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御書 & Speech

승리의 경전 '어서'에서 배운다(법련 2015년 6월)92~111p 중에서

작성자로즈캐슬|작성시간15.06.08|조회수108 목록 댓글 2

민중은, 참된 행복 철학을 희구합니다.
모든 사람이 생명의 존엄성을 빛내면서, 대화의 힘으로 선(善)의 연대를
넓혀 조화롭게 공생하는 사회를 이룩하는, 새로운 운동을 마음속 깊이 바랍
니다.  창가학회(創價學會)는 '입정안국의 깃발'을 내걸고, 어디까지나 
민중의 행복과 세계 평화를 위해 현실사회를 바꾸는 데 도전하는 사명을 관철
합니다.  거기에 '인간을 위한 종교'의 진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불교의 근본정신이기도 합니다.  또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에게
직결하는 실천이라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창가 사제(師弟)의
혼입니다.  불교는 본디, 자기 혼자 깨달아서 만족하고 끝나는 종교가 아닙
니다.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행동하는' 실천이 있어야만, 참된 깨달음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석존은, 귀의(歸依)한 지 얼마 안 된 제자들에게 홍교(弘敎)를 권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이곳저곳 널리 돌아다녀라.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사람들의 안온을 위해, 세계 사람들과 공감하기 위해,
신들과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행복을 위해, 안락을 위해." (《율장대품(律藏
大品)》)  사람들과 괴로움을 함께 나누고 행동하고, 함께 행복하고 안온한 
인생을 확립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이룩하는 일이 바로 석존이 법을 넓히는 
가장 큰 목적이었습니다.

불교는, 출발할 때부터 '모든 사람의 행복'을 목표로 하는 '인간을 위한 종교'
였습니다.  법화경(法華經)에 "안온한 바가 많나이다. 모든 천(天) 인민(人民)
을 가엾게 여기시어 이롭게 하소서." (법화경 280쪽) 하고 씌어 있는 대로입니
다.  이 바람은 석존뿐 아니라 삼세시방(三世十方)의 모든 부처의 근본적인
서원(誓願)이자 바람입니다.  이 바람을 실현하는 '법', 즉 법화경을 설하고
넓히는 일이 부처가 이 세상에 출현하는 근본 목적이며 '출세(出世)의
본회(本懷)'입니다.  그리고 석존 멸후(滅後) 사람들의 고뇌와 혼란이 소용
돌이치는 말법 시대에, 니치렌대성인은 이 서원을 계승하여 모든 사람을 구제
하려고 법화경 행자로서 광선유포(廣宣流布)를 위해 감연히 일어서셨습
니다.  사람들의 행복과 안온을 바란다면, 현실사회를 변혁하는 데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를 즉 적광토(寂光土)로 바꾼다,
이것이 대성인이 말씀하신 '입정안국'의 본질입니다.
창가학회는, 대성인의 이러한 투쟁과 정신을 완벽하게 계승한 교단입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입정안국론>을 배독하며, 대성인의 민중구제 정신을
배우고, 창가의 인간주의 철학을 확인합시다.

대성인이 <입정안국론>을 집필하신 직접적인 동기는 '정가(正嘉)의 대지진'
입니다.  이 큰 재해(災害)가 일어나기 전부터 태풍이나 홍수로 인한 자연
재해, 심각한 기근과 역병이 유행하여 민중의 재화(災禍)가 끊이지 않았습
니다.  그런 와중에 1257년 8월, 가마쿠라 지방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이 어서에 "나 혼자 이 사실(事實)을 근심하며 흉억(胸臆)에 분비(憤悱)함이
로다" (어서 17쪽) 하고 씌어 있듯이, 대성인은 그때 고뇌하는 민중을 직접 
보고, 깊은 한탄과 슬픔을 함께 나눌 벗도 없어 답답하고 괴롭다고 말씀하셨
습니다. 대성인은 사회의 실태를 똑바로 바라보고 '어떻게든 민중을 구하고 
싶다' 그러려면 '민중을 불행에 빠뜨리는 일흉(一凶)을 뚜렷이 밝혀 근절해야
한다'고 깊이 결심하고, 여러 경전을 독파하여 그 원인과 해결책을 탐구하셨
습니다. 그리고 '생명 존엄' '인간 존엄'을 설하는 법화경을 부정하는 '방법
(謗法)'이 바로 세상을 혼란하게 하는 근본 원인이라고 결론짓고, 사회를 지탱
하는 버팀목으로 사람들 마음에 정법(正法)을 확립하는 수밖에 궁극적인 해결
책은 없다고 깊이 확신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진실을 <입정안국론>에 써,
그 당시 권력자에게 보내 충고하셨습니다. 
그래서 '국주간효(國主諫曉)의 서(書)' 라고도 합니다.

