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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기억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

작성자방문객|작성시간10.11.01|조회수713 목록 댓글 12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

  있으면 있는 것이고, 없으면 없는 것이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 그리고 상식을 모르는 건 아니다.

  상식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런데 왜 그런 표현을 쓰나? 뭐...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라고 변명하면서도...선배 불자들이, 그것도 대보살들이 그러한 표현을 채택한 까닭에 대해 제한적으로 한번 적어 본다.

 

  먼저 다음의 측면은 분명하게 지적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있다, 없다... "있지 않다"는 "있다"의 가장 직접적 부정형태이고, "없지 않다"는 "없다"의 가장 직접적 부정형태이다. "있다"의 가장 직접적 부정형태는 "없다"가 아니다. "없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있다"의 부정이 "없다"인 것은, "있다"와 "없다"를 합치면 전체를 구성한다는 가정하에서 그러하다. 즉 배중율이 적용되는 경우, "있다"의 부정이 "없다"일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있다"와 "없다"를 상호 부정으로 간주하는 것은, 배중율이라는 판단법칙에 따른 것이다.

 

  판단법칙... "있다" 내지 "없다"는, 존재의 문제로 보인다... 그런데 뭔 판단법칙? 이상하지 않은가?

  BUT... "있다"와 "없다"는, 존재 유무를 직접 징표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이다. 최소한 불교에서는, 처음부터 그러한 점이 알려져 있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있지 않다"는, ["있다"고 판단하기 쉽지만, 엄밀히 들어가면 "있다"는 판단이 성립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는 판단이다.

  결국에는 논리 법칙의 문제가 대두될텐데... 이러한 논리법칙과 관련하여 가장 자세하게 다루는 오늘날의 전승은, 티벳불교로 보인다. 티벳불교는, 중관의 논리를 아주 잘 계승하여 보존하고 있다. 즉 티벳불교의 승단이, 그러한 논리를 오늘날까지 잘 보존하여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뭐... 머리도 나쁘고, 몰라서 적을 수는 엄고... 논리와 관련하여 관심 있는 분은, 티벳불교 공부를 하면 될 거라고 본다. 뭔 말인가? 여기서는 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려 한다는 변명이다.

 

  좀 다른 관점... 어떤 관점? 원래 불자에게 만만한 건 "연기"다. 불법에서는 뭐든지 연기로 설명하면, 최소한 틀리지 않으니... 만만할 밖에... 개인적으로, 연기를 오온으로 구체화하는 것을 가장 선호한다.

  그건 그렇고... 상좌불교 강의를 처음 들었을 때, 하나의 의문이 생겼다. 그리고 상좌불교도 연기에 대해 설명한다. 그런데... 연기로 설명하긴 하는데... 3학 중 [정]과 관련한 소위 실제 수행에 있어, 연기가 등장하지 않는다. 연기로 설명하는 것과 실제 수행 사이에 연결성이 없다... 강의로 들은 내용으로 제한하자면, 분명 그러했다... 왜 이게 문제인가? 부처님의 가르침은, "연기"니까... 따라서 불교의 수행은, "연기"를 알기에 적합한 것이어야 하니까...

  실질적으로... 상호 유리되어 있는 [혜]와 [정]... 연결성이 없는 [혜]와 [정]... 물론 이는 상좌불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늘날 한국 불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좀 납득하기 어려운 현실...

 

  판단법칙... 있다와 없다... 그러한 판단법칙은 어떻게 있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식온에 있다. 식온이 뭔가? 감지기능이다.

  이러한 감지기능은 이진법 체계를 제시한다. 감지하는 것과 감지하지 몬하는 것... 감지하니, 있다는 판단이 생긴다. 감지하지 몬하면, 없다는 판단이 생긴다. 아주 엄밀히 말해, 감지 자체가 이진법 체계를 "직접" 지시하지는 않는다. "0" 즉 "감지 없음"은 신호가 아니니까... 감지 체계는, 말을 만들자면, 일진법이다. 감지 체계를 이진법 체계로 전환시키는 것은, 판단법칙이다. 판단법칙이 있어서, 감지 체계가 이진법 체계를 제시하는 조건이 될 수 있다.

