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동안 잘 있었니? 9월 중순이 넘어가니 이제 가을이 온 것 같다. 나는 가을하면 등화가친(燈火可親)이 생각난단다, 가을은 책을 가까이할 만한 계절이라고 하는 말, 들어보았지?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때는 가을이라 장마비 개이고 새로이 시원한 기운 마을 들판에 들어오니, “등잔불 점점 가까이할 만 하고” 책 덮었다 펼쳤다 할 만하네(시추적우제 신량입교허 “등화초가친” 간편가권서 時秋積雨霽 新涼入郊墟 “燈火稍可親” 簡編可卷舒)’ 라고 나오는구나.
이 구절(句節)은 당(唐)나라의 문장가 한유(韓愈)가 성남(城南)에 책 읽으러 가는 자기 아들 부(符)를 권면하려고 쓴 시(詩)에 나온다고 해. 符讀書城南-韓愈 중에서. ‘부독서성남-한유’ : 집 떠나 공부하는 아들 부에게 - 한유
예전에 내가 대학교에 다닐 때 어떤 친구는 도서관에서 참으로 책을 많이 빌려 보았어. 그 친구는 책을 빌리고 반납하는 그 도서 카드를 여러 번 갱신했어. 뿐만 아니라 비록 집안은 가난했지만 그 친구의 형도 누나도 동생도 모두 책을 열심히 읽었어. 그래서 나중에 보니 그의 형, 누나, 동생이 모두 원하는 곳에 취직하고 취학했어.
그 친구의 형제들을 보고 나는 반성했단다, ‘아,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그래서 나도 그 친구를 따라 도서관에서 책을 좀 빌려보았단다. 나는 주로 종교나 사상이나 철학책을 빌려보았다. 내가 대학교를 다닐 때, 그때는 30년 전 쯤 되겠는데, 그때는 그래도 종교나 사상이나 철학책을 보는 학생이 몇 명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아마 거의 없겠지. 모두 취업 준비하느라고, 실생활과 연관된 공부하느라고 바쁠 거야.
자, 이제 호흡 연습에 대해 좀 이야기해볼게. 나는 눈으로 손등을 1분 동안 주목해서 볼 수 있을 거야. 나는 귀로 음악을 1분 동안 주목해서 들을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이것은 어떠했니? 코로 드나드는 이 숨은 내가 1분 동안 주목해서 볼 수 있었을까? 붙잡을 수 있었을까? 아마 어려웠을 거야. 만약 1분 동안 계속해서 숨이 들어가고 나가는 것을 느끼고 알 수 있었다면 그 사람은 정말 호흡 연습을 잘 하는 사람일 거야.
나는 지금도 그래, 지금도 숨을 제대로 잘 보아내지는 못해. 코로 들어오고 나가는 숨을 보려고 하면 이내 다른 생각으로 마음이 달려가 있는 거라, 그러면 ‘아차, 원위치’ 하면서 다시 숨이 들고 나는 곳으로 돌아오곤 해. 그러다가 또 숨을 놓치고, 그러다가 ‘아차, 원위치’하면서 다시 돌아오고를 반복하고 있단다.
자, 이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 중의 하나가 콧구멍 주위로 내 마음을 주목해놓는 것이라고 나는 배웠단다. 예를 들면 내가 손 등을 보려면 내 마음이 손 등에 주목해 있어야 하고, 내가 음악을 들으려면 내 마음이 음악 소리에 주목해 있어야 하듯이,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발견하려면 내 마음이 콧구멍 주위에 가 있어야 한다고 해.
만약 가나가 배의 불룩거림으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발견하고 있다면 배에 마음을 주목하면 되겠고, 코로 숨이 들어가고 나가는 것을 발견하고 있다면 콧구멍 주위에 마음을 주목하면 되겠네. 그런데 숨소리가 나서 숨이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있다면 계속 숨소리를 느끼면서 숨이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알아차리려고 해도 될 거야, 당분간은.
참, 이상해. 다른 것들에는 주목이 그럭저럭 되는데, 예를 들어 책을 본다든지 음악을 듣는다든지 할 때는 책에 • 음악소리에 집중이 되는데, 우리가 늘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여기 - 숨 - 에는 왜 집중이 잘 안 되는지 모르겠구나.
