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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력과 정토진종에 대한 단상

작성자방문객| 작성시간10.11.08| 조회수397|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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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11.08 cf. 일주 정도 후에, 위의 본글도 [현재의 기억] 게시판으로 이동한다는...

    적을 말이 많았는데요... 조금만 생각해 보면, 뭘 더 적으려고 했는지 다 알 수 있을 것 같구요... 시간상 그만 끝내는... 당장 안올리면, 올릴 기약이 없거든요. 원체 게을러서... 그래서 그냥 올립니다.
  • 작성자 Julie 작성시간10.11.08 잘 읽었읍니다.
    기본적으로 타인을 비판하려면 적어도 님과 같은 노력이 있은 다음에 해야한다고 믿읍니다.
    지식, 앎에 문제도 있겠지만 상대를 비판할려면 상대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 아는 소리이지만....
  • 작성자 용수 작성시간10.11.08 부처님 또한 부처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신심결정한이가 부처라고 생각하지 않죠. 부처님은 경배의 대상이지 자기가 부처라고 한다는 것은 중생의 관점이죠. 부처님은 자비와 은덕으로 갖추어진 경배의 대상이죠. 신심결정한 이는 부처님의 은덕에 답례하는 사람입니다.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니죠.
  • 작성자 용수 작성시간10.11.08 극락에는 아무도 살지않아요. 신심결정한 이가 극락에 가기를 거부하기 때문이죠. 아미타불은 자기를 믿는 사람보다 자기를 믿지 않는 사람을 더 사랑하기에.. 사랑받지 못하는 극락에 신심결정한이가 갈 이유가 없죠. 신심결정한 이는 아미타불의 사랑으로 사는 사람이니깐요.
  • 작성자 용수 작성시간10.11.08 신심결정한 이는 신심결정하지 않고 중생으로 살고 싶어해요. 아미타불은 중생을 너무 사랑하는 것을 아니깐요. 그래서 윤회를 선택합니다. 무명을 선택합니다.
  • 작성자 용수 작성시간10.11.08 신심결정을 하든 안하든 지금 이순간이 제일 행복한것이죠.
  • 작성자 용수 작성시간10.11.08 선인조차 아미타부처님의 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 하물며 악인은 말할 것도 없다
  • 작성자 용수 작성시간10.11.08 선인 또한 왕생을 이루는데 악인임에 있어서야
  • 작성자 용수 작성시간10.11.08 아미타부처님은 석가모니부처님보다 신란님을 더 사랑하시구 신란님보다 나같은 극악중생을 더 사랑하시구 좋아하시죠.
  • 작성자 용수 작성시간10.11.08 어떠한 수행도 미치기 어려운 신란, 지옥밖에 갈 곳이 없도다.
    미타오겁사유의 본원은 오로지 신란 한 사람을 위함이었다.
    아아, 다생에도 만나기 힘든 본원력 지금 만나게 되었다.
    억겁에도 얻기 힘든 진실의 신심을 지금 얻었도다.
    본원, 진실이었다. 진실이었다.
  • 작성자 용수 작성시간10.11.08 내 목숨 다하여.
    안락정토에 돌아가더라도.
    화가만의 파도.
    밀려오고 또 밀려와.
    되돌아 옴과 같도다.

    한사람 있어 기뻐하면 두사람이라고 생각하오.
    두사람 있어 기뻐하면 세사람이라고 생각하오.
    그 한사람은 신란이리.

    내가 없어도 법은 계속할지니.
    화가의 포구 해초뜯는 사람 있는 한은.

    여래 대비의 은덕은. 몸이 가루가 되어서라도 보답하리.
    사주 지식의 은덕에도. 뼈를 부수어라도 갚으오리.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11.09  정토 계열 경전군에 나오는 내용과 관련하여, 그러한 지적을 한 겁니다. 아무래도 정토 계열 경전군을 읽은 분들이 있으니까요... 저 같은 경우, [경]을 침범하지 않는 범위에서 서술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경]이 일견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는 서로 아귀가 들어맞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렇단 말이죠... 무협지식으로 표현하자면, "(다 같은 물일지라도) 우물물이 강물을 침범하지 않는다"와 같은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거죠.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은 경우, "(다 같은 물일지라도) 우물물이 강물을 침범하지 않는다"를 살피면서 접근하는 일이 좀 어려운 경우가...그래서 혼동이 발생하기 쉬운 거죠...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11.09 ======
     불법과 관련하여 글을 읽을 때, 불법은 모두 연기를 설명하는 것이지만, 불법도 연기에 따라 성립해 있습니다. 연기를 살피는 것은, 조건을 살피는 것인데요... 불법 자체를 접할 때에도, 조건을 살펴야 하는 거죠.
     [무엇을 보든, 조건을 보라]는 말씀에서...무엇에는, 불법도 포함되어 있는 겁니다. "불법을 제외한 여타의 것"이 아닌 거죠...
     배우는 입장에서는, 조건을 살피기 어려운 측면이 많습니다. 불법에 따라 수행하려고 하지, 불법 자체를 배우는 일에서의 수행은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편이거든요. 그래서 방편의 의미를 놓치고, 절대시하게 된단 말이죠... 절대시, 여기서는 "일반화시켜 나간다"는 뜻입니다...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11.09 ======
     
     종종 적은 편이지만, 제 글도 조건에 따라 있습니다. 그 무엇이든...그것을 소위 ["있는 그대로" 안다]는 것은, [그것의 조건을 안다]는 겁니다.
     
     따라서 ["부처님의 가르침인 법"을 안다]는 것도, ["부처님의 가르침인 법"의 조건을 안다]는 겁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법"에서조차 그러한데...하물며 중생인 불자가 스스로 드러낸 견해에 대해서는, 별 달리 말할 바도 없을 겁니다.
     
    ======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11.09  연기는 그 무엇이든 담는 그릇입니다. 그리고 담긴 것은 형성이죠. 업과 그 과보입니다. 동시에 업과 그 과보를 떠나, 연기라는 그릇도 없습니다. 그릇이 먼저 있는 것은 아니예요.
     우리에게 드러나 알려지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법은, 과보입니다. [경]은 과보로 있는 거예요. 물론 과보를 수온으로 제한해서 접근하면, 그러한 표현이 가능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최소한 업에 따른 결과물인 것은 분명하죠... 업 대신에 서원 내지 원력이라는 표현을 쓰더라도, 본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수행은 형성인데...어떤 기법이든, 그 어떤 종파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하든, 수행은 형성인데요...법은 수행의 의지처이구요.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11.09 수행의 의지처를 소위 있는 그대로 안다는 것은, 숙선의 내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습니까? 숙선의 내용에 영향을 미친다면, 곧 업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고...그 과보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연기를 살피면, 즉 조건을 살피면...조건은 업보를 담고, 조건이 업보보다 먼저 있는 것은 아니기에...조건의 내용을 살피는 일이 됩니다. 어떻게 보면, 내용이 먼저 있고 그릇이 있는 건지도 몰라요. 그릇은 방편으로 제시된 거니까요...
     
     어떤 긴장이 있는데요...
     ["수행의 의지처"인 "법"]의 조건을 살피는 것...이러한 작업은, 그 법에 의지한 수행의 추진력을 약화시키거나 상실하게 할 수도 있구요, 강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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