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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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사 작성시간12.09.05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내용이라 판단됨.
즉 현대 지도에 표시된 물길들의 최하류 지역 일정 부분은 당연히 바다였다는 것이니,
더불어 고려해야 하는 사항으로써
<한서/지리지>의 요동군을 경유한다는 2100 리 염난수와 1250 리 대요수를 기억하고,
<후한서/군국지>의 낙양으로부터 요서.요동군까지 거리 3300 리.3600 리를 감안하며,
또 <수경주>의 대요수 서남쪽 지류인 백랑수가 우북평군에서 발원하여 동북류하여
요서군 유성현 북쪽을 지난 후
한 줄기는 남쪽으로 요서군 임유현을 지나 동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향하고,
나머지 줄기는 계속 동북류.동남류하여 요동군에 이르러 대요수에 합쳐진다는 점을
동시에 검토하면 -
작성자 파사 작성시간12.09.05 단재가 추정했듯이,
요동군 또한 요서군과 비슷한 면적으로 산해관 주위를 크게 벗아나지 아니한다는 말이 타당하며,
또한 연암의 <열하일기/산천기략>에
지금의 승덕 부근에 천주산.융업산.십삼산.의무려산.발해.요해.구려하 곧 구류하.대요수와
요택.혼하.태자하 등이 있다고 하니,
지금의 승덕을 지나는 란하가 <한/지>의 2100 리 염난수요,
승덕 조금 남쪽 반가구수고 부근이 염난수와 1250 리 대요수가 만나는 요동군이 될 수밖에 없으며,
이곳이 낙양으로부터 3600 리이며 요서군과는 300 리 차이 밖에 나지 않는 곳이고
지금의 반가구수고 이하 남쪽 란하 하류는 오래전부터 청 시기까지도 바다였다는 결론입니다. -
작성자 파사 작성시간12.09.05 그렇다면 요서군의 갈석산은 물론이고 청 시기 직예성 영평부 임유현에 있었던 산해관까지도,
당연히 지금의 란하 서쪽에 있어야 합니다.
이와같은 사실은 <한서>부터 <청사고>까지 일관되게 기록되었는데,
1860 년 경 이후 왜인들이 동북3성에 밀정을 보내 목측으로 측량하여 저들식의 지도를 제작하고
지명 일부를 동쪽으로 이동시켰습니다.
그 시작점이며 대표적인 것으로,
지금의 북경에서 동쪽으로 680 리 내에 있었던 직예성 소속의 영평부 내 산해관과 조양부.승덕부.적봉직예구와
지금의 란하 서쪽에 있었을 봉천성 금주부 내를 흐르는 한 시기 백랑수인 대릉하 또한
동북쪽으로 지들 꼴리는 대로 대략 옮긴 것입니다. -
작성자 파사 작성시간12.09.06 해안선 관련 부분은 조금 심하기는 했지만,
완전 소설이라는 고백은 더욱 더 우스운 이야기임.
해안선 관련 문제의 핵심은 란하 하류가 폭이 넒어 마치 바다와 같았다는 것입니다.
후조선 효종 시기 진주정사였던 인평대군의 <연도기행> 下 11월 9 일 기사에는 산해관 망해정에 올라
`...누 밖의 호탕한 물결은 원래 발해가 아니고, 九河가 둘러빠진 곳이다...`라고 했듯이 산해관에서 바라 본 바다가
바로 란하라는 사실입니다.
한편 님의 추정 지도에 잘못 표시된 것으로,
상곡이 서북쪽으로 너무 멀리 표시되었고,
우북평이 어양 동쪽으로 표시되어야 하며,
요서군이 란하 서쪽에만 있어야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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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카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2.09.07 제가 소설이라고 한 것은 기준(과학적 사실)을 잘못 잡아서 치명적인 헛점을 남겼기 때문이다. 해수면에 관심을 기울였던 이유는 고대 해안선과 해수면이 상당한 연관 관계를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파사님의 글을 여러 곳에서 보았는데요. 퇴적지와 해안선과 관련하여 좋은 글을 올리셨고, 개인적으로 상당 부분 공감을 하고 있으며,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글에 대해 바로 사과를 드려던 이유는 잘못 설정한 논리 때문에 자칫 파사님께 피해가 갈까 싶어 그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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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카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2.09.07 다시 정리를 간단히 하면, 해수면은 고대 해안선이 변천 과정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퇴적이 오랫동안 진행된 지역에서 해수면은 일종의 등고선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해안이 안정화되면 강 주위에 도시가 들어서게 됩니다. BC 300년 경의 발해만지역의 고대 해안선이 해수면 +13미터 높이와 비슷할 것 같다고 생각한 이유도 이런 정황들을 고려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우매하여 결과적으로 파사님께 피해를 드린 점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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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파사 작성시간12.09.07 피해 입은 것 없으니 사과받을 일도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나름대로는 <한서/지리지>의 어양군 옹노현과 요서군 양락.해양.신안평현의 짧은 기록과 <수경주>의 고하.포구수와 난수濡水 기록을 같이 검토해 보면 당시의 해안선은 현대보다 약간 북쪽에 있었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전 댓글 중에 일이 있어 마치지 못했는데,
님께서 비정한 요동군 지역은
<후한서/군국지>의 낙양에서부터 3600 리 거리라는 기준에서 보자면 훨씬 멀다고 보여지고
2100 리 염난수와 1250 리 대요수 그리고 소요수와 대량수가 대요수로 합쳐지고 당연히 서남쪽에서 흘러오는
백랑수도 찾을 수가 없으며 -
작성자 파사 작성시간12.09.07 결과적으로 소요수의 발원지인 요산도, 염난수.대요수.소요수.백랑수가 합쳐지며 이룬 요택도,요야도 있을 수 없는 지역입니다.
그 지역은 낙양에서 5000 리 지점에 있는 낙랑군 남쪽에 있는 漢水 남쪽의 삼한三韓 지역이며 한반도를 포함하는 한 지역의 북쪽 중심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만주원류고>`강역1`에서 말하는 `마한은 북쪽으로 낙랑과 접해 있었던 즉 관할하는 곳이 지금 개평.복주.영해이다.`와 `강역2 백제의 여러성`에서 말하는 `서북으로는 오늘날의 광녕.금주.의주로부터 남으로는 해주.개주에 걸쳐있으며, 동쪽으로는 조선의 황해.충청.전라 등의 도에서 끝나는데...`의 조선 황해.충청.전라 지역이며 사실은 조선이 -
작성자 파사 작성시간12.09.07 아니라 고려 혹은 조선 초기라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광녕.금주.의주 지역은 당연히 <남사>에 기록된 백제의 요서 진출지인 진평 혹은 백제군일 것이며,
이 또한 <요사/지리지> `중경도` 서문에 기록된 `...大定縣 白( )故地...`의 그 곳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양군 남쪽의 해안선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
해수면의 높이와 관련하여 여러 물길들의 최하류가 폭이 넓어 지금보다 해안선 혹은 강의 입해처가 북쪽으로 올랐을 것이라는 심증이 여러 사서 기록으로 간다는 것이며,
그 결과 지금의 란하 입해처는 바다로 불릴 정도였기 때문에
란하의 동쪽에는 북쪽에서부터 차례로 부여.고구려.낙랑.마한.백제가 위치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