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저의 뽕나무 이야기.

작성자카론|작성시간13.10.31|조회수830 목록 댓글 7

삼국지 위지동이지에 옥저의 세금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又使大加統責其租稅, 貊布·魚·鹽·海中食物,

 

대가들이 맥포, 생선, 소금, 바다먹거리등을 세금으로 거둬들였다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첫번째 품목인 맥포에 대해 설명을 드리려고 합니다.

 

맥포(貊布)가 무엇일까요?

 

맥(貊)을 사전에서 찾아봤더니 부여라고 되어 있더군요. 

이럴 때는 망설이지 말고 그냥 부여의 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부여인들이 입는 옷의 2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1. 흰색의 옷이다.

2. 비단 옷이다.

 

두가지 특징을 합치면 생사(누에고치 실)가 됩니다.

즉, 부여인들은 염색하지 않은 하얀색 비단 옷을 입은 것입니다.

 

맥포를 누에고치 실과 연결시킨 이유는 옥저(沃沮)라는 한자 때문입니다.

 

沃 : 기름지다.

沮 : 적히다.

 

기름지고 물에 흠뻑 적셔진 땅은 누에의 먹이에 해당하는 뽕나무 재배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누에는 25일 가량 뽕나무 잎을 먹으면서 자랍니다.

그리고 나방이 되기 위해 고치를 짓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누에고치입니다.

누에고치 하나의 무게는 2.5g 이므로 3Kg짜리 비단 한필을 만드려면 최소한 1200마리의 누에고치가 필요합니다.

여기에 누에씨를 얻기 위해 나방까지 키우는 녀석과,  중간에 죽는 녀석, 그리고 고치가 2.5g에 미치지 못하는 녀석도 있으므로 이를 감안하면 비단 한 필에 얻기 위해 키우는 누에의 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아야 할 것입니다.

참고로, 현재 누에씨 한통(2만마리)당 소요되는 뽕 잎의 양은 약 590kg 정도 됩니다. 

 

누에는 뽕잎의 질에 따라 생산량이 결정되고, 뽕잎이 부족해 굶기라도 하면 누에고치 농사는 바로 끝입니다.  

즉, 뽕나무에 의해 누에고치의 생산량이 결정된다는 의미입니다.  

 

좋은 뽕나무를 키우기 위해서는 땅이 기름져야 하고, 무엇보다도 물이 충분히 있어야만 합니다.

뽕나무는 잎이 넓은 활엽수이기 때문에 옥수수 농사의 4배, 벼 농사의 2배의 물이 필요한 작물입니다.

지금은 양수기가 있어서 산 중턱에서도 뽕나무를 키우지만 예전에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조선시대만 봐도 한강 잠실과 같이 강 옆 저지대에서만 키우는 특별한 작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북옥저에 대한 내용 중에 치구루(置溝婁)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北沃沮 一名 置溝婁

 

치구루는 성벽을 의미한다는 내용을 본적이 있는데요. 

저는 이것을 그냥 한자의 의미 그대로 해석을 합니다.

 

置溝婁 : 자주 도랑을 친다 = 자주 배수구를 만들다.  

 

뽕나무의 생태를 알면 이 말은 매우 친숙하게 들릴 것입니다.

뽕나무는 물이 많이 필요하지만 뿌리가 물에 잠기면 안됩니다.

그래서 배수가 잘 되게 깊게 도랑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세상일이 변화가 심하다는 의미로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사용하는데요.

뽕나무 밭이 물 바다가 되었다면 밭 주인의 심정은 이루 말로 표현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망했으니까요.  

 

 

또한 옥저와 관련하여 민며느리 제도가 있습니다.

10대의 여자아이를 데려가 신랑집에서 키운다는 조혼 풍속으로 설명을 하고 있는데요.

이를 양잠과 결부시키면 아주 쉽게 설명이 가능합니다.

 

누에고치를 생산하면 바로 실을 뽑아야 하는데...

누에고치의 실은 0.02mm에 불과해서 성인보다는 10대의 여자아이들이 훨씬 능숙하게 잘 합니다.  

인터넷으로 양잠이나 누에고치 등을 검색을 하면 흑백사진의 어린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옥저를 그림처럼 위치시키는 이유는 이 지역에 강이 복잡하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뽕나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고려한 것입니다. 

