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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미술 감상

[불교회화]20. 시비 끊긴 그 자리에서 한 잔의 차 샘솟네 - 조주 종심

작성자무진당|작성시간15.05.27|조회수256 목록 댓글 5

조정육의 그림, 스님에 빠지다 20. 두경, 죽주거

 

20. 시비 끊긴 그 자리에서 한 잔의 차 샘솟네 - 조주 종심

두경, 죽주거(竹主居)」『남촌별서도, 15세기, 지본담채, 33.8×51cm, 중국 상해박물관

 

어디서 왔느냐?”

 

누워서 쉬고 있던 남전보원(南泉普願)선사가 물었다. 남전선사는 백장회해, 서당지장과 함께 마조도일 선사의 선맥을 이었다. 사미의 신분으로 남전 선사를 찾아온 조주종심(趙州從諗,778-897)이 대답했다.

 

서상원(瑞像院)에서 왔습니다.”

상서로운 모습(瑞像)은 보았느냐?”

상서로운 모습은 보지 못했습니다만 누워 계신 여래는 봅니다.”
너는 주인 있는 사미냐, 주인 없는 사미냐?”

주인 있는 사미입니다.”

누가 주인이냐?”

정월이라 아직도 날씨가 찹니다. 스승님께서는 존체를 보존하소서.”

 

조주선사는 18세가 되기 이전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남전 선사의 문하에 들었다. 처음 본 남전선사를 단박에 스승으로 만들어버린 조주선사의 근기는 이미 사미 시절부터 드러났다. 그가 스승에게 배운 가르침은 무엇이었을까.

 

조주선사가 남전선사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

평상시의 마음이 도(平常心是道)이다.”

닦아 나아가야 합니까?”

무엇이든 하려 들면 그대로 어긋나버린다.”

하려고 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 도를 알겠습니까?”

도는 알고 모르고에 속하지 않는다. 안다는 것은 헛된 지각(妄覺)이고 모른다는 것은 아무런 지각도 없는 것(無記)이다. 만약 의심할 것 없는 도를 진정으로 통달한다면 허공같이 툭 트여서 넓은 것이니, 어찌 애써 시비를 따지겠는가?”

 

조주선사는 이 말 끝에 깊은 뜻을 단박 깨닫고 마음이 달처럼 환해졌다. 조주선사는 남전선사의 문하에서 30년간 스승의 가르침을 받은 후 80여 세까지 제방을 편력했다. 조주선사가 행각한 지역은 산동, 하북, 강서, 호남, 호북, 절강, 안휘 등 7개성()에 이르렀다. 한반도의 몇 십 배에 달하는 광대한 범위였다. 행각하는 동안 만난 선지식은 선종의 주류였던 남악(南岳), 청원(靑原)계를 비롯하여 신수(神秀)의 북종계 선사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스승이라면 종파에 구애받지 않았다. 조주 선사가 항상 입버릇처럼 얘기했던 다음 이야기에서 그 뜻을 확인할 수 있다.

 

일곱 살 먹은 어린아이라도 나보다 나은 이는 내가 그에게 물을 것이요, 백 살 먹은 노인이라도 나보다 못한 이는 내가 그를 가르치리라.”

 

조주선사는 선이 번성하던 당나라 말, 임제의현(臨濟義玄, ?~866)선사와 더불어 중국 북방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선객이었다. 조주선사의 속성은 조()씨가 아니라 학()씨다. 산동성(山東省) 조주(曹州)의 학향(郝鄕) 출신인데 80세가 넘어 하북성(河北省) 조주(趙州)의 관음원(觀音院:柏林寺)에 머물렀기 때문에 조주(趙州)선사라 불렀다. 관음원에서 조주선사는 매우 검소하게 생활했다. 가사는 낡아 형체뿐이었다. 좌선하는 의자는 다리 하나가 부러져 타다 남은 나무를 끈으로 묶어 사용했다. 조주선사의 소문은 들은 하북의 실력자 연왕(燕王)과 조왕(趙王)이 귀의했고 스승으로 극진히 모셨다. 그러나 조주선사는 40년 동안 주지를 하고 120세에 입적할 때까지 시주에게 편지 한 통 보내는 일이 없었다.

