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가점 하층문화에서 비파형동검문화으로 계승되었다는 설에 대한 어느문외한의 판단..그리고 부탁

작성자지나가다..|작성시간09.11.11|조회수537 목록 댓글 9

   하가점 하층문화나 비파형동검문화가 저의 주관심사가 아니어서 사실상 문외한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잇달아 올라온 고대의 별님의  관련글들을 보면서  문외한의 입장에서 간단한 문제제기와 함께  부탁들 드리고자 합니다.

 

 

1.  사실에 대한 취사선택은 왜곡 윤색에 불과하다.

   .=>쟁점 : 하가점 하층문화의 소멸과 비파형동검문화 성립전의 공백기에 대하여 답변해 주시길 바랍니다.

 

    고대의 별님이 언급한 하가점 하층문화와 비파형동검문화는  계승관계에 있음을 고조선이라는 국가조직체로 계승적 발전관계임을 염두에 두고 글을 작성하며 여러 연구자들의 견해를  부분적으로 취사 선택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오강원선생의 학위 논문 <비파형동검문화의 성립과 전개과정연구>중 5장 비파형동검문화의 성립과 그 배경입니다.  그런데 오강원 선생이  이 부분에서 언급한  하가점하층문화의 권역을 그대로 따와서 글에 올리면서  그동안 재환단고기류의 고조선의 강역과 일치함을 암시하였으나, 정작 5장 중 1절인 < 하가점하층문화의 소멸과 문화공동화>의 내용을 빼놓고  논외로 거들떠 보지도 않고 자기논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오강원선생 논문 5장에서는 비파형동검문화에 영향을 주었을 문화를 언급하였는데, 이를 고대의 별님은  위영자식 유적군을  제시하면서  심지어 위영자- 비파형동검문화라고 지도에까지  두문화를 짝지워  올리면서도 ,정작 성립의 배경이 되는 문화요소를 보여주는  시베리아 청동기 문화 (카라수크, 타가르전기, 안드로노보)를 언급조차 안하였으며 , 지역적으로 인근지역인  내몽고 중부의 주개구문화는 상문화와 연관성이 많아서인지 언급조자 안하고 있습니다. 

 

  고대의 별님이 인용한 논고들 중  가장 많이 인용한 오강원선생의 논문중 성립배경을 말하는 부분만 놓고 파악할수 있는 부분입니다.  즉,  발굴성과나 연구성과에 드러난 정보, 또는 사실을 놓고 취사선택 하는 것은 왜곡 윤색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2. 유물의 조합양상과 유구를 포괄적으로 평가하여야 한다

   => 하가점 하층문화와 비파형동검문화의 연관성및 계승성이 존재하나???  청동기와 동반하는 관련 유물인 토기를 중심으로 답변바랍니다.

 

    고고학에서 어느문화라는 용어를 사용할때는  한종류의 유물 즉 청동기나 몇가지 것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표식유물인 청동기나 철기와 함께  토기등 관련 유물 복합 양상을 판단하고 관련 유구를 비교분석하여 하나의 문화라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즉 유구로 주거지, 묘제, 방어시설등과 함께  이러한 유구에서 출토된 유물 청동기와 함께 토기등 제반 유물을 함께 검토하여야  어떤 문화의 연원이나 성립 전개과정을 검토할수 있는 것입니다. 청동기 하나만 놓고 말하는 연구자가 있다면  이는 절름발이에 불과한 것입니다.

 

   저는 고대의 별님의 글에서  하가점하층문화와 비파형동검문화의 계승관계, 즉 고조선의 계승관계? 에 대응할수 있는가는 의문을 댓글로 제시한 바 잇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다.

