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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탐구

원어성경연구라는 미혹의 덫을 조심하라.

작성자이병천|작성시간16.07.05|조회수508 목록 댓글 24



원어성경연구라는 미혹의 덫을 조심하라.  

 

성경의 진리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하여 때때로 성경원어의 의미를 찾아보고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의 원문은 구약이 히브리어와 약간의 아람어로 되어 있고 신약은 전체가 헬라어로 되어있습니다. 성경을 연구함에 있어 히브리어와 아람어 헬라어의 의미들을 참조할 때 여러 가지의 유익들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일예로, 성경의 아버지라는 개념을 이해할 때, 히브리어로 아버지는 “아브 ba”라고 합니다. “알레프 a”와 “베이트 b”가 합쳐진 말입니다. 히브리 알파벳은 그 자체에 많은 의미들을 가지고 있는데, “알레프 a”는 힘이 좋은, 능력이 있는, 지도자(leader)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소(cow)를 뜻합니다. 뿔이 달린 소의 상형문자가 “알레프 a”라는 문자이기 때문입니다. “베이트 b”는 집(house), 텐트 그리고 가족(family)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붕이 있는 집의 상형문자가 “베이트 b”라는 문자이기 때문입니다. 두 철자의 뜻으로 볼 때 히브리어의 아버지, “아브 ba”라는 말은 “집에서의 지도자” 혹은 “집에서 힘이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상과 같은 방식과 수준에서의 성경원어연구라면 우리에게 여러 가지 많은 유익들을 주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요즈음 이상과 같은 차원에서의 순수한 성경원어연구가 아닌, “모든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만을 말씀하고 있는 책이며, 성경의 모든 단어들은 예수 그리스도만을 나타내고 있기에, 모든 성경말씀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만을 찾아야 하며, 성경원어인 히브리어는 철자 하나하나에 그 의미가 있고 수치가 있기에, 성경의 본래 의미를 알 수 있으려면, 히브리어단어의 모든 철자 하나하나를 파자(破字)해서 그 속에 담긴 진리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다시 조합해서 성경의 본래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내야하는 것이지 성경의 사전적 표피적 의미에만 머무르면 안 되는 것이다.”라는 식의 엉뚱한 주장을 하는 부류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있음을 봅니다. 성경원어를 매우 강조하는 어느 카페에서 “생명나무와 선악나무”라는 글을 보내주었는데 참으로 황당하고 어리석은 차원의 글이었고 그 글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영향력을 나타낼 것이라는 우려가 생겼습니다. 이에 본인은 그 글의 내용을 다음에 조목조목 인용하며 무엇이 문제이며 왜 문제인지를 조목조목 비평해 보고자 합니다.


 

-다 음-

 

생명 나무와 선악 나무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창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창2:16)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7)

 

위의 말씀 중에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다고 했으니 두 구루의 나무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어성경을 보면 나무의 복수형 "엣츠임"은 보이지 않고 나무는 단수 "에츠"로만 계속 등장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동산 중앙에 한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는 생명나무 이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된다는 뜻입니다. "나무와" "나무도" 이렇게 번역되는 바람에 오해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잡으면 "나무가" "나무로" 이렇게 됩니다. 정리해보면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있더라"입니다.

 

-이 상-

 

본 글의 매끄러운 진행을 위하여 이후로 이상의 필자를 “생선나씨”로 가칭하겠습니다. 실명을 거론하지 않는 이유는 이 글이 누군가를 개인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9,16,17에 대한 생선나씨의 이상과 같은 주장이 정말일까요?

 

그동안 수많은 신학자들의 검증을 거치고 거쳐, 매우 신중하게 번역되고 수정증보된 수많은 번역성경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이상과 같은 식으로 번역된 성경은 단 한권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약 이상과 같은 생선나씨의 글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생선나씨의 주장처럼 정말 그런 것일까?

진지하게 고민하며 히브리어성경 원전을 살펴보았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상과 같은 그리고 계속해서 인용될 생선나씨의 주장은, 신학을 전공하며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공부한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전혀 사실무근하며 허무맹랑한 주장들이라 할 것입니다. 왜 그런지를 하나하나 조목조목 비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창2:9의 히브리어성경(BHS) 원전의 의미를 직역해 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아 래-

 

.[r:w: b/f t['D"h' $[ew] @G:h' &/tB] !~yYIj'h' $[ew] lk;=a}m'l] b/fw] ha,r]m'l] dm;j]n< $[e AlK; hm;d:a}h; A@mi !~yhila> hw:hy] jm'|x]Y"w"

 

원문순서직역 / 그리고 그가 나게 하셨다(jm'|x]Y"w"). 여호와(hw:hy]). 하나님이(!~yhila>). 그 땅으로부터(hm;d:a}h; A@mi). ~의 모든-(AlK;). 나무($[e). 아름다운(dm;j]n<). 보기에(ha,r]m'l). 그리고 선한(b/fw]). 먹기에(lk;=a}m'l]). 그리고 ~의 나무($[ew). 그 생명(들)( !~yYIj'h'). ~의 가운데에(&/tB). 그 동산(@G:h). 그리고 ~의 나무($[ew]). 그 지식(t['D"h). 선한(b/f). 그리고 악한(.[r:w:).

