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승국님은 요동을 어떻게 보았는가 ?

작성자김용만|작성시간05.04.25|조회수453 목록 댓글 3
환단고기를 번역하여 크게 유명해진 고 임승국님은 재야사학의 대표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분은 과거 월간 자유지에 [요동의 교치(僑置)고] 라는 글을 쓴 바가 있었다.
요동지명의 동침 2천년사의 해부) 라는 부제가 달렸다.

그분의 역사학을 알 수 있는 책은 그분이 번역하여 출간한 [한단고기]가 아니다.
그분은 말년에 그 책을 번역했던 것이고, 그분이 월간 자유지에 글을 쓸 때만 하더라도 환단고기는 거의 언급이 되지 않고 있다. 그분은 안동준님과 함께 [한국고대사 管見]이란 책을 펴냈고, 1986년 진영출판사에서 [史林]이란 책을 냈다. [史林]은 1000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양인데, 모두 다 자유지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서 냈다. 아쉬운 것은 자유지를 영인하여 모은 것에 불과하여, 새롭게 편집 또는 수정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 때문에 그 책이 그분의 역사학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귀한 자료도 된다. 그 책 405∼429p까지가 바로 위에 언급한 [요동의 교치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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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그분의 글에서 나온 내용을 요약해서 옮겨보겠다. (즉 다음 부분은 임승국님의 주장을 옮긴 것이다.)

교치라는 말은 동양사에서 매우 익숙한 말로, 처음 있던 지명이 시대를 달리하면서 지명이 옮겨 다닌 것을 의미한다. 특히 북중국에서 남중국으로 쫓겨난 남조의 국가들 가운데 교치해서 명명한 지명들이 많았다. 이런 교치에 대한 지식이 없이 옛날부터 특정 지역에 하나의 지명만이 있었다는 보는 것은 틀리기가 쉽다. 지명도 이동하는 것이다.
임승국님은 적어도 요동이란 말이 시대를 달리해서 이동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분은 요동의 1차 위치를 태행산맥 이동으로 보고 있다. 즉 그분이 요동의 원위치를 산서성과 하북성을 가르는 태행산맥이동이 곧 요동이라고 말하고 있다. 요동 요서의 기준이 되는 요(遼)라는 지명의 동쪽이 요동이오, 태행산맥까지도 요동에 속한다. 요라는 지명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지도책에도 뚜렷이 나타있다.
산서성의 요라는 지방에 요수가 있고, 요양이 있으며, 요양수(遼陽水)가 있으며, 遼州, 遼縣 이 있다. 고구려가 망한 후 발해국이 건국할 때까지도 발해의 강역 내인 만주지방에는 요양이란 지명이 없었다.(양평은 있다.) 요양이란 지명은 명나라 홍무연간(1368-1398)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임승국님은 이 만주의 요양을 4번째(실은 3번째) 요양으로 보고 있다.

그럼 임승국님은 어디를 2번째 요동으로 보았을까?
2차 요동에 대해서 그분은 [독사방여기요] 산동편에서 요동군지휘사사에서 찾는다. 위 책 산동편에는 순임금이 기주의 동북을 분할하여 유주로 삼고, 秦은 요동, 요서의 2군을 두었다. 한초에도 이를 쫓았다는 문장이 있다. 임승국님은 여기에 주를 달리기, 위서 지형지를 인용하여, 후한때의 요동군의 치소를 하북성 서수현 서쪽으로 보았다. 즉 이것이 하북성의 요동을 뜻한다고 보았다.
그분은 후한 요동이 있던 시기의 요수를 현재의 난하로 보았다.
그리고 수, 당이 고구려를 침략할 때에도, 요동은 장선의 이남 곧 오늘날 북경지방이 바로 요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발해와 갈석 사이에서 고구려를 혼내겠다는 말에서 요동을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갈석보다 좌측인 하북 일대로 보았다.
또 진나라때 요수는 지금의 영정하로 난하 보다 서쪽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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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 말, 한나라 초기의 요동의 위치를 현재의 난하와 영정하 주변에서 찾는 것은, 20세기 후반기 자유지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재야사학자들의 가장 일반적인 인식이기도 했다.


여기서 2번째의 요동에 대해서, 역사님이 글을 퍼온 coo2.net에서는 제대로 언급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 그리고 첫번째 요동이 마치 9세기까지 쭉 계속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과연 하나의 지명이 그토록 오래도록 계속되었을까?

지명은 시대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나도 최초의 요라는 지명이 태행산맥 주변에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굳이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고구려 시기에 그곳이 요동이라는 견해에는 결코 찬동하지 않는다.
요라는 지명에 대해서 조사해보아라. 얼마나 다양한 곳을 요라고 하는지를.
여러 지명 가운데 시대별로 어느 곳이냐는 주변 상황등을 종합해서 해석해야 한다. 그런데 오직 하나의 지명만을 골라서 줄기차게 이곳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타당성을 가질 수 있을까.
고 임승국님의 견해를 소개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지명도 변한다. 시대에 따라 얼마든지 변한다.
하나의 고정된 시각으로 역사를 단정하며 보지 말라고 권고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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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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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북 벌 | 작성시간 05.04.25 사학계야 말로 고정된 시각에 사로잡혀있지 않습니까"? 김용만씨 ??? 당신도 당신믿음에 대한 아집을 깨기싫어 가능성을 죽이는 겁니까 재야학계는 그야말로 가능성에 도전하고 있는 과정아니겠습니까? 당신은 깡그리 무시하는 것이구요 당신스승이 임승국이라면 임승국이가 모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 할것이오?????
  • 작성자김용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5.04.25 북벌님의 권고를 받아들여 문장을 수정합니다. 임승국님이라고 하였습니다. 자. 재야사학이 가능성에 도전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하였는데, 역사님이 인용해온 자료에는 그 가능성을 스스로 닫아놓고 있지요. 요라는 지명을 하나에 고정시키고 있다는 말입니다.그것이 얼마나 오류인가를 지적하기 위해 위 글을 올린 것이죠.
  • 작성자김용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5.04.25 요라는 지명이 고정되었다고 보는 그 견해가 바로 재야사학을 스스로 닫히게 하는 것입니다. coo2에서 줄기차게 말하는 고정된 요가 아닌 재야사학의 다른 견해를 보라는 것이, 어찌하여 가능성을 죽이냐고 보지요. 가능성에 도전하려면 정말 신중하게 따져보아야 하지않겠습니까. 하나만 보지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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