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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樹의 中頌- 第24 觀四諦品(40偈) 四聖諦에 대한 관찰

작성자은하의 돛|작성시간17.12.16|조회수224 목록 댓글 5

 ◈ 제24 관사제품(觀四諦品) : 40송. 4제(諦)와 관련해서 2제의 본성을 밝히고, 공에 집착함을 경계하여 이로써 법의 실상을 드러낸다. 먼저 공관(空觀)에 대한 반론을 소개한다. 즉 만약 일체가 모두 공이라면, 곧 4성제와 4도과(道果)와 불 법 승의 3보(寶)도 있을 수 없으니, 공법(空法)은 인과를 무너뜨리고 죄와 복을 무너뜨리며, 나아가 세속의 모든 법을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답한다. "너는 무엇이 공상(空相)이고, 어떤 인연으로 공을 설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또 공의 뜻도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의혹이 생긴다.


여러 부처님은 2제(諦)를 가지고 중생을 위해서 법을 설한다. 첫째는 세속제(世俗諦)이고 둘째는 제일의제(第一義諦)이다. 만약 2제를 분별해서 알지 못하면 곧 깊고 깊은 불법의 진실한 뜻을 알지 못할 것이다. 속제에 의하지 않고는 제일의를 얻지 못하며, 제일의를 얻지 못하고는 열반을 얻을 수 없다. 또 공의 뜻이 있으므로 모든 법은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공의 뜻이 없다면 일체는 성립하지 못할 것이다.


여러 인연으로 생겨난 법을 나는 공이라고 설한다. 왜냐하면 중연(衆緣)이 화합해서 사물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사물은 여러 인연에 속하기 때문에 자성이 없고, 자성이 없으므로 공이다. 그러나 공도 또한 공이다. 그것은 다만 중생을 인도하기 위해 가명(假名)으로 설한 것이다. 또 그것은 유(有)와 무(無)의 2변(邊)을 떠났으므로 중도(中道)라고 부른다.


오히려 만약 일체가 공이 아니라면 곧 생멸이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곧 4성제의 법 등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또 공이 없다면 얻지 못한 것은 영원히 얻을 수 없을 것이며, 번뇌를 끊을 수 없고, 고통이 다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어서 만약 공의 뜻이 무너진다면 인연성이 무너지고, 인연성이 부서지면 3보가 무너지며, 3보가 무너지는 것은 곧 자신을 무너뜨리는 것이 될 것이라고 설한다.

 

第24 觀四諦品(40偈) 四聖諦에 대한 관찰


ryasatyapar k n ma caturvi atitama prakara am
성스러운 진리(聖諦)의 고찰이라고 이름하는 제24장(40게)


24-1) 若一切皆空 無生亦無滅 如是則無有 四聖諦之法
만일 일체가 모두 空하다면 生도 없고 滅도 없다. 그렇다면 四聖諦의 法도 존재하지 않는다.


24-1) yadi nyamida sarvamudayo n sti na vyaya /
catur m ryasaty n mabh vaste prasajyate//
만일 이 모든 것이 空하다면 일어남(起)도 없고 소멸함도 없다. (그래서) 그대는 四聖諦도 존재하지 않다는 오류에 빠진다.


24-2) 以無四諦故 見苦與斷集 證滅及修道 如是事皆無
四聖諦가 존재하지 않기에 苦의 見과 集의 斷과 滅의 證과 道의 修, 이런 것들이 모두 없다.


24-2) parij ca prah am ca bh van s k ikarma ca/
catur m ryasaty n mabh v nnopapadyate//
사성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완전하게 아는 知>와 <(번뇌의) 끊음>과 <실천하는 수행>과 <깨달음의 증득>도 성립하지 않는다.


24-3) 以是事無故 則無四道果 無有四果故 得向者亦無
그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네가지 道果는 존재하지 않는다. 四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向을 얻은 자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24-3) tadabh v nna vidyante catv ry ryaphal ni ca/
phal bh ve phalasth no na santi pratipannak //
그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四果도 존재하지 않는다. 果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果에 오른 자도 없고 (그 果로) 向하여 나아가는 자(四向)도 존재하지 않는다.