 

이병천번역 /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으로부터 보기에 아름다운 그리고 먹기에 선한 모든 나무 그리고 그 동산의 가운데에 그 생명의 나무 그리고 선한 그리고 악한 지식의 나무를 나게 하셨다.

 

-이 상-

 

이상에 소개한 저의 번역은 한글개역개정의 번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성경 원전에 있는 대등불분리접속사 w (바브)는 “그리고, 그러나”라는 의미로 전후문맥을 연결해 주는 것이기에, 원전의 의미를 훼손시키지 않는 수준에서라면 위와 같이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생선나씨가 말한 바,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다고 했으니 두 구루의 나무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어성경을 보면 나무의 복수형 ‘엣츠임’은 보이지 않고 나무는 단수 ‘에츠’로만 계속 등장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동산 중앙에 한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는 생명나무 이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된다는 뜻입니다. ‘나무와’ ‘나무도’ 이렇게 번역되는 바람에 오해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잡으면 ‘나무가’ ‘나무로’ 이렇게 됩니다. 정리해보면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있더라’입니다.”라는 주장은 매우 잘못되고 황당한 것입니다. 계속되는 생선나씨의 글을 아래에 인용합니다.

 

-아 래-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생명나무는 누구를 예표하고 있겠습니까?

생명되신 그리스도 이시지요.

성경을 생명책 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성경이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증언하니까요.

 

-이 상-

 

성경이 생명책이라고요? 물론 성경이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증언한다는 측면에서 성경을 생명책이라고 하는 것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는 성경(시69:28, 빌4:3, 계3:5, 13:8, 17:8, 20:12,15, 21:27)에 8번이나 등장하는 천국의 호적명부인 “생명책”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다소 엉뚱한 표현이 될 수 있기에, “성경은 ‘생명의 책’입니다.”라는 식의 표현이 좀 더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성경에 천국호적 명부인 “생명책”이 있는데 왜 굳이 “성경을 생명책이라고 합니다.”라는 말을 하는 것일까요? 혹시라도 다음과 같은 이유는 아니기를 바랍니다.

 

-다 음-

 

“성경전체는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말씀하는 책이고, 성경의 모든 내용과 활자들은 그 속에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담고 있는 것이기에, 성경을 문자적 사전적 의미에 한정된 표피적 차원의 의미로 오해하면 안 된다. 모든 성경의 내용과 활자들 속에서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찾아내고 생명 되시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받아먹어야만 산다. 성경을 표피적 차원으로만 이해하고 가르치는 자들은 모두가 다 율법에 속한 사망의 자식들이다. 지금까지의 기독교가 그런 식으로 성경을 이해하고 가르쳐 왔기에, 성경이 생명책이 아닌 율법책으로, 기독교가 생명이 아닌 율법의 종교로 둔갑되어 온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의 대부분의 기독교는 생명이 없는 사망의 율법종교로 자리매김하여 온 것이다.”

 

-이 상-

 

안타깝게도 요즈음 성경원어를 운운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상과 같은 엉뚱한 논리와 황당한 주장들을 펼치고 있음을 봅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인용하고 있는 생선나씨의 글도 혹시 그와 같은 논리를 펴기 위하여 “성경을 생명책이라고 합니다.”라는 식의 포석을 까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까지 듭니다. 정말로 이상의 주장과 같이 성경전체는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말씀하는 책이고, 성경의 모든 내용과 활자들은 그 속에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담고 있는 것이기에, 성경을 문자적 사전적 의미에 한정된 표피적 차원의 의미로 이해하면 안 되는 것일까요?

 

정말로 그런 것일까요?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신, 구약의 모든 성경이 예수님을 말씀하는 책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구약성경을 가지고 있었던 유대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눅 24: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이상에 인용된 예수님의 말씀처럼, 성경은 신, 구약 모두가 예수님을 말하고 있는 책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신, 구약의 모든 성경이 다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는 말과 “신, 구약의 모든 성경이 다 예수님만을 말씀”하고 있다는 말은 전혀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전체의 흐름 속에서 구약은 장차 오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고, 신약은 구약의 예언대로 오신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으며, 또 장차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성경구절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만을 말씀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성경의 히브리어, 헬라어가 사전적인 의미를 뛰어넘어 철자 하나하나에 숨겨진 비밀스러운 뜻이 있는 신비의 암호책과 같은 것은 더 더욱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일예로 예수님의 조상이었던 다윗은 예수님을 예표하는 부분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실제적인 다윗일 뿐 다윗의 모든 것이 곧 예수님은 아닌 것입니다. 역사적인 다윗과 그에 속한 모든 것들을 예수님과 예수님께 속한 모든 것으로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전체가 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한다고 해서, 성경전체를 모두 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초점을 맞추어 해석하고 적용하려한다면 매우 위험한 극단의 잘못으로 치우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전체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은 맞지만, 성경전체가 다 예수 그리스도만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은 서로 완전히 틀린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사건과 모든 인물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는 것은 맞지만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련 속에서 그 사건과 인물만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교훈과 진리도 내포되어 있는 것이지, 성경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드러내는 책이라는 전제하에,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것들을 다 묵살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찾아내고 살려내기 위하여 다른 것들을 무시하거나 축소시킨다면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잘못된 극단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요즈음 지나치게 성경원어를 운운하며 이상과 같은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성경에 감추어진(?)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내지 못하고 가르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성경의 진리를 알지 못하고 성경을 표피로만 보는 율법주의자들이기에 그들에게는 생명이 없다.”는 매우 위험하고 독단적인 주장들을 거침없이 펼쳐댑니다. 성경원어를 운운하는 사람들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상당수의 많은 사람들이 이상과 같은 매우 극단적인 오류의 길을 가고 있음을 봅니다. 생선나씨도 바로 그와 같은 극단의 길을 걸어가고 있기에 상기와 같은 극단적인 주장들을 펼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래에 인용되는 그의 글을 볼 때에 저의 그런 생각과 판단이 결코 착오의 무리수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계속되는 생선나씨의 글을 아래에 인용해 봅니다.