그리고 인근 지역에 있는 금주와 판금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금주는 비단이고, 판금은 비단 시장이므로 이곳의 경제가 비단과 직결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역사서에 고작 5천호에 불과한 옥저가 왜 단골로 등장할까요?   

경제적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조선 사람들은 비단옷을 입었습니다.  

부여인도 비단옷을 입었습니다.

고구려인도 비단옷을 입었습니다.

이를 보면 상당한 양의 비단이 생산되었을 것 같은데요.

 

또한 양잠은 노동집약적 산업입니다.

조선 시대때 양잠을 하던 곳에는 노비가 30명에서 60명 정도 뒀던 것 같은데요.   

이를 고려하면 옥저의 호당 인구는 생각보다 훨씬 큰 규모가 될 수도 있습니다.

농사도 지어야 하고...

뽕나무도 키워야 하고...

누에고치로 실도 뽑아야 하고...

베도 짜야 하고...

옷도 만들어야 하고...

 

삼국지 위지동이지에 따르면 고구려 놀고 먹는 사람들이 1만호라고 합니다.

삼국지는 270년부터 280년대 만들어진 것이므로 정설대로 한다면 평양은 아직 고구려 땅이 아닌 상태입니다. 

비단 한필로 만들 수 있는 옷은 2벌... 

놀고 먹는 부자들을 위해서 매년 생산되어야 하는 비단의 양만 해도 상당할 듯 싶은데...

북옥저로 알려져 있는 함경북도 지역은...

가용 농경지가 면적의 10% 이하인데다가 양잠을 할 수 있는 땅도 극히 제한적...

비단 한 필에 말 한필 가격과 같다는 내용도 있고...

조선시대 때에는 비단 1필의 가격은 쌀 5섬 정도라고 합니다.

고구려 시대때 비단 가격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모르지만 조선 시대와 비슷하다고 해도....

전량 수입해서 쓰기엔 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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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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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카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11.02 연해주와 동해안 일대를 옥저 문화권으로 보는 이유는 읍루에 대한 기록 때문일 것입니다. 논리 전개에 있어 책심 키워드가 옥저의 북쪽에 있는 읍루가 대해(큰 바다) 옆에 있다는 것이고, 지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곳은 연해주 외엔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옥저의 위치를 찾는 이유는 바로 비단이라는 특산품 때문입니다. 역사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경제적 요소를 고려한 것입니다. 양잠의 키워드에서 찾을 수 있는 내용과 옛 기록의 내용을 검토해 보니 일치하는 내용이 있었고, 양잠이 가능한 지역들을 색칠하다 보니 현재 가장 유력한 곳이 위 그림의 위치인 것입니다. (다만 아직은 해결해야 할 사항이 꽤 됩니다)
  • 작성자동명 | 작성시간 13.11.02 카론님의 글을 보자면 동명이 추구하는 생각과 비슷하기 때문에 별다른 의견 제시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옥저전에 보이는 맥포(貊布)를 가지고 뽕나무에서 추출한 양잠으로 생각하시는 것에 의견을 냅니다.
    후한서에는 ‘責其租稅貂布’라고 수록되어 있어 맥포(貊布)를 초포(貂布=貂皮, 담비가죽)의 오기로 보입니다.
    읍루나 동예에서 보이는 마포(麻布,삼베)는 삼 대마(大麻)·마(麻)라고도 하는 섬유 식물에서 추출한 직물입니다. 물론 동예에서는 누에를 이용한 양잠도 보입니다.
  • 작성자하균횽을내작품에 | 작성시간 13.11.12 옥저는 와지의 음차로 보여집니다. 숲속에 사는 사람들
  • 답댓글 작성자amur | 작성시간 15.01.20 동의합니다. 우즈벡.월지.와집.우전도 마찬가지로 봅니다
  • 작성자카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12.15 1년 전까지만 해도 한자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는데요. 부수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한자를 들여다 보니 마치 그림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한자는 의미를 알려주는 문자입니다. 여러 뜻이 있어서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헤아려 살펴보면 분명한 의미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음차에 대한 부분은 한자의 뜻이 이해가 되지 않고 모호했을 때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한자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된 경우라면 한자의 의미를 먼저 살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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