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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토론방

고려금관이라...

작성자麗輝|작성시간06.06.24|조회수2,841 목록 댓글 5

대만고궁박물관에서 보셨다는 말씀이죠??

저도 여자친구가 도록을 사다줘서 갖고는 있는데, 금관 사진은 못 본 것 같습니다.

뭐 유물이 많아서 전시야 로테이션으로 한다 하지만, 박물관 상설전시 도록까지 그렇게 자주 제작하는 것은 아니니까 분명 있을법도 한데 말이죠. 제 기억으로는 도록에는 거의 중국 유물이 있었고 주로 자기나 회화쪽 유물이 많았던 것 같은데 암튼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서울이라 책이 없고, 내일 중으로 조치원에 가게 되면 다시 한번 도록을 살펴봐야 겠네요.

 

그런데 정말 '고려금관'이라고 써 있었나요? 박물관이라면 패널이 붙어있을텐데 혹시 연대는 보지 못 하셨는지요?? 단순히 고려금관이라고만 썼을리는 없고 대부분의 박물관이 유물명칭, 제작국 혹은 제작자, 연대, 간단한 설명(미술사 슬라이드 수업시 답 쓰는 방식과 비슷한 편이죠 -.-;) 등은 적어놨을텐데 나머지 부분에 대한 기억은 나지 않으시는지??? 아마 안 나셨으니까 고려금관이라고만 쓰셨겠지만 그래도...아마 방 한가운데 이게 전시되어 있었다면 안양사랑님이 방문하셨을때 특별전을 개최했던 것은 아닌가도 싶지만, 그럼 동시대 고려의 다른 유물들도 님이 보셨을테니 것도 아닌 것 같고...암튼 잘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일단 고려금관이라 했다면 고구려일 가능성과 고려일 가능성이 다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 고구려는 아닐 듯 합니다. 우선 고구려에서 금관을 썼을 가능성은 고구려에서도 보관 장식이 나왔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양식상 동시대 가야나 신라의 금관가는 너무 다른 것 같습니다. 신라의 금관이야 출자형 금관이니 뭐니 해서 북방 스키타이족과 연결시켜 이해하는게 일반적이지만 가야의 금관은 분명 신라와는 다른 것이며 이는 대가야의 독자적인 사상체계와 연결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틀에 있어서 머리 전체를 두건처럼 감싸는 이런 금관은 동시대 중국이나 한국 혹은 다른 문화권에서도 보이지 않는 듯 합니다. 물론 제 식견이 모자란 이유도 있겠지만요.

 



위 사진이 유명한 평양 청암리토성 출토 '불꽃뚫음무늬금동관'입니다. 기존의 사서에서 고구려는 금관을 쓰지 않는 것처럼 언급하고 있지만 그런 문헌의 기록을 뒤집을 수 있는 것은 역시 이러한 고고자료뿐이겠지요. 하지만 이 사진을 보면 위에서 님이 올린 사진의 금관과는 형태적으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순전히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일단 보관의 형태가 너무나도 다릅니다. 물론 위의 것은 금관이며 아래것은 금동관이지만 제작 기법이 다를 수 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다른 형식(形式)의 금관이 제작되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 고구려것으로 알려져 있는 아래것의 양식(樣式)이 당대 고구려의 표준 양식이라 가정한다면 위의 금관은 분명 고구려것과는 차이점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여기에서 형식이란 전체적인 모습을 의미하며, 양식이란 그 시대의 스타일? 디자인? 뭐 이 정도 의미로 받아들이시면 될 듯 합니다.

 

또한 제작기법에 있어서도 위의 것은 금사(金絲)를 이용해서 관 몸체와 다른 장식들(불꽃이나 구름을 형상화한 듯 합니다)을 이어주고 있지만 아래것을 보면 전체적으로 관과 장식들이 일체형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고구려에서 금사를 이용한 금제품은 없으며 신라에서와 같이 어자문 무늬나 누금세공으로 화려하게 세공한 금제품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했을때 누금세공시 필요한 금사를 활용한 제작기법 역시 활발하게 이뤄지지는 않은 듯 합니다. 물론 아래것이 제작기법상 쉽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은 아니며 사진상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굉장히 손이 많이 가는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것을 따라갈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실제 위의 것도 불꽃무늬의 표현이라 한다면 아래것과 비교했을때 마무리 작업시 정교함의 차이가 드러나지 않나 싶습니다. 금관 장식과 금동관 장식의 두께 역시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이고요. 위의 것이 시대가 더 후대의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동시대 고구려의 금관 제작 기술 수준이 신라보다 앞선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물며 위의 금관은 신라시대 금관과 비교했을때도 보다 발달된 제작기법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한 아래 그림은 진파리 7호분에서 나온 '해뚫음무늬금동장식'입니다. 배개 마구리이냐 금동관의 장식이냐 말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그 논란은 생략하겠습니다. 북한에서는 5~6세기 작품으로, 남한에서는 6세기 후반 이전은 절대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작품은 일단 삼족오와 봉황, 용이 도상학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당시 고구려인의 사상체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지만 덧붙여 제작기법을 봤을때 굉장히 정교하게 작업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 하게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아! 고구려 고구려'에서도 선보였으며 '고려대 100주년 기념특별전'은 물론 지금 전시중인 국박의 '북녘에서 온 유물전'에도 볼 수 있는 유명한 북한 유물이지요. 