 

-아 래-

 

그러나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 선악으로 판단하는 율법으로 태어납니다.

그래서 사람이 생명책인 성경을 보면 생명이신 그리스도로 보이지 않고 지켜야 할 율법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해야 할 것

이것은 하지 말아야 할 것

이것은 좋은 것

이것은 나쁜 것

이것은 선한 것

이것은 악한 것

 

이와 같이 내가 하나님 자리에서 세상을 판단하는 존재로 태어나므로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을 선악으로 판단하고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하여 내가 판결을 내리는 결과가 됩니다. 이것을 깨닫게 된 순간 내가 하나님께 대하여 얼마나 큰 죄인으로 살아왔는지 소스라치게 놀랐던 일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같은 원리로 생명나무를 보는 순간 사람의 눈에는 선악을 구분하여 지키려고 하는 율법의 나무로 보이는 것입니다.

사람은 타고난 그 눈이 죽어야 비로서 그 나무가 생명나무로 보이는 것입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그 한 나무는 비진리로 태어나는 육적 생명이 달려 죽어야 할 십자가요

동시에 육적 생명이 죽은 자에게 참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상-

 

이상과 같은 생선나씨의 주장이 정말로 맞는 것일까요?

성경은 생명이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게 하는 생명책이지 선악을 구분하여 지키라고 주신 율법의 기준이 되는 책은 아닐까요? 성경말씀을 기준으로 선악을 판단하여 선한 길을 걸어가려는 사람의 의지는 그 자체가 죽어져야 할 육적 생명이 되는 것일까요? 성경말씀을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보지 못하고 지켜야 할 율법으로 보는 것 자체가 죄악이며 죽어져야 할 육적 생명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 음-

 

(창 18:19) 『내가 그(아브라함)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레 18:4) 『너희는 내 법도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 19:37) 『너희는 내 모든 규례와 내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 20:8)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

(레 20:22) 『너희는 나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여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거주하게 하는 땅이 너희를 토하지 아니하리라』

(레 25:18) 『너희는 내 규례를 행하며 내 법도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땅에 안전하게 거주할 것이라』

(신 32:46)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 너희에게 증언한 모든 말을 너희의 마음에 두고 너희의 자녀에게 명령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

(수 1:7) 『[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계명을 어떻게 대하셨을까요?

생명이신 예수님 자신에 관한 상징일 뿐 지켜야 할 삶의 계명이 아니었다고 설명해주셨을까요? 선과 악의 기준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신 그리스도의 진리를 먹고 묵상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 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마 12: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요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요일 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계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이 상-

 

이상과 같은 성경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으로 볼 때, 성경은 생명이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게 하는 생명책이 아니라, 선악을 구분하여 지키라고 주신 율법의 기준이 되는 책이라 할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기준으로 선악을 판단하여 선한 길을 걸어가려는 사람의 의지자체가, 죽어져야 할 육적 생명이 아닌, 생명의 길을 걷게 만드는 살아있는 믿음이라 할 것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그와 같은 진리를 가슴 깊이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계속되는 생선나씨의 글을 아래애 인용해 봅니다.

 

-아 래-

 

다음은 16~17절입니다.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으로 해주신 최초의 십자가 언약이 될 것입니다.

그 약속은 "먹으면 죽는다"는 것인데, 번역 성경대로 보면 선악과의 열매를 먹으면 죽는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원어성경과 대조해 보면 원어에 없는 단어가 한글에 있고

원어에 있는 단어가 한글에는 빠져있기도 합니다.

 

원어에는 없는데 한글에 더해진 단어는 16절과 17절의 "열매"입니다.

나무의 열매가 아니라 그냥 나무(에츠)입니다.

열매 라는 단어 "미페리"는 3장에서 여자가 나무를 보고 평가할 때 육적인 자신에게 좋게 할 열매(행위의 열매)로 인식하고 말할 때만 사용했습니다.