 

  "사실을 직접 지시하는 일진법 체계, 감지 체계"를 기반으로 성립한 "이진법 체계, 판단 체계"...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판단 체계는 그 자체의 길을 개척할 수 있다. 그리고 개척했다... 있다와 없다는, [감지라는 사실]을 넘어 ["감지되는 사실"에 대한 "성격 규정"]을 가능하게 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있다와 없다라는 판단은, [감지라는 사실]을 넘어서는 무엇을 의미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들에서, 소위 중관의 논리가 출발한다. 물론 기본적으로, 불교라는 범주안에서... 그리고 이는... 식온을 시설하신 까닭을, 식온의 의미를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무슨 말? ["감지되는 무엇"이라는 사실]은, ["그 무엇의 감지"라는 사실]을 떠나 ["그 무엇이 있다"는 판단]을 발생시킨다. 왜 그런가? 우리는 보통 ["그 무엇의 감지"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그 무엇의 감지"라는 사실]은 감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감지는 감지를 감지하지 못한다... 연기라는 판단법칙은, 감지를 감지하지 못하는 감지의 특성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연기라는 판단법칙만을 기억한다면... 엄밀한 의미에서, 있다와 없다라는 판단은 나오지 않는다... 있다와 없다라는 판단 이전에 멈추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 무엇의 감지"라는 사실]을 떠나, ["감지되는 무엇"이라는 사실]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신호는 성립할 수 없다... 그 반대도 그러하다. ["감지되는 무엇"이라는 사실]을 떠나, ["그 무엇의 감지"라는 사실]도 성립하지 않는다. 이를 연기의 법칙이라고 한다.

  위를 보면, [연기라는 "판단법칙"]이라는 말이 나온다. 연기는 판단법칙이다. 동시에 인식하는 무엇에게 있어, 사실법칙이다. 인식하는 무엇에게 있어서는 사실법칙일 수 밖에 없다. 감지라는 일진법 체계에서, 필연적이다. 그러하기에 연기를, 인식론이자 존재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감지라는 사실]을 넘어 ["감지되는 사실"에 대한 "성격 규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 어떻게 그러한 일이 가능한가? "기억 기능"이 있기에 가능하다. 불교는 기억기능은 판단기능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하여, 기본적으로 산냐라는 기능에 포섭시킨다. 실제 기억기능과 판단기능은 불가결이다.

  일진법 체계인 감지 체계가, 기억기능과 맞물린 판단기능에 따라, 이진법 체계인 가장 기본적 판단 체계를 성립시킨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체계에 따라 파악되는 세계를 세계라고 맹목적으로 믿는다... 그리고 이는 재생의 원료가 된다... 보다 큰 문제는, 위와 같은 과정을 벗어버릴 수 없다는데 있다. 직관적으로 성립하게 되어 있으니까...

 

  삼매수행은, 삼매의 특징은... ["감지되는 무엇"이라는 사실]과 ["그 무엇의 감지"라는 사실]에 있어... ["그 무엇의 감지"라는 사실]이 소멸될 정도로, ["감지되는 무엇"이라는 사실]에 매몰되는 것이다. 그러면... ["감지되는 무엇"이라는 사실]과 ["그 무엇의 감지"라는 사실]은 모두 소멸하고, 새로운 ["감지되는 무엇"이라는 사실]과 새로운 ["그 무엇의 감지"라는 사실]을 발생시킨다.

