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에 대한 일차적인 검증을 위해서는 비파형동검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고고학적인 발굴결과에 따르면 비파형동검의 분포지는 요서지방을 비롯한 요동지방과 한반도 전역에 이른다. 그렇다면 비파형동검의 중심지는 어디인가? 그 중에서 초기 비파형동검의 중심지는 어디인가?
또한 비파형동검은 고조선의 유물이 확실한가?
질문사항 : 요서지방의 비파형동검은 고조선계통인가, 아닌가?
요동지방의 비파형동검은 고조선계통인가?
초기 비파형동검문화의 중심지는 어디인가?
요서지방 비파형동검문화는 후기까지도 고조선 계통이 아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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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1. 오강원 박사 : 비파형동검문화로 보아 古朝鮮은 초기에 朝陽을 중심으로한 遼西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보여진다. (“고조선 위치비정에 관한 연구사적 검토”/백산학보, 1996/7)
2. 송호정 교수 : 대릉하 유역〜조양 지역의 전형적 요령식동검(비파형동검문화)는 요서지역에 살던 유목적 성향의 산융족들이 남긴 문화이다. 요동지역에서는 기원전 8〜7세기 단계에 이르면 요령식동검과 미송리형 토기를 함께 부장하는 石棺墓․支石墓문화가 발전하는데, 이 문화는 예맥계통의 문화이다. (「한국 고대사 속의 고조선사」/푸른역사, 2003. 2월 ; “요하유역 고대문명의 변천과 주민집단”,「중국 동북지역 고고학 연구현황과 문제점」, 2008. 12월)
3. 복기대 박사 : 凌河文化(요서지방 비파형동검문화)는 한국 고대사의 첫 머리인 古朝鮮문화로 인식된다. (「요서지역의 청동기시대 문화연구」/백산자료원, 2002.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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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고대의 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9.11.26 죄송합니다.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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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신농 작성시간 09.11.25 비파형동검이 요서 지역, 그것도 하가점상층문화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닌 이상 비파형동검과 고조선의 관계 문제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이것에 이견이 존재할 수 있다면 국사교과서의 명시된 문장부터 흔들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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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지나가다.. 작성시간 09.11.26 한번쯤 집고 넘어갈 문제입니다. 개인적으로 송호정선생의 견해에서 지적되는 문화는 해당지역의 대표적인 문화양상이긴 하나 고조선 전체를 말하는 것인가에 대하여 수긍이 가지 않는 견해입니다. 그리고 산융족일거라는 요서지역 비파형동검 역시 명확하게 제시된 근거는 없어 보입니다. 즉 문헌에 산융족이 보이고 비파형동검문화가 보이니 그러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져 보입니다. 또한 요서지역과 요동지역의 비파형동검문화의 시기의 선후를 두어 설명하였는데 이는 산융의 동검문화가 고조선의 동검문화에 영향을 받았다는 견해가 되나 이부분에 대한 설명이 미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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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지나가다.. 작성시간 09.11.26 그리고 논외의 문제이지만, 부여와 모용씨, 부여와 동호? 중국측 연구자들도 이사람은 부여라하고 저사람은 선비라하고 아직 그 실체가 들어나지 않은 상태라 판단합니다. 비파형동검문화도 좀 더 발굴성과를 지켜봐야 할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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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海東成國 작성시간 09.11.26 사기 소진열전에서 연나라 문후(?)와 소진의 대담 중에서 연나라 동쪽에는 요둉과,조선이 있다고 들었지. 동호라는 말은 들은적이 없습니다(물론 요즘 통설은 동호와 산융이 있지만)산해경에서도 발해북쪽에 조선이 있다고 했고 회남자에서도 갈석을 넘으면 조선이라 했습니다. 비록 뭐 효문묘 동종이라던지,진개의 칩입,명문 발견때문에 이의견은 부정될수도 있겠지만 이를 근거로 저는 비파형동검은 조선의 것이라 봅니다. 예맥은 부여의 일파라 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