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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불교의 장

[스크랩] 아함불자가 보는 반야심경 4. / 공중 무색 무수상행식

작성자주나효진|작성시간18.08.24|조회수121 목록 댓글 14


맑은 아침
파란 하늘아래 나뭇잎들은 푸르름으로 반짝이고 사이 사이 꽃들은 자태를 뽐낸다
비가 지나간 공간은 백합과 장미향이 콧 속에 배어 상큼하고
촉촉한 대지는 땅에 거울을 깔아 놓은 듯 걸음 걸음을 비친
세상 근심 잠깐 내려놓고 자연을 마신다
숲에서 지저귀는 새들과 꽃에 노니는 벌을 보며 외친다
"안녕.. 에브리바디^^"

12처 18계가 마음 작용이라면
5온 역시 마음 작용이 아닐까..

일단 '당연이~지' 하는 입장인데..
5온 특히 색온이 마음에서 생겼다는 게 이해가 되고.. 증명이 되는지?

마음에서 생긴 것이라면 물질이 아니다 

색온이 물질이 아니라면.. 지수화풍 4대가 모여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인데..

세존도 색온은 4대가 화합해있는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러색온이 질과 양이 없는 마음이라는 것을 의심할 수 없다.


<214경>을 살펴보자


214. 이법경(二法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두 가지 인연이 있어서 식(識)이 생긴다.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이른바  안(眼)과 색(色), 이(耳)와 성(聲), 비(鼻)와 향(香), 설(舌)과 미(味), 신(身)과 촉(觸), 의(意)와 법(法)이니라.……(이 사이의 자세한 내용은 앞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안(眼)과 색(色)을 인연하여 안식(眼識)이 생기나니, 그것은 무상하고 유위(有為)이며 마음을 연하여 생긴 것이다[心緣生].

만일 색과 안과 식이 무상하고 함이 있으며 마음을 연하여 생긴 것[心緣生]이라면,

이 세 가지 법이 화합하는 접촉[觸], 접촉 뒤의 느낌[受], 느낌 뒤의 의도[思], 의도 뒤의 생각[想], 이러한 모든 법도 다 무상하고 함이 있으며 마음을 연하여 생긴 것이다.[心緣生]

이러한 것들이 이른바 접촉[觸]·생각[想]·의도[思]이다. 


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214경>은 내용은

3사화합인 안입처와 색입처 그리고 안식이 촉[색온]하면 수, 상, 사인 5온의 수온, 상온, 행온[]이 생기고..

그것을 인식하는 식온을 합쳐 5온이 생기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런 5온은 모두 심연생 곧 마음이라고 하는 있다.


이때 제자 가운데 "6내입처는 몸의 일부가 아닙니까?" 하고 묻지 않은 게 신기할 뿐이다.


그런데 아함 불자들은 6입처가 심연생인 것 까지는 몰라도.. 

5온의 색온은 세간의 일반인이 아는 것과 같은 물질이 아님을 알고 있다.


<잡아함경> 1권을 보면

"색은 무상하다고 관찰하라" 또는 

"색은 무상한가?" 하고 제자들에게 물으면.. 제자들은 한결같이 "무상합니다" 라고 대답한다.


무상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항상하지 않고 변한다는 것으로

알이 애벌래가 되고, 애벌래는 나비가 되듯이 변한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물질이 어느 한 모습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하지만.. 질량의 에너지는 불변한다는 법칙을 발표한다. 

그때 질량은 어떤 변하지 않는 항상하는 형상을 갖고 있나?.. 

없다. 항상하는 불변의 모습은 없으나 근본이랄 수 있는 에너지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아인슈타인을 포함한 모든 관찰자에게는 항상 변하고 있는 것[무상]으로 관찰될 뿐이다.


그러니 에너지(본래질량)불변의 법칙이라는 자연 법칙은 

본래질량은 불변이지만 현상적인 물질은 항상 변하고 있다는 것으로..

불교에서 보면 무상함을 설명하는 것이요, 더 나아가면 

'물질윤회 법칙'을 보여주는 게 된다. 


색이 무상하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질량을 관찰하는 게 아닌..

변하고 있는 물질을 관찰한 결과인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은 왜 생주이멸이라 하듯.. 

알에서 애벌레로 애벌레에서 나비로 변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일까 근본질량은 불변인데..


보는 자가 있기 때문이다.

근본질량인 에너지는 불변임을 보지 못하고 현상의 변화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만일 보는 자가 없다면 변한다는 것은 보이지 않으리라.


이렇듯 색온이란 외부에 그런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게 아닌..

자신에게 접촉된 것을 모습으로 인식하고 있는 게 된다.


여기서 자신에게 접촉된 것은 달리 말하면 3사화합촉으로 색온이라 불린다.


정리하면

색온이 마음을 연해 생긴 것[심연생]이라 함은..

색은 외부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접촉에 의해 그런 모습으로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에서..

무상한 색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변하지 않는 존재[실유]처럼 색온을 받아들이고 있기에 괴가 머문다.


<심경>의 공중 무색이란..

무상한 색임이도 불구하고 실유로 받아들이고 있는 색..

나나 네가 의심하지 않는 실유존재[색]는 사실 없다는 것.

수상행식도 역시 그렇다 

무색 무수상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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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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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주나효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8.24 불란님, 봄강님 괴상한 논리 펴지 마시고..
    두 분에게 질문한 것에 답을 주면
    다시 대화를 시작할 겁니다..^^()..

    예의란 자신을 보이면서 대하는 것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주나효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8.24 봄강 오해를 잘하시는데요

    내가 올린 글으로 보고 수긍이 안되면
    무엇이 수긍이 안되는지 말하면
    그 다음 대화가 쉬운데
    그저 묻기만 하면

    한참 지난 후 다시 처음부터 설명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들어
    육근을 물으려면 내가 아는 육근은 이러한데 당신은 다르게 말합니다 하는 식이죠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念念 不亂 | 작성시간 18.08.24 처음에는 '없다'고 믿으신다고 했걸랑요.
    저는 사실 주나효진님의 말이 다 궁금하걸랑요.
  • 작성자주나효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8.08.24 우리 말에는 주어가 불분명하죠
    그러니 내가 믿는다고 오해했다면
    그 후에 내가 확실히 아는 척하는 것으로 보았을 터
    내가 잘못이군요

    오해토록 해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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