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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그려보는 상고사 (4) 한사군에 대하여...

작성자카론| 작성시간12.06.13| 조회수1548| 댓글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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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김준수 작성시간12.06.14 결론이 어떻게 나든지 간에 구체적인 지도와 노고가 들어간 글이라 매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 아리라 작성시간12.06.15 평소 지도에 관심이 많은데 이번에도 지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번의 글에서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40미터 높았을 때의 지도를 하나라 시대와 연결했고, 상나라 시대는 20미터, 주나라 시대에는 5미터 높은 것으로 연결시켰었죠?
    그러나,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역사시대 이래로 기온의 변화폭은 그렇게 크지 않았고 현재보다 기온이 높았던 시기는 드물며 있다 하더라도 1도 정도 더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이 정도로 해수면이 지금보다 20미터 혹은 40미터씩 올라간다는 가정은 무리라고 봅니다.
    기원전 수백년 시기의 해수면 높이는 지금과 비슷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 작성자 아리라 작성시간12.06.16 중국의 해안선 변화에 대해서는 [중국 역사지리]에 잘 나와 있습니다.
    역사 이래 기온의 변화도도 나와 있습니다.

    중국 해안선의 변화는 기온의 변화도 영향이 있긴 하지만 님이 가정하신 것보다는 훨씬 적습니다.
    대신, 황하의 퇴적으로 인한 변화가 더 큽니다.
    근대까지 황하는 평균적으로 매년 38제곱킬로미터의 땅을 만들어냈습니다.
    1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중국 정주시의 동쪽 평원 부분은 거의 없었다고 가정할 수도 있습니다.
    산술적으로는 38만제곱킬로미터가 되고 평원부분의 면적과 거의 비슷합니다. 물론 이것은 가설이기 때문에 더 정확한 자료와 증거를 수집하기 전까지는 증명하기가 힘듭니다.
  • 작성자 아리라 작성시간12.06.15 상나라의 유적 분포가 마치 해수면이 40미터 높아진 것과 비슷하게 나타나는 이유가 기온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황하의 퇴적과 더 관련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고조선이나 연나라 시대만 해도 지금 중국의 천진시에서 서쪽으로 수십킬로미터까지는 바다였는데 이것은 아직 그때까지 황하로 인한 퇴적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황하 유로가 지금보다 훨씬 북쪽의 당산까지 이르렀기 때문에 점점 퇴적이 되는 단계이긴 했습니다만.
  • 작성자 카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2.06.16 저는 기후 변화에 대한 가정을 남극의 빙하가 녹았다는 것으로 시작을 하였습니다. 극 지방의 빙하가 다 녹으면 지금보다 50미터 가량 상승한다고 하여 해수면 변화를 알아보았고, 해수면이 50미터 상승했을때 해안가에 형성된 도시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당히 광범위하게 도시들이 나타납니다. 이는 해수면이 상승했음을 의미하는 단서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워낙 노가다 하는거라 당장은 보여드리기 힘들고... 하루 몇분이라도 시간내서 만들고는 있는데... 헤헤헤... 최대한 빨리... 작업이 완료되는 대로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 작성자 아리라 작성시간12.06.16 지난 5천년간의 기후변화 그래프 파일을 올려봅니다.
    책에도 나오는 것이지만 여기 파일은 까페지기께서 올리신 것입니다.

    그림을 보시면 역사시대로 볼 수 있는 기원전 2천년경 기온이 현재보다 2도~2.5도 정도 높은 것으로 나와있습니다만 맨 오른쪽의 현재 기온은 1940년대~1970년대의 저온기가 반영되어 있으므로 2000년대 이후로 수정하면 +1도 정도에 해당합니다.