24-4) 若無八賢聖 則無有僧寶 以無四諦故 亦無有法寶
만일 여덟가지 賢聖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僧寶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성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法寶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24-4) sa gho n sti na cetsanti te ' au puru apudgal /
abh v cc ryasaty n saddharmo 'pi na vidyate//
만일 그런 여덟가지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僧伽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 사성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正法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24-5) 以無法僧寶 亦無有佛寶 如是說空者 是則破三寶
법보와 승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불보도 역시 없다. 이처럼 공을 설하는 자는 삼보를 파괴한다.


24-5) dharme c sati sa ghe ca katha buddho bhavi yati/
eva tr yapi ratn ni bruv ah pratib dhase//
法과 僧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佛이 존재하겠는가? 이와 같이 말한다면 그대는 三寶를 파괴하는 것이 되리라.


24-6) 空法壞因果 亦壞於罪福 亦復悉毁壞 一切世俗法
空이란 법은 인과도 파괴하고 죄와 복도 파괴하고 일체의 세속적인 존재를 모두 훼손하고 파괴한다.


24-6) nyat phalasadbh vamadharma dharmameva ca/
sarvasa vyavah r ca laukik n pratib dhase//
空性을 주장한다면 그대는 果報의 실재와 非法과 法과 세간에서의 일체의 언어 관습을 파괴하게 된다.


24-7) 汝今實不能 知空空因緣 及知於空義 是故自生惱
그대는 지금 空과 空인 까닭과 空의 意義를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스스로 고뇌를 생한다.


24-7) atra br ma nyat y na tva vetsi prayojanam/
nyat nyat rtha ca tata eva vihanyase//
여기서 우리들은 말한다. "그대는 空性에서 (그) 효용과 空性과 또 空性의 意義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대는 그처럼 저항한다."라고.


24-8) 諸佛衣二諦 爲衆生說法 一以世俗諦 二第一義諦
모든 부처님들께서는 二諦에 의거하여 중생을 위해 설법하신다. 첫째는 世俗諦로써, 둘째는 第一義諦로써.


24-8) dve satye samup ritya buddh n dharmade an /
lokasa v tisatya ca satya ca param rthata //
부처님들의 敎法은 二諦에 의거한다. (그것은) 세간에서 행해지는 진리와 勝義로서의 진리이다.


24-9) 若人不能知 分別於二諦 則於深佛法 不知眞實義
만일 사람이 二諦를 분별함을 알 수 없다면 심오한 佛法에서 진실한 뜻을 알지 못한다.


24-9) ye 'nayorna vij nanti vibh ga satyayordvayo /
te tattva na vij nanti gambh ra buddha sane//
이 두가지 진리의 구별을 모르는 사람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있는 深遠한 진실을 알지 못한다.


24-10) 若不依俗諦 不得第一義 不得第一義 則不得涅槃
만일 俗諦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第一義諦를 얻을 수 없다. 제일의제를 얻지 못하면 열반을 얻을 수 없다.


24-10) vyavah raman ritya param rtho na de yate/
param rthaman gamya nirv na n dhigamyate//
(세간의) 언어 관습에 의거하지 않고서는 최고의 意義는 가르쳐지지 않는다. 최고의 의의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열반은 증득되지 않는다.


24-11) 不能正觀空 鈍根則自害 如不善呪術 不善捉毒蛇
空을 올바로 觀할 수 없어서 둔근기는 스스로를 해친다. 잘못된 呪術이나 잘못 잡은 毒蛇와 같이.


24-11) vin ayati durd nyat mandamedhasam/
sarpo yath durg h to vidy v du pras dhit //
잘못 파악된 空性은 지혜가 열등한 자를 파괴한다. 마치 잘못 잡은 뱀이나 잘못 닦은 呪術과 같이.


24-12) 世尊知是法 甚深微妙相 非鈍根所及 是故不欲說
세존께서는 이 법이 아주 깊고 미묘한 相이어서 둔근기가 미칠 바 아니라고 아셨다. 그래서 설하려고 하지 않으셨다.


24-12) ata ca pratyud v tta citta de ayitu mune /
dharma matv sya dharmasya mandairduravag hat m//
그래서 이 법이 미천한 사람에게는 이해되기 어려우리라고 생각하셔서 (釋迦)牟尼(=聖者)의 설법하려는 마음은 후퇴하였다.


