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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삼국(삼한) 통일의 오해와 이해

작성자소호금천씨| 작성시간07.03.26| 조회수489|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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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百濟 牟大王 작성시간07.03.26 인식의 통일이 과연 바람직한지는 생각해봐야 합니다. 파쇼 국가가 아닌 이상 사상의 자유가 있고 따라서 나당전쟁 이후의 신라를 통일신라라고 하던 후기신라라고 하던 그건 개인의 관점에 따른 자유가 아닐지요. 국민사상이 통일된 일사분란한 파쇼 국가를 만들자는 주장이시라면 그것은 또 다른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 작성자 소호금천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7.03.26 百濟 牟大王 님 너무 앞질러 가는것 아닙니까? 요즈음 인터넷 게시판에서 이런 문제가 혼란스럽게 되어 삼국통일이 마치 식민사관이니 일제잔재니 중국동북공정을 도와주느니, 심지어 경상도 정권때문이니 하여 중심을 잃은 그야말로 지역감정 분열양상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인도 혼란스럽구요. 요즈음 설마 학교에서 이런식으로 가르키지는 않았을 것인데... 그래서 역사학계가 이런 역사인식에 삼국통일을 병행해도 된다 아니면 남북국시대로만 하라든지 방향을 잡아달라는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으로 무슨 파쇼국가를 만들자라는 주장을 누가 하는데요?
  •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07.03.27 당대인들이 생각한 삼한개념의 판단에 있어 중요한 점은 고구려의 포함여부입니다. 만약 삼한이 (오늘날 추정하는) 마한, 진한, 변한이라 하더라도 백제와 신라지역은 삼한지역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당나라의 고구려 유민 중 하나인 '고현 묘지명' 에 나오는 구절은 의미심장합니다. "부군(府君)의 휘(諱)는 현(玄)이요 자(字)는 귀주(貴主)로서 요동(遼東) 삼한인(三韓人)이다. ....(중략)... 할아버지는... 아버지는... 모두 삼한(三韓)의 귀족으로 누대에 걸쳐 현달하였고" 즉, 당대의 기록에서도 고구려인을 '삼한인' 으로, 고구려를 삼한의 일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 작성자 百濟 牟大王 작성시간07.03.27 요즈음 일반 대중의 역사 인식이 학교교육을 통해 형성된다고 믿는 순진한 사람은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삼국통일론이 일제 식민사관과 군사정권하의 유신사관에서 강조되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국민의 역사인식 통일이라는건 사상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파쇼체제를 전제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소호금천씨님은 파쇼 국가라는 단어에 흥분하신 모양이지만 저는 파쇼라는 단어를 나쁜 뜻으로 보지 않습니다. 한국도 불과 20년 전만 해도 파쇼국가였고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 작성자 소호금천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7.03.27 삼국통일론이 일제 식민사관과 군사정권하의 유신사관에서 강조되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누가 그런 소릴 하던가요? 일제시대에는 잘 모르겠고 박정희 군사정권하에서 국사시간에 삼국통일이라고 안하면 교도소나 경찰서에 잡아갔다는 기록이나 근거라도 있었나요?. 그냥 교과서에 삼국통일이라 하면 학생들은 삼국통일로 알아듣는 것이고 남북국시대라고 가르치면 그렇게 알아듣는것이지? 박정희 정권때 정책상 꼭 신라 삼국통일로 해야 한다는 강요라도 했다는 근거가 있었는지요?..유신 정권 시절에 헌법은 바꾸었다는 소리는 들어도 신라삼국통일을 정책적으로 강요했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인데 그 자료나 근거를 좀 봅시다!
  • 작성자 소호금천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7.03.27 20년전에 저도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았는데 무슨 파쇼국가였습니까? 분명히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국가였으며 민주주의 국가였지요. 물론 선진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서는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일반인들이 살아가는대는 지금이나 20년전이나 뭐가 다른데요?.