 

   대표적인 예로 우선 비파형동검은 그 형식적 요소에 있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시베리안 청동기문화의 문화적 요소의 영향을 받은것으로 통설은 설명하고 있으나  비파형동검의 조형이 되는 그 이전의 어떤 계승적인 위치의 동검을 상정할 만한 아무런 증거가 제시되고 있지 않다.(부분적인 문화요소로서  시베리아의 유엽형 동검이 일부 문화요소에 영향을 준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 물론 하가점 하층문화의 경우 나팔형동식이나 청동손칼도 존재하나 비파형동감에 영향을 준  근거는

부분적인 요소로나마 확인되 근거는 없다

 

  한 문화의 중요 문화요소인 토기를 보면 더욱 선명해 진다  하가점하층문화와 비파형동검문화의 표식적인 토기에 대한 사전만 보면 분명해 진다 .   가지고 잇는 도록에 있는 사진을 스캔하여 올리면   길게 말이 할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즉 하가점 하층문화의 대표적 토기는 채회토기라 불리워 진다. 이는 토기에 표면처리를 하여 색깔을 입혀 문양을 넣은 것을 말한다. 반면 비파형동검문화의 토기는 무문토기에 해당한다. 즉 적갈색토기로 표면처리가 슬림이나 채색의 흔은 전혀 없는 토기이다.

 

  또한 토기형태로 볼때  ,하가점 하층문화의 토기는 작, 권형태의 정등 다리가 세개달린 토기형태인 반면에 비파형청동기문화의 토기는 손잡이가 있는  미송리형토기 긴 목항하리의 형태인 정가와자형 호 , 이중구연토기등 모두 평저형의 적갈색토기이다(인터넷검색으로 사진이나 또는 스캔이 가능한 분들이 사진을 올려주시면 좋을듯 합니다.)

 

=> 참고사항 : 지도표시에 고대의 별님은  위영자 -비파형동검문화의 영역을 표시하고 있으나 위영자식 유적군은 지역적으로  요서지역 비파형동검문화와 일치할뿐 토기나 청동기등의 표식유물에서 어떤 상관 연관 계승관계가 보이지 않는다. 즉 토기의 경우 하북-섬서지역의 토기시문이나 형태등이 일치한다(주영강: 오강원선생 논문에서 재인용)

 

    이와같이  양 문화는  이미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연구자의 견해차이가 존재하나  하가점하층문화가 소멸한 후 3-400년간의 공백이 존재할 뿐만아니라 두문화의 표식유물도  양문화사이에는 상호 연관이나 계승되었던 어떤 문화요소를 현재까지의 발굴성과나 연구성과로는 찾아 볼수 없다는 점이다.  아니 더 강하게 표현하면,현재까지 드러난 발굴결과로 볼때, 두문화의 연관성이나 게승성은 없다고 할수 있다.

 

   위와같은 연구성과와 발굴성과에도  불구하고  고대의 별님은  자신이 언급한 인용논문에 수없이 등장하는 이런 사실을 외면한채 자신이 주장하는 시간과 공간속에  고조선을 상정하고 하가점 하층문화를 끼워 맞추다 보니 어쩔수 없이 하가점하층문화에서  비파형동검문화로 무리하게 논리전개시킬수 밖에 없었던 듯하다.

 

 

   3. 논리상의 헛점

 

  이것을 말할까 말까 잠시 생각했으나 하기로 한다 , 앞으로 이런 논리상의 헛점을  어떻게 바꾸어 낼지 궁금하기에 문제제기하기로 한다.

 

  논리적 헛점이나 사실 취사선택에 의한 윤색은  도처에 보이지만, 대표적인 예 몇가지만 제시하여 비판하고자 한다.

 

  A. 하가점상층문화에 대하여.

 

   고대의 별님의 하가점 상층문화의 설명이다.

   1) 하가점 상층문화의 주체는 산융족이다.

   2) 비파형동검 문화와 교류 한 비파형동검문화와 시기가 겁치는 문화이다.

   3) 하가점 상층문화의  상한은 기원전 11세기에서 9세기경이고  하한은 기원전 7세기이다. 여기서 최근연구자중에 상한 연대를 기원전 14세기로 보기도 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4) 제환공시기의 북벌시기와 하가점 상층문화의 하한시기와 일치한다.

 

   여기서 우선 하가점 상층문화 역시  하가점 하층문화의 소멸시기인 기원전 15세기로 부터 수백년간의 공백이 지나고 나서야  이지역에 들어와 문화를 일구어 냈다고 판단한듯하다. 최근 연구자의 견해를 소개하며  기원전 14세기까지 상한을 보는듯한 인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댓글도 이런 편년관에 대하여  수백년의 공백을 인정하지 않는 듯한 인상이다.

