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댓글

뒤로

[Q&A 한국사 고대 1] -6. 부여의 임금들은 누가 있었을까?

작성자김용만| 작성시간18.06.11| 조회수240| 댓글 5

댓글 리스트

  • 작성자 적연 작성시간19.03.03 부여의 정통성이 해부루에 있으니 해부루를 밀어낸 세력이 그 지역에서 이어간 왕조는 부여와 무관하다고 보는겁니까? 그리고 대소이후 갈라진 세력중에 마여의 집단으로 부여의 정통성이 이어졌다고 보시는건가요?
  • 답댓글 작성자 김용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9.03.03 해부루를 밀어낸 세력이 삼국유사에는 해모수로 나타납니다만, 이후 기록이 없습니다. 무관하다고 본 적은 없습니다. 동부여, 북부여 논란으로 이어지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대소이후 갈라진 낙씨왕이나, 갈사왕은 이미 부여를 떠난 것이고, 대소 이후 부여의 왕으로 처음 등장한 인물은 위구태입니다. 그 다음은 기록에 등장한 왕계를 표시한 것입니다. 마여집단에 정통성이 이어졌다는 이야기는 어떤 의미로 질문하신 것이지요? 신뢰할 수 있는 사료로만으로는 부여 왕계를 더 밝히기 어렵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적연 작성시간19.03.04 김용만 마여집단은 위에서 말씀하신 구태로 시작되는 계보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공손탁의 딸과 결혼한 위구태가 대방의 옛땅에 백제를 세웠다는 그 구태라면 구태를 이었다는 마여는 백제왕으로 봐야하나요 부여왕으로 봐야하나요? 그리고 위구태에서 마여로 이어지는 족보는 어디에서 볼 수 있는지요? 그리고 후한과 협력한 구태의 부여는 어느 부여를 말하는 것지요?
  • 작성자 김용만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9.03.04 三國志卷30-魏書30-烏丸鮮卑東夷傳第30-夫餘 편에 다음 기사가 있습니다. 이 자료가 가장 기본적인 부여 자료입니다. 280년경에 삼국지가 쓰여진 만큼, 구태-백제설 보다 앞선 자료이기 때문에, 이 자료가 더 신빙성이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부여 왕계를 적은 것입니다. 백제가 부여 계승성을 내세우면서 혼동이 생긴 것입니다. 삼국지에서 부여는 단 1개의 나라로 등장합니다.
    ◉<夫餘>本屬<玄菟>. <漢>末, <公孫度>雄張海東, 威服外夷, <夫餘王><尉仇台>更屬<遼東>. 時<句麗>․<鮮卑>彊, <度>以<夫餘>在二虜之間, 妻以宗女. <尉仇台>死, <簡位居>立. 無適子, 有孽子<麻余>. <位居>死, 諸加共立<麻余> ---.
  • 답댓글 작성자 적연 작성시간19.03.04 감사합니다.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
카카오 이모티콘
사용할 수 있는 카페앱에서
댓글을 작성하시겠습니까?
이동시 작성중인 내용은 유지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