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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11.09 정토 계열 경전군에 나오는 내용과 관련하여, 그러한 지적을 한 겁니다. 아무래도 정토 계열 경전군을 읽은 분들이 있으니까요... 저 같은 경우, [경]을 침범하지 않는 범위에서 서술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경]이 일견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는 서로 아귀가 들어맞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렇단 말이죠... 무협지식으로 표현하자면, "(다 같은 물일지라도) 우물물이 강물을 침범하지 않는다"와 같은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거죠.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은 경우, "(다 같은 물일지라도) 우물물이 강물을 침범하지 않는다"를 살피면서 접근하는 일이 좀 어려운 경우가...그래서 혼동이 발생하기 쉬운 거죠...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11.09 ======
불법과 관련하여 글을 읽을 때, 불법은 모두 연기를 설명하는 것이지만, 불법도 연기에 따라 성립해 있습니다. 연기를 살피는 것은, 조건을 살피는 것인데요... 불법 자체를 접할 때에도, 조건을 살펴야 하는 거죠.
[무엇을 보든, 조건을 보라]는 말씀에서...무엇에는, 불법도 포함되어 있는 겁니다. "불법을 제외한 여타의 것"이 아닌 거죠...
배우는 입장에서는, 조건을 살피기 어려운 측면이 많습니다. 불법에 따라 수행하려고 하지, 불법 자체를 배우는 일에서의 수행은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편이거든요. 그래서 방편의 의미를 놓치고, 절대시하게 된단 말이죠... 절대시, 여기서는 "일반화시켜 나간다"는 뜻입니다...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11.09 연기는 그 무엇이든 담는 그릇입니다. 그리고 담긴 것은 형성이죠. 업과 그 과보입니다. 동시에 업과 그 과보를 떠나, 연기라는 그릇도 없습니다. 그릇이 먼저 있는 것은 아니예요.
우리에게 드러나 알려지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법은, 과보입니다. [경]은 과보로 있는 거예요. 물론 과보를 수온으로 제한해서 접근하면, 그러한 표현이 가능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최소한 업에 따른 결과물인 것은 분명하죠... 업 대신에 서원 내지 원력이라는 표현을 쓰더라도, 본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수행은 형성인데...어떤 기법이든, 그 어떤 종파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하든, 수행은 형성인데요...법은 수행의 의지처이구요. -
작성자 방문객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0.11.09 수행의 의지처를 소위 있는 그대로 안다는 것은, 숙선의 내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습니까? 숙선의 내용에 영향을 미친다면, 곧 업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고...그 과보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연기를 살피면, 즉 조건을 살피면...조건은 업보를 담고, 조건이 업보보다 먼저 있는 것은 아니기에...조건의 내용을 살피는 일이 됩니다. 어떻게 보면, 내용이 먼저 있고 그릇이 있는 건지도 몰라요. 그릇은 방편으로 제시된 거니까요...
어떤 긴장이 있는데요...
["수행의 의지처"인 "법"]의 조건을 살피는 것...이러한 작업은, 그 법에 의지한 수행의 추진력을 약화시키거나 상실하게 할 수도 있구요, 강화시킬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