 

  여기서 발견되는 논리상의 허점은은 하가점 하층문화의 소멸시기가 기원전 15세기 란 점이다. 전조선 후조선을 말하면서  즉 고조선과 연관지워 하가점 하층문화를 고조선의 한 시대를 표현한 문화라고 주장하려면 하가점 하층문화가 적봉 오한기, 영성지역에서 소멸한 이유에 대하여 논리상 분명한 이유를 제시하여야 한다.

 

  만약  하가점하층문화가  하가점 상층문화에 의해 공백기가 거의 없이 대체당하였다고 고대의 별님이 주장하는 것이라면, 산융이  하가정 하층문화 권역에서 고조선을 밀어 내고 하가점 상층문화를 일으켰다는 새로한 학설이 등장하는 셈이다. 물론 고조선을 기원전 15세기에 상정할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또한  하가점 상층문화를 담당하였던 산융족이라면, 그래서 제환공의 북벌로 북방으로 달아났고 그래서 하가점 상층문화가 소멸되었다는 것 역시 그대로 이해하기에는 논리상 허점이 존재한다.

 

     중국 제후국의 북벌로 과연 하나의 문화가 소멸할수 있을까. ? 이지역에서  제환공의 북벌이 이지역까지 영역화를 구축한 전국시대의  부국강병책의 강역을 확장하는 정벌전과는 성격(연 진개의 고조선침입)이 달랐을 것이다. 또 연을 위한 구원 정벌전이라는 점에서  하가점 상층문화의 영역을 연이나 제나라의 영역화하는 정벌전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벌당하여 위축되었다 하여도, 그 지역에서 문화자체가 소멸할 수 있을까?  토벌후 퇴각하는데 그 지역을 버리고 북방으로 달아 났다. 그래서 소멸되었다 그렇다면 그 북방에라도 하가점 상층문화에 잔존 흔적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B 고대의 별님의 논리구조 :전조선은 하가점 하층문화, 후조선은 위영자유적군에 이어 통일된 세력을 형성한후 비파형동검문화의 주체가 된다는 논리에 대하여.

 

  이미 앞에서도 언급했지만.(이전 댓글포함)

 

 1) 하가점 하층문화는  늦어도 기원전 15세기경에 소멸한다 그 원인은 기후적 요인 몇가지로 추론되고 있다. 즉 새로운 문화로의 이행.  즉 계승을 보여 주는 증거는 찾기 보다  별개의 문화라는 증거가 현재까지 나타난 다수의 발굴결과가 증명해 주고 있다. 위영자식 유적군뿐만 아니라 비파형동검문화와  계승적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2)  하가점 하층문화는  위영자식 유적군이 지역상 겉치긴 하나 하가점 하층문화의 소멸후 공백기중 일부를 차지 할뿐 직접적으로 연관시킬만한 발굴결과는 현재까지 없다. 위영자식 유적군은   토기면에서 섬서, 산서북부의 것과  일치한다는 점, 특히 각각의 종족을 상징하는 기물이   이들 위영자식 유적군의 영역이외의 다른 다양한 지역의 것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중심종족을 상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오강원 앞논문 256P)

 

3)  전조선 후조선이라는 가설위에 비파형동검문화보다 선행하는 문화를 지역상의 위치만을 근거로 비파형동검문화와 연결시킬만한 아무런 증거없이,  아니 오히려 상관없다는 증거가 더많은 발굴결과하에서  고대의 별님의 논리전개는 고고학 자료를 인용하면서 오히려 고고학의 연구성과를  정반대로 사용한 결과라 판단할수 밖에 없다. 

