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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하고 조선 중국이 실패한 이유는

작성자선구자|작성시간11.06.23|조회수1,179 목록 댓글 40

일본만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순탄한 근대화를 성공한 이유에 대해서 여러가지 의견들이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시각은 일본의 경우 조선과 중국과의 차이점으로 전근대상태에서의 시스템이 달랐기때문이라고 봅니다.

 조선과 중국은 전근대상태에서 이미 중앙집권체제를 비롯한 국가통치시스템이 그 당시 기준해서는 선진적으로 잘 갖추어진 반면에 일본은 그것이 부진한 막부상태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국가행정시스템도 그렇고 문화적으로도 그렇고 이미 조선과 중국이 잘갖추어진상태라는 것은 한편으로는 과거 시스템에 연연하여 새것에 대한 거부감으로 나타날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에 반해 일본은 과거에 그런측면에서 제대로 갖추어진것이 없다보니 근대화과정에서 새로운것에 매진할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과거 시스템에 연연한 정서가 존재할수가 없습니다.

 

 예컨데 한국의 경우 과거 유교적 전통질서를 고수하기 위한 위정척사론의 경우 일본은 그렇게 유교문화적 시스템이 조선처럼 철저히 뿌리내리지 못했기에 근대화과정에 위정척사와 같은 과거문화에 대한 향수정서가 존재하기가 어려울것입니다.

 한마디로 한국과 중국은 전근대시대부터 존재한 시스템에 대한 향수와 자만심이 너무 강했기에 쉽게 새로운 것으로 변혁하기가 곤란한 측면이 강했지만 일본은 그것이 부진했기에 한편으로 새로운것으로 변혁하기가 수월했다라고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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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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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귀거래사 | 작성시간 11.06.25 저는 그들이 이미 막부말기에 산업화, 민중의 교육, 서양과학기술에 대한 이해, 자본축적, 기술축적 등 근대화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구비하고 있었으며 그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배경에는 그들이 일찍부터 사유재산인정 및 경쟁이라는 자본주의적 체제 하에 있었음을 강조합니다.
  • 작성자하늘의 나라 | 작성시간 11.07.29 이야기를 조금 달리해서 조선이 어떻게보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3가지를 반드시 짚고 싶은데.
    우선
    1. 죽일 놈의 [사대주의]
    조선은 자신을 소중국이라 생각할 만큼 중국에 사대가 강한 나라였습니다. 또한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란 의식이 있었고, 과거부터 너무도 폐쇄된 국가였기에 안목이 부족했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도 또한 100년에 걸쳐 근대화가 이루어진 서양에 비해, 고집만 부리다 현실을 깨달았고, 이후의 시간이 너무도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2. 명분론적 외교관
    실리를 추구하지 못하고, 유교를 덕목으로 삼은 탓인지 너무도 명분에만 집착하였습니다.
    예로 당시 조선의 입장에선 나름 최선의 길이기도 했던
  • 답댓글 작성자하늘의 나라 | 작성시간 11.07.29 중립외교노선을 두고 과거 5만 군사를 내주고, 임진년 전쟁에 나라를 구해진 은인을 저버린다하여 신하들이 폐위시켰죠. 명이 기우니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야한다라는 나름대로의 대안을 모색할 수도 있었는데 당시 주요 세력이었던 서인들은 이를 두고 오랑캐와의 타협이라며 무력 반정을 일으켰죠. 이 사건을 보더라도 나라의 주요 세력의 안목과 사고의 유연성의 한계가 절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라 여겨집니다.
    3. 유교 국가의 한계
    유교는 기본적으로 왕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를 기본으로 하죠. 물질이 아닌 정신을 표방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본래 아시아적 가치가 정신에 주를 두고 있긴 하지만요.
    사실 유교쪽이 너무도 결정적
  • 답댓글 작성자하늘의 나라 | 작성시간 11.07.29 인 것이 유교를 지나치게 숭상하다 보면 사고의 유연성을 잃기 쉽상입니다. 도리와 덕목에만 치중하여 실리를 추구하지 못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다소 이분법적 사고에 휘둘려지기 쉽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경우를 보면 약간 옵션을 두어서
    사실상 아시아 제1의 국가로써, 오히려 비슷한 국토와 항상 서로 견제를 해오던 중세 유럽과 달리, 홀로 대륙의 1인자였으며, 국가의 콧대가 너무도 높았기에 그에 따라 사고의 유연성을 잃었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은 아니더라도 동서남북이 전부 사실상 오랑캐였죠.
    이들 또한 유교에 찌든 사회였기에 개화의 필요성은 인정했을지 몰라도 사고가 유교에 붙잡혀 있었기에 이들의 개화는 반토막
  • 답댓글 작성자하늘의 나라 | 작성시간 11.07.29 개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를 두고 싶은게 당시의 한중일 3국의 형세를 두고 청의 리홍장, 조선의 흥선대원군,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비교하는데, 일찍이 유럽 유학을 통해 세계 정세를 빠르게 터득하고, 다소 잔인하기까지한 이토의 기질이 당대 가장 빛을 바랬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원군은 다들 아실 것이고, 리홍장 같은 경우는 하직 당시 이런 말을 했다더군요. "난 낡은 것을 고칠 줄 아나, 새것을 창안해내기엔 부족한 사람이었다.."

    왜란 속에 이순신이란 불세출의 영웅이 나라를 구했듯 당시의 조선, 청에 난세의 영웅이 될만한 인물이 없었던 것도 아쉽내요. 그 하나로 모든게 뒤바뀌진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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