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탈을 가져오는 깊은 통찰
1. 전생 기억하기
2. 고통에 대한 통찰
3. 무상에 대한 깊은 통찰
4. 무아에 대한 깊은 통찰
1. 전생 기억하기
부처님께서는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이루셨습니다. 이에 관한 인정된 기록에 따르면, 선정에 들어 마음을 강화한 후 부처님께서 마음을 기울인 깊은 통찰의 바로 첫 부분은 전생에 관한 질문이었습니다. 경전에서 발견되는 '지도'에 따르면, 이것은 깊은 통찰을 얻기 위한 적절한 시작 장소입니다.
현대 불교계에는 전생의 타당성에 관한 많은 논쟁들이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견해들 중 많은 부분은 잘못된 정보에 바탕하고 있거나 오해하고 있거나 또는 깊은 통찰을 완전히 결여하고 있습니다.가장 초기경전들에 대한 연구는 윤회가(어떤 이들이 우리가 믿도록 만든) '문화적 부가물'이 아니라, 오히려 부처님의 깊은 통찰의 중심 기둥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예를 들자면, 잘못된 견해를 가진 사람에 대한 부처님의 표준적 정의는 업과 윤회를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MN 117, 5). 더욱 단호하게, 부처님께서는 「부정할 수 없는 가르침의 경」(MN 60. 8)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다른 세계(윤회)가 있기 때문에, '재생再生이 없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이는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당연히, 회의론자들은 윤회가 진실인지를 어떻게 지금 여기서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합니다. 저는 이것이 어떻게 확인되는지를, 즉 인생을 바꾸는 깊은 통찰들 중 하나(자신의 전생을 보는 것)를 어떻게 꿰뚫게 되는지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어느 날 저녁, 매우 평화로운 수행에서 나왔을 때, 저는 제 마음에게 간단하고 명확한 지시 하나를 주었습니다. '내가 가장 어렸을 때의 기억이 뭐지?' 그런 후 저는 내면의 고요함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면서, 현재순간의 내용에 주의를 기울엿습니다.
잠시 후, 익숙한 냄새가 저의 코를 자극했습니다. 냄새를 상상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현재순간에서 명확하게 그것을 다시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 냄새와 함께, 이것이 제가 아기였을 때의 유모차에서 나는 냄새라는 기묘하지만 확실한 기억이 찾아왔습니다. 이내 저는 유모차에 누워 있는 듯 새로 태어난 아기의 세계를 아주 세세하게 다시 경험하고 있엇습니다. 저는 제가 그때 가장 좋아했던 장난감 중 하나였던 귀여운 푸른색 돼지인형을 보고서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위해 걷게 하면 딸랑거리는 소리를 내던 이 인형은 이름이 포키였습니다. 놀랍도록 정확하고 편안하게, 저는 마흔이 넘은 스님의 몸으로 앉아서 새로 내어난 아기의 삶을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과정은 놀라울 정도의 확신을 동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아기가 40여 년 전의 나라는 사실에 대해 털끝만큼의 의심도 없었습니다. 이 경험은 저를 무척 놀라게 했습니다. 저는 나중에 내과의사로부터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서 처음 발달하는 감각이 후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기는 어머니와 (자신의 유모차 같은) 다른 익숙한 것들을 냄새를 통해 인지합니다. 저는 이것을 제 자신의 경험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전의 기억에 접근하는 방법을 이해하면, 수행자는 마음에 '더 이전으로 부탁해.'라고 명확하게 암시함으로써 계속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 기대 없이 내면의 고요로 다시 돌아가, 조용히 현재순간에 주의력을 유지합니다. 이전의 삼매 상태가 충분히 깊었다면, 또 다른 기억이 나타날 것입니다. 만일 기억이 나타난다면, 그것은 빨리 그리고 애쓰지 않아도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진짜 어릴 때 기억이라면, 이것이 어린 시절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놀라운 확신을 언제나 동반합니다. 만약 털끝만큼의 의심이라도 있다면, 그 기억은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본인이 바라는 생각일 것입니다.
저의 제자들 중 몇몇은 그들이 그들 어머니 자궁 안의 양수속에 떠서 따뜻하게 담겨 있는 것을 직접 다시 경험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래전 다른 장소에서 다른 몸으로 현재의 그들보다 훨씬 나이가 든 사람이 되는 더욱 이상한 기억들을 다시 경험합니다. 이것이 전생의 그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충격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이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선정에 의해 생긴 이러한 회상은 대개 기억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훨씬 명확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공상이라고 부르는 것과도 완전히 다릅니다. 이러한 회상은 '강력한 알아차림'의 상태에서만 일어납니다. 또한 매우 강력한 '인식의 명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둘, 즉 '강력한 알아차림'과 '인식의 명확성'은 신원身元이 퐇마된 정확한 인지라는 독특한 특징을 만듭니다.
