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말경에 서안을 답사했습니다. 마침 문무왕비와 관련하여 김일제 묘를 찾아보았습니다. 곽거병의 묘에서 약 5백
미터 떨어진 곳에 배밭이 있는데 그 배밭 한 가운데 묘가 남아있고 시멘트로 묘비석을 세워놓은 것을 보고 왔습니다.
김일제는 흉노의 만기왕인 휴도왕의 아들인데 곽거병이 휴도를 칠 때 한나라에 포로가 되었다가 귀순한 것으로 전해져
있습니다. 그는 귀순후 흉노에서의 특기를 살려 병마를 관리하는 마감의 책을 수행했고 후에는 한나라의 제후로까지 승진한
입지전적인 인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한나라 흉노정벌의 일등공신이랄 수 있는 위청, 곽거병 등이 황실과 인척관계였기에 좀 더 비중있게 대우를 받았겠지만
김일제의 묘가 아직까지 전해져 올 정도면 그의 공 역시 대단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문무대왕비에 김일제가 7대 후세가 성한왕이고 이 성한왕이 문무왕의 조상으로 묘사된 것인데 과연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난감합니다. 추사선생은 김알제가 성한왕이라고 확정을 지어놓고 있기도 한 것 같은데요.
경주김씨가 흉노의 후예가 되는 것이야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치더라도 김알지의 설화시기와 김일제의 전기가 시기적으로
비슷하고 왕망이 신을 건국하면서 그 일족이 신라로 이주했다고 알려져 있기도 한데 그렇다면 미추왕을 비롯한 신라의 제왕
들 역시 김일제의 후손이라고 단정을 해도 무방한 것입니까? 이런 부분에 대한 전문인들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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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ooklee 작성시간 09.08.12 음 얼마전에 이문제로 좀 시끌시끌 했었는데...검색을 해보심이...참고로 화랑세기에 이런 기록이 있더군요... 화랑세기가 위서라고 생각하신다면 죄송하지만... 뭐 참고삼아...20세예원공조에 보면 예원이 (저는 체원(體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예원이 김춘추를 따라 당에 갔을 때 유향(삼국사기에 따르면 광록경유형인듯?) 과의 문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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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ooklee 작성시간 09.08.12 "유향이 신선의 도에 대해 물었다. 공은 보종이 그도를 능히 얻었다고 답하였다. 또 燕書에 대해 물었는데 공이 암송하여 주었다. 또 우리나라의 婚道에 대해 물으니 공은 신의 뜻에 따른다고 답했다. 어떠한 신이냐고 묻자 "일광의 신이다"라고 답했다. 유향이 묻기를 "일광과 금천씨가 같은가?하였다. 대개 전에 왔던 사신이 우리나라에서 금천씨를 조상으로 삼는다고 한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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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정성일 작성시간 09.08.13 일광(日光)은 박혁거세왕을 말함입니다. 남당유고에서는 일광(日光)의 부친은 천신(天神)이라 하였는데, 천신(天神)의 出自에 대하여 소문(召文)국이라는 설을 유례이사금의 아들인 세기가 주장하기도 있습니다. 아무튼 7세기를 즈음하여 소호금천씨설이 있었다는 자료를 소개시켜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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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ooklee 작성시간 09.08.12 공이 반문하기를 "금천씨가 어떻게 신이 되겠는가?"하니 유향이 답을 할 수 없었다.-이상 화랑세기에서 발췌- 제가 개인적으로 화랑세기에서 가장 흥미있게 읽은 부분입니다...뭐 燕과 신라와의 관계가 제일 흥미거리였지만 그건 지금 주제와는 관계없고 다만 예원공은 신라인들이 중국에가서 금천씨가 조상이다 는 등의 말을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태도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즉 스스로 소호금천설이 황당한 얘기다라고 하고 싶으나 먼저 말한 사람들의 입장이 있기에 슬며시 돌려 부정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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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고스트 작성시간 09.08.13 이 논란의 비밀은 죽으면 풀릴라나? 죽기 전까지는 미해결일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