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사와 관련된 자료를 보면서 정말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료를 보고 배우고 이해를 하기 위해 나름대로 가정을 하고 구체적인 형태를 만들어 보려고 하지만...
한 발자국 나아가지도 못하고 애써 설정한 가정들이 처참하게 무너져 버리곤 합니다.
지식이 얕아서겠지요.
오늘의 글은 "자료를 보면서 느꼈던 감!" 혹은 "뭔가 손에 잡힐 것 같은 단서!"들을 바탕으로 적어본 것입니다.
---> 한쪽에 너무 몰입하여 오류를 범한 글입니다. 그저 재미삼아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창피하여 글을 지우려다가 잘못된 글도 배울게 있을 듯 싶어...)
(1) BC 300년경의 해수면은 + 8미터 내외 !
그동안 단편적인 해수면의 높이에 대한 내용을 말씀 드렸는데요.
특정 시기의 해수면 높이를 알게 되면 역사 연구에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시기의 해수면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았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일차적으로 중요한 시기는 BC 300년부터 BC 100년 경으로 생각합니다.
(고)조선의 존재와 멸망을 담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얻기가 힘듭니다.
특히, 동아시아 관련 자료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렸습니다.
로마시대의 아드리아 해 주변의 기록을 통해 당시 해수면에 대한 추측을 해 본 것입니다.
참고로, 유럽에서 해수면이 낮은 지역은 이탈리아 북동부 해안과 네델란드 지역입니다
네델란드 지역은 BC 300년경 기록이 없기 때문에 무시하였고, 이탈리아 북동부를 통해 추측을 해 보았습니다.
먼저, BC 300년경에 세워진 도시가 있습니다.
파도바가 있는데 베네치아(베니스) 인근 북동쪽의 도시입니다.
물이 잠겨 있는 땅에 마을이 생겼다는 것은 당시의 해수면을 추정하는데 어느 정도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 9 미터!
지금보다 9미터 가량 해수면이 높았을때 파도바 지역은 바닷가에 위치하게 됩니다.
이 지역은 바다 깊이가 매우 낮습니다.
파도바를 중심으로 해안가를 따라 선을 긋다보면 도시들이 그려집니다.
이런 지역에 대한 자세한 조사를 해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다음은 BC 100년경의 지역들로 라벤나와 리미니 지역입니다.
라벤나와 리미니는 역사적으로 아주 유명한 곳입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줄러어스 시이저)가 13군단을 이끌고 루비콘 강을 넘었던 곳이니까요.
정확히 말하면 라벤나 주둔 기지에서 배를 이용해 리미니 항구로 들어간 것입니다.
라벤나와 리미니 지역을 살펴보면 당시 해수면이 +7미터 내외로 추정이 됩니다.
BC 48년,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디라키움을 두고 공방전을 벌입니다.
디라키움은 현 알바니아의 항구도시 두러스이며 당시에는 섬이었습니다.
카이사르가 디라키움을 고립시키기 위해 주변 항구들을 장악하려고 하지만 폼페이우스에 의해 좌절이 됩니다.
이 시기의 항구들과 교전 지역의 자료를 보면 해수면을 보면 적어도 + 5이상이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현재의 해안선보다 상당히 내륙쪽으로 올라와 있으니까요.
그리고 아드리아 해는 조수간만의 차이가 91센티로 1미터가 채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지중해에 비해서는 꽤 높은 편입니다. 지중해 평균이 30센티가 채 되지 않으니까요.
해수면은 바닷물의 높고 낮았을때의 평균치를 의미하기 때문에 최고치를 가정하면...
BC 300년 경은 +9미터 ~ +8미터.
BC 100년 경은 +7미터 ~ +6미터.
---> 과학적인 사실로 기원전 2천년 경부터 해수면은 현재와 비슷하다고 이전 글에서도 말씀드렸는데요.
이를 무시하고 특정시기에 해수면이 높았다 라는 잘못된 논리를 적용했습니다.
현재의 해안선과 고대 해안선의 차이는 대부분 퇴적층이 쌓여 육지로 변한 것이 맞습니다.
특히 퇴적이 심한 곳이라면 더욱 그렇겠지요.
글에서 예를 들었던 부분은 퇴적이 심한 지역이라고 하네요.
(2) BC 300년 경의 서해안 해수면은 +12미터 내외
유럽지역의 해수면을 통해 BC 300년 경의 서해안의 해수면을 다시 정리를 보려고 합니다.
태평양은 대서양보다 약 20센티가 해수면이 높습니다.
그리고 서해안 지역읜 조수간만의 차이는 평균 4~8미터입니다.
물론 지역마다 다릅니다. 인천은 9미터가 넘으니까요.
BC 300년경 서해안의 해수면은 유럽지역의 추측한 해수면에 +4미터를 더한 수치가 될 것입니다.
즉 + 13미터 ~ + 12미터 정도는 되었을 것이라 추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해수면 높이를 통해 당시 지형과 진개의 확보한 지역에 대해 추측해 보았습니다.
당시 중국인들이 지칭한 동이(동호) 지역은 고조선 서쪽 변방이었을 것입니다.
조선 사람들은 자신들과 같은 비단옷을 입고 있으니 문명인이었지만
상곡 우북평 어양 요서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옷차림부터 달라 오랑캐로 무시했을 것입니다.
상곡에서 요서까지 대략 천리가 됩니다.
요서와 요동을 나누는 기준은 요원이 아닐까 추측을 해 봅니다.