  무슨 말인가? ["감지되는 무엇"이라는 사실]이 ["그 무엇의 감지"라는 사실]과 떨어져 있다면, 삼매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떨어져 있지 않기에, 삼매가 가능하다. ["감지되는 무엇"이라는 사실]이 있지 않기에, 삼매가 가능하다. 그리고 "있지 않다"는, 위에 지적했듯, "있다"의 가장 직접적 부정형태이다. 즉 삼매와 선정은... ["감지되는 무엇"이라는 사실]과 ["그 무엇의 감지"라는 사실]의 함께 함, 즉 연기를 알게 한다.

  위와 같이 "있지 않음"이란 표현은, 소위 실제 수행에서 연기를 함유하여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있지 않음"이라는 언명이 나온다. [혜]와 [정]은 함께 한다... 유리되어 있지 않다. "있지 않음"이라는 언명을 통해서... 그렇지 않은가? 없지 않음도 마찬가지다. 이는 설명이 좀 더 복잡한데... 괜히 어려워지기도 하고, 다 적자니 분량도 그렇고... 게을러서... 생략을... 여하튼 기본적인 접근방식은 있지 않음과 다르지 않다.

 

  시간상 더 적기는 그렇고... 여하간 다양한 방식이 있는데, 위와 같은 고찰도 하나의 방법이다. 우리가 불교를 공부하고, 나름 수행을 하면서... 모든 교학을 알 필요도 없지만,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스스로의 세계에 깊이를 더하는 거... 이런 거는 필요하다고 본다...

  이해란, 사실과 아주 깊은 관련을 가진다. 신심이라는 사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보는 것을 기억할 수 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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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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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잊지않기 | 작성시간 10.11.02 "있다"와 "없다"는, 존재 유무를 직접 징표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이다.
    일진법 체계인 감지 체계가, 기억기능과 맞물린 판단기능에 따라, 이진법 체계인 가장 기본적 판단 체계를 성립시킨다
    감지는 감지를 감지하지 못한다... 연기라는 판단법칙은, 감지를 감지하지 못하는 감지의 특성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 땐땐땐
  • 작성자잊지않기 | 작성시간 10.11.02 머리가 터질 것 같아요
    낮에는 무언가 나름대로 사유공식을 간명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그게 잘안되네요.
    오늘은 포기해야 겠어요.
    뒷골이 막 댕기려고 해요. 흑!
  • 작성자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0.11.02 전에 적은 중국 화엄종 법장조사에 따르면...
    있지 않으니(색즉시공), 괴로움을 여의고...
    없지 않으니(공즉시색), 열반을 여의죠...

    공이 연기라서, 워낙 다의적입니다. 언어는 신호체계가 아니라 상징체계니, 뭐든 다의적이겠지만...

    사실...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그러는데요. 아놔~뭔가 참신하고 쌈박한 방법이 필요하다는...

    감지된 것이 있다는 직관적 판단이 성립하지 않는 한, 감지된 것을 보다 자세히 알려는 직관적 의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직관적 판단과 직관적 의도는 필요불가결하게 붙어 있습니다. 하나의 덩어리죠.

    본글이 좀 뒤숭해서, 죄송하다는... 좀 매끄럽게 다듬어야 할 듯 한데...
  • 작성자잊지않기 | 작성시간 10.11.02 아니예요.
    좀 무식하게 말해보면 '연기즉공'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한 것 같거든요.
    생각의 단초가 되고요.
    본글을 생각해보려고 하니 단락마다 죽 딸려오는 것이 많았어요.
    엄밀하게 표현해줘서 감사하지요.
    계속 생각을 해볼께요.
  • 작성자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0.11.02  공과 관련해, 대상 내지 연기의 한변만 등장하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게 우리의 현실을 지적하는 측면이 있거든요. 그런즉 행자의 고뇌를 담은 수행법문일 수 있는 거죠...
     우리들은 한쪽만 보게 됩니다... 물론 양변을 동시에 살피려는 노력은 합니다만... 감지체계로 조건지어지다 보니, 드러남은 그렇게 조건지어질 수 밖에 엄다 보니... 피할 수 엄는... 어떻게 보믄, 기독교의 원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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