  • 답댓글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07.03.29 변태자본주의라는 표현은 좀 그렇군요. 자본주의에 유일무이한 하나의 형태만이 '정상' 이라고 볼 이유는 없을 텐데, 순수자본주의에서 벗어낫다고 변태 낙인을 찍는다는 건 좀 그렇군요. 앞으로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적 시장주의보다는 어떤 식으로는 변형적 자본주의로 가야 한다고 보는 제 입장에서는 상당히 껄끄럽습니다. ^^
  • 답댓글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07.03.29 그렇다면 변태성의 판단이유는 '소련의 계획경제 시스템과 일본의 전시경제체제' 로 언급하신 국가개입적 경제정책 자체에 있다기 보다는 국가개입적 경제정책의 '실패' 에 있다고 보시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까요? 마치 국가개입 = 변태 라는 식으로 읽혀져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 작성자 소호금천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7.03.28 조조님 정치적인 논쟁으로 주제와 동떨어진 문답으로 변질 될 것 같아서 님의 답글에는 별다른 반론을 더 이상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전두환, 노태우 정권이 파쇼정권이다 아니다를 논쟁하고자 하는게 아니지요! 파쇼정권과 파쇼국가를 분명히 구분하고 난뒤에 따지는게 순서 아닙니까? 저에게 실망스러울게 없습니다. 어차피 현대사의 정치적인 문제와는 상관없는 내용이니까요 다만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이 근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써 존재 했는지? 중간에 파쇼국가로 변화되어 전국민이 파쇼국가로 인정한 명백한 파쇼국가로 정의된 기간이 언제였는지? 좀 가르켜 주십시요! 주제와 관계없이 님에게 그냥 배우고자 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07.03.29 파쇼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개념정의가 불분명하여 별로 좋아하는 표현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전체주의/권위주의/민주주의 식의 분류가 좀 더 명확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일반적으로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한국, 그러니까 대개 87년 헌법개정 이전까지의 한국에 대해서는 권위주의 시기라고 분류합니다. 87년 개정된 현행헌법에 의해 성립된 정부부터 최소한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고 보고, DJ 집권시 여당에서 야당으로 수평적 정권교체가 '제도'(선거)에 의해 이루어진 뒤에야 민주주의가 절차적으로는 거의 완성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요. / 북한의 경우에는 '전체주의' 국가로 보통 분류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07.03.29 ?? 마지막 토론이라 함은 무슨 의미신지요?
  • 작성자 百濟 牟大王 작성시간07.03.28 일제가 편찬한 조선사에서 삼국통일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가장 먼저 사용되었고, 일제는 한민족의 역사를 한반도의 역사로 한정하기 위해 그 의미를 강조했으며 이것은 해방 후 남한 학계에서 그대로 답습되었습니다. 기본적인 사실 확인에 대한 문제이므로 긴 이야기는 않겠습니다. 경주에 있는 김유신동상을 누가 언제 왜 어떻게 세웠는지 김춘추와 김유신이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서 '삼국통일의 영웅'으로 오바스럽게 떠받들어지기 시작했는지 한번 알아나 보시고 이야기를 하시는 게 도리에 합당하다고 생각됩니다.
  • 작성자 소호금천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7.03.28 그냥 삼국사기, 삼국유사,화랑세기, 삼국사절요, 김유신장군 유허비문, 삼국사절요, 동국통감등 이런 정도의 자료를 다시 읽어보십시요. 죄다 일제 이전이며 박정희 정권 이전의 자료들이니 님에게 달리 설명할 필요도 없네요.
  • 작성자 소호금천씨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7.03.29 아무리 보아도 현대정권문제가 대두됨으로써 본문에서 요구하는 토론이 아닌 길로 조금 깊숙히 빠져 들었군요..百濟 牟大王 님 그리고 조조님 서로 견해가 다른것을 먼저 이해 못한 제가 많이 실례를 했군요. 혹시라도 마음 상하셨다면 널리 이해해 주시고 저도 다음 부터는 이런 감정이 개입되는 문답은 최대한 억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그럼 두분께 건필을 부탁드리며 다음 부터는 좋은 만남의 장이 되도록 합시다!
  • 작성자 밀리바닐리 작성시간07.04.07 소호금천씨님이 간과하고 있는 점이 있는데,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일본서기 같은 사료에 나와있는 "삼한통일"이라는 표현은 그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가 기록한 내용이나 그 내용을 기사적으로 전한 내용을 찾아서 기록한 것일 뿐입니다. 국내외에 흩어져 있던 기록들을 발췌하여 집대성한 책들이란 말입니다. 신라를 미화하려 애쓰는 분들 보면 유독 신라에 관해서 만큼은 합리적 사고를 꺼리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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