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백제의 소해(小海)와 대해(大海)이야기

작성자자이수|작성시간13.07.02|조회수387 목록 댓글 1

소해(小海)는 중국과 가까운 서해안 또는 북쪽해안,  대해(大海)는 중국과 거리가 먼 남해안 또는 동해안.

한자의 소(小)는 <작다>라는 뜻도 있지만 거리상 <가깝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대(大)> 또한 크다라는 뜻도 있지만 거리상 <멀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여기서의 소해와 대해는 <작은바다> <큰바다>라는 의미보다는 <거리상 가깝다 멀다>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또한가지 가능성은 소와 대를 <작다, 크다>로 해석하여 패하를 <소해>, 남해를 <대해>로 볼수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는  패하를 <소해>, 남해를 <대해>로 비정하여 해석해 보았습니다.

 

 ***《구당서 본문》百濟國,本亦 扶餘之別種,嘗為馬韓故地,在京師東六千二百里,處大海之北,小海之南.東北至新羅,西海至越州,南渡海至倭國,北渡海至高麗

 

***백제국은 본래 부여의 별종이다. (이곳은) 일찍이 마한의 옛 땅이었다. (백제는) 경사(당나라 서울)에서 동쪽으로 6200리의 거리에 있다.대해(남해)의 북쪽이고 소해(패하)의 남쪽이다. 동북쪽으로 신라에 이르고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 월주에 이른다. 남쪽으로 바다를 건너 왜국에 이른다. 북쪽으로 바다(소해:패하)를 건너 고구려에 이른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때의 초기백제 위치

 

<國家東有樂浪 北有靺鞨>

 

●백제 나라의 동쪽(북쪽)에는 낙랑이 있고 북쪽(동쪽)에는 말갈이 있다.

방향을 각각 반대로 기술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말갈은 강원도 지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강원도는 옛부터 예족이라하여 말갈족이 도읍을 이루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광개토왕릉비에 나오는 말갈족이 바로 이 말갈족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十三年 春二月 王都老化爲男 五虎入城 王母薨 年六十一歲 夏五月 王謂臣下曰 國家東有樂浪 北有靺鞨 侵疆境 少有寧日 況今妖祥屢見 國母棄11)養 勢不自安 必將遷國 予昨出巡 觀漢水之南 土壤膏 宜都於彼 以圖久安之計 秋七月 就漢山下 立柵 移慰禮城民戶 八月 遣使馬韓 告遷都 遂定疆 北至浿河 南限熊川 西窮大海 東極走壤 九月 立城闕


13년(서기전 6) 봄 2월에 서울[王都]에서 늙은 할멈[老]이 남자로 변하였고, 다섯 마리의 범이 성안으로 들어왔다. 왕의 어머니가 죽었는데 나이가 61세였다. 여름 5월에 왕이 신하에게 말하였다.

"우리 나라의 동쪽(북쪽)에는 낙랑이 있고 북쪽(동쪽)에는 말갈이 있어 영토를 침략하므로 편안한 날이 적다. 하물며 이즈음 요망한 징조가 자주 나타나고 국모(國母)가 돌아가시니 형세가 스스로 편안할 수 없도다. 장차 꼭 도읍을 옮겨야 하겠다. 내가 어제 순행을 나가 한수(漢水)(한강) 남쪽을 보니 땅이 기름지므로 마땅히 그곳에 도읍을 정하여 길이 편안할 수 있는 계책을 도모하여야 하겠다."

 

온조왕은 처음에 한수이북에 도읍을 정하였으나 국모(소서노)가 돌아가시자 도읍을 한강이남으로 옮긴것으로 보입니다. 한산은 지금의 한강이북의 한양 정도의 위치라고 보여집니다.


가을 7월에 한산(漢山) 아래(한강 이남)로 나아가 목책을 세우고 위례성의 민가들을 옮겼다. 8월에 사신을 마한에 보내 도읍을 옮긴 것을 알리고 마침내 강역을 구획하여 정하였는데 북쪽으로는 패하(浿河)(예성강:대방)에 이르렀고, 남쪽으로는 웅천(熊川)(공주:마한)을 경계로 하였고, 서쪽으로는 큰 바다에 막혔고, 동쪽으로는 주양(走壤)(춘천:말갈족)에 이르렀다. 9월에 궁성과 대궐을 세웠다.

北史 列傳 (북사 열전) 百濟 (백제)기사


其國東極<新羅>, 北接<高句麗>,諸本脫[北接高]三字, 據《周書》卷四九《百濟傳》補.《隋書》作[北拒高麗]. 西南俱限大海, 處小海南, 東西四百五十里, 南北九百餘里. 其都曰<居拔城>, 亦曰<固麻城>. 其外更有五方: 中方曰<古沙城>, 東方曰<得安城>, 南方曰<久知下城>, 西方曰<刀先城>, 北方曰<熊津城>. 王姓<餘氏>, 號[於羅瑕], 百姓呼爲[ 吉之], <夏>言 王也. -하략-

 

《周書》[統]上有[方]字. 城之內外人庶及餘小城, 咸分 焉./$諸本脫[人]字,《周書》有[民]字,《通志》卷一九四《百濟傳》有[人]字. 今據《通志》補.


