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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토 진 종 ]

조주의 선문답

작성자용수|작성시간12.04.19|조회수739 목록 댓글 7

어느 날 어떤 학승이 조주 선사에게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
학승은 다시 물었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위로는 부처로부터 아래로는
곤충,미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불성이 있다 했는데,
어째서 개에게는 불성이 없습니까?"
조주 선사는 대답했다.
"분별하기 때문에 없다."

어느 날 또 다른 학승이 조주 선사에게 물었다.
"달마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니라(庭前柏樹子)."
"선사께서는 비유를 들어 말하지 마십시오."
"나는 비유를 들어 말하지 않는다."
"달마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
이에 조주 선사는 다시 대답했다.
"뜰 앞의 잣나무니라."

하루는 젊은 유생(儒生)이 조
주 선사를 찾아와 손에 들고 있는 주장자를 보면서 물었다.
"부처님은 중생의 원을 저버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그렇다."
"저는 스님께서 가지고 계신 주장자를 갖고 싶습니다."
"군자는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을 빼앗는 법이 아니다."
이 말에 유생은 얼른 응수했다.
"스님, 저는 군자가 아닙니다."
유생의 이 기지는 매우 뛰어났다.
그러나 그 기지는 조주 선사의 발 아래 있을 따름이었다.
조주 선사는 유생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한칼에 쓰러뜨렸다.
"나도 부처가 아니다."

관직에 있는 사람이 조주 선사를 찾아와서 물었다.
"대선지식도 지옥에 갑니까?"
"암,가고말고. 내가 제일 먼저 간다."
"도인이 어째서 지옥에 갑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내가 지옥에 가지 않으면 어떻게 당신을 볼 수 있겠는가?"

조주 선사에게는
'끽다거(喫茶去)'라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즉 '차나 한잔 마시게'라는 뜻이다.
조주 선사가 자신을 찾아오는 어느 학인을 보고 물었다.
"그대는 이곳을 와본 적이 있는가?"
"처음입니다."
"차나 한잔 들게"
조주 선사는 또 다른 학인을 보고 물었다.
"그대는 이곳을 와본 적이 있는가?"
"예, 전에 왔었습니다."
"차나 한잔 들게"
이때 한 스님이 물었다.
"선사께서는 어째서 이곳에 왔던 사람이나,
처음 온 사람에게 차
나 한잔 들라고 하십니까?"
이 말에 조주 선사는 그 스님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네도 차나 한잔 들게."

조주 선사는 어느 날 대중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의 이 모임에는 굴 안에 있는 사자도 있다.
그런데 사자 새끼만 없구나."
이때 어떤 스님이 일어서서 손가락을 서너 번 튀기니
조주 선사가 물었다.
"왜 그러는가?"
"사자의 새끼입니다."
이에 조주 선사가 말했다.
"내가 사자 새낄고 한 말이 이미 잘못된 것인데,
자네가 다시 발길질을 하니 무슨 쓸모가 있나."

한번은 초심자가 조주 선사를 찾자와
겸손한 자세로 말했다.
"빈손으로 왔습니다."
"그러면 내려놓게."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을 내려놓습니까?"
"그럼 계속해서 들고 있게."

그의 제자 가운데 한 명이 죽었을 때였다.
방장인 조주 선사도 그의 장례 핼렬에
참가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많은 죽은 사람이 한 사람의
산 사람을 쫓아가는군."

어느 날 한 스님이 조주 선사의 초상화를 그려서
선사에게 바쳤다.초상화를 받은 조주 선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나의 모습이라면 그대는 나를 죽일 수 있을 걸세.
그러나 그렇지 않으니 밖에 내다가 태워 버리게나."

참선하는 어떤 스님이 조주 선사에게 물었다.
"스님, 가장 다급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선사는 다급하게 일어나며 말했다.
"오줌 좀 눠야겠다.이런 사소한 일도
이 늙은 중이 직접 해야 하는구나!"

