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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한 글

[윤승원 수필] 아내의 비빔밥

작성자윤승원|작성시간19.12.18|조회수194 목록 댓글 4

청양의 명주‘구기자 술’에 얽힌 사연

아내의 비빔밥

윤승원 청양 장평 출신, 전 대전수필문학회장,『문학관에서 만난 나의 수필』저자

필자의 말

    문학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독자들을 만난다. 그 중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독자가 있다. 내 고향 청양의 명주 ‘구기자 술’을 즐겨 마신다는 독자였다. 그 분은 “청양의 구지자 술을 매 분기 모임 때마다 한 번씩 말 통으로 찬조하여 회원들과 나누어 마시고 있다”고 한다. “회원 모두 ‘공식 술’로 인정하게 되었을 만큼 부담 없이 향기까지 음미하며 마시는 술”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 그 분이 이렇게 ‘구기자 술’을 예찬하고 즐겨 마신다고 밝힌 데는 이유가 있다. 나의 졸고 수필 <아내의 비빔밥>을 읽은 독자였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나의 보잘 것 없는 글을 읽어주는 독자가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필자는 감동한다. 추억의 졸고 수필 <아내의 비빔밥>을 소개하는 까닭이다. 

   

    자식들이 모두 성장하고 나면 집안 분위기가 썰렁해진다. 마치 절간처럼 고즈넉할 때도 많다. 집안 분위기가 가장 썰렁하다고 느낄 때는 아내와 단 둘이 밥을 먹을 때다.


   아내는 퇴근하는 남편을 위해 나름대로 성의껏 밥상을 준비한다. 그러나 평소 좋아하는 음식을 성의껏 차려 놓아도 입맛이 없을 때가 있다.


   이런 때는 아내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밥을 비벼 먹고 싶다’고 말한다. 밥을 비벼 먹는다는 것은 아내가 성의껏 차려놓은 반찬조차 관심이 없다는 표현일 수도 있다. 그래도 아내는 불만을 드러내지 않는다.


   육식을 즐기는 것보다 채식 위주로 밥을 비벼 먹는 일에는 언제나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동의해 주는 것이 변함없는 아내의 태도다.


   오늘 저녁도 그랬다. “밥을 비벼 볼까?”했더니, 아내는 대번에 “그러지요. 참기름과 고추장 가져올게요.”하면서 벌떡 일어났다. 

   밥사발을 큰 그릇에 부어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아내가 성급히 참기름 병을 가져다가 마개를 열더니 주르륵 아낌없이 붓는 것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비싸다고 하는 참기름을 아낌없이 듬뿍 따르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만, 그만해, 됐어! 에이, 너무 많이 따랐네!”라고 말하지만, 아내는 아랑곳하지 않고 “비빔밥은 뭐니 뭐니 해도 참기름 맛이지요.”라면서 좀 더 따랐다.


   그런데 참기름을 붓고 나서, 병 끝에 흘러내리는 기름 한 방울을 습관처럼 입으로 쪽~ 핥더니, 아내가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앗, 이건 참기름이 아니네. 어쩌면 좋아!”


   내가 냄새를 맡아 보았다.


   “뭐야? 이건 술이잖아, 고향에서 가져온 구기자 술!”


   아내는 그동안 변두리 공한지 자투리땅에 참깨 농사를 열심히 지었다. 그렇게 공들여 애지중지 농사지은 것을 손수 기름 짜다가 빈 소주병에 담아 놓았다. 그런데 얼마 전 고향 선산을 다녀오다가 남편이 좋아하는 술을 한 병 산 것이다.


   전국적으로 그 명성이 잘 알려진 내 고향 청양의 명주 ‘구기자주’를 사다가 먹다 남긴 것을 애주가인 남편이 또 찾을 것을 생각해서 빈 소주병에 보관해온 것이다.


   병 모양과 내용물의 색깔만 보고 순간적으로 착각한 것이다. 언뜻 보면 병 속의 액체가 술인지, 참기름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똑같았다. 


   더구나 나이 들어가면서 아내는 ‘돋보기를 쓰지 않고는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터다. 아뿔싸, 하지만 어쩌랴!


   아내는 당황한 기색으로 얼른 내 앞의 비빔밥 그릇을 치우고는 밥통의 밥을 새로 퍼다 놓아주었다. 이미 구기자 술이 흥건히 섞인 비빔밥은 밥상 아래로 내려졌다.


