카나야마가와 유역, 이타히츠가와 유역, 츠쿠가와 유역에서는 총수량이 적으며 미완성품의 비율도 30% 정도로 큰 차이가 있다. 미완성품 비율의 차이는 외부로의 완성품 반출 유무에 의한 것이라고 상정할 수 있어 유통 목적의 대량생산과 자기 소비 목적의 소규모 생산이라고 하는 생산 규모의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12).

또한 입지상 4개 지역은 모두 와키노아층군에 근접해 세립사암의 입수가 용이하다. 한편, 소네평야와 쿄츠쿠지방은 미완성품의 비율이 지극히 낮고, 세립사암의 입수가 곤란한 지역으로 대량생산이 이뤄진 옹가가와 중류역으로부터 반입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석재 산출지와의 위치관계가 생산이 이뤄지는지 아닌지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반출의 형태를 살펴보면, 생산유적에서 고타천공 공정의 미완성품이 일정량 출토한다는 점, 중기 전반까지는 연마공정과 천공공정이 분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미완성품이 출토되지 않는 소비유적에서 천공이 이뤄졌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완성품이 반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13). 시기적으로 보면 중기 전반까지는 생산 · 소비지에서의 출토 총수에 큰 변화가 확인되지 않지만, 중기 후반에는 전체적으로 총수량이 감소하는 가운데 옹가가와 유역에서만 증가하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겠다.

 

(ⅱ) 후기(표 3 · 도면 6)

 

 

 

옹가가와 중류역 각 유적에서 미완성품이 출토되고 있다. 미완성품의 비율은 50% 전후로 높고, 대부분이 박리정형 공정을 거친 것이다. 중기 이전과 비교해 총수량이 감소하고 있다.

이타히츠가와 유역 미완성품이 출토되고 있다. 미완성품의 비율은 24%로 역시 대부분이 박리정형 공정을 거친 것이다. 조사 면적을 고려하면, 중기 이전에 비해 증가하고 있다.

카나야마가와 유역 후기자료는 없다.

츠쿠가와 유역 카미토그리끼 유적에서 미완성품이 출토되고 있지만, 미완성품의 비율은13%로 약간 낮다. 시게도메 유적과 기옴마치 유적은 완성품뿐이지만, 천공을 사용하지 않은 유물이 각각 3점과 1점 출토되었다. 중기 이전에 비해 전체적으로 미완성품의 비율은 감소하고 있다.

소네평야 카키 유적과 시요우세이스이 유적에서 미완성품이 출토되고 있으며 미완성품의 비율은 각각 41%와 27%이다. 박리정형 공정을 거친 미완성품이 많지만 연마공정을 거친 것도 일정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한편, 카츠마루 유적에서는 완성품만이 출토하고 있다.

쿄츠쿠지방 완성품만 출토되고 있으며, 쥬소 유적에서는 천공공정을 거치지 않은 것이 1점 출토됐다. 또 편암을 소재로 한 것이 시모히에다 유적(후기 중경~종말)에서 미완성품 1점, 츠토메 유적(후기 종말)에서 완성품 1점, 총합 2점이 출토되었다14).

이상을 정리하면, 우선 옹가가와 중류역, 이타히츠가와 유역, 츠쿠가와 유역, 소네평야에서 미완성품이 출토하고 있어 이 곳에서 생산이 이뤄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미완성품의 비율은 츠쿠가와 유역이 약간 낮고 옹가가와 중류역이 높다. 하지만 전체 총수가 적은 것을 고려하면 이 비율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중기 이전처럼 출토 총수나 미완성품의 비율이 두드러지는 많은 소지역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하겠다. 한편, 쿄츠쿠지방에서는 세립사암제의 미완성품이 출토되지 않으며, 츠쿠가와 중류역과 소네평야 등 미완성품이 출토되지 않는 유적과 함께 외부로부터의 반입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상을 보면, 옹가가와 중류역, 이타히츠가와 유역, 츠쿠가와 유역에서는 자기 소비용의 소규모 생산을 행했으며, 소네평야의 일부 유적이나 쿄츠쿠지방과 같은 소지역으로의 반출을 목적으로 한 생산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반출의 형태에 대해서는 미완성품이 출토되지 않는 유적에서도 천공공정을 거치지 않은 석도가 출토한다기보다는 연마공정 종료 후의 미천공 단계에서의 반입이 일정량 이뤄졌다고 상정할 수 있다15). 옹가가와 중류역에서의 집중적인 생산이 이뤄진 중기까지의 상황은 생산지와 소비지와의 관계, 반출 형태에서도 후기에 크게 변화한다.

 

(2) 벌채석부

 

➀ 제작기법

벌채석부 중 태형합인석부의 제작기법은 박리정형, 고타➀, 고타②, 연마의 4개 공정으로 나눌 수 있다(도면 7)16).

 

 

고타공정은 박리정형이 이뤄진 모퉁이를 두드려 부수어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공정으로, 옆부분을 고타하는 고타➀공정과 주로 쓰는 면과 기단부분을 고타하는 고타②공정으로 분리할 수 있다. 고타②공정에 의해 거의 외형이 갖추어지기 때문에 연마공정에서는 인부(날 부분)만을 연마하는 것도 많다. 태형합인석부의 대부분이 안산암질응회암제인데 비해 소형 · 편평양인석부는 사문암 또는 편암을 이용해 원력석 소재에 박리정형과 연마, 또는 연마공정으로만 제작한다.

 

② 출토수량의 검토(표 4 · 도면 8)

 

 

옹가가와 중류역 안산암질응회암제가 주로 확인되며 세립사암제도 일정량을 차지한다. 출토 총수량은 많지 않지만, 양쪽 석재 모두에서 박리정형 공정 이후의 미완성품이 출토되고 있다. 중기 후반에는 중기 전반까지와 비교하여 총수량이 감소하고 있다. 몬덴유적에서는 사문암제 완성품이 1점 출토되었다.

