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중기의 무신 척준경......
너무 이상하리만큼, 너무 과하다 싶을만큼 요즘 띄워지고 팬들이 많이 있는 인물입니다..
뭐 사람들이 척준경의 가리켜
소드마스터 척, 전설의 척씨, 한국의 여포, 검귀 등등 수많은 찬양적(?)별명을
붙이던데요?...
수많은 척준경 팬분들껜 돌맞아 죽을 발언인지만
도데체 척준경 같은 인물이 왜 이렇게 갑자기 인기가 많아지고 추앙을 받는 건가요?
한권으로 읽는 고려사 같은 두꺼운 책에서 척준경에 대해
읽어보니까 그닥 좋은 사람은 아니던데요?....
그는 고려 14대 왕 헌종 때에 처음 이름이 등장하는데 개경의 무뢰배들과 어울리는 깡패 출신이였으며
헌종의 야심 많은 삼촌 계림공에게 발탁되었는데 이후 계림공의 명분성 부족한 쿠데타인 이른바
'이자의의 난'(고려사나 고려사절요를 종합해볼때 이자의가 반란을 일으킨 큰 증거가 없기 때문에
계림공의 난으로 보는 사학자들이 많음... 그러나 이자의가 부패한 관리라는 건 사실인듯 보이므로
수양대군의 계유정난 같이 아예 명분 제로인 난은 아닌것으로 보이므로 명분성 '부족'이라고 결론내렸음)
에 가담하여 공을 세워 계림공의 충견이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헌종 폐위에도 큰 공을
세웠을 가능성이 높으며 훗날에는 이자겸의 편에 붙어 국사를 농단했으며 이자겸의 난 때에 인종을
폐위시키려까지 했으며 인종의 회유로 이자겸을 척결했으나 공신의 반열에 올라서는 또 권세를
마음대로 부려 정지상의 탄핵으로 유배형....
영웅이라기보다는 난신적자에 가까운 모습으로 보이는데
도데체 척준경이 무엇이 깨끗하고 현명한 인물이라고 사람들이 그렇게 추켜세우는 걸까요??
계림공의 공신이였다가 그 이후로 마음대로 권세를 부리는 척준경....
이를 조선시대로 비유하자면.......
수양대군의 공신이였다가 이후 권세를 부리는 한명회나 홍윤성(한명회보단 홍윤성에 더 가깝겠네요) 같은
인물을 영웅으로 띄워주는 것이랑 같은 꼴 같거든요?..
물론 이 발언 어디가서 함부로 했다간
'위대한 척준경 님을 난신적자이자 역적 한명회, 홍윤성 따위랑 어따 비교하냐?'
하면서 두들겨 맞을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제 눈엔 별반 다를거 없어보이거든요?.. 아무리봐도...
도데체 왜 요즘 사람들이 고려 헌종~인종 때의 무신 척준경을 신장이니 영웅이나 하면서 떠받들어
찬양하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고작 여진정벌 때에 윤관, 오연총, 임간 등도 패하였었는데 척준경을 불패의 신화를 일궈내며
여진군들을 쓸어버렸다는 것 때문에 그토록 추앙받는 건가요?
제 생각엔 고작 그것으로 국정을 농단했던 그의 악행을 가리기엔 뭔가 부족해보이는데?..;;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다물전사 작성시간 11.12.26 사실 이자겸의 난 자체도 좀 웃긴게...실제 기록을 보면 이자겸을 먼저 공격한 쪽은 왕의 측근들이었죠...오히려 이자겸은 자신을 방어한 것인데 이 일이 커져 궁궐을 공격하게 되어 '난'으로 발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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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그리운길 작성시간 11.12.26 글세요...저의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한 시대의 초기 말기때는 동적인 사건들이 발생하여..흔히 말하는 사회신분상 미천한.가난한 사람들의 사회 성공이 있지만...한 시대의 중기..특히 고려시대, 조선시대는 정적인 사회였고..그 시대에서 그 사회의 중기는 사회시스템이 거의 제도화 되었고..사회적으로 어떠한 배경없는 사람이 역사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경우는 흔하지 않을뿐더러..척준경처럼 고려의 문인시대와 무인시대의 중간점에 있는 인물은..흔하지 않기 때문에 후대 사람들의 평가를 고려해볼때..영웅으로..변모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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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미주가효 작성시간 12.01.01 앞에서 스토리텔러님이 이야기하신 것처럼 척준경에 대한 관심은 주로 그의 '무용담' 에 치우져 있습니다. 사서에 기록된 윤관의 동북9성 정벌시의 그의 행적은 인간같지 않은 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볼 때 그과 과연 존경해야 할 위인인가에 대해서 긍정적 답이 나오기는 어려울 겁니다. 척준경의 일대기를 여진정벌시기를 1기로 보고, 이후 중앙 정계에서 정치가로서 활동하던 시기를 2기로 본다면 요즘에 그를 찬양(?)하는 목소리는 주로 1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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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미주가효 작성시간 12.01.01 아래는 고려사의 윤관열전에 나오는 척준경의 무용담 중 일부입니다. (척준경 열전보다 윤관열전에 척준경 기사가 더 자세히 나온다는...)
- 석성 전투: 여진족의 저항이 거세어 고려군이 진공할 수 없자 척준경이 갑옷과 방패를 갖고 석성 아래로 진격하여 여진족 추장을 참살하자 고려군이 진격하여 승리
- 가한촌 병목 전투: 윤관 등이 데리고 간 8천 군사가 여진족의 매복에 걸려 십여명만 남을 정도로 궤멸되고 윤관이 포위되어 위급한 상황에 처하자 척준경이 10여명을 데리고 선발대로서 구원하러 가서 여진족을 기습하고 뒤이어 고려군 본대가 급습하여 윤관 구출 성공 -
답댓글 작성자미주가효 작성시간 12.01.01 그런데 여진정벌시 척준경이 보이는 많은 행태들은 다분히 '협객' 들이 보이는 의리 중심적인 것들이 많습니다. 자신을 인정해 준 윤관을 위해 목숨을 건다거나, 국가의 녹을 받았으니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겠다는 식의 발언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자신을 만류하는 동생에게 척준경은 '나는 국가를 위해 의리상 목숨을 걸겠으니 너는 돌아가 아버지를 봉양하라' 면서 효보다 충을 앞세우는 면모를 보이기도 합니다.) 아마 척준경이 여진정벌전이 끝날 무렵에 바로 사망하였다면 이후의 정치적 행로 비난받는 일은 없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