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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법회 도반님들께

작성자천장암|작성시간16.10.16|조회수295 목록 댓글 11

일요법회 도반님들께

 

제가 정식으로 천장사주지에 부임한 것은 2012920일입니다. 경허선사가 오래 머무시고 수월 혜월 만공스님이 출가 수행하신 명성에 비해 초라하고 쇠락한 천장암은 초하루 보름날에 아무도 찾지 않는 가난한 절이었습니다. 오지 않은 신도님들을 기다리다 못해 20133월부터 1달에 1번 일요법회를 시작하였습니다. 비록 1~2명 참석하는 일요법회였지만 우연히 천장사를 방문하게 될 불자님들에게 멍석을 펴놓는다는 심정으로 한 회도 거르지 않고 법회를 진행하였습니다. 20147월부터는 1달에 2번 일요법회를 진행하였고 2014914일 서울에서 오신 밸라거사님 부부가 참석하고부터는 매주 마다 일요법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오전에는 경전읽기와 사시불공을 올리고 점심공양후 오후에는 인근 사찰을 순례하였습니다. 서울에서 평택에서 안양에서 당진에서 홍성에서 서산에서 먼 길을 마다않고 참석해준 법우님들과 일요일 하루를 온전히 함께하는 새롭고 특별한 법회였습니다. ‘듣는 불교에서 말하는 불교로 변화를 꾀하고 평등하게 사부대중이 소통하는 불교를 지향하는 일요법회는 알게 모르게 지역불교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사찰순례 후 저녁공양을 하는 전통이 생겨나고 맛집순례 뿐만 아니라 찻집순례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초기경전의 담백한 가르침을 읽고 사유하며 대화와 토론으로 어느 사찰의 법회보다도 정겹고 웃음꽃 피어나는 법회를 진행하여 왔습니다.

 

천장사 일요법회에 참석하는 법우님들은 단순한 신도님들이 아닙니다. 나만을 위한 기도, 우리 가족을 위한 불교공부를 벗어나 불교가 어떻게 이웃에게 다가가야 하는지, 승가가 어떻게 중생의 귀의처가 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고 토론하는 수행자들이자 보살들입니다. 정법(正法)을 드러내어 사법(邪法)을 물리치고, 공적인 일을 위해서는 사사로운 이익을 포기 할 줄 아는 지혜를 갖춘 분들입니다. 여러분들과 같이 공부하고 순례를 떠나는 일이 언제나 자랑스러웠고 환희심이 났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다시 말씀드립니다. 2014년 송년회를 길상화보살님 집에서 하였고, 2015년 송년회는 해미 연화사에서 하였고, 해미읍성 연등축제에서 자원봉사, 깨달음의 길 걷기, 마을길 걷기, 지리산 순례, 밭 울력, 요양원 방문등 일년 일년 지내온 이야기를 하자면 오늘 하루종일 이야기하여도 모자랄 것입니다. 그러나 만남에는 헤어짐이 있는 법, 마냥 지속될 것 같았던 일요법회가 오늘 1016일로 마지막 법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초전법륜경을 읽고 괴로움, 깨달음의 단계, 고의 소멸이 갖는 의미, 2의 화살, 오취온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였습니다. 오후에는 신임주지 스님과 면담도 하였고 저의 은사스님과 일요법회 법우님들이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밸라거사님과 여래자보살님이 은사스님께 거침없이 말씀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가능하다면 이러한 허심탄회하고 활발발한 일요법회가 새로운 천장사 주지스님과 선방스님들과 더불어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우리가 가야할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길을 만들고 있으며, 각자가 순간순간 의도를 내어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을 뿐입니다. 홀로 가는 인생 길에서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끌어주는, 바라봐도 힘이 되는 도반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천장사를 떠나고 정들었던 도반님들과 헤어지는 아쉬움이 큽니다. 몇 주 전부터 선방스님들과 일요법회 불자님들 생각에 뒤척이며 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더구나 자발적으로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쫒겨가는 것이기에 착찹하고 우울하였습니다. 그러나 종단과 본사를 향한 쓴 소리를 여러분들도 옳다고 동의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저는 당당하게 여러분께 이별을 고합니다. 제가 천장사에 사는 동안 가장 보람된 일은 여러분을 만나 일요법회를 진행한 것입니다. 천장사 일요법회가 비록 인원이 작더라도 서산불교의 희망이자 한국불교의 희망임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제 우리는 영원한 도반이 되었는데 잠시 만나지 못하는 것이 무슨 걱정이 되겠습니까? 앞으로 기회가 되면 물과 우유가 섞이듯 저도 시시때때로 법회에 참석하겠습니다. 한번 맺어진 도반의 끈은 언제나 지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리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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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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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백화 | 작성시간 16.10.18 천장사를 오가는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셨고
    늘 약자편에 서시고 어려운 사람들을 품어주셨던 허정스님
    갑자기 스님을 뺏긴듯하여 마음이 무겁고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흐르지만
    이제 잠시 오롯이 스님만을 위한 수행의 시간을 가지시다가
    다시 저희곁으로 오셔서
    전보다 더 유익하고 행복한 법회시간을 만들어갈 날이 빨리 돌아왔으면 합니다..
    스님께서 어디에 계시든 늘 스님을 응원합니다..
    스님, 성불하십시요.. _()_
  • 작성자자작나무 | 작성시간 16.10.18 수원에 사는 사람인데, 고향이 당진이라서, 그리고 스님의 법문에 참여하려고 천장사에 가보려고 계획하고 있었는데, 떠나시는군요. 탐진치가 많이 남아 있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속에서 솟아오르는 것이 있네요...
    한국 불교가 더욱 성숙되고, 옳바름을 옳바름으로 받아들이는 밝은 지혜가 자리하기를 바래봅니다.
    스님께 좋은 일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스님을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 작성자문수행 | 작성시간 16.10.20 스님~~ 힘내세요~
    소리는 없지만 보이지도 않지만 스님을 응원하고 함께 실천하는 많은 불자들이 있습니다.
    불법은 법당도 총무원도 아닌 우리 마음속에 있는데 스님이 계시는 곳이 스님의 직책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억울함도 우울함도 스님 몫이 아닙니다.
    스님이 주지소임사시며 하셨던 일들은 총무원과 어른스님들을 위해 한 일이 아니셨으니
    그들의 반응은 그들의 몫이고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키워내지 못한 어리석음의 대가 또한 그들의 몫이 아닐까요
    그들이 뭐라던 스님이 함께 해주셨던 시간들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잡아 더 많은 인연들에게 널리 퍼질텐데요...

  • 작성자우리사랑 | 작성시간 16.10.20 일요법회팀 초창기 때부터 스님께서 권위라든가 선입견없이 대해주셔서 정말 인간적으로 저희 부부는 가정사 까지도 털어놓고 공유하면서 지낼수 있었습니다.
    물론 천장사에서 잠시 떠나신다 하여 달라지는건 없겠지만 이런일을 계기로 더크게 도약하는 기회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함께하는동안 고맙고 행복했습니다.......()()()
  • 작성자박상희 | 작성시간 16.10.20 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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