4. 그동안 잘 있었니? ‘슬럼프’란 말을 들어보았지? 한컴 국어사전을 검색해보니 “슬럼프 : ①(경제) 경기(景氣)가 침체되어 있는 현상. 예문- 부동산 경기가 ‘슬럼프’에 빠지다. ②운동선수가 부진 상태에 빠지는 일. 예문-‘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고 나오네. 아마 한자어로는 ‘지지부진(遲遲不進)-매우 더뎌 잘 나아가지 않음.’과 비슷한 말일 것 같아.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그래. 우리가 호흡 보는 연습을 해나가다가 보면 어제는 잘 되었는데 오늘은 안 되는 거라. 나는 어제 보다는 오늘이 조금 더 잘 되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좀 더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호흡 보는 연습을 하는데, 막상 해보면 그렇지 않은 거라. 그동안 좀 되는 것 같더니 웬걸 오늘은 잘 안 되는 거라.
이럴 때 우리는 ‘아, 나는 안 되는가 보다.’하고 호흡 보는 연습을 그만둘지도 몰라. 그러나 우리는 그래서는 안 돼. 자, 이럴 때 우리는 분발해야 한단다. 아직 우리는 힘을 다한 것이 아닐 테니 새로 의욕을 일으키고 연습 시간 1분, 2분 그 때에 계속 정성을 기울여야 한단다. 아직 우리는 발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했는데 그만 둘 수는 없어!
마침 누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나는구나. 그는 호흡 보는 수행이 잘 안 될 때는 길을 걷는다고 해. 걸으면서 자기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지를 본다는구나. 길을 걷는 여기에 마음이 주목해 있는지, 아니면 가족 생각, 직장 생각, 기타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거기로 마음이 달려가 있는지를 알아차린다고 해. 호흡 보는 수행을 잘 하는 그는 길을 걸을 때 마음이 길을 걷는 거기에 대체로 가 있다고 해. 그래서 길을 걸으면서 혹시 다른 생각으로 마음이 달려가서 상상 속에 빠져들려고 하면 바로 알아차려서 길을 걷는 거기에 주목한다고 해.
그런데 나는 그때에도 그렇지를 못했고, 지금도 그렇지 못하단다. 길을 걸으면서 ‘자, 지금부터는 길 가는 여기에만 주목하자, 길, 보이는 차, 가로수 등에만 주목하자’고 출발할 때는 그렇게 마음 딱 먹고 길을 걷는데, 아니나 다를까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은 다른 생각으로 달려가 있는 거라. 그래도 나는 걸을 때는 걷는 데만 주목하도록 계속 연습해야한단다.
그러나 가나는 길을 걸을 때는 필요 없는 생각은 하지 않을 수 있을 거야. 공부할 때는 공부에만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었듯이, 길을 걸을 때는 마음을 단속하며 자연스럽게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거야. 가나는 훌륭하게 잘 해낼 거야.
오늘은 숨의 길이에 대해 배운 것을 말해볼게. 우리가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 그 숨의 길이를 느낄 수도 있다고 해. 즉 우리가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 콧구멍 속이 따뜻하다거나 시원하다거나 하는 그런 감촉 말고, 숨의 길이를 느낄 수 있다고 해. 이 숨이 좀 길게 들어오는지 좀 길게 나가는지를 느낄 수 있고, 또 이 숨이 좀 짧게 들어오는지 좀 짧게 나가는지를 느낄 수 있다고 해. 그래서 지금부터 우리는 따뜻하다거나 시원하다거나 하는 그런 감촉 말고, 숨이 길게 들어오는지 길게 나가는지, 짧게 들어오고 짧게 나가는지를 느끼도록 연습하자.
그런데 여기서 숨이 길게 들어오거나 나가는 것과 짧게 들어오거나 나가는 것을 느껴서 알 때, 이 아는 마음은 ‘몸-감촉’에서 일어나는 앎이야. 이것은 ‘마음-생각들’에 속하는 것은 아니란다. 눈으로 보는 것을 예로 들면, 길을 가다가 나무를 보고 사람을 보고 자동차를 보고 ‘저것은 나무다, 저것은 사람이다, 저것은 자동차다.’ 하고 알았다면 그것은 ‘눈-빛•모양’에서 오는 앎이야. 이것은 잘 하고 있는 것이란다.
