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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김용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9.03.03 해부루를 밀어낸 세력이 삼국유사에는 해모수로 나타납니다만, 이후 기록이 없습니다. 무관하다고 본 적은 없습니다. 동부여, 북부여 논란으로 이어지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대소이후 갈라진 낙씨왕이나, 갈사왕은 이미 부여를 떠난 것이고, 대소 이후 부여의 왕으로 처음 등장한 인물은 위구태입니다. 그 다음은 기록에 등장한 왕계를 표시한 것입니다. 마여집단에 정통성이 이어졌다는 이야기는 어떤 의미로 질문하신 것이지요? 신뢰할 수 있는 사료로만으로는 부여 왕계를 더 밝히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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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용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9.03.04 三國志卷30-魏書30-烏丸鮮卑東夷傳第30-夫餘 편에 다음 기사가 있습니다. 이 자료가 가장 기본적인 부여 자료입니다. 280년경에 삼국지가 쓰여진 만큼, 구태-백제설 보다 앞선 자료이기 때문에, 이 자료가 더 신빙성이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부여 왕계를 적은 것입니다. 백제가 부여 계승성을 내세우면서 혼동이 생긴 것입니다. 삼국지에서 부여는 단 1개의 나라로 등장합니다.
◉<夫餘>本屬<玄菟>. <漢>末, <公孫度>雄張海東, 威服外夷, <夫餘王><尉仇台>更屬<遼東>. 時<句麗>․<鮮卑>彊, <度>以<夫餘>在二虜之間, 妻以宗女. <尉仇台>死, <簡位居>立. 無適子, 有孽子<麻余>. <位居>死, 諸加共立<麻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