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에 따른 동북아시아의 상고사 정리 (4)
(1) 배달국의 해체와 고조선의 건국
참고로
배달국의 명칭은 단순히 고조선의 전신에 해당하는 집단의 의미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배달국 외에는 마땅한 명칭이 없어서...
(3)편의 글에서 중국 문명은 해수면과 관련하여 점점 확장되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배달국 지역의 상황은 어떠했을까요?
한마디로 정리하면, 문명 전체가 정체상태였습니다.
왜냐하면 배달국에 소속된 부족들이 각지로 흩어져 나가면서 세력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여파로 국명도 고조선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게 된 이유는
지구의 기온이 낮아지면서 배달국보다 살기 좋은 지역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질병이 크게 감소하여 신성이 크게 약화되었고, 부족들에 대한 영향력도 감소합니다.
단군신화 속의 곰과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가 이 내용이 아닐까요?
호족이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웅족 만이 남아 (고)조선을 건국한 것!
국명이 주술, 신성의 의미가 내포하였으니 제사장을 따르는 부족들이 웅족일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고조선은 이전보다 국력이 크게 약화되었을 것입니다.
부족들이 떠나면서 군사력과 경제력이 한꺼번에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호족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먼 낯선 땅보다는 고향이나 고조선 인근에 터를 잡은 부족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아래 그림은 전국 시대 7웅 중에 해수면과 관련된 국가들을 나타낸 것입니다.
연, 제, 초…
여기서 가장 눈 여겨 봐야 할 지역이 연의 지역입니다.
이곳이 바로 한사군 중 3군이 있던 지역이며.
고구려와 후연이 이 지역을 두고 치열하게 다퉜던 지역이기 때문이다.
또한 수, 당 전쟁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2) 연의 영역
연의 영역은 한마디로 교통의 요충지입니다.
당시의 뱃길은 해안선을 따라 그려집니다.
즉, 고조선과 중국 대륙 사이를 연결하는 무역로였던 것입니다.
무역로가 발달해 있으므로 연나라는 상업이 발달했을 것이고
국토는 작지만 전국 7웅에 해당하는 경제 부국으로써 명성을 날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
연나라와 고조선은 초기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연나라의 영토의 대부분은 과거에 물에 잠겨 있었던 주인 없는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역과 관련하여 고조선과의 마찰은 피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연나라가 무역을 장악하면서 큰 돈을 벌고 있으니 고조선 입장에선 싫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조선이 먼저 군사를 일으킵니다.
하지만 전쟁의 결과는...
연나라의 진개(秦開)가 고조선을 대파해 버립니다.
연나라가 전쟁에 승리하였음에도 영역이 고조선의 안쪽까지 확장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조선은 연나라에게 있어 중요한 고객입니다.
자신들의 무역로를 지키기 위한 정도면 충분했을 것이고, 거점에 대한 성을 중점적으로 쌓았을 것입니다.
또한 군사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연나라는 북경의 북쪽과 서쪽에 집중해야만 합니다.
즉, 고조선과 친하게 지내야 했던 이유가 충분했던 것입니다.
1세기가 지나고 중국 대륙은 진시황에게 통일됩니다.
연 역시 진나라의 공격을 받고 멸망하게 되는데.
진시황이 연의 지배 세력들을 모두 제거해 버립니다.
이 때문에 연은 구심점을 잃었고, 연의 유민들은 위만 조선과 가까워집니다.
진시황이 죽고 한나라 유방에 의해 중국 대륙이 다시 재통일됩니다.
한나라는 통일 후 국가 체제가 정비되자 과거 연의 영역을 되찾으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연의 세력을 흡수했던 위만 조선과 갈등이 벌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한나라와 위만 조선의 전쟁은 처음에는 위만 조선에게 유리하게 진행됩니다.
해상로를 연의 유민들이 장악하고 있으니 한나라도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나라의 입장에서 가장 효과적인 군사적 대응책이라면 해상봉쇄 밖에 없습니다. .
무역로를 막고 수군으로 하여금 상선들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연의 유민의 일부는 피해가 점점 누적되자 위만 조선에게 불만이 생겼고 결국 한나라에 항복을 해 버립니다.
이후 위만 조선의 멸망되었고, 중요한 지역에 한 사군이 설치됩니다.
한사군의 위치는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3) 한사군에 대하여
1. 대방(帶方)과 낙랑(樂浪)
대방과 낙랑에 대한 지명은 지역이 어디에 있었나보다는
대방과 낙랑이 어떤 곳이었냐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방의 의미를 사전으로 찾아보면 대충 이런 그림이 그려집니다.
집마다 약재를 쌓아놓고, 처마끝에는 약첩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마을.
즉, 대방은 약재를 거래하는 경제 집단의 거점인 것입니다.
대방은 대 도시 근처라면 항상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지명 중에 아무 많이 등장하는 양지말이 있습니다.
햇볕이 잘 드는 마을이란 뜻인데요
양지말은 서울에도 있고, 부산에도 있고, 광주에도 있습니다.