그런데 ‘저 나무 아래는 시원할까? 저 사람은 어디에서 왔을까? 저 자동차는 얼마 할까?’ 하고 생각하면 그것은 ‘마음-생각들’에 해당한단다. 지금 이것은 안 돼. 이 차이를 잘 생각하고 익혀 놓기 바래.
그러니까 ‘이 숨은 길구나’ 하고 아는 것은 ‘몸-감촉’에서 오는 것이라서 좋아, 잘 하고 있어. 그런데 ‘숨을 길게 쉬면 오래 살까?’ 등으로 생각한다면 이것은 ‘마음-생각들’에 해당하니까, 얼른 떨쳐버리고 다시 ‘몸-감촉’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해. 왜냐하면 지금 우리는 ‘몸-감촉(호흡이 남기는 것)’을 분명히 알기 위해서 연습하는 중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
다시 숨에 대해서,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현상에 대해서 말해 보면, 우리는 비유하면 길을 가기 위해 발걸음을 떼고 있는 중이란다. 그래서 힘이 들고 어렵기도 하단다. 그러나 이 호흡 연습은 시작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은 것이라고 한단다. 그러니 우리는 너무 빨리 달려가지도 않고 또 뒤처지지도 않게 꾸준히 걸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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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은하의 돛 작성시간 17.10.26 '불법'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은 '법'에 대한 이론의 숙지로 부터 시작되겠죠. 그런데 이론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쉽지 안잖아요.
바른 스승을 만나야 하고 그에 더해서 본인도 전력을 다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지요. 그래야만 어슴프레라도 '법'에 대해 조금은 이해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한 이해가 호흡연습에 들어가기 위한 전제조건이 된다고 생각해요. 기본적 이해가 없고 좋은 스승이 없다면 알아차림이니 호흡연습이니 하는 것들이 시간낭비일 뿐이라는.. -
작성자은하의 돛 작성시간 17.10.26 그래서요... 호흡연습은 그간 '불법'을 숙지하려는 노력이 뒷받침 된 후 어느정도의 이해가 따랐을 때 이제 <그간 배운 불법에 대한 확증을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이론적으로는 많이 이해한 듯 하거든요. 그런데 이론적으로 충분한 공부가 되어 있다면 실생활에서도 바로 그것을 적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요.. 그거 안되잖아요. 배운바대로 우리가 행위하지 못해요.
머릿속으로 이해했다고 자신하지만 참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서 그렇겠지요.
그러니 이제 머릿속으로 이해한 교학들을 .. 알아차림등의 확인하는 과정까지 거쳐야 되겠지요. 선과 교를 동시, 이시를 가리지 않고 둘 다 닦아야 법에 대한 확고함이 생기겠지요. -
작성자은하의 돛 작성시간 17.10.26 호흡연습은... 부처님의 법에 대한 확증의 과정이고, 실생활에 즉각즉각 적응시키기 위한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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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고요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7.11.07 예. 은하의 돛님의 말씀에 공감합니다.
팔정도에서 정념(正念)은 앞의 것 6가지 지분을 다 하고 나서야 비로소 잘 할 것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정념을 잘 닦아서 정정(正定)에 이를 수 있다고 배웠고, 초선에만 들어도 악마의 눈을 멀게 한다고 저도 배웠습니다. 초선부터는 인간을 넘어선 법이라고 하고, 인간을 넘어선 법을 증득하는 일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라고 배웠습니다.
한편, 부처님 가르침에 대해 우리가 어떤 자세로 배우고 공부해야 하며,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한 은하의 돛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제가 부끄러워집니다. 제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는 자세와 열의가 아주 많이 부족했습니다. -
작성자고요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7.10.26 그리고 저는 그동안 교학만 주로 하고 사띠(念)를 제대로 배우지도 않고 닦지도 못했고, 선(禪)을 배우지도 않고 닦지도 못해서, 수행을 잘 하시는 분들이 보시기에는 딱하다는 생각도 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은하의 돛님.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