 



여기에서도 보면 굉장히 세부적이면서도 정교한 제작기법이 엿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위의 금관과 같은 화려한 모습은 찾기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삼족오를 중심으로 테를 두르고 그 테는 뾰족한 바늘 등으로 한번씩 눌러줘서 마무리했으며(사진상은 잘 안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선명히 확인됩니다) 그 주변에 알과 같은 동그란 장식을, 다시 그 밖에 원형테를 둘렀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런 식으로 금동장식 전체적으로 형태를 이루고 있으니 똑같은 스타일이 2번 반복됨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러한 양식적인 면에서 위의 금관은 고구려의 2가지 양식과 너무나도 판이하게 다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확실하게 고구려의 것으로 판명난 유물을 통해서 비교했을때, 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위의 금관은 고구려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일반적으로 고유섭 선생님(일제강점기)때부터, 고구려의 예술은 힘이 있고 패기가 넘치는 것으로 이해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고유섭 선생님은 흔히 그릇의 색깔을 갖고 고려는 푸른색의 나라, 조선은 흰색의 나라라고 하고 고구려는 붉은색 와당과 벽화의 색채를 갖고 적색의 나라라고 했지만 기실 고구려의 토기들은 검고 회색인 것이 가장 많고 그 다음에 적색이나 백색을 띤 것도 있습니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알려져 온 상식같은 것이 계속된 고고학적 성과에 의해 변경되는 일이 잦아지는데(당연한 일이지만) 고구려의 예술에 대한 인식 역시 그렇다고 전 생각합니다.

 

저렇듯 섬세하고 화려한 금세공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고구려에도 있었지만 님이 제시한 사진과는 거리가 다소 있다고 봅니다. 님이 2번째로 제시한 사진을 보면 더욱더 그런 면이 부각된다고 생각하는데 금관 몸체의 세부적인 문양이나 붙어있는 장식이 고구려의 것과 얼핏 보면 비슷하지만 분명 양자가 다르며, 제작기법에서 더 우수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굳이 고려금관이라 한다면 고려시대때 고구려의 예술적인 기법을 계승한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제가 금관 전문가도 아니고, 많이 아는 것은 아닙니다만...제 생각은 뭐 대강 이렇습니다. -.-;

 

이에 대한 다른 분들 생각도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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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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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안양사랑 | 작성시간 06.06.24 제가 쓴 글이 아닙니다. 제목에 [펌] 이라고 쓰고 글의 말미에 출처까지 적었는데, 미처 보지 못하셨나 보군요.
  • 작성자麗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6.06.25 아아~제목에 있군요...못 봤습니다. 암튼, 누가 쓴 글이든간에 고려금관이라고 할만한 저런 고고자료가 있다는 얘기는 참 신기하네요. 현재 저런 금관에 대해서 한국 학계에서 모르고 있다는 것 또한 신기하고요. 정말 고려금관이 맞는건지 진짜 궁금합니다. ^^;
  • 작성자lucid | 작성시간 06.06.28 짧은 소견으로는 고려금관이 아니라,,,, 고구려의 불상의 보관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ㅋㅋ
  • 작성자麗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6.06.28 그런데...고구려 시대 불상을 보면 저런 보관이 나오지를 않아서...뚝섬출토 불상이나 계미명삼존금동불상이나 연가칠년명금동불상 등등...암튼 금관의 형태가 저도 처음 보는 거라서 신기하네요.
  • 작성자안양사랑 | 작성시간 06.06.28 고구려 시대 불상에 대해서 자세한 건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원래 불상에는 보관을 씌우지 않습니다. 보관을 쓰는 것은 불상(부처)이 아니라 '보살상'(보살) 들이죠. 여휘님이 언급하신 고구려 불상들은 하나같이 보관을 아예 쓰고 있지 않은데, 그것들이 '불상' 인 이상 보관을 쓰지 않은 것은 당연합니다. 따라서 이것을 들어 위 금관이 고구려 불교조각상(정확히는 '보살상')의 보관이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순 없다고 봅니다. 혹... 고구려 보살상으로서 알려진 것이 있습니까?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보살상' 인 이유 중 하나는 보관을 썼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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