24-13) 汝謂我著空 而爲我生過 汝今所說過 於空則無有
그대는 내가 空에 집착하여 내가 허물을 내었다고 말하지만 그대가 지금 말하는 (그런) 허물은 空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24-13) nyat y madhilaya ya puna kurute bhav n/
do aprasa go n sm ka sa nye nopapadyate//
그대는 다시 空性인 것에 집착을 짓는다. 오류에 집착하는 것은 우리들의 것이 아니다. 그것(집착)은 공성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24-14) 以有空義故 一切法得成 若無空義者 一切則不成
空의 이치가 있기 때문에 모든 존재가 성립할 수 있다. 만일 공의 이치가 없다면 어떤 존재도 성립하지 않는다.


24-14) sarva ca yujyate tasya nyat yasya yujyate
sarva na yujyate tasya nya yasya na yujyate//
空性이 타당한 것, 그것에서는 모든 것이 타당하다. 공성이 타당하지 않은 것, 그것에서는 모든 것이 타당하지 않다.


24-15) 汝今自有過 而以廻向我 如人乘馬者 自忘於所乘
그대는 지금 스스로 과오가 있는데 (그것을) 나에게 돌린다. 마치 말을 탄 사람이 스스로 탄 것을 잊고 있는 것처럼.


24-15) sa tva do n tman y nasm su parip tayan/
a vamev bhir ha sanna vamev si vism ta //
그러한 그대는 자신에 속한 과오들을 우리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마치 그대가 말을 타고 있으면서 그 말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이.


24-16) 若汝見諸法 決定有性者 卽爲見諸法 無因亦無緣
만일 그대가 모든 존재들이 분명히 自性이 있다고 본다면 그것은 모든 존재들이 因도 없고 緣도 없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24-16) svabh v dyadi bh v n sadbh vamanupa yasi/
ahetupratyay n bh v stvameva sati pa yasi//
만일 그대가 존재들이 자성으로서 실재한다고 생각한다면, 그와 같다면 그대는 존재들을 因과 緣이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24-17) 卽爲破因果 作作者作法 亦復壞一切 萬物之生滅
그것은 곧 인과와 행위와 행위자와 행위되는 것을 파괴하는 것이며 일체 만물의 生滅을 다시 파괴하는 것이기도 하다.


24-17) k rya ca k rana caiva kart ra kara a kriy m/
utp da ca nirodha ca phala ca pratib dhase//
그대는 결과와 원인과 행위의 주체와 수단과 작용과 발생과 소멸과 과보를 파괴한다.


24-18) 衆因緣生法 我說卽是無 亦爲是假名 亦是中道義
여러가지 인연으로 生한 존재를 나는 無라고 말한다. 또 假名이라고도 하고 또 中道의 이치라고도 한다.


24-18) ya prat tyasamutp da nyat t pracak mahe/
s praj aptirup d ya pratipatsaiva madhyam //

연기인 것 그것을 우리들은 空性이라고 말한다. 그것(=공성)은 의존된 假名이며 그것(=공성)은 실로 中道이다.


24-19) 未曾有一法 不從因緣生 是故一切法 無不是空者
인연으로부터 발생하지 않는 존재는 단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일체의 존재는 공 아닌 것이 없다.


24-19) aprat tya samutpanno dharma ka cinna vidyate/
yasm ttasm da nyo hi dharma ka cinna vidyate//

緣하여 生起(연기)하지 않은 존재(=法)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空하지 않은 존재는 그 무엇도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24-20) 若一切不空 則無有生滅 如是則無有 四聖諦之法
만일 일체의 것이 공하지 않다면 生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四聖諦의 진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24-20) yadya nyamida sarvamudayo n sti na vyaya /
catur m ryasaty n mabh vaste prasajyate//
만일 이 모든 것이 공하지 않다면 생기는 존재하지 않고 소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대는 네가지 성스러운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오류에 빠진다.


24-21) 若不從緣生 云何當有苦 無常是苦義 定性無無常
만일 緣으로부터 발생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苦가 존재하겠는가? 無常은 苦의 이치이지만 결정된 自性으로는 無常도 없다.


24-21) aprat tya samutpanna kuto du kha bhavi yati/
anityamukta duhkha hi tatsv bh vye na vidyate//
緣하지 않고 生起(緣起)한 苦가 어떻게 존재하겠는가? 왜냐하면 "無常한 것은 苦이다"라고 말해졌는데 그것(無常한 것)은 自性에 있어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24-22) 若苦有定性 何故從集生 是故無有集 以破空義故
만일 苦가 확고한 자성을 갖는다면 어떻게 集에서 생하겠는가? 그러므로 공의 이치를 파했기에 集은 존재하지 않는다.