카나야마가와 유역 안산암질응회암제가 주로 확인된다. 고타공정 이후의 미완성품이 출토하고 있지만, 미완성품 비율은 높지 않다. 동북부 큐슈에서 현무암제 완성품이 소량 출토되고 있지만 이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마야마 유적 주변에서 생산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중기 후반으로 한정할 수 있는 자료는 없다.

이타히츠가와 유역 안산암질응회암제에 거의 한정되며, 미완성품의 비율은 지극히 높다. 박리정형 공정 이후의 미완성품이 출토하고 있다. 중기 후반에는 출토 총수량이 현저히 감소한다.

츠쿠가와 유역 석재는 다양하지만 안산암질응회암제가 주로 쓰였으며, 휘록응회암제와 세립사암제도 일정량을 차지한다. 각 유적에서 박리정형 공정 이후의 미완성품이 출토하고 있어 미완성품 비율이 지극히 높은 유적이 많다. 조사 면적을 살펴보면, 상류역의 타카츠오 유적, 오카 유적, 노우이우 유적 중류역, 시요우세이스이 유적, 호츠보우 유적과 비교했을때 출토 총수량이 많고 유문암질응회암, 화강섬록암 등 다양한 석재를 이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소네평야 안산암질응회암이 주로 확인되며 세립사암제도 일정량을 차지한다. 출토 총수량은 적고 완성품만 확인된다.

쿄츠쿠지방 석재는 다양하지만 주로 안산암질응회암이 확인되며, 세립사암도 일정량 확인된다. 완성품만 출토되었다. 사문암제, 편암제, 현무암제 완성품도 출토되었다. 중기 후반에는 출토 총수량이 현저하게 감소하고 있다.

이상을 정리하면, 우선 이타히츠가와 유역과 츠쿠가와 상류역에서는 특히 출토 총수량이 많고 미완성품 비율도 높은데 비해, 카나야마가와 유역, 옹가가와 유역, 츠쿠가와 중류역에서는 총수량, 미완성품 수량이 적음을 지적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 안산암질응회암을 산출하는 시모노세키아층군과 굉장히 근접하고 있어 전자를 대량생산, 후자를 자기 소비용의 소규모 생산이라고 파악할 수 있겠다. 우메자키가 지적하는 독점적인 대량생산만이 아니고, 소규모 생산을 실시하는 자급자족적인 소지역의 존재를 석도와 같은 식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시모노세키아층군 부근이 아닌 소네평야와 쿄츠쿠지방에서는 완성품만 대량으로 출토되고 있는데 이는 대량생산지인 이타히츠가와 유역, 츠쿠가와 상류역에서 소네평야, 쿄츠쿠지방으로 벌채석부의 반출을 상정할 수 있다. 대량생산지에서 소수이면서 연마공정 단계의 미완성품이 출토하고 있으므로 완성품의 반출이 주로 이뤄졌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다음은 석재의 비율을 검토하고자 한다(도면 9)17).

 

 

안산암질응회암이 주로 확인되며 세립사암이 계속 이용되는 경향은 공통점이지만, 옹가가와 중류역에서는 세립사암이 약 2할을 차지하는데 비해, 카나야마가와 유역과 이타히츠가와 유역에서는 대부분 안산암질응회암이 확인되고 있다.

또한 츠쿠가와 유역에서는 다양한 석재를 이용하는 가운데 세립사암제와 휘록응회암제가 일정량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상기 생산유적에서 벌채석부 제작에 적절한 소재인 안산암질응회암을 주로 사용하면서, 근접한 산출지의 다른 석재도 이용한다는 석재 선택의 양상이 생산 규모와 관계없이 공통됨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하겠다18). 한편, 반입이 이뤄진 쿄츠쿠지방은 이타히츠카 유역과 츠쿠가와 상류역 양자의 중간적인 석재비율이 나타나며 복수의 소지역으로부터 반입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19).

또 동북부 큐슈 주변부에 위치한 카나야마가와 유역과 쿄츠쿠지방에서 이마야마산 벌채 석부가 출토하고 있는 것처럼 벌채석부의 유통권은 배타적이지 않고 일부 중복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쿄츠쿠지방에서 1할을 차지하는 편암과 사문암도 간접 입수된 것이라고 본다면 죠몽시대 이래의 독자적인 석재 입수 루트를 계속 유지해 석기의 소재 혹은 완성품을 입수하고 있었다는 소리가 되며 유통권의 중복을 나타내는 것이기에 흥미롭다. 산출지가 부근이라면 다른 소지역과 마찬가지로 재지 석재의 사용한 사례라고도 말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는 중기 후반에 생산 · 소비지에서의 출토 총수량이 격감하고 있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확실히 후기로 편년되는 자료는 없으며, 중기 후반을 넘어서면서 생산은 임종을 맞이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20).