 

잘못 번역된 단어는 16절의 "각종"입니다

원어에 더 가깝게 번역하려면 "모든 것"으로 해야 합니다.

즉, "각종 나무의 열매"가 아니라 " 한 나무의 모든 것"이 됩니다.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통채로 먹으라는 것입니다.

또 16절 끝에 "임의로 먹되"에서

"임의로"는 "먹어"를 잘못 번역이 되었고 그냥 "먹어 먹어"로 같은 단어가 두 번 쓰였습니다.

"먹어 먹어"는 먹을 것으로 먹어! 가 될 것입니다.

눈과 귀가 멀어 있으면 절대로 먹을 것으로 먹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먹지 말아야 할 율법을 먹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참된 양식을 보여주고 들려주었을 때

듣기는 들어도 이게 무슨 말이야? 하고 떠나가게 될 것입니다.

 

16절을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에 있는 한 나무의 모든 것은 먹을 것으로 먹되"입니다.

이미 무슨 말씀인지 아셨겠지만,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생명으로 줄테니 먹으라는 말씀입니다.

 

-이 상-

 

이상에 기록된 생선나씨의 주장들이 정말로 맞는 것일까요?

“선악과의 열매를 먹으면 죽는다”는 것이 원어성경을 가감한 번역 성경이 주는 오해요 착각일까요? 생선나씨의 주장대로 한글개역개정은 원어성경의 진리를 훼손시킬 정도의 심각한 오역성경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생선나씨의 주장대로 원어에 없는 단어가 한글에 있고 원어에 있는 단어가 한글에 빠져있기도 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원어성경의 진리를 좀 더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차원에서의 번역기술에 해당되는 부분이지 성경의 진리를 가감하는 차원에서의 자구적 가감이 아님을 아셔야 합니다.

 

생선나씨가 지적하는 바, 16, 17절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부분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6절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G:h' A$[e lKom 입니다.

이 부분을 직역하자면 “나무”라는 남성명사 “예츠”와 "~로부터"라는 불분리전치사 "민"과 합성된 남성명사 “콜”이 모두 연계형이기에 “그 동산의 나무의 모든 것으로부터”가 되어야 합니다.

 

17절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r:w: b/f t~['D"~h' $[e%meW 입니다. 이 부분을 직역하자면, 첫 번째 단어가 “그러나”라는 접속사 “바브”와 “~로부터”라는 불분리전치사 “민”과, 전치사 “민”과 “나무”라는 명사 사이에서 생략되는 “그”라는 의미의 정관사 “하”와 “나무”라는 남성명사의 연계형 “예츠”가 결합된 것이므로 “그러나 ~의 그 나무로부터”가 될 것이고 뒤에 연결된 “하다아트 토브 바라아”가 “선. 그리고 악. 그 지식”이기에 “그러나 그 선과 악 지식의 그 나무로부터”가 되어야 합니다.

 

이상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히브리어원어성경의 16,17절에는 생선나씨의 주장과 같이 “열매”라는 단어 “yriP]”(페리)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히브리원어 본문의 흐름상 열매라는 단어를 넣어주는 것이 본문의 의미를 좀 더 선명하게 전달해주는 좋은 번역이라 할 것이고, 사실상 3:2,3,6에서 “열매”라는 말이 나오므로 열매라는 단어를 보충했다고 해서 잘못되거나 틀린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창1:29에 하나님께서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모든 열매 맺는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는 말씀을 주셨고, 창3:1에 뱀도 여자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동산 모든 나무로부터 먹지 말라 하시더냐?”-원전에 “열매”라는 단어 없음-라고 함으로써, 단지 열매가 아니라 그 나무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 즉 잎사귀와 뿌리와 연한 가지 등의 모든 것이 식용으로 주어진 것으로 보임 -사실 오늘날 나무의 잎사귀와 뿌리와 연한 가지 등이 식용으로 쓰이는 것이 사실임- 을 암시하기에 단지 열매로 국한 시켰다는 아쉬움이 저 개인적으로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말씀자체의 의미를 변질시킬 정도의 잘못된 번역이 아닌 것은 확실하기에 아무런 문제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생선나씨가 주장하는 바, “16절의 ‘각종’이 잘못된 번역이고, 원어에 더 가깝게 번역하려면 ‘모든 것’으로 해야 하기에, ‘각종 나무의 열매’가 아니라 ‘한 나무의 모든 것’이 되어야 하며, 16절 끝에 ‘임의로 먹되’에서 ‘임의로’는 ‘먹어’를 잘못 번역이 되었고 그냥 ‘먹어 먹어’로 같은 단어가 두 번 쓰였기에, ‘먹어 먹어’는 먹을 것으로 먹어! 가 될 것이기에, 16절을 정리하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에 있는 한 나무의 모든 것은 먹을 것으로 먹되’입니다.”라는 것 역시 매우 황당하고 잘못된 주장입니다.