그 나라(백제)는 동쪽으로 '신라'와 경계를 이루고, 북쪽은 '고구려'에 접하고 서쪽과 남쪽은 큰 바다에 경계하니 소해(패하)의 남쪽에 위치한다. 동서로 사백오십리이고 남북이 구백여리이다. 그 도읍을 '거발성'이라 하는데 또한 '고마성'이라고 한다.   그 밖으로는 오방이 있는데, 중방을 '고사성' 동방을 '득안성' 남방을 '구지하성' 서방을 '도선성' 북방을 '웅진성'이라 한다. 왕의 성은 '여씨'이고 '어라하'라 부르는데 백성들은 '건길지'라 부른다. '하'나라 말로 왕과 같은 것이다. -하략-

 

북방을 웅진성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사비성으로 천도한 이후의 상황인 것으로 보입니다.


  

삼국사기 권제37 (잡지 제6)  지리/백제/백제 강역의 경계   

    백제(百濟)

《후한서(後漢書)》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삼한(三韓)은 무릇 78국이었는데, 백제(百濟)는 그 중의 한 나라였다.』

마한 54국 가야 12국 진한 12국 도합 78국으로 계산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사(北史)》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백제의 동쪽 끝은 신라이고, 서쪽과 남쪽은 모두 큰 바다를 한계로 하였으며, 북쪽은 한강(漢江)에 닿았다. 그 서울[都]은 거발성(居拔城)이라 하고, 또는 고마성(固麻城)이라고도 하며, 그 밖에 다시 5개 방향에 성(城)들이 있다.』

사비성으로 천도한 후의 이야기로 보입니다.

 


《통전(通典)》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백제는 남쪽으로 신라에 접하고, 북쪽으로 고구려[高麗]와 떨어져 있으며, 서쪽은 큰 바다를 한계로 하였다.』

《구당서(舊唐書)》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백제는 부여의 별종(別種)으로서, 동북(동남)쪽은 신라이고, 서쪽은 바다를 건너 월주(越州)에 이르고, 남쪽은 바다를 건너 왜(倭)에 이르며, 북쪽은 고구려[高麗]였다. 그 왕이 거처하는 곳에는 동·서의 두 성이 있었다.』

《신당서(新唐書)》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백제의 서쪽 경계는 월주이고, 남쪽은 왜인데, 모두 바다를 건너 있으며, 북쪽은 고구려[高麗]였다.』


  
百濟
後漢書云 『三韓凡七十八國 百濟是其一國焉』
후한서에 이르길 <삼한은 모두 78국이다. 백제는 이중 한 국가이다>

 
北史云 『百濟東極新羅 西南俱限大海 北際漢江 其都曰居拔城 又云固麻城 其外 更 有五方城』
북사에 이르길 <백제는 동쪽으로 신라와 접하고, 서남방향으로 큰바다와 경계를 이루며, 북쪽으로 한강이 만나고, 그 도읍은 거발성 또 고마성이라 전한다. 그외 다시 5개의 방향에 성이 있다.


通典云 『百濟南接新羅 北距高麗 西限大海』


***《통전의 원 기록》/選自【古籍十八種】/通典/邊防典凡十六卷/卷一百八十五 邊防一/東夷上/百濟

自晉以後,吞并諸國,據有馬韓故地.其國東西四百里,南北九百里,南接新羅,北拒高麗千餘里,西限大海,處小海之南.國西南海中有三島,出黃漆樹,似小榎樹而大.六月取汁,漆器物若黃金,其光奪目.  

舊唐書云 『百濟 扶餘之別種 東北新羅 西海至越州 南渡海至倭 北高麗 其王所居 有東西兩城』


***《구당서 본문》百濟國,本亦扶餘之別種,嘗為馬韓故地,在京師東六千二百里,處大海之北,小海之南.東北至新羅,西海至越州,南渡海至倭國,北渡海至高麗.


《삼국사기》新唐書云 『百濟西界越州 南倭 皆踰海 北高麗』

<원문>***百濟,扶餘別種也。直京師東六千里而贏,濱海之陽,西界越州,南倭,北高
麗,皆逾海乃至,其東,新羅也。王居東、西二城,  


 < 北史云 『百濟東極新羅 西南俱限大海 北際漢江 其都曰居拔城 又云固麻城 其外更有五方城』>

***其國東極新羅, 北接高句麗, [二一]西南俱限大海, 處小海南, 東西四百五十裏, 南北九百餘裏. 其都曰居拔城, 亦曰固麻城. 其外更有五方:中方曰古沙城, 東方曰得安城, 南方曰久知下城,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자이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7.03 "樂浪 南與三韓 分海,故 為之封畛,使島夷 不得北侵,而中外之防 峻矣."을
    "낙랑은 남으로 삼한과 더불어 바다로 나뉘었다(경계를 이루었다), 그런까닭에 그곳(바다)이 경계가 되니, 도이(일본)가 북으로 침범하지 못한다, 고로 중국외곽(국경) 방어가 튼튼하였다."라는 식으로 해석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여기서 分海 의 海 란 윗글의 <소해>를 가르키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듭니다. 소해를 <패하>라고 생각하고 해석하면 무리가 없어보입니다.
    예전엔 (수<하<해)를 지금은 (강<조금 큰강=소해<해() 이런 식으로 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예전에는 한수는 한강, 항하는 좀더 큰강, 대해는 바다... 이런식이 아날까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