 

(3) 편인석부

➀ 법량분류(도면 10 · 11)21)

 

 

편인석부는 두께에 대한 폭의 비가 2 이상인 것을 편평편인석부, 2 미만의 것을 주상편인석부라고 부른다. 또한 편평편인석부는 폭 4.3㎝ 부근을 경계로 둘로 나눠, 전체 길이와 폭의 관계에서 전체길이 6.8㎝ 이하, 폭 4.3㎝ 이하인 것을 분류하고 폭 4.4㎝ 이상의 것을 대형, 4.4㎝ 미만의 것은 다시 폭 3㎝ 이상의 것을 중형, 3㎝ 미만의 것을 소형으로 분류하였다. 주상편인석부는 폭 2.2㎝ 이하, 두께폭 1.5㎝ 이하로 분류하였으며 이것을 소형, 그 이외의 것을 대형으로 하였다. 주상편인석부는 미완성품의 출토가 매우 적어 이를 토대로 생산 상황을 검토하는 것이 곤란하지만, 동북부 큐슈에서는 대형편평편인석부와 대형주상편인석부(도면 2-9)가 기능적인 면에서 이를 보완해 줄 수 있었다는 지적이 있다(시모죠 · 무라카미 · 우에다기 1998). 우선 편평편인석부의 분석을 실시한 다음, 대형편평편인석부와의 관계를 알아보고 대형주상편인석부에 대해서 검토하도록 하겠다.

 

② 편평편인석부의 제작 기법과 형태 분류

편평편인석부의 제작 기법은 박리정형, 고타, 연마의 3개 공정으로 나눌 수 있다. 안산암질응회암제는 고타공정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 외의 석재는 대형제품 일부를 제외하고는 박리정형 공정에서 직접 연마공정으로 이행한다. 가공의 정도가 완성품의 형태에 영향을 주며 크게 다음의 2개로 나눌 수 있다.

Ⅰ류 : 전면을 연마하는 것.

Ⅱ류 : 인부를 중심으로 일부만 연마해 제작시의 박리면을 크게 남기는 것(도면 2-10). 게다가 세립사암제만 Ⅰ류로 세분화가 가능함.

Ⅰa류 : 박리정형이 정밀하며, 횡단면의 형태가 장방형인 것(도면 2-6).

Ⅰb류 : 박리정형이 조잡하며, 측면과 주면이 만나는 모퉁이가 불명료한 것. 평면형은 장방형의 형태이지만 사다리꼴을 나타내는 것이 많고, 횡단면의 형태는 반원형 또는 타원형이다(도면 2-5).

 

③ 출토수량의 검토(표 5 · 6) 

표 5는 제작 공정별 출토 수량을, 표 6은 완성품의 법량분류와 형태분류의 결과를 각 유적 · 석재마다 나타낸 것이다.

 

 

 

옹가가와 중류역 세립사암제가 주로 확인되며, 박리정형 공정 이후의 미완성품이 출토하고 있다. Ⅰa류만 확인되며 소형부터 대형까지 골고루 출토된다. 몬덴유적에서는 편암제가 출토되었으며 중기 후반까지 출토하고 있다.

카나야마가와 유역 세립사암제가 주로 보이며 완성품뿐이다. Ⅰa류의 소형, 중형이 많으며 대형은 볼 수 없다. 안산암질응회암제는 출토총량이 적으며 박리정형 공정의 미완성품도 출토되었다. 완성품은 Ⅰ류 대형으로 미완성품도 Ⅰ류 대형일 가능성이 높다. 중기 후반으로 한정할 수 있는 자료는 없다.

이타히츠가와 유역 세립사암제와 안산암질응회암제가 확인되며 모두 박리정형 공정 이후의 미완성품이 출토하고 있다. 세립사암제는 Ⅰa류 소형에 집중하고 있는데 비해 안산암질응회암제는 대형의 미완성품으로 볼만한 것들이 많다. 중기 후반에는 출토 총수량이 감소한다.

츠쿠가와 유역 석재는 다양하지만 주로 쓰이는 것은 세립사암제와 안산암질응회암제로 모두 박리정형 공정 이후의 미완성품으로 출토되었다. 세립사암제는 Ⅰb류와 Ⅱ류, 안산암질응회암제는 Ⅱ류가 주로 확인되며 모두 중형과 대형이 많다. 유문암질응회암제도 일정량 출토되는데 중형에 집중하고 있다. 중기 후반까지 출토 사례가 확인된다.

소네평야 세립사암제와 안산암질응회암제가 확인되며 완성품뿐이다. 세립사암제는 형태 · 법량분류 결과 세분화되지만, 안산암질응회암제는 Ⅱ류 대형이 많다.

쿄츠쿠지방 세립사암제가 주로 확인되며 완성품뿐이다. Ⅰa류 소형이 많다. 유문암질응회암제, 편암제 완성품도 출토되었다. 중기 후반에도 출토되지만 석도 전용품뿐이며 중기 전반 이전에는 볼 수 없는 유문암질응회암제이다.

이상을 살펴보면, 우선 세립사암제의 경우 모든 소지역에서 주체적으로 쓰였다는 점과 옹가가와 중류역, 이타히츠가와 유역, 츠쿠가와 유역에서 미완성품이 출토된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모두 대량생산이라고 할만한 출토 총수량은 아니지만 미완성품의 비율은 50% 이상을 넘어서고 있어 전체 총수량이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했을때 완성품을 반출했을 가능성을 상정해도 좋을 것이다. 형태 분류에 주목하면, 옹가가와 중류역, 카나야마가와 유역, 이타히츠가와 유역, 쿄츠쿠지방에서는 Ⅰa류에 거의 한정되는데 반해, 츠쿠가와 유역과 소네평야에서는 Ⅰb류와 Ⅱ류가 출토되어 주목된다. 쿄츠쿠지방은 옹가가와 중류역과 이타히츠가와 유역으로부터, 소네평야는 츠쿠가와 유역으로부터 주로 반출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온가 가와 중류역, 이타히츠카 유역, 츠쿠가와 유역이 생산지, 소네평야와 쿄츠쿠지방이 소비지라고 하는 소지역간 관계는 석도, 벌채석부에서 볼 수 있는 관계와 동일하여 편인석부가 석도 및 벌채석부와 동일한 루트를 통해 유통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카나야마가와 유역의 경우, 미완성품의 출토는 없지만 법량분포가 타유적과 다르다는 점, 세립사암의 석재 산출지가 근접하고 있어 세립사암제 석도를 생산하고 있다는 점을 통해 소지역에서 생산했을 가능성이 높다(도면 11).

