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마음)은 상이 없어, 식(마음)으로 식(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어쨌든 식은 상이 없어요.
그렇다면 "오온이 없는 상태(식이 없는 상태)"가, 식의 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상이 없는 상"인 거예요.
이와 같다면..."니로다 삼마빠디"는, 식의 상이 알려지는 거라고 할 수 있겠죠? 멸진정은, 식의 상에 머무는 상태라고 할 수 있구요.
그리고 이러한 "식의 상(상이 없는 상)"은, 허공(그 무엇도 없다는 산냐이든, 혹은 색온인 허공이든)과는 구별되는 상일 겁니다.
상이 없는 상은, 언설을 여읜 거죠. 중도 즉 불생불멸인 거죠...
위의 내용인 식과 관련해서만, "공"을 이야기해 보자면요.
우리가 글로 표현하는 언어적 생각을 포함하여, 직관등 일체의 인식은 표상을 아는 겁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식은..."상이 없는 상", "언설을 여읜 상", 이름하길 "불생불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식이 없는 상태"이든, "식이 있는 상태"이든...식의 상은 그러하다는 겁니다.
단지 식의 상이 그러함을, "식이 없는 상태"가 "식이 있는 상태"에서 알려짐으로써 알 수 있는 겁니다. 즉 생멸을 알아서 그러한 줄 아는 거에요.
그런즉 "공"을 다루는 중론에서, "속제를 알지 몬하면, 진제에 이를 수 없다"는 겁니다.
여하간 "식이 없는 상태"이든, "식이 있는 상태"이든...바로 그 상태에서의 "식"이 공한 겁니다.
"식"이 바로 "공(이름하길, 불생불멸)"인 겁니다. 공이기에, (연에 따라) 바로 그 상태의 식이 있고...공이기에, (연에 따라) 바로 그 상태의 식이 없습니다.
"식이 없는 상태"이든, "식이 있는 상태"이든...식의 상은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고정된 무엇이라면, 그러함이 알려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고 중론은, "공하기에 제법이 성립한다"고 합니다.
어디 다른 무엇이 있어, 혹은 드러나지 않고 감춰진 부분이 있어 비로소 공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중론의 언명들은 단순히 논리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당장 위에 제가 적은 서술을 봐도, 소위 [정]으로 알려지는 사실에 기초하지 않습니까?
또한 "속제를 알지 몬하면, 진제에 이를 수 없다"와 "공하기에 제법이 성립한다"는 함께 살펴지고 이해되어야 하는 겁니다.
애초에 제대로 된 이해라는 것이, 부분 부분이어서는 불가능한 것이죠...
좀 부가하여... 위에 보면, ["이름하길", 불생불멸]이라는 말이 몇 차례 나왔죠?
왜 그런가?
생멸에서 "상이 없는 상"임을 알게 되었기에, "상이 없는 상"이 불생불멸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거예요.
"속제를 알지 몬하면, 진제에 이를 수 없다"는 표현과도 연결되죠?
불생불멸이 공인데요. 공도 이름이기에, (일차적으로) 공공이라는 말도 나오는 겁니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방문객 작성시간 13.10.26 맨 처음 저 꼬리말을 적을 때, 다양한 접근방식이 있으며 그러한 예를 보이려고 한 건데요. 어쨌든 위와 같이 접근해도 "공"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유식:식만이 법(빠라마타)]이라는 점을 수긍한다면, 위의 논의만으로도 "법 즉 공, 공 즉 법(상즉)"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유식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 위와 같은 논리로 "상즉"을 끌어내려면...색온, 수온, 상온, 행온도 별도로 논의해야 할 겁니다. 그러한 논의에 접근하는 방식 중 하나로, 대승기신론의 체와 상과 같은 분별을 도입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체와 상과 같은 분별을 도입하여, 논의를 이끄는 경우...역시 유식과 비슷한 결론에 귀결시킬 수 있습니다. -
작성자방문객 작성시간 13.10.26 돌도 돌아도, 제 자리인 거죠... 이처럼 부처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이든, 사실(법)을 관하는 것이든...바로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아요. 뭐...저의 입장에서는...부처님 가르침의 "이해"이든, 사실(법)을 관하는 것이든, 차이점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저는 교와 관을 구별하는 것을 잘 이해몬한단 말이죠...저에게는 교와 관이 같거든요.
속제에 충실하여 진제에 이르는 경우, 애초에 불생불멸이라는 고정된 상을 만들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요. 속제에서 "그 어떤 드러남이든,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딱 그만큼의 식이 함께 한다"는 점을 알고 있거든요. 그러니 그런 일은 불가능합니다. -
작성자방문객 작성시간 13.10.26 논리적 엄밀성을 위해, 우선 논의를 식으로 제한할 때 그러하다는 겁니다. 불생불멸은 고정된 하나의 상으로 알려지는게 아니예요. 구체적인 드러남에서, 바로 그 구체적 드러남의 불생불멸인 것이지...그 구체적 드러남을 떠나 단일한 불생불멸이 있지는 않다는 겁니다. 이해가 어려울 수 있는데요. A식의 생멸에서 A식의 불생불멸, B식의 생멸에서 B식의 불생불멸...이런 식인 것이지... A식과 B식에 공통되는 (어떠한 관념적인) 불생불멸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르게 된다는 겁니다. 보다 엄밀히 말해, 애초에 생멸도...A의 생멸, B의 생멸...이런 식인 것이지... A와 B에 공통되는 (어떠한 관념적인) 생멸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르게 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