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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야기들

나들이

작성자신증信證 (Jongbok Yi)|작성시간19.07.30|조회수564 목록 댓글 18

일요일에 비가 온다고 해서 동료 학자 몇 명과 같이 가려고 했던 하이킹이 취소됐었습니다. 해서 일요일 아침부터 내내 앉아서 논서 번역을 하고 있는데, 날씨가 맑아지더군요. 일기 예보도 저녁까지는 괜찮다고 하고. 해서 한 시간 떨어진 근교로 혼자 하이킹을 갔습니다. 일전에 노트북을 도난당한 뒤로 기차에 대한 걱정이 좀 생겼는데, 하나의 사건으로 일반화 시키는 논리적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고 기차를 잡아탔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작은 나라인데 경치가 참 아름답습니다.

기차 타고 가는데 성이 나오고 그렇습니다.

크리쩬도르프라는 곳인데, 사실 어디인지도 모르고 구글에서 검색한 대로 와서 사전 지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저 사진에 나온 곳은 하나도 보지 못했습니다. ㅠㅠ 그런데 꽃들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야생화가 더 아름답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 남의 밭으로 들어갔습니다. 밀이나 보리를 수확한 것 같은데 뭐 길이 있겠지 하고 올라갔더니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뒤로 돌아 내려오거니 경치가 참 시원하더군요.

그러다 길을 더 잘못 들어서 해바라기 밭을 만났습니다.

고흐의 영향으로 해바라기를 참 좋아하는데, 이렇게 만발한 것을 보니 너무 좋더군요. 문제는 나중에 밖으로 나가면서 보니 사유지였다는 것이죠. 남들은 보지 못하는 장관이었습니다. 미국 같았으면 사유지 침범으로 이미 총맞아 죽었을텐데 유럽이라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인도를 조금 걷다가 또 샛길로 갔습니다. 아무 계획이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구글맵으로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계속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이 들판에 이르렀습니다. 이 들판을 걷다보면 갑자기 어릴적부터 지금까지가 순간적으로 회상하며 혼잣말을 하게되더군요. “봉천동 달동네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의 들판을 걷는다니 힘든 삶은 아니다. 남들은 부모복이 없다고 하지만, 그 힘든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버리지 않았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돈은 없었지만 사랑으로 보살펴주셨으니 이 정도 부모복이면 됐다고 생각한다. 대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지금까지 직업이 하나였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 무척이나 바쁜 삶이었지만, 덕분에 이 곳을 걸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돌이켜보면 이 모든 것이 9살에 불교로 개종하고 부처님 법을 따른 결과가 아니겠는가. 좋은 스승을 만나고 불보살님의 은덕을 입어 살고 있으니 불평은 그만해야겠다.” 걷다보니 지금까지 했던 불평들이 하나씩 떠올랐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학교가 이름이 없다보니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다시 이름을 물어보고 저는 또 그것을 설명해야했습니다. 그게 귀찮았었는데, 사실 외국인으로 미국에서 자리 잡는 것은 쉽지가 않고, 종신교수가 되는 것은 더욱 더 쉽지가 않습니다. 이것을 큰스님, 어머니, 그리고 친누나처럼 지내는 누나의 기도 덕으로 이루었으니 감사해야합니다. 템플대학에서 가르치는 이미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친구의 사정을 들어보니 제가 훨씬 편했습니다. 그 곳은 책 한 권 써야 인센티브를 주는데 저는 1년마다 그 만큼이 저절로 오르니 훨씬 사정이 나은 편이었습니다. 저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2년 먼저 졸업하고 위스컨신주의 주립대에 자리를 잡은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제자들 걱정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제 공부하며 가르칠 수 있는 곳은 보잘것 없고 이름 없는 제가 가르치는 학교가 나았습니다.

노트북을 도난당했지만, 도난 당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만일 그때 주의를 뺏기지 않고 그 순간 그 여자를 붙잡았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해보니, 패거리 중의 한 놈인 남자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 같았습니다. 아마 칼부림까지 났을 것 같더군요. 그러니 불평할 게 없었습니다. 오히려 불보살님의 가피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았습니다.