한편 안산암질응회암제의 출토 유적은 지극히 한정되지만, 출토 유적 내에서는 세립사암제에 필적하거나 능가하는 수량을 확인할 수 있다. 미완성품이 출토하는 유적은 카나야마가와 유역, 이타히츠가와 유역, 츠쿠가와 유역을 꼽을 수 있는데 안산암질응회암제 벌채석부의 생산 유적과 공통된다. 완성품만 출토되는 소네평야의 나가노가쿠야시키 유적을 살펴보면 안산암질응회암제 편평편인석부는 반출할 목적이 아니고 벌채석부 제작시 부수적으로 자기 소비할 목적으로 생산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 츠쿠가와 유역에서는 유문암질응회암제, 휘록응회암제, 반려암제 편평편인석부도 출토하지만, 이러한 석재를 이용해 벌채석부 생산을 행했던 유적은 츠쿠가와 유역뿐이다. 역시 벌채석부 제작시 부차적으로 자기 소비용의 편평편인석부 생산을 행했던 것 같다. 편암제 편평편인석부의 출토도 나가노가쿠야시키 유적, 시모히에다 유적 등 사문암제나 편암제 벌채석부 출토 유적에서 볼 수 있으며 시모히에다 유적 등 쿄츠쿠지방에서는 편암제 석도도 출토되고 있다. 기종이 달라도 석재의 이용 경향이 공통되는 것은 소재나 완성품의 입수 루트가 동일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서 편평편인석부의 법량에 주목하면 세립사암제는 소형과 중형이 많은데 특히 카나야마가와 유역과 쿄츠쿠지방에서는 대형이 적고 안산암질응회암제는 대형에 집중하고 있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한편, 대형주상편인석부는 카나야마가와 유역과 쿄츠쿠지방에서 비교적 많이 출토되고 있지만(표 6), 세립사암제 제품이 쿄츠쿠지방에서 생산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쿄츠쿠지방에서 안산암질응회암제 대형편평편인석부가 반입되지 않는 것은 동일한 기능을 갖고 있는 세립사암제 대형주상편인석부가 반입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22).

이상과 같이, 반출을 목적으로 한 편인석부의 생산은 세립사암제로 한정된다. 시기적으로는 중기 후반에 출토 총수량이 급감하여 반입되어, 소지역에서는 전용품을 제외하고는 출토 사례를 찾아 볼 수 없게 된다. 옹가가와 중류역, 이타히츠가와 유역에서는 중기 후반에도 생산이 계속되고 있지만 벌써 유통은 정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겠다.

 

4. 석기생산과 유통의 변천과 그 배경

 

이 장에서는 석도, 벌채석부, 편평편인석부의 생산과 유통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소지역 관계의 변천을 분명히 밝혀 그 요인을 고찰하고자 한다. 도면 12는 관계의 변천을 모식적으로 표로 나타낸 것이다.

 

 

전기말~중기 전반 옹가가와 중류역에서 세립사암제 석도, 이타히츠가와 유역과 츠쿠가와 유역에서 안산암질응회암제 벌채석부가 대량생산된다. 이 3개의 소지역에서 세립사암제 편평편인석부도 생산되어 석도, 벌채석부와 함께 부근에 적절한 석재 산출지를 갖지 못 했던 소네평야와 쿄츠쿠지방으로 완성품이 반출되었다. 하나의 소지역에서 복수의 기종이 반출 목적으로 생산되어 동일한 루트를 거쳐 유통되거나, 하나의 소지역이 복수의 소지역에서 반입을 받는 등 기종과 생산지, 기종과 유통루트, 생산지와 소비지의 관계가 모두 일대일 대응은 아니다. 그 외의 소지역에서는, 각자 산출지가 근접하는 석재를 이용해 자기 소비 목적의 소규모 생산을 실시하였다. 생산이 이뤄졌는지 아닌지는 석재 산출지와의 위치관계가 결정지을 수 있으며 대량생산지에 의한 석재의 독점은 없었다.

중기 후반 석도는 소규모 생산과 유통 규모의 축소로 인해 옹가가와 중류역에서만 대량생산 체제가 유지되며, 제작 기법에도 변화가 나타난다. 벌채석부는 생산 · 유통의 규모가 축소하고 편평편인석부의 생산은 축소되고 유통은 정지한다23).

후기 쿄츠쿠지방을 제외한 모든 소지역에서 석도의 생산 유적이 확인되는 한편, 소지역에 생산 유적과 비생산 유적이 혼재하게 된다. 제작 기법은 완전하게 바뀌어, 소네평야 생산 유적에서 쿄츠쿠지방으로 천공되지 않은 제작 도중품이 반출된다. 벌채석부와 편평편인석부는 생산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전기말까지 성립된 생산과 유통의 소지역간 관계는 중기 후반의 생산과 유통의 규모 축소나 정지, 후기의 석도 생산지의 분산과 이동, 유통형태의 변용이라고 하는 변천을 살펴볼 수 있다. 그럼 이러한 변천을 가져온 요인은 무엇일까?