   상 아래로 내려놓은 밥이 아까워 못내 서운한 마음을 떨쳐버리기 어려웠지만, 아내는 내가 더 이상 손대지 않도록 치워버렸다.


   이윽고 밥을 맛있게 먹고 나서 나는 먼저 일어났다. 그리고는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드라마를 즐겨보는 아내와 다큐멘터리를 즐겨보는 나와는 취향이 달라 각기 다른 방에서 TV를 보았다.


   그리고는 한참 후에 차를 마시려고 주방으로 들어갔는데, 아내가 내가 먹다가 포기한 비빔밥을 다시 비벼 먹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적이 놀랐지만 내색치 못하고 아예 못 본 척 돌아서야만 했다.


   “그걸 왜 먹어?” 이런 말이 튀어 나오려고 하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아까워도 그렇지, 그걸 왜 먹어”또다시 책망하듯 내뱉고 싶었지만 그마저 참았다.


   남편이 가슴에서부터 일어나는 격정적인 말을 순간의 감정만으로 여과 없이 직격탄처럼 날리면 아내가 더욱 난처해 할 것만 같아서 차마 입 밖으론 내뱉지 못했다.


   아내에게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평소 술을 전혀 입에 대지 못한다. ‘밀밭에만 가도 얼굴이 붉어진다.’는 특이체질이다. 술은 체질상 못 먹지만, 음식은 가리지 않는다.

 ▲ 과거 경찰서에서 근무하던 어느 여름 날, 대전 서구의 한 재래시장 옷가게 앞을 지나다가 "아주 저렴합니다. 하나 사다가 사모님 드리세요."라는 옷장수 아줌마의 애교 넘치는 권유에 못이겨 꽃무늬 화사한 촌스러운(?) 브라우스를 한 장 사다 주었더니, 미대생 아들이 "어쩐 일이에요? 기념할 만한 일이네요"하면서 <생전 처음 아빠가 엄마에게 옷 선물>한 기념으로 스케치 해준 '50대 아내 모습'.


   과거 처녀 시절 아내를 내게 추천(?)해주신 분은 어머니다. 당시 아내는 내 고향(청양군 장평면) 농협에서 근무했는데, 동네 출장을 나와(장터거리 농협에 나오기 어려운 독거노인들을 위해 농협 직원이 저축통장을 만들어 갖다 드리곤 했다)홀로 계신 어머니와 함께 점심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반찬도 변변찮은 찬밥을 나눠 먹게 됐는데, 고추장을 넣어 썩썩 비벼 맛있게 먹는 모습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더란다.


   내가 군복무를 마치고 집에 오니까 어머니는 밥을 함께 먹었던 ‘농협 아가씨’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밥을 예쁘게 먹는 걸 보니까, 며느리 삼고 싶다”는 거였다.
 

열 손가락 모두 갈라져 반창고 붙이고 다니신 어머니,

돈도 세지 못하셨지요.

제가 휴가 오면 농협 아가씨 상냥하다고

침이 마르게 칭찬하셨는데, 그 아가씨와 이렇게 사는 것도 다

어머니 덕이 아니겠어요?

- 윤승원

샘터사 단행본<엄마에게 쓴 짧은 편지> - 샘터사에서는 ‘엄마에게 쓴 편지글(100자 이내)’을 책으로 펴냈다. 시골 총각 시절, 어머니가 추천해 주신 아가씨가 편지글에 등장한다.


  아내는 내게 시집와서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개의 어머니들이 그렇듯 아이들이 먹다 남긴 음식도 설거지 하듯 먹었고, 심지어 남편이 수저를 담갔던 국물도 버리지 않고 먹었다.


   아내는 그러면서 아무런 표현도 하지 않았다. 의당 자신의 ‘의무’인 것처럼 가족이 먹다 남긴 음식도 버리지 않고 먹어치웠다.


   오늘도 넉넉한 마음을 가진 남편이라면 아내가 먹기 전에 어떻게든 달게 먹었어야 할 비빔밥이었다. 비록 술이 흥건히 젖은 밥일망정 내가 먹어치웠어야 했다.


   내가 먹지 않으면 결국은 아내가 버리지 않고 먹게 된다는 다는 것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이 나의 불찰이었다. 그러고 보면 아내란 존재는 남편보다 위대하다.


