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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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08.06.12 분석 1(일부일처제 문제) 반론. 일부일처제가 고려 때까지는 대부분의 '평민' 가정에서 일상화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나 그것이 국왕에게까지 항상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간단한 반례로, '황조가' 를 지은 고구려 2대 왕 유리왕의 이야기를 언급하겠습니다. 그는 치희와 화희라는 두 여성을 아내로 두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지요. 일부다처제를 시행한 왕이 이미 고구려 극초반(2대)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구려 때까지는 일부일처제였으므로 적-서 문제를 언급할 수 없다고 단정할 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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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08.06.12 분석 3(단군,해모수와 모두 연결되는 해부루의 존재) 정확히 주장하는 바를 모르겠지만, 아마 글쓴이는 주몽설화에 나오는 '해부루' 의 존재를 단군신화의 일부 버전에서 차용하였으므로 단군신화는 주몽설화보다 시대적으로 뒤쳐질 것이다... 라는 주장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논리는 정확히 거꾸로 하여 주몽설화가 단군신화보다 더 뒤쳐진다는 이야기로도 연결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이 논의는 무의미합니다. (게다가 해모수-해부루의 관계에 대해서는 양자가 '별 관계 없다' 는 식의 주몽설화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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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주가효 작성시간08.06.12 분석 8(마늘은 전래식물임) 마늘이 서역에서 들어왔고, 그 이전에는 동아시아에 없었으리라는 지적에 동의합니다. 문제는 마늘 도입 이전에도 蒜 이라는 글자와 이 글자가 가리키는 식물이 있었다는 겁니다. 바로 '달래' 입니다. 예전에 딴지일보에서 어떤 분이 이 문제에 대해 글을 올린 바 있었는데, 그 내용 중에는 <본초강목> 에서는 '한인(장건)이 마늘을 들여오기 전에는 蒜 은 소산(달래)를 의미했는데, 마늘 도입 이후에 소산과 대산(마늘)을 구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실제 옥편을 찾아 보시면 蒜 을 '달래 산' 이라고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