석기 소멸의 요인으로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철기의 보급일 것이다. 석기 생산과 유통이 감소하는 중기 후반은 국내산 단조 철기가 재가공 철기를 능가하는 시기에 해당하며, 석부는 소멸하고 철부는 출토량이 안정되고 기능 분화가 진행된다(마츠이 1994, 시모죠 · 무라 · 우에다기 1998 등). 철부가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보급되자 석부의 필요성이 저하되었고 이에 따라 생산과 유통이 감소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 편인석부가 벌채석부와 비교해 약간 빠른 시기에 유통의 정지 및 기종 자체의 소멸로 향하는 것은, 대형철부의 국산 개시나 보급이 소형품에 약간 늦었기 때문이다. 철부의 보급상황이 석부 생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한편 석도도 석부와 마찬가지로 중기 후반에 유통이 축소하지만, 이 시기에는 아직 철제 수확도구가 출현하지 않았다. 그리고 적겸이 보급되는 후기 후반에는 석도가 다시 각 소지역에서 안정적으로 출토되고 있어 중기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생산과 유통 관계의 변천이 성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석도의 생산 및 유통의 변천 양상은 철제 수확도구의 보급과는 무관하게 수확구의 철기화 이외의 요인을 생각 안 할 수가 없다. 여기서 전기말에 성립한 생산과 유통의 소지역간 관계가 기종의 차이를 넘어선 관계라는 점에 주목하면, 중기 후반의 석부 생산과 유통의 축소가 이 소지역간 관계 자체의 약체화에 기인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이 약체화가 동일한 관계 안에서 유통되던 석도에도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즉, 수확구의 철기화가 아니라 관계가 없다고 생각되던 도끼의 철기화가 석도 유통의 축소를 가져온 것은 아닌가 싶다. 석도의 대량생산지인 옹가가와 중류역에서 중기 후반에 출토 총수량이 감소하지 않는 것만 봐도 생산하는 측의 생산량 축소는 이유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또 코오쇼우지 유적 1호구에서는 석도나 석도 제작에서 발생한 박편, 지석이 다수 출토되었으며, 보고서에서는 1호구 출토의 박리정형 공정 미완성품에 대해 「제작상의 실패를 인정할 수 없는 완성품도 많이 포함되어」, 「석도 제작에 관련된 모든 것을 일괄해 폐기했다」(무라타 외 1999, 35쪽)라고 기술되어 있다. 자료를 통해 실패품이 제작 도중품인지 그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시기적인 배경을 근거로 하면 1호구 출토 자료를 불필요한 제작 도중품의 폐기라고 해석하는 것은 합리적인 설명이 된다고 하겠다. 전기말부터 중기 전반에 성행한 석기 생산과 유통의 소지역간 관계는 철부의 보급이 가져온 기존 유통 체계의 약체화, 유통 루트의 단절에 의해 중기 후반을 기점으로 기종을 불문하고 임종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그럼 후기의 석도는 어떠한 소지역간 관계 속에서 생산되어 유통되었던 것일까. 입지상 석기 생산에 적합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소네평야에서 석도가 생산되어 중기 이전에는 소네평야와 직접적인 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 쿄츠쿠지방으로 반출되는 것은 적어도 중기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원리에 의한 사회관계의 성립을 나타내고 있다고 하겠다. 이때는 벌써 적겸이 출현해 석도의 출토 총수량이 중기 전반 이전과 비교해 감소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실제 비율에서는 적겸이 석도를 능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도구의 중심은 철기로 옮겨갔고 석도는 철제수확구를 보완하는 형태로 사용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24). 중기 이전 도구의 중심은 석기이며 석재 산출지와의 위치관계가 석기 생산과 유통 관계를 결정짓는 요인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후기 이후 사회관계의 성립에 있어 석기 이용은 주로 철기 혹은 철소재의 생산, 유통루트와 깊이 관계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완성기의 사회관계의 변용은 보다 광역의 지역간 관계로 이어진다. 쿄츠쿠지방에서 중기 후반 이후 산발적으로 출토되는 편암제의 결입석도는 미치노치평야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 동북부 큐슈와 서부 세토나이의 교류의 활발화를 나타내고 있다25). 이러한 교류의 활발화는 반입 · 모방 토기의 증가라고 하는 토기양상 등 여러 요소로부터 추정할 수 있어 후기의 사회관계가 복잡한 요인에서부터 성립되었음을 상정할 수 있다(우메자키 1995 등). 아마 후기의 석도 생산 및 유통도 석기만으로는 풀 수 없는 복잡한 사회관계 속에서 행해지고 있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에

 

본고에서는 동북부 큐슈의 석기 생산에 대해 복수기종을 대상으로 통시적인 분석을 실시하고, 생산과 유통의 지역간 관계는 기종의 차이를 넘은 것으로서 철기의 보급에 의해 기존 관계가 임종을 맞이했으며, 후기에는 다른 사회관계 안에서 석기가 생산되어 유통되었음을 밝혔다. 철기가 안정적으로 출토되는 큐슈에서는 석기에서 철기로의 재질 전환의 과정을 무리없이 확인할 수 있어 철기보급은 석기생산의 양상에 기종을 초월한 큰 획기를 가져왔음을 알 수 있다. 종래의 석기연구에 대해서는 생산과 유통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가능성을 지적하고 복수기종을 분석하는 필요성을 제시해 왔다고 생각한다.

큐슈와 비교해 철기의 출토량이 한정되어 있는 세토나이 이동의 지역에서는 중기 이후의 철기화 과정이나 철기의 보급도에 대해 연구자마다 의견 차이가 크다. 이들 지역에서는 특히 복수기종의 분석을 통해 석기 생산과 유통의 변천을 분명히 밝힌다는 본고의 방법이 완성기 사회관계의 변화를 밝히는데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타지역에서도 이런 식의 분석을 통해 변천의 양상이나 요인을 분명히 밝히고 또 그것을 비교검토해 보다 넓은 범위를 대상으로 사회변화의 양상을 검토하는 것이 향후의 과제일 것이다.