대방은 마치 양지말과 같은 지명인 것입니다.
다만 연나라에서 대방은 좀 의미가 다릅니다.
앞선 게시글에서 약재로 요과 계를 말씀 드린 적이 있습니다.
연나라의 계는 국제적으로 약재를 취급하는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약재를 취급하는 사람들이 넓게 분포해 있으니 대방군으로 불릴 정도였던 것입니다.
낙랑 역시 대방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낙랑의 뜻은 살펴보면 노리개 등을 연상케 합니다.
즉, 노리개와 사치품 등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상업지였던 것입니다.
요즘도 상품을 만들어 파는 곳은 물가에 위치합니다.
팔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교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물가와 해안쪽에 낙랑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낙랑과 대방은 한몸처럼 붙어다닙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은 반드시 돈이 따릅니다.
사치품과 약재들은 돈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으니까요.
2. 임둔
산해관의 동쪽은 연나라에게 있어 중요한 무역로입니다.
임둔 지역이 빼앗기게 되면 무역로가 자칫 끊어질 수가 있습니다.
임둔 지역은 봉니가 출토 되었다는 것으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3. 진번
진번은 요동지역의 무역 거점입니다.
고조선은 물론 여러 부족들과 이곳에서 거래를 하였을 것입니다.
연나라에게 있어 진번 지역은 가장 먼 외곽의 국경지역입니다.
병사를 많이 주둔하고 싶어도 사정상 그럴 수가 없어 주변에 성을 많이 쌓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진과 번의 뜻이 진을 설치하여 파수를 본다라는 의미로 느껴집니다.
그런데 진번에 있던 세력은 한나라와 끝까지 저항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위만 조선의 도읍이 함락되자 진번 세력이 한반도 중남부로 이주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진번 세력이 굳이 한반도 지역으로 이주를 했을까?
그것은 연의 유민들이 한나라에 대해 동질성을 느낄 수가 없어서 그랬다고 판단합니다.
임둔 지역의 세력들은 당장 피해를 보니 한나라 편에 섰던 거지만
진번 지역의 세력들에겐 한나라보다는 위만 조선이 보다 가까웠을 것입니다.
4. 현도
현도에 대해서는 한나라와 고구려, 부여, 그리고 선비의 모용 세력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아
북경의 북쪽에 위치한 군사적 요충지였을 것입니다.
(4) 정리
1. 연나라의 영역의 의미
한반도 세력과 중국 대륙 세력의 분쟁의 씨앗이 됩니다.
2. 한사군에 대한 입장
저는 한반도가 당시 요동 지역에 비해 매우 낙후된 곳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금의 평양 근처가 그렇습니다.
대동강 유역은 선사시대부터 유적들이 발견되는 곳인데도 한동안 기록이 빠져 있었다는 점.
과거에 한반도에서 침수가 가장 심했던 곳이라는 점...
이런 등등의 이유가 복합된 것입니다.
군사 행동에는 반드시 경제적 이해관계가 수반됩니다.
요동지역이 서울이라면 한반도는 시골이나 다름이 없을텐데...
만약 한반도에 한사군이 설치되었다면 그 지역은 상당한 경제력을 지녀야 합니다.
아직 그런 자료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황해도 지역에 진번의 봉니가 나왔다는 내용을 보고도 아직 신뢰를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상
역사에 대해 무식한 비 전문가가 논란이 많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주제넘은 글을 적었습니다.
사실 증거를 대시오 하신다면 바로 ‘항복’ 백기를 들 것입니다.
그냥 역사를 공부하면서 이건 아닐까 하고 들었던 생각을 적었으니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바람,별,구름 작성시간 12.07.08 보통 사람들이 황제와 염제를 중국의 시조로만 알고 있으시죠...그래서 제대로 황제를 보지도 않으시죠...
하지만 황제와 염제가 애시당초 우리 시조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바로 황제 환웅으로 보셔야됩니다. 그리고 황제가 곰족입니다.
그러므로 곰족은 애시당초 중국에도 있었습니다. 항우의 초나라 역시 초나라를 다스리던 왕들 이름이 웅칠,,,등 꼭 앞에 곰 웅자가 들어갑니다. 음...애시당초 춘추오패는 단군조선을 받들던 제후국이었습니다. -
작성자바람,별,구름 작성시간 12.07.08 또 중국의 역사인식은 최초에 중화사상등 불과 90년 대까지만 하더라도 한족이 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90대 이후 나온 역사책들이 갑자기 중국한족을 그동안 오랑캐민족이라고 일컬었던 북방민족에 그 끈을 닿을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중국이 동북공정이네 서북공정의 요체입니다.
중국한족의 핏줄은 북방민족에서 출발했다는... -
작성자바람,별,구름 작성시간 12.07.08 그럼...나머지는 다음에...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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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준수 작성시간 12.07.09 바람,별,구름님 꼬리말 글 수칙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연속해서 3번까지만 가능하고 그 이상은 별도의 답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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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바람,별,구름 작성시간 12.07.09 넹...몰랐습니당...죄송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