 

조주선사의 선은 구순피선(口脣皮禪)’이다. ‘구순피입과 입술을 뜻하는 말로 훌륭한 법문을 일컫는다. 조주 선사의 유명한 ()’자 공안(公案)처럼 부드러운 입술로 일체의 사량분별을 뛰어넘어 상대의 어리석음을 일시에 타파하는 선이다. 참선의 최고 지침서로 평가받는 벽암록(碧巖錄)에는 조주선사의 공안이 100칙 중 12칙이나 된다.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의 공안 다음으로 가장 많다. 공안이란 선가(禪家)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의도적으로 의문의 말을 던져 깨달음으로 유도하는 일종의 교육적 과제다. 지식이나 상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직접 참구하여야 알 수 있는 화두(話頭). 공안은 유명한 조사들의 전기나 어록에서 발췌한다. 조주선사는 선법을 지도하는 방법이 워낙 탁월해 천하조주(天下趙州), 조주고불(趙州古佛)로 불리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무자화두(無字話頭)’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끽다거(喫茶去)’‘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등 조주선사의 공안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조주선사에게 물었다.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있다

있다면 왜 가죽부대 속에 들어 있습니까?”

그가 알면서도 짐짓 범했기 때문이다.”

다시 한 스님이 조주선사에게 물었다.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

위로는 모든 부처님에서 아래로는 개미까지 모두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개에게는 없습니까?”

그에게 업식의 성품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개는 불성이 없다(狗子無佛性)’는 무자화두다. 똑같은 질문에 전혀 다른 답이 나왔다. 마조선사가 얘기했듯 조작(造作), 시비(是非), 취사(取捨), 단상(斷常), 범성(凡聖)’을 버린 평상심에서만 찾을 수 있는 해답이다. 불성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혀 있는 한 결코 찾을 수 없는 화두가 무자화두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조주선사에게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다(庭前栢樹子).”

스님께서는 경계를 가지고 학인을 가르치지 마십시오.”

나는 경계를 가지고 학인을 가르치지 않는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다.”

 

지금 이 자리에 조주선사가 있었다면 뭐라고 대답했을까. 베란다의 선인장이나 책상 위의 컴퓨터라고 말했을 것이다. 조주선사의 가르침은 마조선사의 즉심시불(卽心是佛)이나 비심비불(非心非佛)처럼 특별하지 않다. 평상심이 도라는 뜻이다. 다만 우리가 분별심과 간택심에 사로 잡혀 그 진리를 깨닫지 못할 뿐이다.

 

조주선사가 새로 온 두 납자에게 물었다.

스님들은 여기에 와 본 적이 있는가?”

한 스님이 대답했다.

와 본 적이 없습니다.”
차나 마시게.”

또 한 사람에게 물었다.

여기에 와 본 적이 있는가?”

왔었습니다.”

차나 마시게.”

원주(院主)가 물었다.

스님께서는 와 보지 않았던 사람에게 차를 마시라고 하신 것은 그만두고라도, 무엇 때문에 왔던 사람도 차를 마시라고 하십니까.”

 

조주선사가 원주야!”하고 부르니 원주가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조주선사가 차나 마시게라고 했다. 이것이 끽다거라는 공안이다. 지금도 종로에는 끽다거란 찻집이 있다. 의정부에도 있고 고창에도 있고 진주에도 있다. 그 많은 끽다거에서 사람들은 차를 마시며 무슨 생각을 할까. 가끔씩 궁금하다. 그런 나를 봤다면 조주선사는 너도 한잔 마셔라, 라고 할 것이다. 이 밖에도 조주선사가 던진 화두는 수없이 많다. 이런 질문을 통해 조주선사는 형상과 경계, 진실과 거짓 등의 상대적인 인식분별을 타파하고자 했다. 조주선사의 가르침대로 공부하면 우리 같은 사람도 진짜 불성을 찾을 수 있을까? 이 물음에 조주선사가 자신 있게 대답한다.