 

감사의 말

 

본고는 2002년 1월에 쿄토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에 제출한 석사논문의 일부를 재구성한 것이다. 석사논문을 작성할 때부터 야마나카 이치로, 우에하라 마히토, 키요미즈 요시히로, 요시이 히데오 선생님 등 모든 선생님께서 친절하고 자상하게 지도해 주셨다. 이토오 아츠시씨, 사카구치 히데키씨를 시작해 쿄토대학 고고학연구실, 쿄토대학 매장문화재연구센타의 모든 분들, 쿄토 야요이문화담화회의 모든 분들께는 평소에도 많은 가르침을 받고 있다. 또 본고의 내용은 2002년 6월에 고고학연구실관서예회에서 발표하는 기회를 얻어 뜻깊은 조언들을 들을 수 있었다. 자료견학에 대해서는 이하의 모든 연구기관에 특별히 신세를 졌고 많은 도움도 받았다. 마지막으로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우메자키 케이지, 후카마루 쇼오마치로, 마에다 요시히토, 무라타 유우이치, 나카야마 히데히코, 아마기시사 자료관, 키타큐슈시 교육위원회, 재단법인 키타큐슈시 예술문화진흥재단매장문화재 조사실, 후쿠오카현 교육위원회, 야마구치 대학매장문화재자료관, 유쿠하시시 교육위원회(오십음순서, 경칭은 생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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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형태를 통해 분명하게 한 개체로 정리해 인정할 수 있는 분류단위에 대해 「기종」이라는 단어를 이용하겠다.

 

2) 구체적으로는 옹가가와 이서, 야마쿠니가와 이북을 지칭한다. 옹가가와 이서와 이동은 석기의 변천과 석재 이외에도 토기양식, 묘제 등 양식적인 요소에서도 차이를 찾을 수 있다(다케스에 1987b 등), 또, 야마이쿠가와 이북과 이남은 석기 조성이나 크기에서 차이가 있다(사카모토 1996).

 

3) 완성품으로 조성된, 미완성품으로 인정하기 곤란한 숫돌, 공이 등은 제외했다. 덧붙여 우메자키의 분석에 의하면, 야요이시대에는 특유의 단면이 원통형에 가까운 형태를 나타내는 태형합인석부(도면 2-7)가 쓰이지만 동북부 큐슈 남부에서는 단면이 평평하고, 석재 및 제작 기법이 죠몽시대 석부와 공통되는 소형의 양인석부(도면 2-8)가 일정량 출토한다고 한다. 이는 태형합인석부와 같은 식의 벌채 기능을 가진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이 역시 「벌채석부」라고 부르고 있다. 시기는 이타즈케Ⅰ식기를 전기 전반, 이타즈케Ⅱa·Ⅱb식기를 전기 후반, 이타즈케Ⅱc식기를 전기말, 시로노오치식기를 중기 초두, 스구Ⅰ식기를 중기 전반, 스구Ⅱ식기를 중기 후반, 타카미즈마식기를 후기 전반, 시모오쿠마식 고단계를 후기 중순, 시모오쿠마식 신단계를 후기 후반, 니시 신식기를 후기 종말로 하였다.

 

4) 의도적으로 가공을 중단해 폐기했다는 의미에서「미완성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겠다. 실패작은 아니며 다음 공정에서 사용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자료로서 제작 도중의 제품으로 단정지을 수 있는 출토상황에 한해서 미완성품에 포함시켰다.

 

5) 이즈카시 다테이와 유적군에서 출토된 석도 등의 소재로 이용되는 「휘록응회암」이라고 불리는 석재도 와키노아층군에서 산출되는 것과 동일한 석재이다. 이츠이와 유적군에서는 적자색이, 동북부 큐슈에서는 회색이 많이 이용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두고 연구자들이 제작 기법의 차이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곤란하다(무라타 1999). 하지만 동북부 큐슈에서 출토된 석도 중에 이츠이와 유적군에서 제작된 것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나카야마 헤이지로(1934), 시모조 노부유키(1977 등) 등 일련의 연구에 의하면, 이츠이와 유적군에서 제작된 석도 완성품이 사가평야나 치쿠고평야를 중심으로 반출되었으며, 석재의 문제나 서북부 큐슈에서의 자료 증가를 근거로 이츠이와 유적군의 석기 생산 시기나 유통범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음을 언급했다. 이는 향후의 과제로 남겨두겠다.

 

6) 편암의 경우, 동북부 큐슈의 편암산출지인 타가와 변성암에서 석기에 많이 쓰이는 녹니편암이 적게 나기 때문에, 녹니편암이나 사문암을 산출하는 후쿠오카현 지요우이츠지방 및 오이타현 우베지방 등 먼 지역에서 산출된 석재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오오타 · 후지이 1985). 녹니응회암, 화강섬록암은 시모노세키아층군에서 채취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단정할 수는 없다. 현무암제 벌채석부는 후쿠오카시 이마야마 유적 주변에서 대량생산되어 북부 큐슈 일대에 유통되고 있는 것(시모조 1975 등)과 같은 석재로 형태적 특징도 일치한다. 동북부 큐슈 내에서도 현무암은 산출되는데(우메자키 1999), 현무암제 벌채석부의 출토량은 적으며 미완성품이 출토되지 않다는 점에서 이마야마 유적 주변에서 생산된 완성품이 반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7) 연마공정이나 천공공정 도중의 연마흔을 관찰하면, 완성품과 비교했을때 조잡하며 육안으로도 지석(숫돌)에 의한 세밀한 연마작업을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의 미완성품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천공 공정이 종료되면 완성품으로 간주한다. 코오쇼우지 유적에서는 전면의 연마와 천공공정은 종료했지만, 연마흔이 조잡하고 인부(날 부분)가 평탄면을 이룬 것이 출토되어 연마공정의 마무리 직전 단계의 것이라 판단하여 「인부」라고 했다. 덧붙여 박리정형 공정 이전에는 원석의 입수나 소재편을 얻는 공정이 존재하지만, 세립사암은 석도 이외의 기종에도 주로 사용되고 있어 이러한 2차 가공 전 소재의 목적기종을 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때문에 소재에 대해서는 출토의 유무만을 나타낸다. 석부 역시 이와 같은 양상이다.

