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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토론방

"왕규의 난" -> "왕요의 정변"이 아닐까?

작성자大欽茂|작성시간14.06.28|조회수608 목록 댓글 7

고려사 혜종일대기에 왕요(정종)는 서경총관 왕식렴과 결탁하여 "왕규의 난"을 진압하고

혜종이 붕어하자. 국인들의 추대를 받아 즉위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과연 왕규의 난이였을까? 고명대신의 한사람인 왕규가 왕자의 서열에서 한참이나 밀리는 소광주원부인 왕씨의 소생 "광주원군"을 보위에 앉히려고 역모를 획책 했을까?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왕요와 왕식렴의 정변"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광종의 즉위와 관련해서는 정종의 동복아우인 왕소가 병이 깊은 정종의 선위를 받아 즉위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과연 그러했을까? 최승로의 글에 의하면 정종과 광종이 즉위할 당시 개경과 서경의 문무반이 태반이나 참살 당했다는 기록은

평화적인 왕위 전달이 아님을 보여준다.  

 

왕소는 서경천도를 강행하는 정종에 대한 개경세력의 반대기류에 편승하여 평주의 호족 박수경 무력을 빌려 정종과 왕식렴을 축출하고 즉위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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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김준수 | 작성시간 14.06.30 왕요의 정변이라 함이 옳겠지요. 대흠무 회원님의 글에 공감 1표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황상폐하 | 작성시간 14.06.30 거란 침입중 7대실록이 불타버리는 바람에 고려초기 기록이 너무 부실하여 사건의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여 사실을 정확히 알기가 곤란함...;
  • 작성자공실불 | 작성시간 14.07.04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패자인 왕규를 승자인 정종 광종 형제세력이 간신 역적으로 악의적으로 기록한 것이죠
  • 작성자공실불 | 작성시간 14.07.04 반대세력이 사후에 집권할시에 반대세력과 대립했던 전 정권의 수장이나 정치가들은 부정적으로 서술되기 다반사이지요 왕규의 논란도 그런 성격에 속하지요
  • 답댓글 작성자大欽茂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7.06 혜종에게 절대충성을 바치던 박술희의 무력과 서경의 왕식렴과 평주의 박수경 세력을 등에 엎은 왕요,왕소세력, 평주 유금필의 외손인 효은태자세력이 버티고 있는 처지에 왕규 혼자의 힘으로 혜종을 암살하고 외손자 광주원군을 옹립한다는 것은 엄청난 무리수가 뒤따르는 모험이죠. 태조 혜종 두 임금의 장인이오. 고명대신이며 혜종정권에서 국정을 주도하던 왕규가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외손자를 앉혀야만 했단 이유가 있었을까요. 고려사의 기록을 액면 그대로 믿기에는 석연치 않는 구석이 너무나 많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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