전쟁만큼 잔혹한 것은 없다, 전쟁만은 절대로 일으키면 안 된다,
이것이 대성인의 진심 어린 간효였습니다.  여기서 대성인은 힘차게 주장
합니다.  "그대 모름지기 일신의 안도를 생각한다면 우선 사표의 정밀을
기도해야 하느니라"  즉 자신의 안온을 바란다면, 먼저 자신을 둘러싼
사회의 평온을 기원해야 한다고 제시하셨습니다.  이 글월은 위정자를 간효
하는 글임과 동시에 민주주의 시대를 사는 현대에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실천해야 할 지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신의 안도' ㅡ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기 혼자서는 안온해질 수 없습니다.
인간이 안심하고 살아가려면, 자연환경도 사회환경도 안정되어야 하고 
평화로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일신의 안도'를 원한다면, 먼저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조그마한 자신을 초극(超克)하여 자신이 사는 사회
전체의 평온 즉 '사표의 정밀'을 확립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대성인이 '사표의 정밀'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한 나라의 안정'을
뛰어넘어서 '전 세계 평화'까지도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불법은 '생명 존엄'의 사상을 설합니다.
"목숨이라고 하는 것은 일신(一身) 제일(第一)의 진보(珍寶)이니"
"일일(一日)의 수명(壽命)은 삼천계(三千界)의 재물(財物)보다
더함이니" (어서 986쪽), "목숨이라고 하는 것은 일체(一切)의 재보(財寶)
중(中)에 제일의 재보로다." (어서 1596쪽)입니다.
무엇보다 '생명 존엄 사상'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를 구축해야 합니다.
법화경은, 한 사람의 생명에 내재된 가장 존귀한 부처의 생명을 찾아내는 경전
입니다.  그 가치 기준에 비추어 보면, 비록 법화경 이외의 사상이라도
'생명 존엄'의 가치를 부정하는 사상은 절대로 용인하지 않는다, 
이것이 참된 관용이자 자비의 정신입니다.

대성인이 이 어서에서 위정자에게 간효하는 내용은, 법화경 이외의 가르침을
모두 부정하라는 배타적인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생명 존엄'을 설한
법화경을 버리라는 배타적인 가르침을 '방치'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
니다.  그리고 '방법(謗法)에 대한 보시를 멈춘다'는 참된 문제 해결을 위한 
올바른 가치 선택을, 대화로 실현하려 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이 어서에서
대성인이 파절하신 '일흉'은, 사람들에게서 법화경 신앙을 빼앗은 호넨(法然)
의 염불신앙입니다.  즉 호넨은 생명 존엄의 대법(大法)인 법화경을 '사폐각포
(捨閉閣抛)' 하도록 가르쳤습니다.  실제로 당시 세상에 유포된 염불의 가르
침은, 스스로 노력하기를 포기하고 고뇌로 가득한 현실세계에서 도피해 결국
은 위대한 초월자(超越者)에게 의지하여 내세에 안락한 정토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이 가르침은 법화경 사상과 상반됩니다.
법화경은 자기 흉중(胸中)에 갖춰진 가장 존귀한 생명을 열어 나타내고
현실사회를 정화(淨化)하여, 평화롭고 행복한 낙토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고뇌가 소용돌이치는 말법 오탁(五濁)의 현실세계에서, 주체자는
어디까지나 인간 자신이라고 가르친 경전입니다.