 

8) 계측치 중에서도 특히 외경(천공 둘레)과 배공(뒷면에 난 구멍)이 천공 방법의 변화를 반영한다는 사실은 이미 야마구찌 조우지(1978)나 다케스에(1987a)에 의해 지적되었다. 필자도 시기를 한정할 수 있는 자료를 이용해 외경과 배공의 값을 분석해, 고타흔을 확인할 수 있는 전기말부터 중기 초두의 자료는 외경 8㎜ 이상, 배공 16㎜ 이상의 범위에, 중기 후반부터 후기에 속하는 직접 천공 자료의 상당수는 외경 8㎜ 이하, 배공 13㎜ 이하의 범위에 분포함을 확인했으며, 그 중에서도 외경 5㎜ 이하의 범위에 포함되는 것은 후기의 자료뿐임을 확인했다. 게다가 츠지타 유적과 타카츠오 유적에서 다수 출토되고 있는 유구의 시기 결정이 곤란한 자료에 대해 배공과 외경값의 분포양상을 확인했는데 고타천공이 대부분으로, 후기 이후라고 단정할만한 자료는 지극히 적었다. 그 결과, 츠지타 유적 이외 출토자료의 대부분은 중기에, 타카츠오 유적 포함층 출토 자료의 대부분은 전기말부터 중기 후반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덧붙여, 이상의 결과를 근거로 존속기간이 긴 유적에 대해서는 유구에서 확인된 석도 자체의 속성이 혼입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여 그러한 자료는 분석으로부터 제외하였다.

 

9) 완성품과 미완성품의 합계에 대해 미완성품의 비율은 「미완성품 비율」이라고 했으며, 파편자료이기 때문에 완성품인지 미완성품인지 판단이 곤란한 것은 「성미불명」으로서 미완성품의 비율 산출에 이용하지 않았다. 합계가 10점 미만인 것은 미완성품 비율의 신뢰도가 낮다고 판단하여 표 중에서 괄호로 표시하였다. 「―」은 수량 불명의 것이며, 조사 면적에 대한 출토수량은 10,000㎡을 기준으로 한 총수치이다. 주목해야 할 수치는 착색해 표시했다. 이상의 정의와 표시 방법은 석부에 대해서도 같은 식이다.

 

10) 스구Ⅱ식기의 고단계를 중심으로 하는 츠지타 유적에 대해, 코오쇼우지 유적에서는 신단계의 토기가 많이 출토되고 있어. 제작 기법의 차이는 유적차이보다 시기차이에 의한 요소가 크다고 생각할 수 있다.

 

11) 미완성품은 박리정형 공정을 거친 것이다. 야스타케 · 후카다 유적에서 출토된 편암제 석도 완성품은 2점 모두 평면형이 사각형으로 결입된 것으로, 세립사암제의 석도와는 그 형태가 다르다. 1점은 2개 구멍이 직접 천공으로 뚫렸으며(도면2-4), 다른 1점에서는 직접 천공 도중의 흔적이 1개 이상 확인되고 있다.

 

12) 종래 타카츠오 유적은 출토총수, 미완성품 수량이 다수여서 석도의 대량생산지로 여겨져 왔지만(우메자키 1998 등), 미완성품의 비율은 카나야마가와 유역이나 이타히츠가와 유역과 동일한 정도다. 타카츠오 유적의 석기는 저지 포함층에서의 출토가 대부분으로 유구나 구릉상에서는 거의 출토되지 않으며, 출토 총수가 다량이라는 것은 유물이 저지에 집중되어 있는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다.

 

13) 시모히에다 유적에서 미완성품이 몇점 출토하는 것 외에 중기 후반의 완성품 자료를 보면 고타공정으로만 구멍을 관통시켜, 회전천공을 하지 않은 것도 볼 수 있다. 소재나 제작 도중 단계에서의 반출도 이루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미완성품의 비율이 지극히 낮은 경우는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직접 천공만 거친 중기 후반의 코오쇼우지 유적에서는 천공 이전의 반출이 대부분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14) 미완성품은 박리정형 공정을 거친 것이다. 완성품은 결입하여 직접 천공으로 뚫은 2개 구멍을 가진다(도면2-2).

 

15) 완성품이나 박리정형 공정 종료 이후 단계에서의 반출이 행해졌을 가능성의 경우, 후자에 대해서는 생산활동이 이뤄지는 유적에서 연마단계의 미완성품도 출토하기 때문에 후기 제작기법에서 연마의 비중이 높아졌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덧붙여, 기옴마치 유적 등 츠쿠가와 유적에는 소네평야로부터가 아니고 보다 근접하는 시요우세이스이 유적으로부터 반출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16) 기본적으로는 우메자키(1989 등)의 견해를 따르겠다. 다만, 우메자키는 전체 길이를 결정짓는 황 나누기와 세밀한 조정박리 공정을 분리했지만 여기에서는 타격을 가해 형태를 정돈하는 박리정형으로 정리해 취급하였다. 기타 기사모리(2000, 272쪽)도 지적하고 있듯이 황 나누기는 필요에 따라 행해지는 작업으로 반드시 이 공정을 거치는 것은 아니고, 조정박리와의 엄밀한 의미에서의 구별도 곤란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실견하지 않고 풍화가 심하게 진행되었다는 이유로 고타➀공정이나 고타②공정이라고 판별한 것은 간단히 고타공정으로 하였다.

