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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樹의 中頌 - 第2 觀去來品(25偈) 去來에 대한 관찰

작성자은하의 돛| 작성시간16.08.10| 조회수9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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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은하의 돛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6.08.10 상단 박스에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25송. 운동과 운동의 주체가 무자성(無自性) 공(空)임을 논한다.]
    그것을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 행위와 행위자가 무자성 공임을 논한다. > < 오취온과 오온이 무자성 공임을 논한다. >
    행위는 행위자를 내포하고 있다. 행위자는 행위를 내포하고 있다. 행위 혹은 행위자라 이름하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일 뿐이다. 행위를 떠난 행위자도 있을 수 없고, 행위자를 떠난 행위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절대적 행위도 없고 절대적 행위자도 없다.
    오취온은 오온을 내포하고 있다. 오온은 오취온을 내포하고 있다. 오취온 혹은 오온이라 이름하는 것도 상대적 개념일 뿐이다.
  • 작성자 은하의 돛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6.08.10 오취온을 떠난 오온이 있을 수 없고, 오온을 떠난 오취온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연기에 의하지 않은 절대적 오온은 있을 수 없고, 연기에 의하지 않고 드러나는 절대적 오취온은 있을 수 없다.
    운동, 운동의 주체, 행위, 행위자, 오취온, 오온.... 그 무엇이 되었든 연기(공)에서의 일이다. 그러므로 어떤 개념적 이름을 보더라도 거기에서 연기(무자성)를 살필일이다.

    오온과 오취온을 분별하여 ... 오취온은 번뇌 중생의 일이고, 오온은 번뇌가 소멸한 아라한의 모습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과연 오온과 오취온은 절대적으로 분별되는 개념일까?
    관거래품을 읽는 내내... 오온과 오취온의 관계가 끊임없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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