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에서 마의를 입고 풀이나 먹으면서 죽었다 이러지만..
왕인 아버지에게 울분을 토하면서 극력으로 반대한 분이 이렇게 생을 마감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
각합니다..
예전에 역사스페셜도 이 부분을 크게 다뤘죠..
아마 고려측에서 기록을 지워버린 게 아닌가 싶은데요..
마의태자는 투쟁을 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신라인들이 모두 경순왕을 따르지는 않았겠죠..
1000년을 이어온 나라를 바치는데 아무리 무너지고 있는 나라라고 해도 백성들이 모두 좋아했겠습니까?
역사스페셜을 보니 그 근거도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금강산까지 가는 마의태자의 행로는 뭔가를 하는 듯 여러곳을 거쳐갑니다..
빠른 길을 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요..
동지들을 규합하고 힘을 키웠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역사에서 뭔가 자신들을 향해 도전했다가 실패한 경우 행위가 지나치게 왜곡되는 사례가 많습니다..
궁예의 경우도 백성들에게 그렇게 죽었을 가능성 희박하다고 봅니다..
왕건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했을 때 궁예가 왕공이 이미 차지하였으니 이미 끝났다 이랬다는군요..ㅋ
궁예도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했거나 왕건이 회유했으나 자진했겠죠..
아무튼 마의태자의 죽음은?
왕인 아버지에게 울분을 토하면서 극력으로 반대한 분이 이렇게 생을 마감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
각합니다..
예전에 역사스페셜도 이 부분을 크게 다뤘죠..
아마 고려측에서 기록을 지워버린 게 아닌가 싶은데요..
마의태자는 투쟁을 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신라인들이 모두 경순왕을 따르지는 않았겠죠..
1000년을 이어온 나라를 바치는데 아무리 무너지고 있는 나라라고 해도 백성들이 모두 좋아했겠습니까?
역사스페셜을 보니 그 근거도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금강산까지 가는 마의태자의 행로는 뭔가를 하는 듯 여러곳을 거쳐갑니다..
빠른 길을 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요..
동지들을 규합하고 힘을 키웠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역사에서 뭔가 자신들을 향해 도전했다가 실패한 경우 행위가 지나치게 왜곡되는 사례가 많습니다..
궁예의 경우도 백성들에게 그렇게 죽었을 가능성 희박하다고 봅니다..
왕건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했을 때 궁예가 왕공이 이미 차지하였으니 이미 끝났다 이랬다는군요..ㅋ
궁예도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했거나 왕건이 회유했으나 자진했겠죠..
아무튼 마의태자의 죽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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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minamjun11 작성시간 08.02.28 마의 태자 전설도 남아있던데... 어쨌건 저쨌건 분명 그런 행위는 후대인들에게 강한 인식을 준건 사실인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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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추모왕 작성시간 08.03.02 이미 고려에 의해 통합된 상태였습니다. 백성들 또한 민생안정기에 접어들어야 하는 시기입니다. 괜히 불란을 일으켜서 백성들의 휴식기만 빼앗아 가는것밖에는 안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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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신농 작성시간 08.03.02 마의태자가 분란을 일으켰는지 어땠는지 여부는 불확실하지만(전설 정도가 남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게 민폐를 끼쳤는지 어땠는지도 알 수 없는 것이지요. 쓸데없는 희생이라고 일축하기만 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면 그로부터 200년이 더 지나서도 삼국부흥운동이 다시 일어난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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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추모왕 작성시간 08.03.03 그럼 현대에 조선왕조를 부흥한다고 조선황족이 대한민국에서 테러를 행한다면? 어느누가 좋아할까요? 그시대에 마찬가지입니다. 괜히 나타나서 분란만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미 썩어서 무너져버린 왕조때문에 자기가 피해입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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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카오스 작성시간 08.03.04 음... 수수께끼인가 보지요... 아무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그 답을 알수가 없을테니 그저 그럴듯하기만 하면 답이 될 것이니...그래서 한마디 보태보면...(혹시 정답이 되런지? 혼자 기대하면서...) 마의태자는 신농님 말씀대로 '신라를 고려에 바치는데에 극구 반대를 하였으므로 비록 혈혈단신으로 별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못햇지만, 그의 후손(추종자 포함)들이 신라의 부흥을 위해서 노력했다고 봅니다. 아마, 그의 후손들이 금나라와 후금을 세웠다고 보는 것이 일리가 있다고 보입니다....즉, 마의태자는 실의에 빠져서 '풀이나 먹고서 죽은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신라를 인수받은 고려의 입장에서는 마의태자를 띄울 수 없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