 

    고대의 별님의 논리전개.  전조선의 성립과 소멸 그리고 후조선의 성립에 이르는 논리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문화주체하에   진행된 역사의 전개에 해당한다. 즉  다원적인 종족이나 문화주체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왕조나 지배구조의 변동은 있을수 있으나 하나의 문화 주체에 의해서  역사적으로 발전하며  문화를 창출 발전시켰다는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다.다시말해서 만세일계의 문화주체라는 논리인것이다. 모두 고조선이라는 이름하에 하나의 문화주체하에 이지역에 일어난 문화라는 논리인것이다.

 

   그러나 이미 비판한바와  같이  고대의 별님에 의해 ,전조선에 해당하는 하가점 하층문화, 과도기에 해당하는 위영자식 유적군, 후조선에 해당하는 비파형동검문화는 상호 연관성이나 계승성을 보여주는 중거를 찾을수 없는 정도이상으로 상관없다는 발굴결과가 더 많이  확인되고 있다는 점에서  고대의 별님의 논리는  가설로도 성립될수 없습니다.

 

   (참고1 : 요서 , 내몽고 동남부 , 외몽고 동북부에 해당하는 이지역은 고대의 영역에 있어  여러 종족들이 명멸해간 열린 지역이었다는 점이다 마치 이집트의 고립형구조가 아니라 메소포타미아의 개방적인 지역구조로 인하여,  매우 부침이 심한 지역이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그 근거는  기원후 나타난 이지역의 패자로 등장한 예만 보아도 알수 있다.  진한세력, 공손씨, 위-진세력, 모용선비, 고조선, 부여와 고구려, 발해, 말갈도 강자로 존재하였고  거란  여진도 존재하였다.  개인적으로 장수왕이후 요하를 경계로  방어선을 구축한 이유도 요서지역이 개활지였기에 유지하기가 어려웠던 이유일것이며 이것이 수당과의 전쟁에서도 요동지역이 방어선이 구축된 이유이기도 하다.)

 

  (참고2: 우리고대사에서의 국가형성과정연구의 인식틀과 중국측의 고국 방국 제국의 인식틀은 다릅니다. 얼핏보면 제국이 영역국가 즉 고대국가로 판단하는 듯 보이고 방국은  초기국가 성읍국가 소국등의 개념과 유사해 보일수 있습니다만  그 출발선상에 큰 차이점으로  이를 한국사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차이점은 신석기단계에서 부터 중국측은  <국> 즉 고국이란 표현을 사용합니다. 즉 신석기유적 후기부터 보이는 거대환호등의 방어 시설등을 근거로 하고 있기에 그러합니다.  한국사에서 이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중국측이 신석기단계를 고국단계로 초기국가적인 성격으로 파악하는 것은 요하문명과 관련없이 이미 다른 유적발굴 성과를 토대로  입론된 설이다)

 

 

     부탁드립니다.

 

1 고대사의 영광을 부르짓어 우리가 얻을 것이 무엇인지 한번쯤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중국측은 역사적으로 최소한  압록강을 경계선을 잡은 명나라 이후부터 한반도를 입술로 비유하고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렵다고 인식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런 한국이 동북삼성에 대하여 민족운동의 일환처럼  고대사의 영광을 부추긴다면   중국은 자연스럽게 고토회복을 연상할것입니다.

 

  그런 예는  우리가 당해본바 있는 일제의 남선 경영론입니다.  즉 한일합방이 고토회복이라는 합리화 논리로 남선경영설이 일본 집권 극우세력이 주창한바 있습니다..  

 

   허구로  고대사의 영광을 외치면 허망하게 지탄의 대상이 되고 여러 문제가 발생할수 밖에 없습니다.

 

  고대의 별님은 저들 중국측에서도 지 마음대로 하는데 왜 우리는 바른 말 못하는가 왜 스스로 내리려 하는가라고 반문한댓글도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사실과 다르게  사료를 취사선택하여 역사를 윤색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가 참담한 비극적 상황에 놓인것이라도 그것은 우리의 역사입니다. 영광된 역사만이 우리의 역사가 아니기에 고대의 별님의 스스로 깍아 내리려하는가 왜 그런 소리하면 안되는가라는반문에 답하였습니다.

 

  고대사의 영광을 외치는 일로 말미암아...