덧붙여 논하면, 염불도 석존의 가르침 중 하나로서 고난에 찌든 사람을
상냥하게 위로해준다는 점에서,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일시적으로
도피처가 되고 안도감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가, 상대의 특수한
상황에 따라 그렇게 지도할 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특별한 기근에 대한 부분관이며 '소선(小善)'의 가르침입니다.
대성인은 극락왕생(極樂往生)의 가르침은 일시적으로 안심시키기 위한
방편인 "임시(臨時)의 말" (어서 359쪽)이며 그 말에 진실은 없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그에 비해 법화경은 전체관에 서서, 모든 사물의 근간에 관계되는 근본의
'대선(大善)'을 설합니다.  바꿔 말하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모든 사람에게
실제로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합니다.  '소선'은 '대선'에 위배하지 않는
한에서 '선'의 작용을 합니다.  그러나 부분관에 사로잡혀 전체관을 망실하고
근본의 '대선'에 위배하면, 그것은 이미 '선'이 아니라 오히려 '대선'에 위배
하는 '대악'이 되고 맙니다.  호넨의 전수염불(專修念佛)은 사람들의 능력과
자질(기<機>)만을 중요시하고 법화경을 배제한 것입니다.  대성인은
이 어서에서 위정자에게 그 악의 본질을 가르침과 동시에 참된 생명의 정도
(正道)를 제시하셨습니다.  즉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전체관에 선 참된
지혜를 바탕으로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하여 혼란한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안녕하고 행복한 사회를 실현하는 방법 이외에는 없습니다.
정법을 바로 세워 사바세계를 정화하고, 적광토의 국토를 이룩하는 것이
참된 입정안국을 향한 대도(大道)입니다.

많은 경전을 읽어 보니, 한결같이 방법을 중히 여긴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모두 정법의 문을 나와서 사법의 감옥에 깊이 들어가다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각자 나쁜 가르침의 밧줄에 걸리고 영구히
방법의 그물에 걸리다니.  몽롱하게 피오오른 안개 같은 이 미혹에 의해
한창 타오르는 저 화염지옥 바닥에 잠긴다. 어찌 근심하지 않겠는가.
어찌 괴롭지 않겠는가.  그대는 즉시 신앙의 마음을 고쳐서 속히 진정으로
성불에 이르게 하는 가르침인 유일한 선의 가르침에 귀의하여라. 그러면
삼계는 모두 불국이다.  불국이 어찌 쇠망하겠는가. 시방은 하나같이 보토
이다. 보토가 어찌 파괴되겠는가. 나라가 망하지 않고 국토가 파괴되지
않으면 몸은 안전하고 마음은 흔들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 말을 믿고 숭상해야 한다. (어서 32쪽 13행~17행, 통해)

