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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는 언제 나왔을까?

작성자로완동| 작성시간08.06.11| 조회수445|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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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08.06.12 1. <삼국유사> 에 의하면, 단군신화는 위서가 아니라 <고기> 에 수록되었다고 생각되네요. <삼국유사> 에서 인용하는 <위서> 의 기록은 '신화' 급의 '이야기' 가 아니라 그저 '단군과 고조선이 있었다더라. 끝~' 수준의 단순 기록에 불과하니까요.
  •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08.06.12 분석 1(일부일처제 문제) 반론. 일부일처제가 고려 때까지는 대부분의 '평민' 가정에서 일상화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나 그것이 국왕에게까지 항상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간단한 반례로, '황조가' 를 지은 고구려 2대 왕 유리왕의 이야기를 언급하겠습니다. 그는 치희와 화희라는 두 여성을 아내로 두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지요. 일부다처제를 시행한 왕이 이미 고구려 극초반(2대)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구려 때까지는 일부일처제였으므로 적-서 문제를 언급할 수 없다고 단정할 순 없습니다.
  •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08.06.12 분석 2(천신의 자손 관념) 반론. 통치자를 천손의 후예로 여기는 관념이 고구려와 발해에만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틀립니다. 왜냐하면 고구려-발해왕의 천손관념은 '부여' 의 것을 사실상 베껴 오다시피 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고구려 추모왕의 천손강림신화는 부여 동명왕의 이야기와 그 플롯/구조가 거의 동일합니다. 따라서 고구려 이전부터 만주~한반도 북부 지역에는 지배자를 천신의 자손으로 여기는 관념이 존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08.06.12 분석 3(단군,해모수와 모두 연결되는 해부루의 존재) 정확히 주장하는 바를 모르겠지만, 아마 글쓴이는 주몽설화에 나오는 '해부루' 의 존재를 단군신화의 일부 버전에서 차용하였으므로 단군신화는 주몽설화보다 시대적으로 뒤쳐질 것이다... 라는 주장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논리는 정확히 거꾸로 하여 주몽설화가 단군신화보다 더 뒤쳐진다는 이야기로도 연결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이 논의는 무의미합니다. (게다가 해모수-해부루의 관계에 대해서는 양자가 '별 관계 없다' 는 식의 주몽설화도 있습니다.)
  •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08.06.12 분석 8(마늘은 전래식물임) 마늘이 서역에서 들어왔고, 그 이전에는 동아시아에 없었으리라는 지적에 동의합니다. 문제는 마늘 도입 이전에도 蒜 이라는 글자와 이 글자가 가리키는 식물이 있었다는 겁니다. 바로 '달래' 입니다. 예전에 딴지일보에서 어떤 분이 이 문제에 대해 글을 올린 바 있었는데, 그 내용 중에는 <본초강목> 에서는 '한인(장건)이 마늘을 들여오기 전에는 蒜 은 소산(달래)를 의미했는데, 마늘 도입 이후에 소산과 대산(마늘)을 구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실제 옥편을 찾아 보시면 蒜 을 '달래 산' 이라고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08.06.12 마늘과 달리 달래는 한반도~만주 지역의 산에서 충분히 많은 양이 야생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쑥처럼 말이죠.
  • 작성자 로완동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8.06.12 분석 2(천신의 자손 관념) 반론에 대하여 ..... 주몽전설에 관한 분석을 고구려토론방에 올리겠습니다 저의 관점이 추리와 추측에 의한 관점입니다만 .... 아니다라고 확실히 부정할수 있는 그런 사료 없습니까?
  • 답댓글 작성자 그리운길 작성시간08.06.16 사료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여집니다..신화와 전설은 학술적인 전달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의미전달에 치중한 걸로 아는데요...의미전달을 용이하기 위하여 어휘와 단어를 차용하고 도용한것으로 압니다..신화와 전설을 학술적인 면으로 끌어오기 위해선 많은 무리수가 필요합니다...많은 무리수들을 해석하는건 자유지만...의미까지 희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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