 

   중국측의 동북공정을 불러왔다고 확대해석을 할필요는 없으나 최소한 동북공정강화에  역할을 하였다는 것은 제고의 여지가 없을것입니다. 중국측에 가서 자료를 보고자 할때 거절당하고 갈수록 어려워 진다는 현실.  결국  그들이 판단이 선 다음에 제시하는 박물관속에 화석화된 유물 몇점만 접할수 밖에 없는 현실이 점 점 가속화 되고 있습니다.

 

  차분히, 요란한 언론플레이로 없이  고대사의 영광을 외쳐 고토회복이라는 국제분쟁의 씨앗을 제거하려는 중국측의 의심을 거두워 내는 노력속에  연구자들이 자료접근을 쉽게 접할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또한  연구자의 연구성과를  본인글에 그대로 인용구문없이 각주로만 처리하여 자신의 글에 올리는 것은 대단한 결례입니다. 더 나아가 연구자들이 말한 연구성과를  자신의 논리에 맟추기위해 사실중 일부만을 차용하고 나머지는 언급없이 덮어 버리는 형태로 취사선택을 하여  윤색된 글은  단순히 도용의 차원을 넘어 연구자들의 연구성과를 본래취지와 달리 오역하는 기망하는 행위입니다.

 

  즉 한 연구자가  A에서 나타난 결과로 인하여   B와   C씨로 연결할수는 없다 그러므로 결론은    D는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이를  A에서 B로 연결되고 그 사이에 C가 있으므로   D이다라는 식으로 다른사람에 의해 이렇게 해석되어 사용된다면  단순이 짝퉁, 유사품이 아니라 이름만 빌려와 전혀 다른 이상한 제품을 만들어 내는 행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아울러 고고학 논문을 접할때.  역사학하시는 분들 (이른바 재야사학분들 이외에 모든분들)이 흔히 보이는 모습이  결론이나 역사적 해석부분 일부만을 주목하고 그것만 검토하는 경우를 흔히 봅니다.

 

  그러나 고고학논문의 구조는  형식학적 분류및 편년의 기초위에  상호관계및 문화복원을 이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호관계및 문화복원은 인과론적인 역사학과는 달리 문화복원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과론적인 연상으로 오역,확대해석을 너무 많이 하고들 있습니다. 즉 형식학적 분류와 편년의 기초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체   상호관계 문화의 계승성  문화전반을 이해할수 없는 것입니다. 결론부분에 나온 유적의 해석부분만 일부 편취하는 것으로 과연 고고자료를 제데로 해석한것으로 판단할수 없는 것입니다. 고고학연구자들은  어느 연구자의 연구성과를 판단할때  가장 먼저 관련 발굴보고서의 자료부터 검토하는데, 문헌사하는 분들은  그 연구성과만을 참고활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더군요. 발굴보고의 자료를 검토하지 않고 고고학적인 분석 연구성과를 활용하는 것은  확대 오역할 소지가 많습니다. 그래서 비판받는 경우는 흔합니다.

 

   실제로 위 비판에서 언급된 위영자식 유적군이 왜 문화라 표현되지 못했는지 이해하려면 그 유적군이 보여주는 속성을 알아야 하는 경우도 하나의 예로 볼수 있습니다.  만연한 추론으로 같다 붙인다고 역사가 될수는 없는 것입니다.

 

   저 역시 글앞에 언급하였으나, 한국측에서 이들  비파형동검문화는 그래도  조금은 연구되었으나 자료접근의 어려움으로 아직도 걸음마단계로 판단하며  하가점 상하층문화 홍산문화 , 하층문화 서단산문화등 수많은 문화 , 또한 러시아영역의 문화까지 포함하면  아직 연구는 이제 막 시작되었으나 원할하지 못한단계입니다.

 

   고대의 별님이 정말 홍산문화나 하가점하층문화가 고조선의 실존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지금의 영남지역에 대한 고고학의 발굴성과가 나온만큼  연구가 무르익을때까지 기다려 보면서  좋은 논문과 자료를 찾는 차분한 논의를 해주길 바랍니다.