   남편은 말로는 천하의 이치를 누구보다 많이 아는 것처럼 떠벌이지만, 정작 ‘밥상의 철학’만큼은 아내를 능가한다고 말할 수 없다.


  예나 지금이나 밥 한 톨 아까워 버리지 못하는 게 주부 마음이다. 더구나 남편이 밥사발을 통째로 부어놓은 ‘미완의 비빔밥’을 알뜰한 주부가 어찌 냉큼 버릴 수 있겠는가. 나는 아내의 얼굴색부터 살폈다.


  평소 술 한 방울 입에 대지 못하는 아내의 얼굴이 뜻하지 않은 알코올 성분의 비빔밥으로 인해 어떻게 변하는지, 걱정 반, 재미 반, 얄궂은 심정으로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   -《東山文學》2012년 가을호


필자의 글마당 독자 감상평

   김준태

   참기름과 구기자 술, 같은 소주병에 담으면 색깔만으로 금방 구별하기 힘들 텐데……

  비빔밥에 구기자 술을 듬뿍 부으셨다는 대목을 읽을 때는 만화의 한 장면처럼 웃었습니다. ㅎㅎㅎ

   그러다가 안 보이게 치워진 비빔밥을 사모님이 드시는 장면을 보곤 숙연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청양의 구지자술을 어떤 모임에 매 분기마다 한 번씩 말 통으로 찬조하여 회원들과 나누어 마시고 있습니다. 모든 분들이 ‘공식 술’로 인정하게 되었을 만큼 부담 없이 향기까지 음미하며 넘어가는 술이지요.

  동화처럼 엮어주신 글에 선생님의 배려와 사모님의 깊은 사랑이 묻어 나와서 기분 좋게 잘 읽었습니다.

윤승원

    김 선생님의 따뜻한 감상평에 필자인 제가 오히려 감동합니다. 한참 세월이 지난 ‘추억의 수필’인데, 이 세상 어딘가에서 저의 졸고를 꼼꼼히 읽어주시는 독자분이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특히 저의 고향인 청양의 명주 ‘구기자 술’을 즐겨 마신다니, 김 선생님의 감상평 한 대목에서 달콤한 구기자주 향이 코끝으로 전해져 옵니다. 귀한 감상평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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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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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낙암 (정구복) | 작성시간 19.12.18 고향의 이야기가 재미 있습니다. 그리고 사모님과의 인연도 어머님이 주선해주셨군요, 사모님의 짧은 편지도 큰 여운을 줍니다. 고향의 의미를 한번 글로 써주시면 어떨까요. 도시에서 태어난 자식, 손자들이 아버지 고향을 자신들의 고향으로 이끌수 있는 방도는 없을 까요. 한번 깊이 생각하여주셨으면 합니다. 아버지 한 촌을 더하면 할아버지가 아닌가요, 혹 고향의 의미에 대해 쓰신 글이 있으면 올려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윤승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12.19 감사합니다. 고향의 의미는 그동안 수필 형식으로 많이 써 왔습니다. 원고가 단행본 한 권 분량은 족히 넘을 것 같습니다. 주로 고향에 대한 이런저런 사연이지요. 도시에서 태어난 자식, 손자들이 아버지, 할아버지 고향을 자신의 뿌리이며 고향이라고 여길 만한 가치 있는 글을 쓰려면 논설문 보다는 쉽게 가슴에 와닿는 수필형식이 낫다는 생각입니다. 고향 선산을 자식, 손자와 함께 자주 찾고, 찾을 때마다 이런 저런 에피소드를 에세이 형식으로 쓴다면 신세대 자식, 손자들이 공감해 줄까요. 언제 기회가 닿으면 고향을 주제로 한 50여편의 수필 원고를 정리하여 책으로 출판하고 싶습니다. 가제 : <자랑스러운 내 고향 '청양'>
  • 작성자낙암 (정구복) | 작성시간 19.12.19 기대하겠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우리 국어사전의 고향에 대한 해석에도 새롭게 바뀌게 하는 것이 이상이지요, 생활일기 고향 나들이에 고향에 대한 개념을 간략히 추가 넣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윤승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9.12.19 존경하는 정 박사님이 늘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보시고 격려와 성원을 아끼지 않으시니 감사합니다. 올해 졸저나마 책을 한권 내느라 힘들었으니 출판 문제는 시간을 두고 연구해 보겠습니다. 고향이란 단일 주제로 책을 내는 것도 의미는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이뤄지겠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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