 

금부처(金佛)는 용광로를 건너지 못하고, 나무부처(木佛)는 불을 건너지 못하며, 흙부처(泥佛)는 물을 건너지 못한다. 우리 안에 들어앉은 참부처(眞佛)야말로 불에 녹거나 타지 않고 물에 젖지 않는다. 보리, 열반, 진여, 불성 등은 모두 몸에 걸치는 옷으로써 그 또한 번뇌라고도 한다. 문제 삼지 않는다면 번뇌랄 것도 없는데 진실 된 도리가 어디에 성립하겠는가? 한 마음이 나지만 않으면 만법은 허물이 없으니, 다만 이치를 궁구하면서 이삼십년 앉아 있으라. 그래도 알지 못하거든 내 머리를 베어 가라.”

 

정갈한 집이다. 소박하지만 초라하지 않고 수수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집이다. 사랑채, 안채, 별채를 짓고 대나무 울타리를 두른 집은 거주하는 사람의 품격이 드러난다. 집 앞에는 도랑물이 흐르고 집 뒤에는 대나무 숲이 병풍을 이루었다. 바람 불어 대숲이 우수수 흔들리고 나면 비온 뒤 도랑물이 좔좔거리며 흘러간다. 솔향기에 취해 여름이 가면 단풍잎에 마음이 젖는 가을이 온다. 세상으로 향한 마음을 사립문 안으로 들이니 세상 밖 시끄러운 소리가 댓돌 위를 오르지 못한다. 세상에서 물러났으되 주인 찾는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적막하거나 고독하지 않다. 고요하되 적막하지 않고 한적하되 고독하지 않다. 삶의 깊숙한 곳에 마음을 내려놓으니 사람들 오고감을 문제 삼지 않는다. 찾아오는 사람과 마주 앉아 차 한 잔 마시는 것으로 족하다. 그저 차만 마실 뿐 옳고 그름을 시비하지 않으니 말 없는 말 속에 긍정하는 단어가 가득하다.

 

두경(杜瓊,1396-1474)이 그린 죽주거(竹主居)는 단아한 별서(別墅). 별서는 별저(別邸), 별업(別業), 별제(別第) 등으로도 부른다. 농장이나 들에 한적하게 따로 지은 별장(別莊)을 뜻한다. 별장이라고 하면 어쩐지 돈 냄새가 물씬 풍긴다. 서울의 고관대작들이 어쩌다 한 번씩 이용하기 위해 공기 좋고 물 맑은 산골에 지어 놓은 세컨드 하우스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죽주거는 다르다. 별서라는 제목을 붙였으되 과시하기 위한 세컨드 하우스의 거드름이 없다. 죽주거에는 목이 뻣뻣한 관리가 보이지 않는다. 얼굴에 기름기가 흐르는 장사치도 찾아볼 수 없다. 아귀다툼하는 세상에 간섭하는 대신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을 담백하게 살아가는 선비의 일상만이 짐작될 뿐이다. 선과 색채로 한 사람의 삶을 통째로 보여줄 수 있는 화가의 능력이 대단하다.

 

두경은 자가 용가(用嘉), 호는 동원경자(東原耕者), 녹관도인(鹿冠道人)으로 동원(東原)선생이라 불렸다. 어렸을 때 고아가 되었는데 학문에 대한 열정을 독서로 채웠다. 서화를 즐기고 시문을 잘 지었으며 그림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산수화와 인물화에서 이름을 얻었다. 동원(董源)과 왕몽(王夢)의 화풍을 따른 그의 작품은 색채가 맑고 아취가 넘쳐 문인화의 그윽한 세계를 잘 드러냈다. 그는 저술도 많이 남겼는데 동원집(東原集)』 『경여잡록(耕餘雜錄)』 『기선록(紀善錄)등이 전한다.

