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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야토론방

김일제가 경주김씨의 시조라는 설에 대해...

작성자낮도깨비|작성시간09.08.12|조회수953 목록 댓글 8

지난 7월 말경에 서안을 답사했습니다. 마침 문무왕비와 관련하여 김일제 묘를 찾아보았습니다. 곽거병의 묘에서 약 5백

미터 떨어진 곳에 배밭이 있는데 그 배밭 한 가운데 묘가 남아있고 시멘트로 묘비석을 세워놓은 것을 보고 왔습니다.

 

김일제는 흉노의 만기왕인 휴도왕의 아들인데 곽거병이 휴도를 칠 때 한나라에 포로가 되었다가 귀순한 것으로 전해져

있습니다. 그는 귀순후 흉노에서의 특기를 살려 병마를 관리하는 마감의 책을 수행했고 후에는 한나라의 제후로까지 승진한

입지전적인 인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한나라 흉노정벌의 일등공신이랄 수 있는 위청, 곽거병 등이 황실과 인척관계였기에 좀 더 비중있게 대우를 받았겠지만

김일제의 묘가 아직까지 전해져 올 정도면 그의 공 역시 대단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문무대왕비에 김일제가 7대 후세가 성한왕이고 이 성한왕이 문무왕의 조상으로 묘사된 것인데 과연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난감합니다. 추사선생은 김알제가 성한왕이라고 확정을 지어놓고 있기도 한 것 같은데요.

 

경주김씨가 흉노의 후예가 되는 것이야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치더라도 김알지의 설화시기와 김일제의 전기가 시기적으로

비슷하고 왕망이 신을 건국하면서 그 일족이 신라로 이주했다고 알려져 있기도 한데 그렇다면 미추왕을 비롯한 신라의 제왕

들 역시 김일제의 후손이라고 단정을 해도 무방한 것입니까? 이런 부분에 대한 전문인들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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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ooklee | 작성시간 09.08.12 음 얼마전에 이문제로 좀 시끌시끌 했었는데...검색을 해보심이...참고로 화랑세기에 이런 기록이 있더군요... 화랑세기가 위서라고 생각하신다면 죄송하지만... 뭐 참고삼아...20세예원공조에 보면 예원이 (저는 체원(體元)이 맞다고 생각하지만...)예원이 김춘추를 따라 당에 갔을 때 유향(삼국사기에 따르면 광록경유형인듯?) 과의 문답입니다..
  • 작성자ooklee | 작성시간 09.08.12 "유향이 신선의 도에 대해 물었다. 공은 보종이 그도를 능히 얻었다고 답하였다. 또 燕書에 대해 물었는데 공이 암송하여 주었다. 또 우리나라의 婚道에 대해 물으니 공은 신의 뜻에 따른다고 답했다. 어떠한 신이냐고 묻자 "일광의 신이다"라고 답했다. 유향이 묻기를 "일광과 금천씨가 같은가?하였다. 대개 전에 왔던 사신이 우리나라에서 금천씨를 조상으로 삼는다고 한 때문일 것이다.
  • 답댓글 작성자정성일 | 작성시간 09.08.13 일광(日光)은 박혁거세왕을 말함입니다. 남당유고에서는 일광(日光)의 부친은 천신(天神)이라 하였는데, 천신(天神)의 出自에 대하여 소문(召文)국이라는 설을 유례이사금의 아들인 세기가 주장하기도 있습니다. 아무튼 7세기를 즈음하여 소호금천씨설이 있었다는 자료를 소개시켜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ooklee | 작성시간 09.08.12 공이 반문하기를 "금천씨가 어떻게 신이 되겠는가?"하니 유향이 답을 할 수 없었다.-이상 화랑세기에서 발췌- 제가 개인적으로 화랑세기에서 가장 흥미있게 읽은 부분입니다...뭐 燕과 신라와의 관계가 제일 흥미거리였지만 그건 지금 주제와는 관계없고 다만 예원공은 신라인들이 중국에가서 금천씨가 조상이다 는 등의 말을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태도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즉 스스로 소호금천설이 황당한 얘기다라고 하고 싶으나 먼저 말한 사람들의 입장이 있기에 슬며시 돌려 부정한 것이죠...
  • 작성자고스트 | 작성시간 09.08.13 이 논란의 비밀은 죽으면 풀릴라나? 죽기 전까지는 미해결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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