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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때 지방살던 사람들은 한양에서 과거시험 치른다는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작성자스트라이크| 작성시간09.04.21| 조회수243|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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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추모왕 작성시간09.04.22 '방'이 괜히 있는게 아니죠. 언제한다고 국가에서 방을 붙이니 그걸 보고 알았겠죠.
  •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09.04.22 조선시대를 너무 무시하시는 것 같습니다. 왜 '공고' 같은 게 없었다고 생각하시는지? 국가가 중앙을 중심으로 지방의 자율성이 약화되기 시작하면 중앙과 지방간에는 교통과 통신수단이 발달하게 마련입니다. 조선의 경우에는 <조보> 라 불리는 일종의 '관보' 가 있었지요. (지금의 서울신문을 연상하시면 됩니다.) 이 관보는 조선 초부터 존재하였으며, 임금의 명령, 주요 인사이동이나 중요한 정치적 사건, 그리고 과거시험의 공고 같은 것이 게재되었습니다. 이는 일간신문으로서 매일 발간되었으나, 인쇄가 아니라 필사에 의존했던 관계로 먼 지방으로 배송되는 데에는 시간이 다소 걸리기도 하였습니다만, 늦어도 대략 한달 정도의
  •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09.04.23 범위 내에서 조보는 지방에도 배송되었습니다. / 그리고 그 외에도 경향간의 소통을 위하여 각 지방은 '경재소' (일종의 '서울사무소') 를 운영하여 중앙의 정보를 전해 들을 수 있게 하기도 하였지요. 게다가 과거를 볼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지방의 향교(조선 후기라면 서원) 등과도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고, 향교(나 서원)는 과거시험의 동향을 더 빨리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 참고로 '기별이 있다' 라고 할 때 '소식' 이라는 의미로 기별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 때의 기별은 본디 '조보' 의 의미라고 보시면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조보를 발행하던 기관이 '기별청' 인 것이 괜한 이유는 아니지요.
  • 답댓글 작성자 추모왕 작성시간09.04.23 그렇군요. 역시 괜히 중앙집권 국가가 아니군요.
  • 작성자 소호금천씨 작성시간09.04.22 당연히 파발마[擺撥馬]를 띄우겠죠..한양에서 각도의 관찰사로 그리고 관찰사는 각지방의 목사나 군수에게로 목사나 군수는 관활 각고을 현령에게로 파발마를 보내면 열흘안에 모든 것이 해결 된다고 보입니다....첩첩산골에는 양반들이 별장 또는 유람삼아 놀러가지 않는 한 실생활을 위해 거주하지는 않았다고 보입니다..사람들이 많은 특히 관청이 있는 지방에서 양반행사를 해야 하니까요..ㅎ.ㅎ...과거를 볼수 없는 천민이나 상인들이 첩첩산골에 살았을지라도...^^*
  • 답댓글 작성자 소호금천씨 작성시간09.04.22 참고로 임진왜란시 경상좌도 수군절도사 박홍이 장계를 파말마로 올린것이 부산에서 한양까지 약 85시간 (약 3일 하고도 6시간 정도)이 걸린 것을 참고하면 각 관찰사에서 각 고을 까지는 길어야 이틀 정도라고 보면 되겠습니다..말의 속도가 시속 40Km(최대속도 60Km/H)라면 부산까지 11시간이면 되지만 조선시대에는 도로사정이 매우 나빴었나 봅니다..
  • 답댓글 작성자 이도형 작성시간09.04.22 조선의 도로 사정이 나빴다로 볼 수는 없습니다. 일단 말아 그렇게 일정하게 빨리 달릴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호환을 피하기 위해 밤에는 이동을 자제했습니다. 일단 급한 봉화는 올렸으니 적의 침입을 알리는 장계는 약간 속도를 덜 내도 괜찮았지요. 그 정도면 당시의 서양에 비하면 느리다 할 수 없지요
  • 답댓글 작성자 조수아 작성시간09.04.23 말이 일정하게 빨리 뛸 수 없다는 이도형님 말씀은 맞는데 소호님 말씀처럼 조선의 도로 사정은 나빴다고 봐야 합니다. 괜히 박지원이 조선의 도로 사정과 수레가 발달하지 못함을 지적하지는 않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들의 편견과는 다르게 신속했던 것을 부정하지는 못하겠지요. 다만 도로가 더 좋았더라면 시간이 더 단축되었을 것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추모왕 작성시간09.04.23 서양에서 이런말이 있죠. 철도가 나오기전까지 최고의 도로는 로마제국시대의 로마가도였다고요. 당시 세계어느곳이나 정보전달속도는 비슷했다고 봅니다. 물런 비슷했다고 하는건 날씨가 좋을때 말이지만요. 눈비등 악천우에선 도로정비가 잘되어 있는곳이 속도가 빨랐겠죠.
  •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09.04.23 지금 논의가 약간 새는 것 같습니다. 스트라이크님이 꺼내신 논의는, 보다 '일상적인' 정보전달을 위해 중앙-지방간의 통신수단이 존재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생각됩니다. 일단 봉화는 '특수한' 정보전달을 위한 통신수단이지 일반적인 수단이라 보긴 어렵지 않을까요? 우선 봉화는 적의 침입 등 사전에 정해진 아주 특수한 몇 가지 정보만을 전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보의 전달방향이 지방 -> 중앙이 되므로 중앙 -> 지방을 염두에 둔 듯한 스트라이크 님의 이야기와는 맞지 않습니다.
  •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09.04.23 파발제도는 비용부담이 있기는 하나 그 신속성으로 인해 원거리 통신수단 중심으로 사용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을 것 같습니다. 실제 조보같은 경우, 원거리의 관청에는 며칠치를 묶어서 파발로 전달한 뒤 그 관청에서 인근 관청으로 재배포한 예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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