요원의 뜻이 요의 근원이니까요.
그리고 현 행정 구역도 요원의 동쪽이 요동성이더군요.
북평은 해수면이 낮아지면서 생긴 땅으로 가장 북쪽의 평원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동이족이 살던 땅을 빼앗고 보니 북평의 윗쪽에 해당하니 우북평이라 이름을 짓게 됩니다.
우북평의 우는 전한시절에는 그 뜻이 오른쪽이 아닌 북쪽으로 사용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어양은 계지역과 가깝다고 하여 계를 중심으로 배치를 해보았습니다.
그림을 보시면 어양 땅에 대한 의미를 금방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위 그림은 다섯 개의 군을 비슷한 크기로 나눈 것에 불과합니다.
색칠한 부분은 사람이 살수 있는 지역만을 표시하였고...
강을 경계로 하였고...
도시가 들어서기 힘든 산악지역은 영역에서 제외하였습니다.
이상 해수면이 + 13미터 일때 BC 300년 경의 연나라와 고조선의 상황을 추정해 보았습니다.
---> 일단 해수면 상승이라는 가정이 잘못되었기에 해당 내용도 잘못된 것입니다.
다만, 어양 지역이 바다가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퇴적층에 대한 내용을 좀더 고려를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3) 해수면과 한반도 평양 지역의 관계
저는 한사군이 한반도 평양지역에 설치되었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해수면 때문입니다.
그림을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그림에서 보시다시피 평양 지역은 저지대입니다.
해수면이 +5미터 이하로 내려가기 전까지는 습지를 형성합니다.
습지라고 하더라도 작은 마을은 형성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살기에는 환경이 너무 열악합니다.
고조선이 멸망하고 고대 국가들이 한반도에 등장하지만 평양 지역에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물이 완전히 빠진 AD 400년 이전까지 불모지나 다름없었기 때문입니다.
패수와 열수에 대한 논란과 관련하여 대동강과 청천강이 거론되는데...
청천강 그림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강으로 보이시나요?
---> 한쪽에 뭔가 생각이 박히면 계속 연관을 지으려고 하는 습성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평양 지역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념은 AD 400년까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입니다.
그러다보니 과도하게 해수면에 집착을 보인 것 같습니다.
결론은 쓸데 없는 글을 읽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꾸벅
처음부터 다시 공부를 해야겠네요.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카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2.09.07 다시 정리를 간단히 하면, 해수면은 고대 해안선이 변천 과정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퇴적이 오랫동안 진행된 지역에서 해수면은 일종의 등고선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해안이 안정화되면 강 주위에 도시가 들어서게 됩니다. BC 300년 경의 발해만지역의 고대 해안선이 해수면 +13미터 높이와 비슷할 것 같다고 생각한 이유도 이런 정황들을 고려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우매하여 결과적으로 파사님께 피해를 드린 점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꾸벅
-
작성자파사 작성시간 12.09.07 피해 입은 것 없으니 사과받을 일도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나름대로는 <한서/지리지>의 어양군 옹노현과 요서군 양락.해양.신안평현의 짧은 기록과 <수경주>의 고하.포구수와 난수濡水 기록을 같이 검토해 보면 당시의 해안선은 현대보다 약간 북쪽에 있었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전 댓글 중에 일이 있어 마치지 못했는데,
님께서 비정한 요동군 지역은
<후한서/군국지>의 낙양에서부터 3600 리 거리라는 기준에서 보자면 훨씬 멀다고 보여지고
2100 리 염난수와 1250 리 대요수 그리고 소요수와 대량수가 대요수로 합쳐지고 당연히 서남쪽에서 흘러오는
백랑수도 찾을 수가 없으며 -
작성자파사 작성시간 12.09.07 결과적으로 소요수의 발원지인 요산도, 염난수.대요수.소요수.백랑수가 합쳐지며 이룬 요택도,요야도 있을 수 없는 지역입니다.
그 지역은 낙양에서 5000 리 지점에 있는 낙랑군 남쪽에 있는 漢水 남쪽의 삼한三韓 지역이며 한반도를 포함하는 한 지역의 북쪽 중심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만주원류고>`강역1`에서 말하는 `마한은 북쪽으로 낙랑과 접해 있었던 즉 관할하는 곳이 지금 개평.복주.영해이다.`와 `강역2 백제의 여러성`에서 말하는 `서북으로는 오늘날의 광녕.금주.의주로부터 남으로는 해주.개주에 걸쳐있으며, 동쪽으로는 조선의 황해.충청.전라 등의 도에서 끝나는데...`의 조선 황해.충청.전라 지역이며 사실은 조선이 -
작성자파사 작성시간 12.09.07 아니라 고려 혹은 조선 초기라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광녕.금주.의주 지역은 당연히 <남사>에 기록된 백제의 요서 진출지인 진평 혹은 백제군일 것이며,
이 또한 <요사/지리지> `중경도` 서문에 기록된 `...大定縣 白( )故地...`의 그 곳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양군 남쪽의 해안선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
해수면의 높이와 관련하여 여러 물길들의 최하류가 폭이 넓어 지금보다 해안선 혹은 강의 입해처가 북쪽으로 올랐을 것이라는 심증이 여러 사서 기록으로 간다는 것이며,
그 결과 지금의 란하 입해처는 바다로 불릴 정도였기 때문에
란하의 동쪽에는 북쪽에서부터 차례로 부여.고구려.낙랑.마한.백제가 위치해야 합니다. -
작성자산2사랑 작성시간 12.10.23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