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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역사정의남 작성시간10.10.01 제 생각은 와카타케루님과는 조금 다릅니다. 제가 책을 통해 접한 백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한강을 중심으로 한 작은나라 백제가 아닌, 산둥반도을 지배했던 백제(백개의 제국을 다스린 나라)입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너무 식민사관이나 서양식 역사고증으로 보려고만 하는 시각이 우리나라 고대부터 내려오는 역사서를 위서로 취급해버리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이 카페에서 만큼은 민족고유의 역사서(단군고사 등등)를 집중해 조명했으면 좋겠네요.
지금까지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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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와카타케루 작성시간10.10.02 글쎄요...ㅎㅎ 제국이 황제국이던 여러나라이던 백제의 濟자와는 한자가 다릅니다. 그리고 언급하신 역사서가 고대부터 내려오는게 아니라, 근대에 쓰여진 책을 고대의 것이라 우겨서 위서 취급 받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이 카페는 '민족고유의 역사서'를 조명하는 것을 금지하지는 않습니다만, 이미 충분히 반박 논지를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조명을 시도하면 반박 견해가 들어오기 때문에 '집중'까지는 어려워지지요.ㅎ 구리넷같은 곳에서는 집중이 가능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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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돌부처 작성시간10.10.02 선생님 말씀의 의도는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역스에서 등주와 마도산 전투를 다룬다면 그 이후 정책의 변화까지 언급해야 균형이 맞는 것이죠. 오로지 등주공격만 다뤘다는 것은 그 의도 뻔하죠. 바람직하지도 않고... 그런데 한편으로 등주공격 사건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문예의 주장처럼,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상대와의 전쟁에서 일시적으로 당을 위협하고 실제로도 큰 피해를 입혔으니 말입니다. 그 영향으로 당은 신라에 도움을 청해야 했고, 또한 그 후에 발해가 당과 화친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발해의 위협이 없는 상태였다면 그처럼 상당히 대등한 위치에서 수월하게 화친할 수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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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용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10.02 백제 해외원정은 그 성격을 어떻게 보느냐는 논란이 될 수 있으나, 남제서에 기록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해야 합니다. 또 하나 수양제가 고구려에 보낸 조서에서, 고구려가 수나라 해군 기지들을 습격한 일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역시 해외원정에 해당되지요. 이를 방증하는 증거도 있고, 또 발해의 등주 공격보다 먼저 고구려가 등주를 공격했다는 이야기가 등주 지방에서 전해오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된 전설도 많고. 그런데 맨날 장문휴 등주공격만을 강조하다 보니, 그 이전의 역사를 무시하고, 모르고 지나가고 있는 것이 아쉬울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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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와카타케루 작성시간10.10.02 수양제의 조서에 고구려가 거란의 무리와 함께 바다 수비병들을 죽였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게 확실히 주목받지 못하는것 같습니다. 신채호가 조선상고사에서 고구려가 거란 병사를 이끌고 산동 반도를 습격했다고 한 것과 연결되는 듯한 느낌입니다. 여하간 등주 공격을 최초의 '해외'원정이라며 강조하는 것이 아쉽다는 점에 동감입니다. 이전에도 외국 원정은 수차례 있었는데 단지 최초로 바다밖으로 나갔다고 해서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대규모 원정도 아니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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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와카타케루 작성시간10.10.02 흑수말갈이 고구려에 복속되어 있었다는 기록도 그렇고, 확실히 저도 고구려가 아무르강 유역에 대해서 직/간접적 지배를 했다고 봅니다. 발해보다는 정도가 약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더불어 발해 영역이 동북으로 광범위해서 고구려보다 조금 넓다는 것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고구려의 중심이였지만 발해는 중점적으로 경영하지 않은 요동,평양 지방은 한사군 전후부터 중국 선진 문화에 강하게 물든 곳으로써, 동굴속에서 살며 낮은 수준의 문화를 가지고 있던 흑수말갈인들보다 훨씬 월등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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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구산(九山) 작성시간10.10.02 발해의 등주공격당시 장문휴장군이 이끄는 2만의 병력은 수군의 힘을 빌렸습니다.그런데 통설대로라면 당시 발해의 남경남해부는 함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2만의 병력을 당시의 병선으로 수송할려면 한반도를 한바퀴 돌아 서한만을 거쳐서 발해를 횡단하여야 하는데 이게 가능하다는 얘기일까요? 그리고 이 사건 이후로 이어지는 신라수군의 활동은 산동반도의 동북쪽 해안이 되는데 이때의 신라 성덕대왕은 당나라의 영해군사라는 직책을 하나더 갖게됩니다.당시 적극적으로 발해와 당나라 사이에 끼어든 신라의 활동을 면밀히 검토한다면 잘못된 발해와 신라의 영역이 밝혀질것입니다.이성적인 토론이 되길 제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