대성인이 하신 '입정안국'의 싸움은, '만인성불'이라는 '근본선(根本善)'을
부정하는 '근본악(根本惡)'과 벌이는 투쟁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어서에서는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사법에 사로잡혀, 방법(謗法)에
흡수되지 않도록 한번 더 엄하게 경계하십니다.  대성인은 '사법의 옥'
'악교(惡敎)의 줄' '방교(謗敎)의 그물'이라는 표현을 쓰며 '감옥' '밧줄'
'그물'이라 할 수 있는 방법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어려운 일이라고 강조
하십니다.  '이 몽무의 미'는 현세에서 맞닥뜨리는 불법의 정사(正邪)에 대한
미혹을, 자욱하게 낀 안개에 비유한 것입니다. '저 성염의 바닥'은, 무간지옥
(無間地獄)에 빠졌을 때 느끼는 괴로움을 초열(焦熱)의 화염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대성인은 사람들에게, 이 불행의 족쇄로부터 해방하고 사회의
안온을 성취하기 위한 방법을 힘차게 가르칩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의 촌심'
의 변혁입니다.  근저(根底)에서부터 '일념(一念)'을 혁명하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신앙하는가. 그것은 '무엇을 근본으로 삼아 소중히 하고 존중하는가'
'어떠한 가치관을 갖는가'입니다.  '무엇을 위해'라는 근본 목적을, 올바르게
확립하는 일입니다.  즉 근저가 남을 배제하고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이기주의인지, 아니면 남의 불행 위에 자신의 행복을 구축하지 않겠
다며 자타 함께 행복을 바라는 자비인지.  초점은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의 변혁' '가치관의 전환'입니다.  실로 한 인간의 '인간혁명'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입정안국'은 실현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마음을 바꿔서
어떠한 이념을 바탕으로 삼아야 하는가.  대성인은 그것을 '실승(實乘)의
일선(一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승의 일선'은 법화경의 근본선을 
말하며, 모든 민중이 각각 자신이 갖춘 불성(佛性)을 열어 성불할 수 있다는
법리(法理)입니다.  초대 회장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 선생님은
"실승의 일선에 귀(歸)할지어다" 하는 글월에 엄연히 밑줄을 그으셨습니다.
'실승의 일선'을 근본으로 사는 것이, 인류의 숙명을 전환하는 확실한 
방도가 됩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입정안국'의 원리를 확인하겠습니다.
'입정'은 먼저, 한 인간이 마음의 차원에서 변혁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내재하는 '근본선'에 눈을 뜨고, 흉중에 법화경이 설하는 '인간 존경'
'생명 존엄'의 철리를 확립하여, 삶의 근본 철학으로 삼습니다.  이렇게
자각한 사람의 행동으로, 법화경의 철리는 사회를 지탱하고 움직이는 원리
로서 확립됩니다.  그리고 사회에 평화 정신이라는 기반을 구축하는 일이
'입정'의 핵심인 이상, 생명 존엄을 위해 평화를 위해 '뜻을 같이 하는' 사람
들이나 단체와 함께 일어서는 것은 당연합니다.  결코 배타적인 것이 아닙
니다.  무엇보다 '입정'을 관철하는 한사람 한사람을 육성하는 일이 중요합
니다.  '입정'의 한 사람이 일어서면 주위를 선(善)의 방향으로, 평화의 방향
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명을 짊어진 사자왕(師子王)과 같은
인재를 배출하는 일이 '입정'입니다.  또 입정안국의 '국'이란 민중이 사는
국토를 말하고, 우리가 목표로 하는 안국(安國)이란 불국토를 실현하여
민중을 위해 안온한 국토를 건설하는 일을 말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좁은 의미의 국가체제를 의미하는 말이 아닙니다.  당연히 한 나라에
한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안국'의 본뜻은 국가주의의 반대이며, 세계로 넓게 열려 있습니다.
그와 함께 '안국'은 미래에도 열려 있습니다.  불국, 즉 부처의 국토는
'일염부제(一閻浮提)'에 미치고 영원히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불국'은
'생명 존엄' '인간 존경'이라는 불법 정신이 생생하게 맥동하는 사회이자,
자타 함께 행복을 실현하는 사상이 중요시되는 세계입니다.
이 단락에서 대성인은 우리가 사는 삼계(三界)의 국토가 불국토이자
보토(寶土)라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망하지도 또 파괴되지도 않는다고 가르
치셨습니다.  그 국토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의 재보'가 파괴되지 않는 한,
국토는 반드시 상주(常住)의 불국토가 됩니다.

