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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근대 토론방

조선시대 때 지방살던 사람들은 한양에서 과거시험 치른다는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작성자스트라이크|작성시간09.04.21|조회수286 목록 댓글 11

사극에서 보면 시골산골에서 책만 보던 선비가 한양에 올라와서 과거시험을 보는데요...

 

생각해 보니까....과거시험이 매년 있는 것도 아니고...

 

국상을 당하거나 외적이 쳐들어 오거나 하면...과거시험 중지되기도 한는 걸로 알고 있는데...

 

혹은 수시로 과거시험을 특채(?)형식으로 보기도 하는데요...

 

서울사는 사람들은 언제 언제 과거시험 본다는거 알겠지만....

 

지방...특히 첩첩산중에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알죠?

 

당시에는 무슨 신문에 공무원채용시험공고(?) 같은것도 없던 시절이고...

 

혹시 지방관청 앞에 게시판 같은게 있었나요??

 

혹시 그런게 있다면...혹시 지금도 그런 조선시대 공문서가 남아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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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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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이도형 | 작성시간 09.04.22 조선의 도로 사정이 나빴다로 볼 수는 없습니다. 일단 말아 그렇게 일정하게 빨리 달릴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호환을 피하기 위해 밤에는 이동을 자제했습니다. 일단 급한 봉화는 올렸으니 적의 침입을 알리는 장계는 약간 속도를 덜 내도 괜찮았지요. 그 정도면 당시의 서양에 비하면 느리다 할 수 없지요
  • 답댓글 작성자조수아 | 작성시간 09.04.23 말이 일정하게 빨리 뛸 수 없다는 이도형님 말씀은 맞는데 소호님 말씀처럼 조선의 도로 사정은 나빴다고 봐야 합니다. 괜히 박지원이 조선의 도로 사정과 수레가 발달하지 못함을 지적하지는 않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들의 편견과는 다르게 신속했던 것을 부정하지는 못하겠지요. 다만 도로가 더 좋았더라면 시간이 더 단축되었을 것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추모왕 | 작성시간 09.04.23 서양에서 이런말이 있죠. 철도가 나오기전까지 최고의 도로는 로마제국시대의 로마가도였다고요. 당시 세계어느곳이나 정보전달속도는 비슷했다고 봅니다. 물런 비슷했다고 하는건 날씨가 좋을때 말이지만요. 눈비등 악천우에선 도로정비가 잘되어 있는곳이 속도가 빨랐겠죠.
  • 작성자미주가효 | 작성시간 09.04.23 지금 논의가 약간 새는 것 같습니다. 스트라이크님이 꺼내신 논의는, 보다 '일상적인' 정보전달을 위해 중앙-지방간의 통신수단이 존재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생각됩니다. 일단 봉화는 '특수한' 정보전달을 위한 통신수단이지 일반적인 수단이라 보긴 어렵지 않을까요? 우선 봉화는 적의 침입 등 사전에 정해진 아주 특수한 몇 가지 정보만을 전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보의 전달방향이 지방 -> 중앙이 되므로 중앙 -> 지방을 염두에 둔 듯한 스트라이크 님의 이야기와는 맞지 않습니다.
  • 작성자미주가효 | 작성시간 09.04.23 파발제도는 비용부담이 있기는 하나 그 신속성으로 인해 원거리 통신수단 중심으로 사용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을 것 같습니다. 실제 조보같은 경우, 원거리의 관청에는 며칠치를 묶어서 파발로 전달한 뒤 그 관청에서 인근 관청으로 재배포한 예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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