 

두경은 명()대에 소주(蘇州) 지방에서 활동했다. 소주는 오파(吳派) 회화가 꽃 핀 지역으로 혜원(慧遠)법사에 대한 글에서 이미 살펴보았다. 심주(沈周)와 문징명(文徵明)은 오파를 대표하는 작가인데 이들에게 원()대의 문인화 양식을 전해준 사람이 두경이었다. 양자강 하류에 있는 도시 소주는 교통이 편리하고 문화가 발전해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들었다. 그러나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이 정적의 근거지인 소주를 압박하면서부터 도시는 활기를 잃고 침체에 빠졌다. 소주가 활력을 되찾은 것은 명대 중반에 이르러서였다. 더 이상 황제를 위협할만한 세력이 없다고 판단한 조정에서는 소주에 부과한 과도한 세금을 덜어주었고 많은 사람이 과거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이때 소주 화단을 이끌었던 문인화가가 두경, 사진(謝縉), 유각(劉珏), 조동로(趙同魯) 등이었다.

 

죽주거남촌별서도(南村別墅圖)에 들어 있는 작품이다. 남촌별서도는 죽주거, 초원(蕉園), 내청헌(來青軒), 개양루(闓楊樓), 불경정(拂鏡亭), 나고동(羅姑洞), 요화암(蓼花庵),학태(鶴臺), 어은(魚隱), 나실(蠃室) 등 모두 10폭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경은 남촌별서도에 발문을 써서 이 그림을 그리게 된 내력을 자세히 밝혀놓았다. 발문에 따르면 남촌별서도는 도종의(陶宗儀)가 쓴 남촌별서십경영(南村別墅十景詠)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도종의는 남촌별서의 주인으로 남촌선생이라 불렸다. 원말명초를 대표하는 문학가이자, 사학자였는데 안빈낙도를 즐기며 명리를 구하지 않았다. 두경은 어릴 때 도종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그는 스승의 고결한 품격과 우아한 정취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스승의 아들 기남(紀南)과도 벗이 되어 친하게 지냈다. 두경은 스승이 세상을 떠난 후 우연히 상자에서 남촌별서십경영을 발견했다. 스승의 시를 소리 내어 읊던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스승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는 스승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남촌별서도10폭을 완성했다. 두경은 남촌별서도를 항아리에 넣어두었다. 그런 어느 날 기남이 집에 들렀다. 두경이 항아리에 넣어 둔 그림을 꺼내 보여주자 기남은 이로써 돌아가신 아버지의 자취가 영원히 남게 되었다고 기뻐하며 가져가겠다고 했다. 두경은 그림을 그리게 된 본말을 적어 스승의 아들에게 건네주었다.

 

깔끔하게 살다 간 스승의 모습을 담백한 색채로 그리게 한 도종의의 시 죽주거는 다음과 같다.

 

가을 창에 대나무를 심어(䆋窓能種竹)

 살랑살랑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니(習習轉涼陰)

 비로소 몸이 기거하는 맛이 나(始信身如寄)

 시골에 사는 마음을 바꾸기 어렵네(難移丘壑心)”

                        (번역: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p.257참조)

 

두경이 남촌별서도를 그린 것은 스승에 대한 존경심과 그리움이 직접적인 이유였다. 간접적인 이유는 당시 문인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던 산수유람 풍조와 실경도 제작이 바탕이 되었다. 당시 문인들은 소주 인근 지역을 유람하고 그 감흥을 시와 그림으로 남겼다. 이런 풍조가 발전하여 16세기 이후에는 지역명승도와 기유도(紀遊圖)가 성행하게 되었다. 소주문인들은 지방지(地方志)를 관람하고 간행하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간여했다. 대표적인 예로 재상이었던 왕오(王鏊)1506년에 간행한 고소지(姑蘇志)에는 두경을 비롯하여 진기(陳頎), 오관(吳寬), 문징명 등 소주를 대표하는 문인 12명이 참여하였다. 개인적인 사연에 실경도 제작의 유행이 더해져 두경이 그린 남촌별서도는 심주의 동장도(東莊圖)와 문징명의 졸정원도(拙政園圖)에 큰 영향을 미쳤다.