24-22) svabh vato vidyam na ki puna samude yate/
tasm tsamudayo n sti nyat pratib dhata //
자성으로서 지금 존재하고 있는 그 무엇이 다시 生起하겠는가? 그러므로 空性을 파괴한다면 集起는 존재하지 않는다.


24-23) 苦若有定性 則不應有滅 汝著定性故 卽破於滅諦
苦가 만일 확고한 자성이 있다면 소멸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대는 확고한 자성에 집착하므로 滅諦를 파괴하게 된다.


24-23) na nirodha svabh vena sato du khasya vidyate/
svabh vaparyavasth n nnirodha pratib dhase//
自性으로서 존재하는 苦에 소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대는 자성을 고집하기 때문에 소멸을 파괴하게 된다.


24-24) 苦若有定性 則無有修道 若道可修習 卽無有定性
苦가 만일 확고한 자성이 있다면 修道는 존재하지 못한다. (반대로) 만일 道가 修習할 수 있다면 확고한 자성은 존재하지 못한다.


24-24) sv bh vye sati m rgasya bh van nopapadyate/
ath sau bh vyate m rga sv bh vya te na vidyate//
道가 자성으로서 존재한다면 (道의) 修習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道가 수습된다면 그대가 말한 자성으로서의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24-25) 若無有苦諦 及無集滅諦 所可滅苦道 竟爲何所至
만일 苦諦 존재하지 않고 集諦나 滅諦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苦를 滅할 수 있는 것인 道는 마침내 어떻게 도달되겠는가?


24-25) yad du kha samudayo nirodha ca na vidyate/
m rgo du khanirodhatv tkatama pr payi yati//
苦와 集과 滅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 苦의 滅로부터 있게 되는 道가 어떻게 도달되겠는가?


24-26) 若苦定有性 先來所不見 於今云何見 其性不異故
만일 苦가 확고한 자성이 있다면 앞서서 보지 못한 것인데 지금 어떻게 볼 수 있겠는가? 그 자성은 變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4-26) svabh ven parij na yadi tasya puna katham/
parij na nanu kila svabh va samavasthita //
만일 자성으로서 완전히 파악되지 않는 것이라면 어떻게 그것의 완전한 파악이 다시 있겠는가? 실로 확립되어 있는 것이 自性 아닌가?


24-27) 如見苦不然 斷集及證滅 修道及四果 是亦皆不然
苦를 파악하는 것이 옳지 않은 것처럼 集을 斷하고 滅을 證하며 道를 修하는 것 및 四果도 역시 모두 옳지 않다.


24-27) prah as k tkara e bh van caivameva te/
parij vanna yujyante catv ryapi phal ni ca//
<(苦諦를) 완전히 파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斷滅>도 <깨달음의 획득>도 <修習>도 또 四果도 그대에게 있어서 타당하지 않다.


24-28) 是四道果性 先來不可得 諸法性若定 今云何可得
이 네가지 도의 과보의 자성은 원래 포착되지 않는 것인데 모든 존재의 자성이 확립되어 있다면 지금 어떻게 그것을 포착하겠는가?


24-28) svabh ven nadhigata yatphala tatpuna katham/
akya samadhigantu sy tsvabh va parig h ata //
자성이 보전되어 있다면 자성으로서 증득되지 않는 (四)果, 그것을 다시 증득함이 어떻게 가능하겠느냐?


24-29) 若無有四果 則無得向者 以無八聖故 則無有僧寶
만일 四果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四向을 획득한 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八聖이 존재하지 않기에 승보도 존재하지 않는다.


24-29) phal bh ve phalasth no na santi pratipannak /
sa gho n sti na cetsanti te ' au puru apudgal //
(四)果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果에 도달하는 자도 없고 그 과로 향해 나아가는 자도 없다. 만일 이들 八賢聖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僧伽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24-30) 無四聖諦故 亦無有法寶 無法寶僧寶 云何有佛寶
사성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법보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법보와 승보가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불보가 존재하겠는가?