 

개역개정에 “각종”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모두, 전체, 완전함”이라는 명사 “콜”의 연계형과 “~부터, ...보다 더”라는 의미의 불분리전치사 “민”이 합쳐진 “미콜”이라는 합성어로 “~의 모든 것으로부터”라고 번역되는 것이 합당하며, 16절 끝에 “임의로”는 히브리어 lkoa;(아콜)인데 이것은 “먹는다”는 동사 lk'a(아칼)의 단순능동(Qal) 부정사 절대형으로 강조하고 싶은 동사의 앞에 쓰여지며, 뒤이어 나오는 동사의 의미를 강조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에서는 뒤이어 나오는 동사 “네가 먹으라”를 강조하는 것이기에, “임의로”(개정), “먹고 싶은 대로”(새번역), “마음대로”(우리말), “freely”(KJV) 등으로 번역이 가능하며, “마음껏”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개역개정의 “임의로”라는 번역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16절을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에 있는 한 나무의 모든 것은 먹을 것으로 먹되”라고 번역해야 한다는 생선나씨의 장은 너무도 무지한 억지 주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개역개정도 매우 훌륭한 번역이지만 저의 입장에서 직역에 가깝게 번역해 보자면, “그리고 그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그 동산의 나무의 모든 것으로부터 마음껏 먹으라”가 될 것입니다. 계속되는 생선나씨의 주장을 아래에 인용해 봅니다.

 

-아 래-

 

17절을 보시겠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7)

 

원어에 있는 단어를 번역하면서 빼먹은 단어가 있습니다.

전치사 "밈멘루 키"(~으로부터 제외하고)입니다.

빠진 곳에 이 단어를 삽입하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밈멘루 키] 먹지 말라 네가 [밈멘루]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입니다.

바르게 번역하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부터는 먹지말고 그것을 제외하고 (생명나무로)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는 말씀이 아니라 선악과 말고 다른 나무 (생명나무)로 먹으면 죽는다는 말씀입니다.

생명 나무로 먹어야 죽는다는 말씀입니다.

괭장히 어렵게 들리시겠지만 그 이유는 죽는다는 말 때문일 것입니다.

그 죽음을 육체의 죽음이라 생각하면 일단 부정적으로 들리니까요.

 

-이 상-

 

이상과 같은 생선나씨의 주장은 전혀 사실 무근한 황당하고 잘못된 주장입니다.

번역에서 빠진 전절에서의 “ yKi% WNM,=m ”(밈멘누 키)는 생선나씨의 주장대로 “~부터 제외하고”라는 뜻이 아닙니다. “민멘누”란 “~부터”라는 불분리전치사 “민”과 “그것”이라는 3인칭 남성 단수 “민누”의 합성어로 “그것으로부터”라는 의미이고(생략된 후절에서도 똑같은 의미), “키”란 시제, 원인, 목적의 관계를 나타내는 불변화사로서 “because that, ~ 때문에. for 왜냐하면 ~이니까”등의 의미로 쓰입니다. 그러므로 번역에 생략된 “밈멘누 키”에서 “밈멘누 WNM,=m”는 그 앞절에 나오는 선과 악 지식의 나무를 지시하는 대명사로 선과 악 지식의 나무를 다시 한 번 강조하는 의미가 됩니다. “그 선과 악 지식의 나무 ‘그것으로부터’”라는 의미이고, “키 yK”는 뒷절의 이유를 나타내는 것이기에 “‘왜냐하면’ 네가 그것으로부터 먹는 날에는 네가 반드시 죽기 ‘때문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생략된다고 해서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17절의 원어전체를 직역해 보자면, “그러나 그 선과 악 지식의 나무 그것으로부터 먹지 말아라. 왜냐하면 네가 그것으로부터 먹는 날에는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기 때문이라 명하셨다.”가 될 것입니다. 생선나씨가 주장하는 바 “바르게 번역하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부터는 먹지 말고 그것을 제외하고 (생명나무로)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입니다.”라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무지한 주장입니다. 계속되는 그의 주장을 아래에 인용해 봅니다.

 

-아 래-

 

이제 "반드시 죽으리라"를 보시겠습니다.

원어에는 "모트 타 무트"입니다.

모트(죽다). 타(완성). 무트(죽음)

정리하면, "죽는다! 그런데 완성으로 죽는거야!" 이런 뜻입니다.

 

-이 상-

 

이상과 같은 생선나씨의 주장도 사실무근한 잘못된 주장입니다.

"반드시 죽으리라"는 번역은 사실 매우 정확하고 바람직한 번역입니다.