우리 창가학회가 펼치는 민중 운동의 근본정신은 바로 '입정안국'입니다.
모든 어린이의 행복을 바라며, 교육 개혁을 위해 일어서신 마키구치 선생님은
'입정안국론'에 깊이 공감하며 니치렌불법(日蓮佛法)에 귀의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구하고 세상을 구하는 일 외에 종교의 사회적 존립의 의의는
없다'는 신조로, 사회에 열린 광선유포의 실천을 시작하셨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지금이 바로 국가 간효할 때가 아닌가' 하고 결연히
일어 서시고, 그 결과 군정부에 의해 투옥되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민중의
행복을 위해 싸우다 순교하셨습니다.  제2대 회장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선생님은 이러한 권력의 마성과 벌이는 투쟁을 각오하고, 광선유포와 학회
재건을 맹세하며 전쟁으로 허허벌판이 된 땅에 홀로 서셨습니다.
내(이케다 선생님) 나이 열아홉, 가마타의 좌담회에서 운명적으로 은사를
만났을 때, 은사께서 강의하신 내용도 <입정안국론>이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비참과 불행을 없애고 싶습니다!"
그 사자후는 지금도 가슴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삼대(三代) 사제(師弟)는 민중의 행복을 위해, 민중의 불행과 비참을 
없애기 위해 '입정안국'의 투쟁에 신명을 바쳤습니다.

생각해 보면 마키구치 선생님과 도다 선생님이 나눈 사제의 대화에서 탄생한
'창가'라는 이름은 '가치 창조'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가치'를 '창조'하는 것일까요.  단적으로 말하면, '민중의 안온을 위해
세계 평화를 위해 현실의 눈앞에서 괴로워하는 '한 사람'에게 묘법(妙法)
이라는 올바른 철학에 의거하며 살아가는 힘을 주는 일'이라고 확신합니다.
'한 사람'을 소중히 하고, 철저히 일대일 대화를 거듭하는 '창가'의 마음에
'입정'의 실천도, '안국'의 사명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아도
우리 창가학회가 바로 어본불 니치렌대성인이 펼치신 '입정안국'의 투쟁을,
현대에 올바르게 계승한 정통 교단이라고 소리 높여 선언하고자 합니다.

<입정안국론>은 민중을 구하고, 민중의 안온을 이루기 위한 '세계 평화의
일서'입니다.  또 잇따라 일어나는 재난에, 마음 아파하는 나그네와 주인이
주고받는 문답으로 해결책을 탐구하고 공유하는 '대화의 일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대화하는 과정에는 주인이 나그네의 불법에 대한 이해를 바로잡
음으로써, 나그네가 정색하고 화내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돌아가는
장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미소 지으며 제지하여 왈" (어서 24쪽)
하고 웃음 띤 얼굴로 나그네를 포용하고 순순히 타이릅니다.  이윽고 나그네
는 자세를 바로하고, 주인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주인의 주장을 이해했다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나그네의 극적인 변화를 보고 대성인은 "기쁘도다.
그대는 난실(蘭室)의 벗과 사귀어 마무(麻畝)의 성(性)으로 되었구나"
(어서 31쪽) 하고 말씀하십니다.  나그네가 주인의 덕에 감화되어
불법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바로잡았다고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입정안국론>의 마지막 단락에서 나그네는, 주인의 이야기를 진심
으로 이해하고 자신도 그렇게 실천하겠다고 맹세합니다. 이 단락에서 나그네
는 먼저, 정법을 비방하는 죄는 무겁고 파괴하는 죄는 깊다는 사실을 알았다
고 말합니다.  또 염불을 숭배한 이유는,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선달의 말,
즉 호넨 등의 말에 따랐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는 중대한 문제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현대도 마찬가지이지만 사람은 사물을 판단할 때,
때에 따라서는 자신의 눈으로 보는 데도, 신념이 아닌 주위의 평가나 평판으
로 좌우되기 쉽습니다.  더군다나 권위와 권력이 있는 사람의 의견이라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적 위치에 있는
인간의 책임, 아니 죄는 너무나도 무겁습니다.  대성인이 가책하시는 것도
그 점입니다.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불행에 빠뜨리는 사상 그 자체를,
더 나아가서는 그 사상을 퍼뜨리는 권위 있는 고승들을 악의 근원으로 엄하게
경계하셨습니다.  그와 더불어 민중도 현명하게 악을 간파해야 합니다.
속으면 불행합니다.

