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일본의 <뗀뿌라>번역과 조선의 <무개념>베끼기(3)
妙法蓮華經 敎菩薩法 佛所護念
(서품 중에서)
필자의 번역
<보살법을 가르치는 經이요, 부처님이 항시 마음에 두고 계시던
가르침인 묘법연화경>
●<敎菩薩法 佛所護念>은 대승경전에만 붙이는 용어다.
문법적으로 <妙法蓮華經>을 수식하는 형용사구다.
하나하나 살펴본다.
1. 敎菩薩法
대부분의 번역서는 이를 두고 <보살을 가르치는 법>이라 번역하여,
<보살을 가르침의 대상으로 삼는 법이다>라는 오해를 낳게 하는데
(앞 글 인용 참고),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더 이상 그런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대승경전은 중생이든, 성문이든, 아라한이든, 심지어 보살이든, 모두에게
<보살의 법도를 가르친다>는 의미다.
여기서 <菩薩法>은 <보살의 법도>, 혹은 <보살의 이치>, 혹은
<보살의 길>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菩薩法>은 <生滅法>과 같은 레벨의 용어임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敎生滅法>은 <생멸법을 가르친다>는 의미지,
<생멸에게 법을 가르친다>는 뜻이 아니다.
문법적으로 <菩薩法>은 <敎>의 목적어다. <菩薩法>을 영어로 표현하면
<bodhisattvaship>정도가 될 것이다.
<敎菩薩法>을 <보살을 가르치는 법>이라 오역한데서 발생하는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문제는 법화경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대승경전의 한글번역본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와 같은
오역의 근원지는 일본으로 보여진다는 점을 앞에서 말한 바 있지만,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이런 류의 오역이 버젓하게 지금까지 법화경 한글 텍스트에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고, 누구나 이런 오역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2. 佛所護念
또 대승경전은 <부처님께서 자나 깨나 항시 마음에 두고 계신다>는 의미다.
여기에는 <때가 무르익으면 언제라도 설하기 위해서>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이 용어, <敎菩薩法 佛所護念>은 대개 대승경전의 이름 다음에 따라
붙는다.
예를 들면, <金剛經 敎菩薩法 佛所護念>, <圓覺經 敎菩薩法 佛所護念>,
<法華經 敎菩薩法 佛所護念> 등이다.
소승경전에는 <敎菩薩法 佛所護念>이라는 구절이 붙을 수가 없다.
남방불교에는 <보살>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妙法華蓮經 敎菩薩法 佛所護念>을 필자의 영어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The Threefold Lotus Sutra which is teaching bodhisattvaship
and which buddhas keep in their mind all the time.
<如是我聞>을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라고 번역한 것은 <愛嬌>정도로
치부해버리면 그만이지만, <敎菩薩法>을 <보살에게 법을 가르친다>라고 번역한
것은 법화경, 나아가 대승경전이 무엇을 가르치려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無知>의 소치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한글법화경의 저자들은 한 번 더 생각해 보기 바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