    결국 역사시대의 최고온도 현재보다 1도 정도 높은 정도이니 이를 반영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남극의 기온변화가 온대지방과 다르게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만 그 특이성에 대해 확실히 검증하기 전에는 일반적인 기온변화를 따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 아리라 작성시간12.06.16 님이 주장하신 여러가지 가설은 매우 참신하며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속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 답댓글 작성자 카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2.06.17 네~~~ ㅂ!
  • 작성자 파사 작성시간12.06.16 발해 북안은 차치하고, 지금의 요하 하류 주변까지도 보라색으로 표시한 것은 연나라 영역이라 여기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아마도 그곳이 요동이라 단정하기 때문이라 추정되는데, 그 근거라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 답댓글 작성자 카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2.06.17 보라색 지역은 위키피아의 춘추전국시대의 지형 이미지를 보고 참고를 하였습니다. 그냥 모든 가능성을 두고 이 시대에 이런 일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을 해 봤던 것입니다. 사실 연의 영역에 대해 여러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형도를 살펴보니까. 눈에 들어오는 지역들이 있어서 일차로 정리해 본 것입니다. 오랜 시간 숙고를 한 것도 아니고 6개월 정도 공부한 것이 전부라서요. 사실 식견이 무척 짧습니다.
  • 작성자 바람,별,구름 작성시간12.07.08 음...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좀 더 크게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지금은 약간만 보여드리고 곧 책이 나올것이므로 그 책의 서문을 올려드리겠습니다.
    사마천의 <<사기>><오제본기>에 황제가 곰과 큰 곰, 이리, 늑대, 승냥이, 호랑이 여섯 동물을 훈련시켜 전쟁을 일으킨다고 나옵니다.
    그리고 후에 황제가 치우랑 싸우는 이야기가 나옵니다...치우(호랑이족)가 패하지요.
    <<단군신화>>와 <<사기>><오제본기>는 둘 다 호랑이족이 도망치거나 패하지요.
    즉,,,아...너무 두서없이 길어지겠네용...어쨌거나 사기도 중국역사도 공부하세용...
  • 작성자 바람,별,구름 작성시간12.07.08 에...결론은 고조선이 한반도에 있던 시기는 고조선이 망해가던 시기였다는 겁니다.
    음...지금 올린 글이 참으로 황당하게 들리시겠지만 곧 서문을 올리면 이렇게 이야기한 것이 이해가 될겁니다.
    ㅋ...그럼 다음에 아...그리고 제가 책을 쓴 건 아니고 아버지가 쓰신 책이라...곧 출판을 앞두고 있습니당
  • 작성자 바람,별,구름 작성시간12.07.08 보통 사람들이 황제와 염제를 중국의 시조로만 알고 있으시죠...그래서 제대로 황제를 보지도 않으시죠...
    하지만 황제와 염제가 애시당초 우리 시조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바로 황제 환웅으로 보셔야됩니다. 그리고 황제가 곰족입니다.
    그러므로 곰족은 애시당초 중국에도 있었습니다. 항우의 초나라 역시 초나라를 다스리던 왕들 이름이 웅칠,,,등 꼭 앞에 곰 웅자가 들어갑니다. 음...애시당초 춘추오패는 단군조선을 받들던 제후국이었습니다.
  • 작성자 바람,별,구름 작성시간12.07.08 또 중국의 역사인식은 최초에 중화사상등 불과 90년 대까지만 하더라도 한족이 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90대 이후 나온 역사책들이 갑자기 중국한족을 그동안 오랑캐민족이라고 일컬었던 북방민족에 그 끈을 닿을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중국이 동북공정이네 서북공정의 요체입니다.
    중국한족의 핏줄은 북방민족에서 출발했다는...
  • 작성자 바람,별,구름 작성시간12.07.08 그럼...나머지는 다음에...ㅋ
  • 작성자 김준수 작성시간12.07.09 바람,별,구름님 꼬리말 글 수칙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연속해서 3번까지만 가능하고 그 이상은 별도의 답글 부탁드립니다.
  • 작성자 바람,별,구름 작성시간12.07.09 넹...몰랐습니당...죄송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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