 

   그만한 자료가 축적된후 모른 사실적 자료를 검토하면서 자기논리를 전개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아직 이부분은 시론적 성격의 연구성과가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연구자들도 이부분에 전공을 두고 도전하려다가  자료의 한계 즉 발굴결과의 축적이 더 축척이 필요할 미성숙단계로 인하여  너무나 막막하여 포기하고 다른 영역으로 학위논문을 바꾸는 경우까지 있는 상태이니   고대의별님이  앞장서서 그런 자료를 찾아  우리역사의 여명기를  윤색된 억지논리가 아니라  풍요롭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섣불리 무리한 주장으로 많은 분들이  민족이라는 감정에  영향받아 안좋은 결과를 가질 이유가 있을까 합니다. 

   오늘날  미국에서  민족의식이 필요할까요.(미주가효님의 지적으로 단일민족의식으로 수정합니다.)

   민족의식은 역사적으로  참담한 독재권력이나 패권권력에 활용된 예가 많습니다.  히틀러의 게르만족의 위대함을 제창할때  고고학과 인류학의 연구성과를   취사선택 윤색왜곡하였던바, 지금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짧은 글한마디가 훗날 어떤 결과가 될지는 역사만이 알게 되겠죠..

 

   정말 참역사를 원한다면  여우처럼, 중국측의 자료를 치밀하게 찾아내는 수고로움, 차분한 작업이 필요할것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지나가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11.11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로 보기에는 좀 난색을 표합니다. 왜냐하면, 고대사의 영광을 외치는 분들이 가지는 의식은 영광의 재현을 복선으로 깔고 있는 극우파의 논리를 뒤받침할 소지는 충분하기에 비유한것입니다. 즉 일본제국주의의 경우 명치전후하여 임나일본부 남선경영론에 대하여 대두하였고, 이것이 일본이 제국주의로 접어 들면서 원용되어 더욱 정교하게 주창되었던 것과 같은 고대사의 영광을 부르짓는 논리역시 충분한 개연성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미주가효님이 말씀하시는 긍정적 면인 민족의식을 존중될 부분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야스페르츠 | 작성시간 09.11.11 미주가효 님// 성급한 일반화라 말할 정도로 증거가 부족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현재 중국의 모습도 그렇고, 최근에 접하게 된 마거릿 맥밀런의 <역사사용설명서>(아직 읽지는 못했습니다만...)을 통해서 보건대 전 세계 각지에서 민족주의가 강화되면서 거의 같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음은 분명한 듯 보입니다. 저 책을 읽고 나서 더 자세한 것은 따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미주가효 | 작성시간 09.11.11 야스페르츠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아니라고 하셨는데, 그럼 혹시 '민족주의(혹은 민족의식)의 순기능' 에 대해서는 찾아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민족주의의 역기능 사례만을 보시고선 민족주의에 대해 평하신다면 그건 '성급하다'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nationalism 이 흔히 말하는 '근대국가' 의 형성에 있어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해 본다면, 민족주의 자체를 '일반적' 으로 부정시하는 것이 온당한 평가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군요. 게다가 흔히 말하는 '민족주의의 부작용' 이라고 말하는 것의 상당수는 민족주의 자체만의 부작용이라기보다는 비민주국가의 부작용이거나 비민주문화의 부작용에 더 크게 의존하는 경우가
  • 답댓글 작성자미주가효 | 작성시간 09.11.11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민족주의에게 씌어진 부정적 멍에는 다분히 과장되었다는 생각입니다. (민족주의 역사에서 보면 독일의 것보다 딱히 더 약했다고 보기 힘든) 영국의 민족주의나 프랑스의 민족주의는 왜 독일의 것처럼 부정적인 방향으로 덜 발전했을까요? 왜 하필 오늘날에도 민주주의가 덜 발달된 나라의 민족주의가 유독 더 큰 문제를 일으킬까요? 이 문제에서 '민주주의' 를 빼고 생각할 수 있는지, 그 부정적 결과를 민족주의만의 함수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인지 한 번 살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작성자지나가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11.12 미주가효님의 지적에 대하여 민족의식이라는 부분을 단일, 순수, 혈통적 순수성을 강조하는 경우에 한정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