 

두경이 오파를 여는데 길잡이가 된 것은 선구자적인 의식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분별심과 우월감을 갖는 대신 그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기 때문이다. 도종의의 시가 그림이 된 것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나가 자신을 선전하는 대신 선비로서의 도리를 지키며 살았기 때문이다. 한 시대에 큰 획을 그은 사람들의 행동은 모두 이와 같다. 궁핍한 살림에도 시주 한 번 구걸하지 않았던 조주선사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이유다.

 

한 거사가 조주선사를 뵙고 찬탄하면서 말했다.

스님은 옛 부처님이십니다.”

조주선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새 여래일세.”

 

이 글을 읽고 있는 나도 당신도 새 여래이다. 그러나 이것은 조주선사의 말일 뿐이다. 우리가 여래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의 노력과 고민이 필요하다. 위산영우선사가 향엄지한(香嚴智閑)에게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이전의 본분에 대해 한마디 하라고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이 떠오르지 않던 향엄이 위산선사에게 가르쳐 줄 것을 청했다. 위산 선사가 대답했다. “내가 일러주는 것은 옳지 않다. 내가 말하는 것은 내 견해이고 그대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향엄은 책을 모조리 뒤졌으나 해답을 찾지 못하자 책을 전부 불태워버렸다. 그리고 운수납자가 되어 몇 년 동안 돌아다녔다. 그런 어느 날 도량 청소를 하다 기왓장이 대나무에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 향엄은 방에 들어가 향을 사르고 스승을 향해 절을 하며 말했다. “참된 선지식께서 큰 자비로 이 어리석은 중생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때 저에게 가르쳐 주셨다면 어찌 오늘의 이 깨우침이 있겠습니까?” 우리도 머지않아 향엄 같은 고백을 하게 될 것이다. 이치를 궁구하면서 이삼십년 앉아 있으면 가능하리라. 그래도 알지 못하면 내 머리를 베어 가라고 조주선사가 장담하지 않았던가.

 

*이 글은 법보신문 1296호(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87202)에 실렸습니다.

*조정육의 행복한 그림읽기(http://blog.daum.net/sixgardn/15770816)에서 가져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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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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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나쁜남자 | 작성시간 15.05.27 감사합니다.
    잘,,보고 모셔갑니다.
    님의,,고운 이야기
    고맙습니다.
  • 작성자법안(法眼) | 작성시간 15.05.27 _()_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 작성자나쁜남자 | 작성시간 15.05.28 글을 읽다가 의문점이 있어서
    이곳에,,질문을 합니다.

    남전선사가 말하길!
    "누가 주인이야?" 했고
    조주종심이 말하길!!
    "겨울이라~~"
    이,,내용이 맞습니까?

    주인과,,겨울이라,,,!!
    요,,문답 내용이 感 이 않오기에 물어 봅니다.

    시대적 배경과
    현실적 상황이 그리 표현해도 이해가 되는 상황이였는지,,어쩐지가 말입니다.

    우문,,던져 봅니다.
  • 답댓글 작성자무진당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05.28 여기서 주인은 본래면목이나 불성이 아니라 스승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남전선사는 조주에게 스승이 있느냐고 물었고 조주선사는 처음 만난 남전이 바로 자신의 스승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나쁜남자 | 작성시간 15.05.28 무진당 ㅎ
    스승임은 알겠는데,
    갑자기 겨울이..어쩌구 하니!

    요놈의 선문답이란..?
    이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날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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