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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09.04.22 조선시대를 너무 무시하시는 것 같습니다. 왜 '공고' 같은 게 없었다고 생각하시는지? 국가가 중앙을 중심으로 지방의 자율성이 약화되기 시작하면 중앙과 지방간에는 교통과 통신수단이 발달하게 마련입니다. 조선의 경우에는 <조보> 라 불리는 일종의 '관보' 가 있었지요. (지금의 서울신문을 연상하시면 됩니다.) 이 관보는 조선 초부터 존재하였으며, 임금의 명령, 주요 인사이동이나 중요한 정치적 사건, 그리고 과거시험의 공고 같은 것이 게재되었습니다. 이는 일간신문으로서 매일 발간되었으나, 인쇄가 아니라 필사에 의존했던 관계로 먼 지방으로 배송되는 데에는 시간이 다소 걸리기도 하였습니다만, 늦어도 대략 한달 정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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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09.04.23 범위 내에서 조보는 지방에도 배송되었습니다. / 그리고 그 외에도 경향간의 소통을 위하여 각 지방은 '경재소' (일종의 '서울사무소') 를 운영하여 중앙의 정보를 전해 들을 수 있게 하기도 하였지요. 게다가 과거를 볼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지방의 향교(조선 후기라면 서원) 등과도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고, 향교(나 서원)는 과거시험의 동향을 더 빨리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 참고로 '기별이 있다' 라고 할 때 '소식' 이라는 의미로 기별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 때의 기별은 본디 '조보' 의 의미라고 보시면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조보를 발행하던 기관이 '기별청' 인 것이 괜한 이유는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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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09.04.23 지금 논의가 약간 새는 것 같습니다. 스트라이크님이 꺼내신 논의는, 보다 '일상적인' 정보전달을 위해 중앙-지방간의 통신수단이 존재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생각됩니다. 일단 봉화는 '특수한' 정보전달을 위한 통신수단이지 일반적인 수단이라 보긴 어렵지 않을까요? 우선 봉화는 적의 침입 등 사전에 정해진 아주 특수한 몇 가지 정보만을 전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보의 전달방향이 지방 -> 중앙이 되므로 중앙 -> 지방을 염두에 둔 듯한 스트라이크 님의 이야기와는 맞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