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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야토론방

"이사지왕"글자 발견에 따른 몇가지 생각

작성자ooklee|작성시간13.07.06|조회수565 목록 댓글 1

요즘 바빠서 통 역사공부를 못하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금관총 출토 환두대도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사지왕"이란 글자에 대해서는 흥미가 없을 수 없기에 몇자 떠오르는대로 적어봅니다.

1.이사지왕의 정체 : 왕이냐? 갈문왕이냐? 아니면 육부의 장급 귀족이냐? 일단 내물왕부터 법흥왕까지도 범위를 좁혀 본다면 (학계의 다수설(?)) 이름이 딱 들어 맞지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뭐 무령왕릉의 경우 처럼 딱 사서와 들어맞으면 얼마나 큰 발견이겠습니까만... 잘모르니 흥미가 생기는 면도 있겠지요.

저는 이사지왕이 신라의 왕명일수도 혹은 아닐수도 있다 즉 어느 한쪽으로 결론을 지금 내기에는 어렵다고 봅니다. 금관총같이 왕릉급 무덤에서 왕이 아닌 귀족이 묻혀을 리가 없다.는 논리도 어느정도 사실인것 같기는 합니다만 그게 꼭 그렇다고 볼수도 없고 이미 냉수리.봉평비에서 증명된사실처럼 당시에는 왕호를 국왕1인에게만 썼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 이미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실은 다음 3가지로 압축됩니다.

1)이사지왕은 국왕이다 다만 사서에 나온 왕명과 달라 누구인지 모를 뿐이다.

2)이사지왕은 왕호를 쓴 갈문왕급 귀족이다

3)이사지왕은 국왕이나 여러가지 사정에 의해서 사서에서 존재가 결락된 분이다. 다만 3의 경우는 좀 확율이 희박하겠지요.

 

2.이사지왕이 국왕이던 갈문왕급이냐 하는 문제는 사실 사서와 금석문에서 알려진 인물명과 비교 해보는 작업밖에 할 수없다는 점에서 뭐 그리 큰 문제는 안되겠지요.누구인가 밝혀진다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문제이니까요.그럼 일단 지증왕에서 법흥왕까지 알려진 왕명과 비교 해봅니다.법흥왕까지만 내려오는 이유는 진흥왕이후는 이미 "태왕"이란 명칭을 썼고 법흥왕 자신도 천전리 서석등에 따르면 말년에는"법흥태왕"이라고 왕호를 칭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그리고 이후왕대에는 이미 금관총같은 적석목곽분에 후장을 하지는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니까요.

 1.내물,혹은 나밀

 2.실성 혹은 보금 혹은 보주 실부지(봉평비추정)

 3.눌지 혹은 내지 乃智(봉평비추정)

 4.자비

 5.소지 혹은 비처

 6.지증 혹은 지대로 지철로 지도로 지도로 갈문왕(봉평비)

 7.법흥 혹은 원종 모진 모태 모즉지 매금왕(냉수리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인용했고 금석문 인용은 괄호로 표시하였습니다.

보시다시피 여기에는 일치하는 인물이 없습니다.뭐 제가 보기에는 발음이 비슷한 사람도 없죠.

그럼 동시대의 갈문왕급 인물명을 나열해 볼까요?

먼저 눌지왕의 동생들입니다. 복호혹은 보해 미사흔 혹은 미해

그리고 법흥왕의 동생이자 진흥왕의 아버지 입종 혹은 사부지갈문왕(냉수리비)

여기서도 없는 것 같습니다.혹자는 이사부도 넣자는 분이 계신데 이사부는 시대가 좀 내려오죠? 진흥왕대의 인물이니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봅니다.

3.순서가 거꾸로 되었습니다만 이사지란 이름도 사실 생각해봐야 합니다 왕은  확실히 존호이고 이름이 아니지만 이사지의 "지"가 이름이냐 존호냐? 는 좀 문제입니다. 즉 문제의 인물명이 "이사지"냐 "이사"냐는 좀 연구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왜냐하면 이미 고신라시대 인물명끝에 붙는 "지"자는 "님"정도의 의미를 같는 존호라는게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와 왕이란 혹은 지와 간지 혹은 직책명을 동시에 쓴 예가 봉평비 냉수리비등 금석문에서 이미 확인 되었기 때문이지요. 즉 냉수리비에서 실부지왕이 "실부님왕"이란 뜻인지 "실부지왕"이란 뜻인지는 좀 모호하죠 내지왕은 이름이 내지인게 확실해 보입니다. 이경우 지자를 쓰면 내지지왕이 되서 종복생략했다고 볼수도 있고요.

냉수리비에서는 "지"자가 존칭으로 이름뒤에 붙었다는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즉 모즉지매금왕에서 법흥왕의 이름이 모진 혹은 모태였다는 점에서 볼때 "모즉"이 이름이고 "지"가 존칭이란게 거의 확실하고 사부지갈문왕의 예에서도 사부=입종이란 "立" 서다 "설 "宗"은 부 혹은 보 란 우리말과 대응한다는게 거의 확실하다는 점에서 사부가 이름이고 지는 존호라는게 확실하지요. 냉수리비에서는 이하 족장급 인물들의 명칭에서도 예외가 없습니다.

다만 봉평비에서 "지도로 갈문왕"은 예외가 되겠군요 똑같은 방식이라면 "지도로지갈문왕"으로 써야 했을 텐데?

아무튼 이부지왕은 수수께기군요. 아무래도 새로운 다른 자료가 나올때까지는 문제가 쉽게 풀릴것 같지는 않습니다.새로운 역사자료의 발굴을 축하하며...

 

PS : 그리고 사족 같지만 저는 한가지 의문점이 있습니다. 꼭 이사지왕의 경우만은 아닙니다만 왜 적석 목곽분의 시대구분을 내물왕까지만 올리는지? 내물왕이 마립간을 칭했다? 혹은 김씨세습의 실제적 시조이다? 이라는 이유만으로 그이전에는 적석목곽분을 축조할만한 실력이 신라 혹은 사로국에는 없었다라는 단정인지? 사실 경주에 가보면 오릉도 크죠? 겉만 봐서는 적석목곽분과 구분 못하겠던걸요? 오릉은 박씨계열 왕의 무덤아닙니까? 김씨왕은 되고 왜 석씨왕은 안되는지? 왕릉급무덤 발굴해본게 천마총과 황남대총 금관총 서봉총 그것말고 거의 없죠?학계에서는 왜 마립간시대무덤일거라고만 단정하시는지 근거가 저는 궁금합니다. 무식하다 웃지마시고 무슨 고고학적인 근거가 있다면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뭐 법흥왕이전까지 연대를 잡는 것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상한을 좀더 위로 잡을 수도 있는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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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성일 | 작성시간 13.07.08 금관총에서 명문이 판독된 대도는 총 두자루로 한자루는 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고 또 한자루는 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논의에서 제외었지만 칼에서 '十'자와 '八'도 나왔는데 이것이 피장자가 소장하고 있던 칼의 번호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국왕의 소장품이라기 보다는 무장출신의 최고 진골 귀족의 무덤이라고 일응 추정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거기까지 의미부여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금관총의 무덤에서 추가로 명문이 확인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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