24-30) abh v cc ryasaty n saddharmo 'pi na vidyate/
dharme c sati sa ghe ca katha buddho bhavi yati//
(四)聖諦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正法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法과 僧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佛이 존재하겠는가?


24-31) 汝說則不因 菩提而有佛 亦復不因佛 而有於菩提
그대는 菩提를 因하지 않고서 佛이 있고 또 佛을 因하지 않고서 보리가 있다고 말하는 꼴이 된다.


24-31) aprat ty pi bodhi ca tava buddha prasajyate/
aprat ty pi buddha ca tava bodhi prasajyate//
깨달음을 緣하지 않고도 佛이 있다는 오류가 그대에게 있어서 발생한다. 또佛을 緣하지 않고도 깨달음이 있다는 오류가 그대에게 있어서 발생한다.


24-32) 雖復勤精進 修行菩提道 若先非佛性 不應得成佛
비록 다시 부지런히 정진하여 보리도를 수행하여도 원래 佛性이 없으면 성불할 수 없으리라.


24-32) ya c buddha svabh vena sa bodh ya gha annapi/
na bodhisattvacary y bodhi te 'dhigami yati//
그대의 말대로라면(te) 자성으로서 부처가 아닌 자, 그자가 깨달음을 위해 정진하여도 보살행에서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하리라.


24-33) 若諸法不空 無作罪福者 不空何所作 以其性定故
만일 모든 존재가 空하지 않다면 죄나 복을 짓는 자도 없다. 空하지 않은 것은 그 자성이 확고히 있는데 어떻게 지어지겠는가?


24-33) na ca dharmamadharma v ka cijj tu kari yati/
kima nyasya kartavya svabh va kriyate na hi//

또 어느 누구도 法(=善)과 非法(=惡)을 作爲하지 못하리라. 空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엇이 作爲되겠는가? 왜냐하면 자성은 작위되지 않기 때문이다.


24-34) 汝於罪福中 不生果報者 是則離罪福 而有諸果報
그대는 (空하다면) 죄나 복을 지어도 과보가 생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不空이라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죄나 복을 떠나서 모든 과보가 존재한다는 말이 된다.


24-34) vin dharmamadharma ca phala hi tava vidyate/
dharm dharmanimitta ca phala tava na vidyate//
그대(의 주장)에서는 法과 非法(을 행함)이 없이도 과보가 존재하는 꼴이 된다. 그대(의 주장)에서는 법과 비법으로 인한 과보는 존재하지 않는 꼴이 된다.


24-35) 若謂從罪福 而生果報者 果從罪福生 云何言不空
만일 죄나 복에서 과보가 생기는 것이라면 과보는 (그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죄나 복에( 의존해)서 생기(기에 실체가 없)는데 어떻게 不空이라고 말하느냐?


24-35) dharm dharmanimitta v yadi te vidyate phalam/
dharm dharmasamutpannama nya te katha phalam//
혹은 만일 그대에게 있어서 法과 非法으로 인한 과보가 존재한다면 법과 비법에서 生起한 과보가 그대에게 있어서 어떻게 不空이겠느냐?


24-36) 汝破一切法 諸因緣空義 則破於世俗 諸餘所有法
그대가 일체법의 모든 인연과 空한 이치를 파괴한다면 그것은 곧 세속에 있는 다른 모든 존재를 파괴하는 꼴이다.


24-36) sarvasa vyavah r ca laukik n pratib dhase/
yatprat tyasmutp da nyat pratib dhase//
그대가 緣起이고 空性인 것을 파괴한다면 그대는 또 세간에서의 모든 언어 관습을 파괴하는 꼴이 된다.


24-37) 若破於空義 卽應無所作 無作而有作 不作名作者
만일 空의 이치를 파괴하면 지을 것도 없다. 지은 것도 없는데 지었다고 하고 짓지도 않았는데 지은 놈이라 부르게 된다.


24-37) na kartavya bhavetki cidan rabdh bhavetkriy /
k raka sy dakurv a nyat pratib dhata //
空性을 파괴하는 자에게는 작위할 그 어떤 대상도 없으며 작용이 시작함도 없으며 행위자는 어떠한 행위도 하지 않게 되리라.


24-38) 若有決定性 世間種種相 則不生不滅 常住而不壞
만일 확고한 자성이 있다면 세간의 다양한 모습들은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常住하여 壞滅되지 않는 것이리라.