“반드시 죽으리라”고 번역된 부분의 히브리원어는 생선나씨의 주장대로 “.tWmT; t/m”(모트 타무트)입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생선나씨의 주장처럼 “죽는다! 그런데 완성으로 죽는거야!”라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어의 단순능동(Qal) 부정사 절대형은 강조하고 싶은 동사의 앞에 그 동사와 같은 동사가 쓰여지는 것으로 뒤이어 나오는 동사를 강조하는 용법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의 “t/m”(모트)는 뒤이어 나오는 “죽는다”는 동사 “tWm”(무트)의 단순능동(Qal) 부정사 절대형으로, 뒤이어 나오는 동사 “tWmT 네가 죽으리라”를 강조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의 칼 부정사 절대형 “t/m”(모트)는, “반드시”(개정), “정녕”(개역), “면치 못할 것”(현대어), “surely”(KJV) 등으로 번역이 가능하며, 저는 개인적으로 “반드시”라는 가장 번역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히브리어의 기초문법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히브리어의 의미를 함부로 논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 될 것입니다. 생선나씨는 도대체 어떤 의미에서 이상과 같은 황당한 주장을 하는 것일까요? 아마 아래와 같은 그의 결론을 도출해 내기 위한 포석이거나, 혹은 아래와 같은 그의 선입견을 주장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계속되는 그의 주장을 아래에 인용해 봅니다.

 

-아 래-

 

완성으로의 죽음!

진리로서의 죽음!

이 죽음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그 어떤 죽음입니다.

완성으로 죽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완성으로 죽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 죽음은 진리를 먹어야만 찾아오는 죽음입니다.

구약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을 보면 "모트 타 무트"를 "다나토스 아포드네스코"로 되어 있습니다.

다나토스는 진리의 죽음, 완성으로의 죽음을 표현할 때 사용합니다.

아포드네스코는 다나토스의 동사형입니다.

이 다나토스는 육체가 죽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타고난 내 육체 안에 있는 나의 실체가 죽는다고 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사도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할 때 사용한 단어입니다.

육체는 살아있지만 육적 생명이 죽어 있는 상태에서 오직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오늘을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다시 본문의 "모트 타 무트"는 죽기는 죽는데 육체가 죽는 게 아니라 사람이 타고난 겉사람, 율법, 선악의 두마음, 나의 기준이 죽는다는 의미이고 이것이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반드시 이 죽음을 맞이해야 합니다.

성경은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집요하게 이 죽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죽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할 진리에 의한 죽음입니다.

모든 사람은 이 땅으로 부터 지음받아 태어나면 하나님을 모르는 자로 출발을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상태를 죄인이라 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이며 사탄이라 합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같습니다.

나의 실체가 되는 이 비진리가 진리에 의하여 쫓겨나는 이 죽음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다나토스의 죽음입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한 그루의 나무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이면서 동시에 생명 나무이며율법의 나무 이면서 진리의 나무이며 저주의 십자가 이면서 은혜의 십자가입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그 나무(성경말씀)를 쳐다볼 때 생명으로 보이지 않고 율법으로 보이기 때문에 사람 스스로는 생명나무를 먹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보혜사 성령께서 나의 눈과 귀를 열어주시고 말씀을 통하여 진리를 먹여 주실 때 그 생명을 받아 먹을 수 있습니다.

비로서 생명의 빛이 들어오고 사망의 어둠이 죽는 것입니다.

그제야 눈의 들보가 빠져서 선악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고 생명의 기준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어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에덴 동산에 나무를 두심은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을 하는가 알아보시려는 목적이 아니라

사람의 원 상태가 어떠함을 드러내어 알려주시고

그 천연적인 땅적 생명을 언약(십자가)으로 처리하시고

하늘의 새 생명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상-

 

이상에서 생선나씨가 주장하는 바, “‘죽는다’는 히브리어 ‘무트’의 70인역 헬라어 ‘다나토스’는 육체가 죽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타고난 내 육체 안에 있는 나의 실체가 죽는다고 할 때 쓰는 단어”라는 말도 그의 독선적인 억측에 불과합니다. “죽음”이라는 헬라어 “qavnato"”(다나토스)는 “죽는다”는 단어 “qnhvskw”(드네스코)에서 온 명사로서, 영과 혼과 몸의 전인적인 죽음을 의미하는 총체적인 단어이지, 육체의 죽음이 아닌 육체 안에 있는 실체의 죽음만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그것을 실증하는 몇몇 예로 요한계시록 2:10의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와, 히브리서 7:23의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와 빌립보서 1:20의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에 쓰인 단어로 육체적인 죽음을 의미하는데 사용되었음을 봅니다.

 

생선나씨가 말한 바 “하나님을 모르는 상태를 죄인이라 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이며 사탄이라 합니다.”라는 주장도 심히 우려되는 잘못된 주장이라 할 것입니다. 성경원어를 운운하다가 스스로 목을 매고 자살한 모 목사님도 이와 동일한 주장을 하였고, 그 잘못된 영상이 아직도 여기저기에 올려져 있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마귀”와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령의 수장을 의미하는 고유명사이지, 단순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상태에 대한 포괄적인 의미의 추상명사가 아닙니다. 마귀는 “중상자, 비방자”라는 의미의 헬라어 diavbolo"(디아볼로스)라는 명사이고, 사탄은 “대적, 대항자”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f;c(사탄)이라는 명사입니다. 다음에 소개하는 성경말씀을 통하여 그와 같은 사실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마 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마 4: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엡 4: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약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계 20: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대상 21:1)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욥 1: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욥 1:7)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욥 1: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슥 3:1)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고 사탄은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슥 3:2)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마 4: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계 12: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생선나씨는 아마도 성경전체를 예수 그리스도만을 말씀하고 있는 책으로 보며, 영지주의적인 이원론의 입장에서의 성경을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이상과 같은 무리한 해석과 억지 주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심각한 것은 이와 같이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심각하게 무지한 상태에서 성경원어를 운운하며 여러 가지 무리한 해석과 억지 주장들을 펼친 것들이, 그 한 사람 개인으로 끝나지 않고 여러 온라인 매체들을 통해 이곳저곳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으며,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접해보지 않은 수많은 분들이 이와 같은 황당한 주장들을 성경원어에 입각한 깊이 있는 진리의 말씀이라고 착각하기에 그와 같은 어리석은 글들을 맹종하며,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런 글들을 여기저기에 널리 널리 유포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온라인 상에 올려진 이상의 글에 대한 여러 독자들의 반응들이 아래와 같습니다.

