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주공격 너무 과장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작성자김용만|작성시간10.10.01|조회수863 목록 댓글 16

역사스페셜 프로그램에 많이 관여도 했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좀 꺼려지기는 합니다만,

 

이 프로그램은 중요한 문제를 지나치고 있습니다.

발해가 등주를 공격한 것이, 아주 대단한 사건이라고 생각하고, 첫 해외원정이라고 뻥치는데, 이건 좀 아니라고 봅니다.

백제가 먼저이니까, 첫 해외원정은 아닌 것이고.

 

더 중요한 문제는 발해가 왜 등주와 마도산을 공격한 후에, 철군을 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너무 소홀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대당강경책을 내건 무왕이 마도산 전투 이후부터는 당나라에 대해서 유화정책을 펼칩니다. 사신도 보내고.

그리고 무왕의 아들인 문왕은 철저하게 당나라와 친하게 지내는 정책, 다시 말해 대문예가 주장한 정책을 따릅니다.

왜 그럴까요?

 

발해가 당나라를 공격할 무렵에, 돌궐과 거란의 움직임을 주목하면 답이 쉽게 나옵니다.

등주를 공격할 때와, 마도산 전투 이후의 차이는 당나라가 거란에 대한 지배력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발해는 당나라가 거란을 제압하고, 직접적 위협이 될 상황이 되자 타협을 한 것입니다.

발해는 이때 당나라의 힘을 보고 적절하게 전쟁을 중지시켰습니다. 이것이 발해가 당나라와 대전쟁을 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이것은 아주 현명한 정책이었습니다. 발해는 이때 당나라로 부터 얻은 것과 얻지 못한 것이 분명하게 있었습니다. 당나라도 발해에 대해 강요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고, 양국은 이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국제정세를 유지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모르고, 무조건 우리가 쳐들어간 것만이 최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국제정세는 시시각각 변하는데, 현재 우리 스스로가 너무 고지식하게 쳐들어가고, 승리하고, 이것만을 과장해서 역사 해석을 치우치게 보는 것이 그것이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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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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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용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0.10.02 여기서 방증이란 말은 폭넓게 정황상 그럴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주는 자료들을 뜻으로 사용했습니다. 당시 수, 당 시기의 전쟁 상황에서 고구려가 발해만 일대의 수, 당의 해군기지를 사용했기에, 두 나라가 이에 대비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방증할 자료가 있다고 한 것이고, 이것을 설명하려면 역시 무지 길게 써야 하니까, 여기서는 더 언급하지 않는 것이지요.
  • 작성자구산(九山) | 작성시간 10.10.02 발해의 등주공격당시 장문휴장군이 이끄는 2만의 병력은 수군의 힘을 빌렸습니다.그런데 통설대로라면 당시 발해의 남경남해부는 함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2만의 병력을 당시의 병선으로 수송할려면 한반도를 한바퀴 돌아 서한만을 거쳐서 발해를 횡단하여야 하는데 이게 가능하다는 얘기일까요? 그리고 이 사건 이후로 이어지는 신라수군의 활동은 산동반도의 동북쪽 해안이 되는데 이때의 신라 성덕대왕은 당나라의 영해군사라는 직책을 하나더 갖게됩니다.당시 적극적으로 발해와 당나라 사이에 끼어든 신라의 활동을 면밀히 검토한다면 잘못된 발해와 신라의 영역이 밝혀질것입니다.이성적인 토론이 되길 제안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돌부처 | 작성시간 10.10.02 꼭 군대를 수도에서 출전시켜야 하는 법은 없잖아요. 역스를 인용한 본문에서 박작성을 언급하고 있는데...좀 착각하신듯.
  • 답댓글 작성자구산(九山) | 작성시간 10.10.03 남경 남해부는(南京南海府)는 발해의 수도가 아닙니다.수군병력을 총괄하는 중심이지요.때문에 함흥의 남경남해부설로는 등주공격이 불가능하다는 얘기지요.역스의 주장대로 박작성을 병력의 출발지로 지적하였다면 적어도 수백척의 함정을 무리없이 기항시키고 운항하기엔 현 호산장성인 박작성은 불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따라서 박작성의 위치를 지금의 호산장성으로 가설하는 문제도 재검토가 요구되는 사항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두을비 | 작성시간 10.10.22 발해의 남경 남해부가 한반도 함흥이라...
    근거가 무엇인가요?

    발해의 동경용원부가 종성이나 함흥이고, 이 함흥도 한반도 동해안의 함흥이 아닙니다.
    요사 지리지 동경도 해주 임명현은 발해 남경 남해부라 기록되어 있지요. 고구려 당시 사비성이 있는 지역이고 후한 시에는 안평 그리고 전한 시에는 낙랑군 해명현, 또 우거 조선 시에는 열구가 있는 곳이지요. 또 금 박색부이고 청 장하직예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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