24-38) aj tamaniruddha ca k astha ca bhavi yati/
vicitr bhiravasth bhi svabh ve rahita jagat//
자성이 있다면 세계(활동계)는 갖가지 상태를 떠나서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아 常住不動인 것으로 되리라.


24-39) 若無有空者 未得不應得 亦無斷煩惱 亦無苦盡事
만일 空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직 획득되지 않은 것은 획득할 수 없고 번뇌도 끊을 수 없으며 苦가 모두 사라지는 일도 있을 수 없다.


24-39) asa pr ptasya ca pr ptirdu khaparyantakarma ca/
sarvakle aprah na ca yadya nya na vidyate//
만일 空하지 않다면 아직 획득되지 않은 것이 획득하는 것도 苦를 종식시키는 행위도 또 모든 번뇌를 제거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꼴이 된다.


24-40) 是故經中說 若見因緣法 則爲能見佛 見苦集滅道
그러므로 경전에서는 "연기의 법칙을 본다면 능히 佛을 볼 수 있고 苦, 集, 滅, 道를 본다."고 설한다.


24-40) ya prat tyasamutp da pa yat da sa pa yati/
du kha samudaya caiva nirodha m rgameva ca//
이런 緣起를 보는 자, 그는 이것을 본다. 즉 苦와 集 그리고 滅과 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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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은하의 돛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12.16 24-1) 게송부터 24-6)까지의 게송은
    공을 '없음, 혹은 허무주의'등으로 잘못 파악한 대론자의 논박입니다.
    그에대해 용수보살께서 말씀하시죠.
    24-14) 空의 이치가 있기 때문에 모든 존재가 성립할 수 있다. 만일 공의 이치가 없다면 어떤 존재도 성립하지 않는다. 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사향 사과의 팔성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일체가 공하기에 가능하다고 하십니다.

    ==
    공= 무자성=연기 임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쉽지요.
  • 작성자은하의 돛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12.16 24-40) ya prat tyasamutp da pa yat da sa pa yati/
    du kha samudaya caiva nirodha m rgameva ca//
    이런 緣起를 보는 자, 그는 이것을 본다. 즉 苦와 集 그리고 滅과 道.
  • 작성자은하의 돛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12.20 24-17) 卽爲破因果 作作者作法 亦復壞一切 萬物之生滅
    그것은 곧 인과와 행위와 행위자와 행위되는 것을 파괴하는 것이며 일체 만물의 生滅을 다시 파괴하는 것이기도 하다.

    24-17) k rya ca k rana caiva kart ra kara a kriy m/
    utp da ca nirodha ca phala ca pratib dhase//
    그대는 결과와 원인과 행위의 주체와 수단과 작용과 발생과 소멸과 과보를 파괴한다.
    ======
    한문번역 : 행위와 행위자와 행위되는 것.
    빨리어 번역: 행위의 주체와 수단과 작용과...

    한문번역은 꿰어맞추기라도 하겠는데 빨리어 번역은 요령부득이라...
    한문번역부분 (행위와 행위자와 행위되는 것)을 (인식작용과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으로 꿰어맞춰봤어요. .
  • 작성자은하의 돛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12.20 (행위와 행위자와 행위되는 것)에서 '행위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궁리하다가 '행위의 대상'으로 바꿔보니 좀 풀리는 것 같아서요.
    그런데 빨리어 번역을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아서.. 참 괴롭단 말이예요.
  • 작성자은하의 돛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7.12.20 ===
    M121. 공에 대한 작은 경 5번부터 12번까지에 보면.. 계속 언급되고 있어요.
    인식주체(수행승), 인식작용 ( 지각에 정신을 기울이는, 혹은 지각에 정신을 기울이지 않는 ), 인식 대상 (마을, 사람들, 숲, 땅, 무한공간, 무한의식, 아무것도 없는 세계 등등)

    사실 공에대한 작은경을 먼저 읽고 관사제품을 읽으면 많은 부분이 술술 읽히는데요. 17번 게송에서 사용되고 있는 단어 그 중에서도 빨리어본 해석쪽의 단어가 저를 괴롭혔거든요.

    빨리어본 해석 <행위의 주체와 수단과 작용과>를 제 편의대로 <인식주체, 인식작용, 인식대상>으로 바꿔서 이해해도 족한지는 의문입니다.
    조언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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