 

-아 래-

 

- 많은 교인들이 이 글을 보고 깨달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봅니다. 감사합니다.

- 무트타무트 위대한 죽음.. 겉사람을 십자가에 못박고 속사람을 깨우시는 하나님의 열심 비진리였던 내가 복음으로 들어가기 위한 과정.. 이제 내가 죄인에서 주님의 자녀로.. 이 위대한 죽음을 거쳐야 반드시 내가 생명열매를 맺을 수 있는군요. 내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열심. 모든 것 주님이 하실 것입니다.

- 마니 어렵네요

- 은혜가 되면 받으세요..퍼다가 올리는 것 뿐입니다.

- 감사합니다.......

- 예수는 선악과...그리스도는 생명과... 예수를 죽여야 생명과를 먹는 것... 껍질을 벗겨야 알맹이를 먹는 것... 참으로 진리의 말입니다....

- 은혜받고 퍼갑니다. 감사드립니다. 올바로 알게 하시니 감사 드립니다.

생명나무가 말씀이라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과 삶은 하나입니다. 믿음과 행함을 하나입니다. 씨와 나무와 열매도 하나입니다. 그래서 3위 하나님도 한분이시라고 믿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 성경은 성경으로 반드시 풀어져야함을 잊으면 안되겠죠. 그것이 만가지로(호8:12) 하나님의 뜻을 알게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올바른 길이라 사료됩니다.

 

-이 상-

 

이와 같은 분별력 없는 어리석은 반응들이 우리나라 기독교인들 가운데 과연 몇 %를 차지하고 있을지... 심히 우려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와 같은 안타까운 마음을 도저히 떨쳐버릴 수 없기에 본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성경원어를 운운한다고 무조건 따라가다가, 어느 날 성경의 진리를 떠나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어리석고 안타까운 교인들이 더 이상은 생겨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신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히브리어 헬라어는 정식으로 공부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성경원어를 운운하기 이전에 우리에게 주어진 수많은 번역성경들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혹시 좀 더 정확한 의미를 알기 원하신다면 수많은 번역본들을 비교해서 검토해보시는 지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수많은 신학자들의 검증을 거쳐서 우리에게 주어진 번역본들만으로도 성경의 진리를 올바로 이해하고 따라가는 데 아무런 부족함이 없음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생선나씨가 인용한 성경구절의 원어와 개역개정과 이병천번역을 소개함으로 이 글을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창 2:9

hm;d:a}h; A@mi !~yhila> hw:hy] jm'|x]Y"w"

b/fw] ha,r]m'l] dm;j]n< $[e AlK;

@G:h' &/tB] !~yYIj'h' $[ew] lk;=a}m'l]

.[r:w: b/f t['D"h' $[ew]

 

원어순서직역/ 그리고 그가 나게 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으로부터. ~의 모든. 나무. 아름다운. 보기에. 그리고 선한. 먹기에. 그리고 ~의 나무. 그 생명(들). ~의 가운데에. 그 동산. 그리고 ~의 나무. 그 지식. 선한. 그리고 악한.

 

개역개정/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이병천번역/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으로부터 보기에 아름다운 그리고 먹기에 선한 모든 나무 그리고 그 동산의 가운데에 그 생명의 나무 그리고 선한 그리고 악한 지식의 나무를 나게 하셨다.

 

 

창 2:16

!d:a;h; Al[' !yhila> hw:hy] wx'y]w"

lkoa;¹ @G:h' A$[e lKomi rmoale

.lkeaTo

 

원어순서직역/그리고 그가 명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에게. 그 사람(아담). 이르시되. ~부터 ~의 모든. 나무. 그 동산. 마음껏. 네가 먹으라.


개역개정/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이병천번역/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그 동산의 나무의 모든 것으로부터 마음껏¹ 먹으라 (명하셨다/17절로 연결).