다시 어서로 돌아가, 나그네는 자비가 넘치는 주인의 가르침을 듣고 자신의
어리석은 마음을 열 수 있었으니 빨리 방법을 대치하고 지금의 사회를 안정
시켜, 금세와 내세의 안온을 기원하겠다고 결의합니다.  반대하던 사람도
내 편으로 바꾼다.  실로 그것은 대화이자 절복이며 좌담의 모범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나그네가 보인 분노와 의심에 대해 주인이 포용하듯이
하나하나 정중하게 풀어주면서 대화하는, 이른바 '혼과 혼의 촉발'이 있었
다는 점입니다.  마지막에 나그네는 이렇게 언명(言明)하면서 <안국론>을
끝맺습니다.  "다만 나만이 믿을 뿐만 아니라 또 타인의 잘못도 훈계(訓誡)
해 나가리라" 이 말씀은 나그네가, 주인과 마찬가지로 '입정안국'의 서원을
공유했다는 선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입정안국론>이 '주인의 말'이
아니라 '나그네의 맹세'로 끝나는 데에는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입정안국'을 위해 일어서는 계승자가, 계속해서 잇따라야
한다는 광선유포의 원리를 나타낸 것이 아닐까요.

나그네의 상쾌한 결의로 마무리되는 이 어서에서 배워야 할 점은,
한 대화의 마무리는 새로운 대화의 출발이라는 점입니다.
불법은 '대화의 힘'을 확신합니다.  당장은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더라도
상대방의 불성은 반드시 발동하고 있습니다.  "불종(佛種)은 연(緣)에
따라서 일어남이니 그 때문에 일승(一乘)을 설(說)하는 것이니라."
(어서 1467쪽)입니다.  부처의 생명을 열어 나타내려면, 묘법이라는
최고의 연으로 촉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묘법을 수지한 우리가, 진실을
말한 만큼 불연을 확대할 수 있습니다.  드디어 '대화의 봄'입니다.
한사람 한사람이 자신의 인간혁명에 과감하게 도전하여 사회의 변혁을 위해,
민중의 안온을 위해, 이 벗 저 벗에게 계속해서 대화의 조류를 불러일으키지
않겠습니가.  '입정안국'은 바로 '세계 평화'입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대화'라는 평화적인 수단으로, 선의 연대를 넓혀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이러한 대화는, 인간의 힘을 부흥시키는 싸움입니다.
우리 대화가 사회를 바꾸고, 세계를 잇고, 미래를 창조합니다.
우리 대화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생명의 가능성을 여는 소생의 힘이 있습니
다.  승리와 용기와 확신이 있습니다.  '인간을 믿는 힘'으로
민중의 시대를 구축하는 일이, 우리가 펼치는 입정안국의 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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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로즈캐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6.08 "까마귀가 검은 것도 백로가 흰 것도 선업(先業)이 강하게 물들어 있음이니라." (어서 959쪽)
    ㅡ "신심을 반대하는 사람을 절대로 원망하면 안 됩니다. 자신이 경애혁명하면 반드시 이해해 줍니다"라고.
    그 후 일가화락이 되어 벗을 위해, 광선유포를 위해 힘차게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
    ('한계의 벽을 부숴라!' 124p)

    아침의 어서강의에서 마음을 굳게 먹고 어서배독을 했습니다.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는 <어의구전>을,
    온몸에 긴장감이 도는 가운데 끝까지 읽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은 "감사합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지금은 신심의 기초를 다지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열심히 해 주세요. 감옥에 들어간 학회 간부가
  • 작성자로즈캐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6.08 결국 퇴전하게 된 것은, 어서를 마음에 새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이케다 선생님은 여자부에게 세심한 지도를 해 주셨습니다. 아침 일찍 나오느라 단정하지 못한
    저의 모습을 보고 "우리 편을 만드는 불법(佛法)입니다. 그런 모습을 하고 있으면 학회에 오고 싶지 않습니다.
    묘법의 딸은, 언제나 단정한 모습을 하는 것입니다."라고.
    ('한계의 벽을 부숴라!' 1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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