 

17) 도면 9의 대량생산지와 소비지간의 석재 비교에서 이타히츠카 유역과 츠쿠가와 유역에서 생산되었다고 생각할 수 없는 사문암, 편암, 현무암은 제외하였다. 완성품과 미완성품 중 출토수량이 많은 부분의 비율을 나타내고 있지만, 출토 총수량이 적은 카나야마가와 유역은 완성품 종류와 미완성품수의 합계에 있어서의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18) 이러한 석재 선택의 양상에서 휘록응회암, 화강섬록암, 반려암 산출지의 유력한 후보로서 미완성품이 출토하고 있는 츠쿠가와 상류역 부근을 들 수 있겠다.

 

19) 우메자키(2000 등)는 타카츠키 유적에서는 전 공정이 실시되지만 타카츠오 유적 주변에서는 마무리 단계만을 실시한다고 하여 양 유적의 역할 분담을 상정하고 있다. 타시카 카이씨가 지적하고 있듯이 석부전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구상고타구」는 타카츠키 유적에서 많이 출토되며 타카츠오 유적에서는 적게 확인된다. 그러나 미완성품의 경우, 각 공정의 비율에 큰 차이가 없다는 점, 「구상고타구」 이외의 공구로 고타작업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양자의 분업관계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20) 우메자키(1995)는 후기까지 벌채석부가 존속한다고 보고 바바야마 유적 3차조사 Ⅶ호구에서 토기류와 같이 출토된 것을 언급하고 있지만, 중기 후반에 소멸하는 마제석촉이 혼입되어 공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21) 도면 10 · 11은 편인석부 완성품의 법량 분포를 나타낸 것이다. 편평편인석부에 대해서는 후술할 형태 분류 Ⅱ류의 계측치간 격차가 지극히 크기 때문에, Ⅰ류를 대상으로 법량분류를 실시해 이것에 준해 Ⅱ류를 분류하였다.

 

22) 대형주상편인석부의 미완성품은 마츠모토 유적에서 연마공정 단계의 것이 1점 출토되었다. 또 시기를 한정할 수 없기 때문에 분석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타카츠키 유적 제9지점에서도 미완성품이 출토되어 편평편인석부와 함께 대형주상편인석부의 완성품이 쿄츠쿠지방에서 반출되었을 가능성도 상정할 수 있다. 타카츠키 유적 제9지점에서는 안산암질응회암제도 출토되었지만, 주로 세립사암이다.

 

23) 다른 시기에 비해 중기 후반으로 한정할 수 있는 자료는 적기 때문에 자료수의 증가를 기다려 재검토를 실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4) 후기에 대해서는 석기 생산이 완수해야 하는 역할의 저하, 석기와 철기의 비율 변화에 대해서는 지석의 분석을 토대로 추정하고 있다. 이것에 대해서는 별고를 준비하고 있다.

 

25) 마제 결입석도는 미치노치평야에서 중기 후반 이후 증가해, 후기에는 석도의 반수를 차지한다(쿠라카즈 1991). 덧붙여 야스타케 후카다 유적 출토의 결입방형석도와 에히메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시모죠(2002)도 지적하고 있어 에히메산 석도의 반입이다, 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쿄츠쿠지방에서도 편암의 입수가 가능한 점, 시모히에다 유적에서 미완성품이 출토되는 점을 보면 완성품이 반입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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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麗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12.23 여기에서 고고학 논문을 즐겨 읽으시는 분들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물며 외국 논문은 더더욱요. 이건 제가 석사3학기때 해석했던 논문인데 상당히 재밌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자료를 정리하다가 있길래 도움이 될까 싶어 까페에 올립니다. 전 이걸 보면서 일본 고고학계의 수준이나 학문적 경향 등에 대해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전공자에게는 흥미로운 내용을, 비전공자에게는 고고학이라는 학문의 방법론이 어떠한지를 소개하는데 적합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럼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만^^ 아! 원문은 따로 이곳에 안 올렸습니다. 어차피 보실 분이 별로 없으리라 생각해서요. 혹시 보길 원하시면 제 까페에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작성자비사인 | 작성시간 09.12.24 역시 대단하시네요;;;ㅎㅎ 일본어에 능통하셔서 논문까지 번역하시는 모습이 정말인지 부럽습니다.ㅎㅎ 일본 고고학쪽의 논문을 볼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방법론이나 연구성과를 볼 때 대단하고 꼼꼼하다는 생각이 자주 들더군요.ㅎㅎ 위의 논문도 해석을 매우 잘해주셔서 보기 편합니다만 군데군데 한자가 병기되면 좀 더 좋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조금 보이네요.ㅎㅎㅎ 물론 한자가 없는게 가독성의 측면에서는 좋지만 말이죠.ㅎ
  • 답댓글 작성자麗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12.24 ㅋㅋ 원문을 같이 첨부하면 좋긴 한데...굳이 그건 안 보실 것 같아서...그리고 저는 일본어에 전혀 능통하지 않답니다. -.-;;; 그냥 공부하면서 번역한 것 뿐인데 내용이 좋아서 올린 것에 불과합니다.
  • 작성자미주가효 | 작성시간 09.12.24 음... 일본어까지 번역한 논문이라. ㅎㅎㅎㅎㅎ ^^;;;;;
  • 작성자明治好太王 | 작성시간 09.12.24 초반에 좀 읽어보려 했는데, 결국 스크롤만 내렸네요.ㅠㅠ 여튼 대단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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