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로 오는 발해유민들의 숫자는 최대 30만명가량으로 볼수도 있습니다. 기록상으로 대략 짚어볼때말이죠. 그 이상 가능성을 볼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고려에서는 이 발해출신들을 같은민족으로서 우대했고 왕족과 귀족출신들도 우대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고려에서는 발해의 역사서를 제대로 편찬하지 못합니다. 더욱이 발해출신 귀족이나 왕족들이 고려의 귀족세력으로 성장하지도 못하죠. 그덕에 고려의 문벌귀족색을 보면 신라계승적 모습을 강하게 내비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고구려 계승적 모습보다는요. 그결과로 발해출신들이 나중에는 조선시대에는 천민으로 전락하는 경우까지 나타나거나 발해인 세력이 사실상 고려에서 소멸되는 결과를 보이면서 발해에 대한 역사서 인식에 대해서 고려가 제대로 하지를 않는다는 점입니다. 삼국사기를 편찬하던 시점에서도 발해에 대해서 역사서를 편찬하지 않았다는 건 이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삼국사기의 김부식이 이걸 저자한 이유도 우리역사를 제대로 알리기 위함이라고 한바 있습니다. 그런데 발해를 우리민족이라고 생각한 고려에서 발해에 대해서 역사기록을 아예 기록하지 않는 태도를 취합니다.
왜 고려에서는 발해왕족들과 귀족출신들을 우대했으면서도 발해출신들은 한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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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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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minamjun11 작성시간 09.01.05 쉽게 생각해서.... 당시 고려 조정이 원하는 인재상이 발해인들에겐 없었다는 정도로 생각할 부분도 있다고 봅니다. 엄연히 따로 존재하던 국가다 보니 사상도 다를테고 일반 국민들의 사고방식도 다를 텐데, 전세계에서 분단이후 통일된 국가들의 경우를 살펴보면 사고방식 차이로 인한 분란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고려 조정에선 어쩌면 그러한 부분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웠을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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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미주가효 작성시간 09.01.05 '근거지를 잃고 쫓겨온 사람들' 이라는 한계도 무시할 수 없다고 봅니다. 고려 초기의 권력구조는 호족을 중심으로 하였는데, 신라와 (후)백제계 호족들은 그 근거지를 갖고 상당한 힘을 발휘하였으나, 발해계는 자신의 영토를 잃고 고려로 넘어온 케이스에 해당하므로 근거지가 있을 리 없지요. 고려왕의 토지하사나 토지구매 등으로 일정한 땅을 얻더라도 해당 지역의 기존 호족들이 발해계가 힘을 키우는 것을 쉽게 용납하진 않았을 테니 정치세력으로 성장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과거 위만이 내투했을 때, 그를 '변방을 지키는 장수' 로 삼은 것처럼 귀순한 귀족을 변방을 지키는 장수로 삼아 그 세력을 일종의 방패막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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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미주가효 작성시간 09.01.05 삼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발해 유민의 경우도 아마 그랬을 가능성이 큽니다. 대도수의 경우 고려 서북지역 최전선을 지키는 장수였으니까요. 이는 성법맨님 지적처럼 거란의 수차례 침입으로 발해출신자의 인적 손실은 물론 상당한 재산상 손실도 가져왔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런 점도 발해계가 힘을 키우지 못하게 된 원인이 되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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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소호금천씨 작성시간 09.01.05 무었보다도 미주가효님의 주장이 가장 공감이 가는 내용입니다..자신들의 부분적인 세력이나 근거를 가지고 이미 뿌리를 내린 신라, (후)백제 호족들과는 달리 나라를 잃고 근거와 세력이 없는 발해유민들은 근본적으로 동등하게 대우를 받았다고 보기는 힘들것 같군요..발해유민들끼리 뭉쳐지는 것 조차도 근본적으로 와해시키고 견제를 하였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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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밀리터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9.01.05 기본적으로 고려의 기반자체는 구 고구려계라고 봐야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핵심에서의 분활자체는 신라-백제계라는 점도있지만 저는 고구려계의 존재라는 3각구도 형립이라는 게 맞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