한 스님이 조주 선사를 찾아왔다.
"저는 공부한 지가 얼마 되지 않습니다.
큰스님께서 잘 지도해 주십시오."
이에 선사는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아침 먹었느냐?"
"예."
"그럼 어서 가서 밥그릇이나 씻어라."
하루는 어떤 스님이 조주 선사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떤 것이 조주입니까?"
조주 선사가 대답했다.
"동문도 있고,서문도 있고,남문도 있고,북문도 있다."

조주 선사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오래 전부터 스님의 돌다리에 관해서 들었습니다만
와서 보니 통나무 다리만 보이는군요."
조주 선사가 말했다.
"너는 통나무 다리마 보고 돌다리는 못 보는구나."
"어떤 것이 돌다리입니까?"
"당나귀도 건너고,말도 건너지."

조주 선사가 그의 시자
문원(文遠)과 못나기 내기를 한 적이 있다.
문원이 먼저 조주 선사에게 말을 하라고 하자
조주 선사가 입을 열었다.
"나는 한 마리 나귀와 같다."
문원이 말했다.
"저는 그 당나귀의 다리와 같습니다."
선사가 화답했다.
"나는 나귀 똥이다."
문원이 말했다.
"저는 그 똥 속의 벌레와 같습니다."
선사가 물었다.
"너는 똥 속에서 무엇을 하려느냐?"
문원이 대답했다.
여름 안거를 지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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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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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황벽 | 작성시간 12.04.19 자유의지..나에게는 힘이 개코만큼도 없졍..
    카르마, 업력, 지금까지의 정보의 총합의 드러남으로,, 걍 꾸역꾸역 살아간다는..
    이 글을 쓰는 것도 다~ 업력이여..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입니다. 제가 한게 절대 아닙니다. 주어가 엄써여'(엠비씨 패러디ㅋ)
  • 작성자심심 | 작성시간 12.04.19 선불교의 깨달음은 본래면목을 보는 것인데 본래면목이 생사를 초월해 존재하는 것인지 단순히 분별심이 사라진 편안한 상태인지 불분명한 거 같습니다. 선문답으로는 죽고나면 우째되는지 알 수 없죠...선불교는 현세 중심적인 종교라고 봅니다.[지금 여기 깨어있기]가 중심사상이죠...그래서 부처님이 윤회설을 받아들인 건 [방편]이라고 말하는 선사분들도 있는 거 같습니다...
  • 작성자방문객 | 작성시간 12.04.20 분별심이 사라지면, 생사가 엄어요... 식이 분별식입니다. 산냐와 함께 하지 않는 중생은, 스스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릅니다. 식이 엄으니까...
  • 작성자용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4.20 보통 믿어야 할부분은 안믿고 믿지않아도 될 부분은 믿을려고 하죠.
    분별심은 사라질수 없어요. 1차화살은 그냥 맞아야하고 탐진치와 분별심은 이미 취한 상태예요.
    불교의 윤회라는 것이 상견도 아니고 단견도 아닌 윤회를 뜻하는 것이죠.
    머리가 지금 여기 깨어있는 것이 아니라 몸이 지금 여기 깨어있는 것이죠.
  • 작성자용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4.20 상견도 아니고 단견도 아닌것은 공한것이예요. 그렇다고 공이 정답이 아니죠. 비공과 함께 얘기해야하니깐요.
    보통 공이라고하면 비공도 포함되어있죠. 연기를 설명하기 쉽게 할려고 공을 내셔웠는데 공병에 걸렸죠. 선문답처럼 말이죠. 그래서 공아닌 비공도 함께 얘기해야해요. 그럼 다시 연기로 돌아올수뿐이 없는데..
    중생들이 이해하지못하니깐 불교교리도 뺑뺑 돌고 있어요.
    쉽게 할려고 했는데 양면을 보지 않기 때문에 안하니만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이죠.
    알아야 할부분은 알고 싶지 않고 알지말아도 될부분만 알려고 한다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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