지금 다음 주까지 머무는 곳은 길가라 무척 시끄럽습니다. 귀마개를 하지 않으면 소음 때문에 잠을 못 잘 정도인데, 100년된 아름다운 아파트에 혼자 머물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사실은 조그만 호텔 방에서 머무는 다른 동료들보다 훨씬 복이 많은 것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며 돌이켜보니 제가 참 불평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 큰스님께서 어떤 법우님의 불평을 보며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10대 소원표를 쓰고 9개가 이루어졌는데 한 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갖은 불평을 하더니 결국에는 나가다가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저 역시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이룬 소원은 당연하게 여기고 남은 소원을 가지고 징징거리는 것이 참 중생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는 지금까지 이룬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앞으로 이룰 것을 긍정의 마음과 굳건한 신심으로 기도하며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시 들꽃이 참 아름답습니다.

저 밭이 제가 낑낑거리며 어디인지도 모르며 올라갔던 곳입니다. 멀리서 누군가 그 광경을 보고 있었으면 아마 웃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웃음이 나오더군요. 올라갈 때는 엄청 커보이더니 멀리서 보니 손톱만하네요.

꽃은 함께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법우님들도 그렇습니다. 누구를 내치고 누구를 들이고 누구를 미워하고 이런 일 없이 그냥 같이 살면 좋겠습니다. 돌아보면 미국과 유럽의 절들은 모두 자기들이 사는 곳을 천상처럼 만들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절들은 아수라장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불평 없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그들의 삶이 행복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해지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천상과 같은 곳에 있어야 환희심이 나고 신심이 더 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드러내지 않아도 될 감정들, 말들은 안 하고 서로를 보듬으면 좋겠습니다. 나쁜 말은 사이다와 같습니다. 내뱉으면 참 속은 후련한데, 사이다처럼 속은 더부룩해지고, 핏속에는 이산화탄소가 들어가서, 결국에는 두통을 일으킵니다. 나쁜 말은 삼키시는 것이 화를 면하는 길이고, 좋은 말은 하는 것이 복을 부르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으로 가는 길입니다. 역이 참 작습니다. 버스정류장 크기입니다. 길을 걷다보니 바람이 불면 라벤더에서 바람을 타고향이 확 나더군요. 저희 안심정사 본찰에도 라벤더를 좀 심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이스크림... 여기 아이스크림들 참 맛있습니다.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강추합니다. ㅋ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한 자 적고 나갑니다. ^^ 모쪼록 가진 것을 감사하게 여기는 안심정사 법우님들도 되시길 기원합니다. 지장 기도는 단순하지만 절대 쉽지 않습니다. 수미산을 올라가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같이 이루어나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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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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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지복화~ 정말잘돼^^ | 작성시간 19.07.31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입니다
    가르침 또한 감사합니다
    아미타불
  • 작성자공덕만땅행복가득(자인화) | 작성시간 19.07.31 오스터리아 자연이 스님의 표현으로 아름다움이 배가 되는것 같네요...
    스님의 말씀에 따라 더욱더 기도에 정진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 작성자봄바람여신(길상화) | 작성시간 19.07.31 바람과 하늘과 구름과 꽃들이
    힐링입니다
    저도 몇년후에는 멋진여행
    희망합니다

    스님!
    건깅하시고 공부 잘 마치시길
    바랍니다
    티벳트사진도 힐링이었습니다

    정말잘돼!!!
    할수있어!!!

    나모대원본존지장왕보살마하살()()()
  • 작성자묘법심.정말잘돼 무량대복 받으세요 | 작성시간 19.07.31 라벤다~~/!.
    제일 먼져 허브를 심엇엇지요~
    게으름에 극치을 맛보앗고.그래도 소리없이 태어낫다 소리없이 지는 꽃씨들을 보앗습니다.
    그 많은 꽃씨가 어딘가에서 툭 솟아나 준다면 감사감사 ...라벤다~~ 참고하겟습니다...()()()

    ★ 오늘은 기차로 떠난 시골 오빠의집.
    식사도 해드리고 용돈두 듬쁙드리고.부모님께도 인사 올리고.돌아오는 길에. 잠시 앉아 있는 역 의자로 도시에서는 맛볼수 없는 자연에 바람을 속안까지 시원하게 마시고 왓습니다.
    흙과 바람 들판에 바람에 손길로 아름답게 흔들리는 논에 벼을 보며 아름다움을 또한 보앗습니다~스님의 여정~고행아닌 순례길이 너무 좋습니다. 떠나서 마냥 걷고 싶습니다.
    아미타불..()()
  • 작성자진짜진짜복돌입니다. | 작성시간 19.08.02 사진보고 글보고 참으로 좋은 풍경 감사합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요즘 저도 불평불만이 많았던것 같습니다.
    글을 읽고 보니 반성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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