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법화경, 첫 줄부터 엉터리 번역-<如是我聞>
如是我聞
(<序品 第 一>에서)
<이와 같이 저는 아룁니다.>
(필자의 번역)
이 몸, 阿難이 부처님으로부터 듣고, 본 바가 이와 같습니다. 이 몸의 귀와 눈이 완전하다할 수 없고,
기억 또한 완벽하다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내용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한 치
틀림도 없이 전하고 있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최선을 다해, 오랫동안 부처님을 시봉하면서
내 자신의 눈으로 보고, 내 자신의 귀로 들은 내용을 그대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라는
의미가 이 글귀에 담겨 있다.
阿難은 석가모니부처님의 사촌동생으로 알려진 인물이자, 25년간 부처님의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고 시봉했던 제자였다. 요즘 말로 하면 부처님의 밀착수행비서였던 셈이다. 그러니, 부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가장 자세히, 그리고 가장 많이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인물이다.
이하 마지막 品까지의 내용은 바로 이 阿難의 서술이다.
필자는 이 구절, <如是我聞>을 <이와 같이 들었습니다>가 아니라, <이와 같이
아룁니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經의 취지에 맞다, 고 본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모든 불경이 阿難의 서술에 근거하고 있다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면,
그 서술에는 부처님으로부터 듣게 된 것 뿐 아니라, 阿難이 직접 보게
된 것도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가 읽고 있는 이 부분도
아난이 직접 본 것을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것이 아니다, 라는
말이다. 앞으로 법화경을 공부해가면서 알 수 있듯, 많은 부분이 그러하다.
둘째, 글자 <聞>에는 <귀담아 잘 듣는다>라는 일반적인 뜻 못지않게,
<윗사람에게 아뢴다>라는 중요한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글자 <聞>에 대해서는 아래 설명을 참고하시라.)
*聞1008 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 법화경에서도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①들을 문(귀로 소리를 듣다, 들어서 알다)
예: 百聞不如一見(백번을 들어도 한번 보는 것에는 못 미친다.)
②냄새 맡을 문(냄새를 맡다)
예: 若近若遠所有諸香 悉皆得聞 分別不錯(멀고 가까이 있는 모든 냄새를 맡아
한 치의 틀림도 없이 분별해내다.) 「16-9」, 法師功德品을 참고하시라.
③들릴 문(듣게 되다, 듣고 알게 되다)
예: 법화경의 여러 군데서 사용되고 있다.
④알릴 문(남에게 알려주다, 특히 높은 사람에게 아뢰다)
예1: 新聞(지금은 Newspaper라는 의미로만 쓰이지만, <새로운 것을 알려준다>는 의미다.)
예2: 申聞鼓(조선 왕조 때, 백성들의 억울한 사연을 임금에게 아뢰도록 설치해 놓은 북.
이때 <聞>은 <알린다> 또는 <아뢴다>는 뜻이다.)
예3: 若有無量百千萬億衆生 受諸苦惱 聞是觀世音菩薩 一心稱名(온갖 고통과
번뇌로 시달릴 때, 그것을 관세음보살에게 아뢰고 일심으로 이름을 부르게 되면)
「25-2」, 觀世音菩薩普門品을 참고하시라.
필자 註: 이처럼 <聞>이 <알리다> 혹은 <아뢰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또
마땅히 그렇게 번역되어야할 經文이 다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의미로 번역된
법화경 한글번역본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표적인 것이 예3에 적시한 觀世音菩薩普門品의 첫 부분이다.
⑤이름 문(널리 알려진 이름, 명망. <聲聞>이라는 글자는 <名聲>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예: 又不親近求聲聞 比丘比丘尼 優婆塞優婆夷(또 명성을 갈구하는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들과도 또한 깊은 관계를 맺지 말아야 한다.)
「14-5」, 安樂行品을 참고하시라.
⑥알려질 문(널리 알려지다)
예: 名稱普聞 無量世界(이름이 무수한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1-3」, 本 序品을 참고하시라.
⑦소문 문(들려오는 말)
예: 風聞
참고: 『國譯藏經』에 등장하는 明나라 사람, 일여(一如)는 <我聞>을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我 聞 者 謁 如 是 之 法 阿 難 從 佛 而 聞 也”
(我聞이라 함은 아난이 부처님으로부터 듣게 된 이러한 법, 즉 가르침을
아뢴다는 것이다 - 필자 번역)
*여기서 謁1153은 뵐 알, 아뢸 알, 고할 알, 즉, <사뢰다>, 또는 <알리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가지고 계신 한문사전을 참고하시라)
필자: 이처럼 글자 <聞>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자를
차용해 그들의 문자를 만든 日本은 이 글자를 오로지 <듣는다>라는 의미로만
새기고 있으니, 그들의 번역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선 땅의 불자들은 그것을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베껴 쓴 것이고.
조선 사람들은 적어도 일본사람들 보다는 한자를 깊이 알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또, 한자문화권에서는 제일 먼저 서양과 접촉하게 된 일본이 서양에 法華經을
최초로 전하면서, 법화경 영문번역본은 예외 없이 이 문장, <如是我聞>을
<Thus I have heard>로 번역했으니, 지금도 서양인들은 그런 줄로만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한자를 잘 모르니까.
*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梵心(범심) 작성시간 18.09.20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작성자아라한준 작성시간 18.11.02 감사합니다()
여시아문.....
부처님께 법을 받아 스스로 행함으로 얻음이 이러합니다 ㆍㆍㆍ
뭐 이런 비슷한 의미로 전해지는데
언어적 일면으로만 보면
이렇게 설하셨다
이렇게 들었다 가 되는건가요?
-
답댓글 작성자나성거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8.11.02 저는,
<언어적 일면>보다 <법화경 취지>에 맞도록 번역하는 게
올바르다 생각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아라한준 작성시간 18.11.03 나성거사 저는 경전 일체는 법을 가르치는 손
달을 가르키는 손이라보려합니다
법을 가르키는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듯
스스로 몸맘을 움직여 행함을 이루며 그와함께 경전을 보려합니다
경전은 때로는 참으로 간결하고 때로는 참으로 미묘하여 이중생은 늘 헤매이니 수시로 늘 곁에두어 스스로 밝아지게 해야할뿐.....()
어려은 경전 쉬이 풀어주시는 공덕을
함께 찬탄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나성거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8.11.03 아라한준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