또한, 흔히 이런 과거의 기억들은 너무 불쾌합니다. 그래서 바라는 마음의 산물일 수 없습니다.
저의 제자 중 한 명은 갓난아기로 처음 몇 주가 지났을 때를 기억했습니다. 그녀는 그녀를 사랑스럽게 안고 있는 여자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용모가 어머니로 알았던 사람과 너무 다른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녀가 입양되었을까요?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던 일이 있었을까요?
가능한 한 빨리 그녀는 이제까지 엄마라고 불렀던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정말 생물학적 어머니인지를 퉁명스럽게 물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놀라서, 먼저 왜 그녀가 그런 질문을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수행으로 유도된 기억에 대해 듣고 나서,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수행 중에 보았던 여자에 대해 설명해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쉽고 아주 자세하게 그 여자의 얼굴을 모사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누구를 묘사하는지를 즉시 알아차리고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 여자는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가 태어난 지 처음 몇 주가 되었을 대 고용한 유모였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이 이 여자를 이렇게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딸은 그녀의 엄마가 진짜 엄마였다는 사실에 안도했습니다.
어떤 기억들은 훨씬 더 불쾌합니다. 왜냐하면 이 기억들이 전생의 자신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제자들은 이것이 너무 불쾌하다고 느껴서 단 몇 초 맡에 이 기억에서 물러납니다. 전생의 죽음은 시간적으로 우리의 현존재에 가장 가가운 전생의 사건이고, 일반적으로 강렬한 경험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끔찍한 사건을 지켜보고 그것을 넘어 더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삼매에 일어난 두려움 없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진리에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 불쾌감은 이것이 (본인이) 바라는 환상이 아니라 자기 전생의 실재 사건들에 관한 정확하고 충격적인 기억이라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이러한 전생에 대한 기억은 네 가지 이유로 깊은 통찰로의 자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첫째,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깨달음으로 이끄는 네 가지 앎' 중 첫번째로 꼽았습니다.(MN 91, 33). 그리고 「유학의 경」에서는 부(MN53. 20)에서 부처님께서는 전생에 대한 기억을 암탉의 병아리 들이 처음으로 그 알을 깨고 나오는 것에 비유하셔습니다.
둘째, '진실로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선정 후에만 일어나듯이, 이것은 선정을 경험한 후에만 일어납니다(AN V11, 61)>
셋째, 전생의 기억은 믿음, 전통, 또는 추론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의 개인적 경험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넷째, 이러한 기억은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바꿉니다. 수행자는 엄청난 패러다임의 전환을 경험합니다. 예컨대, 자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다른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현격하게 줄어듭니다. 현재의 삶이 이제 다른 관점에서 보입니다. 말하자면, 금생이라는 하나의 작은 조각들이 아니라, 조각그림 맞추기 퍼즐 전체를 즉 '큰 그림'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서야 스스로의 확장된 경험에서 나온 일차적 정보를 통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고통이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부처님의 가장 지혜로운 제자였던 사리뿟다 존자가 다음과 같이 말한 이유를 이해 할 것이다.
"다시 태어나는 것이 고통의 의미이고, 다시 태어남을 끝내는 것이 행복의 의미이다(ANX,65 )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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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은하의 돛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5.02.02 이것으로 정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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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방문객 작성시간 15.02.03 해탈을 위해 반드시 선정에 들 필요는 엄는데요. [경]을 보면 부처님 당대에도 싸움과 알력이 좀 있었던 것 같기는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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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방문객 작성시간 15.02.04 체험은 거의 비슷해서, 비슷한 형식의 서술이 나오기 마련인데요. 어쨌든 전생 기억 엄어도 해탈할 수 있습니다. [경]에서 그랬던 것 같은데요.
우리가 [경]을 포함해 불교 서술을 접할 때, [ 이러한 서술은, 어떠한 특정 "스쿨" 즉 "(전문적인) 수행자 집단"의 전승일 수도 있다 ]는 측면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즉 일반화시키는 것은, 오히려 부적절한 경우가 많습니다. -
작성자은하의 돛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5.02.04 네..
말씀대로 재가자가 수행자집단의 전승을 꼭 따라하려다 보면..오히려 신심을 일으키는 일에 부적절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굳건한 신심만으로도 해탈에 이를 수 있다는 말씀 많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그간 힘도 냈던 것이구요. 만일 선정만이 해탈을 향한 길이라고 했다면 아마 벌써 포기했을지도 모를일이죠.
하지만 신심이 굳어진 지금은 해탈이니 선정이니 하는 그러한 것들이 하나도 중요치 않게되었어요.
불법에 대한 강렬한 신심은... 해탈을 취하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과 늘 함께하겠다는 그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그것이 신심의 위대성이고, 불법의 위대성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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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방문객 작성시간 15.02.05 네, 신심이 가장 중요하고 근원적인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