 

¹ lkoa;(아콜)은 “먹는다”는 동사 lk'a(아칼)의 단순능동(Qal) 부정사 절대형으로 강조하고 싶은 동사의 앞에 쓰여지며, 뒤이어 나오는 동사의 의미를 강조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에서는 뒤이어 나오는 동사 “네가 먹으라”를 강조하는 것이기에, “임의로”(개정), “먹고 싶은 대로”(새번역), “마음대로”(우리말), “freely”(KJV) 등으로 번역이 가능하며, “마음껏”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창 2:17

 

al [r:w: b/f t~['D"~h' $[e%meW

*l]k;a} !/yB] yKi% WNM,=mi lk'ato

.tWmT; t/m² WNM,mi

 

원어순서직역/그러나 (그) ~의 나무로부터. 그 지식. 선. 그리고 악. 말라. 너는 먹어라. 그것으로부터. 왜냐하면 ~이기 때문이다. 날에는. 네가 먹는. 그것으로부터. 반드시. 네가 죽으리라.


개역개정/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병천번역/그러나 그 선과 악 지식의 나무 그것으로부터 먹지 말아라. 왜냐하면 네가 그것으로부터 먹는 날에는 네가 반드시² 죽을 것이기 때문이라 명하셨다.

 

² t/m(모트)는 “죽는다”는 동사 tWm(무트)의 단순능동(Qal) 부정사 절대형으로 강조하고 싶은 동사의 앞에 쓰여지며, 뒤이어 나오는 동사의 의미를 강조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에서는 뒤이어 나오는 동사 “네가 죽으리라”는 동사를 강조하는 것이기에, “반드시”(개정), “정녕”(개역), “면치 못할 것”(현대어), “surely”(KJV) 등으로 번역이 가능하며, 저는 개인적으로 “반드시”라는 번역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 이 글을 쓴 저는 여러모로 부족함이 많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진리를 올바로 알고 실천하기를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모든 성경의 진리를 완벽하게 꿰뚫고 있는 사람도,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완벽하게 꿰뚫고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여러모로 부족함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잇몸으로라도 음식을 씹어 먹고 연명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처럼

저는 분명히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그런 제가 볼 때에 조차도

분명히 잘못된 부분들이 있고

누군가는 그런 것들에 대하여 분명히 곱씹어 주어야 할 상황이 되었는데

튼튼한 이를 가지신 분들이 너무도 많으실텐데

그런데 그런 분들 가운데 아무도 이런 글에 대하여 곱씹어 주시는 분들이 안 계시고

오히려 이런 글들이 일파만파 이곳저곳으로 퍼져나가는 슬픈 현실들을 보며

잇몸만을 가지고 있는 듯한 부족한 저라도 나서서

이와 같은 글이 써야겠다는 가슴 저미는 부담감으로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랍니다.

혹여 부족하거나 잘못되어 정정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면 정중하게 말씀해 주시고

사랑으로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부분이 있다면 다시 한 번 더 확인하고 정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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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이병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7.06 희문 님, 맞는 말씀이십니다. 정교한 원어파자로 간교한 미혹을 흩뿌리는 분들이 많이 있고, 그런 것들에 대하여 모두가 침묵하고 있음을 보며 때때로 많이 안타깝습니다. ㅠㅠ
  • 작성자사람 | 작성시간 16.07.06 감사합니다. 평소 원어파자해석에 관심이 많았기에 참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궁금한 점이 있어 질문 좀 드려봅니다.

    이병천번역/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으로부터 보기에 아름다운 그리고 먹기에 선한 모든 나무 그리고 그 동산의 가운데에 그 생명의 나무 그리고 선한 그리고 악한 지식의 나무를 나게 하셨다

    위의 성경 본문 가운데에서 "모든 나무"라 해석된 원어에서도 나무가 단수형인지요.. "모든"이란 단어의 뒤에 복수형 명사가 아닌 단수형명사가 나오는 것이 히브리어 문법에도 올바른 것인지 궁금합니다.. 제 상식으로는 동산의 나무가 여럿일 경우 "모든"이라는 단어 뒤에는 복수형으로 와야하지 않을까 생각되서요..
  • 답댓글 작성자사람 | 작성시간 16.07.06 ~의 모든-(AlK;)을 영어에서 all로, 나무($[e)를 tree로 한다면 all trees로 해야 바른 문법적 표현 아닌가 싶어서요. 선악나무와 생명나무는 단 하나의 나무이니 당연히 단수형으로 쓰이는 것이 맞지만, "모든"이란 단어 뒤에 단수형인 "나무"가 나온다면 좀 이상하다 싶은데, 히브리어문법 상으로는 전혀 문제없는 것인지요..
  • 답댓글 작성자이병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6.07.08 사람 네.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는 영어보다는 한국어에 더 가까운 느낌을 가지고 있답니다.
    NASB, NRSV, KJV이 모두 원문을 그대로 받아 "모든 나무, every tree"라고 번역했고, 영어의 문법에 맞게 각색한 번역들도 있는데, NIV가 all kinds of trees로, NLT가 all sorts of trees로, MSG가 all kinds of trees로 번역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은 "kkal- yets" 즉 "~의 모든 것, 나무"입니다. 직역하자면 "나무의 모든 것을"로 해야 하나 의미에 이상이 없는 선에서 매끄러운 전달을 위해 "모든 나무"로 번역을 한 것이랍니다. 고맙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사람 | 작성시간 16.07.08 이병천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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